앎의 공유/인물 및 리더십

맥락을 모르는 언행은 여전하다!

雲靜, 仰天 2018. 6. 28. 13:53

맥락을 모르는 언행은 여전하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사망하자 그에게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이 수여되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와 여야 정치인 거의 대부분이 찬양하고 나섰다. 군사독재에 대해 비판적 기조를 유지한 민주당도 김종필이 군사쿠데타와 유신을 주도한 것에 대해선 입을 닫고서 말이다. 아무리 세상이 다원적 가치로 바뀌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정착이 부실하고 허물거려도 나라의 근본인 헌정질서를 파괴한 자에겐 그가 훗날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치명적 과에 대해선 실정법적 단죄와 함께 공정한 역사 기록을 남겨야 한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론 한국 현대 정치가들 중엔 청암 박태준과 함께 자질과 소양 면에선 운정 김종필만한 인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호감과 역사학자로서 행하는 역사평가나 기록과 글쓰기는 달라야 한다. 마치 정치인과 공무원이 공사를 구분해야 나라가 바로 굴러갈 수 있듯이 역사학자 역시 평가 대상이나 인물에 대한 공과 사, 공과 과를 분명히 해야 하고 개인의 호오를 넘어서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봐야 역사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서부터 정치인, 고위 공직자, 언론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인들도 말을 바로 해야 한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기강이 바로 서고 굳건해지는데 기초가 된다. 하지만 정과 부, 진실과 허구가 뒤바뀌면서 무수한 상처와 함께 왜곡되고 본말이 전도되면서 흘러온 게 한국의 현대사다. 아직도 국립묘지에 친일파 매국노들과 군사쿠데타 주역들이 묻혀 있는 반면, 독립투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산야에 외롭게 묻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나라가 정상화 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단적인 예다. 정치 지도자들이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워보겠다는 의지가 없었거나 견실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귀결처다. 사회적, 국가적 의제 설정을 독점하고 문제해결의 칼을 쥐고 있는 기득권자들이 계층 이기주의와 끼리끼리의 온정주의를 도려내지 못한 채 법을 성역 없이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 역시 역사를 제대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기득권층은 역사의식이 투철하지 못하다는 역사가의 평가와 기록을 피해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결코 상층부 일부 기득권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 시민들 가운데서도 사안을 잘못 보고 헛다리짚는 이들이 적지 않은 사회적 토양에서 발아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예들이 있지만 일례로 1995년 6월 29일 1,445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의 구조현장에 있던 한 시민이 보여준 언행을 들어보겠다.
 
삼풍백화점 건물이 통 채로 무너져 내린 것은 사건 당일 그날 오후 6시가 못된 시각이었다. 백화점 건물 안에 있던 수많은 시민들이 창졸간에 매몰된 상황에서 수주일 동안 계속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낮 시간에 이상 징후도 없이 별안간 발생한 일이라서 백화점 안에서 쇼핑하던 고객들이 대피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날벼락을 맞고 비명횡사하게 된 것이다.
 

대형 참사를 부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현장

그뿐만 아니라 백화점 건물의 붕괴로 삼풍백화점 인근의 삼풍아파트, 서울고등법원, 우면로 일대로 건축물의 파편들이 튀어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 중에서도 부상자들이 속출해 수많은 재산상, 인명상의 손해를 입었다. 세계 각국에 실시간으로 뉴스 속보로까지 타전돼 나라망신을 톡톡히 시킨 사건이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 사건은 구조작업이 오랫동안 지속되고서도 구조되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은 대형 참사였다. 원인이 건물시공 감리부실임과 동시에 건축업자들과 공무원 사이에 주고받은 비리여서 참으로 낯을 들 수가 없던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당시 나는 때마침 대만에서 잠시 귀국한 상태에서 구조현장을 생중계하는 TV뉴스를 보고 있었다. 사고가 난지 2주 이상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생존자가 있다는 소식에 온 국민이 마음을 졸이면서 지켜보는 가운데 한 매몰자가 구조되는 광경이 중계되고 있었다.
 
이윽고 한 사람이 구조돼 들것에 실려 지상으로 운반돼 올라오게 되자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전국에서 TV로 이 장면을 지켜보던 국민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이것까지는 괜찮았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런데 갑자기 사건 잔해 현장에서 구조과정을 지켜보던 시민들 중 한 남성이 벌떡 일어서면서 두 손을 번쩍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크게 외친다. 그 모습은 TV로 전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생생하게 전파됐다.
 
유난히 돌출된 이 광경을 보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물론 그 사람은 구조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렵게 매몰자를 구조한 사실에 감격해서 만세를 불렀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들어가야 할 건축자재들을 중간에 빼먹은 부실공사와 감독부실이라는 총체적 부패로 인해 건물이 순식간에 통 채로 내려앉아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임을 알고서도 현장에서 꼭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야 했을까? 누가 봐도 참으로 어이없는 대형 인재가 일어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도 자랑스러웠을까? 여타 구조되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사망자들의 유가족의 비통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그런 만세소리가 입 밖에 나왔을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황의 핵심을 오도하거나 번지수를 잘못 짚은 언행들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유린한 군사쿠데타와 유신의 주역이었던 김종필이 한국정치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해주는 것과 삼풍백화점 건물 붕괴 사건시 매몰자가 구조된 것을 보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헛다리 짚거나 사안의 본질을 깨닫지 못해서 맥락을 모르고 설쳐대는 것은 이 나라 민초나 똑똑하다는 이들이 다 모였다는 정치계 인사들이나 매일반이다. 이런 정치인들은 바로 이런 국민들 속에서 선출되니까!
 
2018. 6. 28. 13:03
여의도 국회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