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과 북한-중국관계 전망
서상문(고려대학교 한국전쟁 Archive 연구교수)
“사망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사람이 죽으면 문제는 해결된다.” 암살과 처단을 정치의 한 수단으로 삼았던 스탈린이 한 말이다. 20세기 최대의 살인자이자 독재자다운 발상이다. 그런데 암살은 정치, 특히 권력교체제도의 후진성과 봉건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문제들을 불러일으켜 기존 관계나 상황을 더 꼬이고 엉키게 만든다.
지난 2월 14일,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수도 국제공항에서 백주에 두 눈 뜬 채 독살됐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로 배후 사주범은 북한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견 김정은에게는 불안감 속에서 심중을 짓누르던 오랜 숙제가 해결된 듯하다. 그래서 아마도 지금쯤 그는 축배를 들고 암살 공작원들을 치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정남 제거에 내재돼 있는 정치적 함의를 보면 김정은으로서는 연출한 침울 표정과 달리 내심 쾌재를 부를 만도 하다.
첫째, 최고 권력의 ‘백두혈통’ 세습과 폐쇄적인 경제체제를 고수해온 자신을 제거할 가능성이 있는 반대세력의 구심점을 미연에 제거한 셈이다. 북한 내부에r서 결집될 수 있는 김정남 추종세력의 구심점을 없앤 것이다. 김정남이 지금까지 IT사업과 북한무기의 해외수출의 중계 및 비밀도박 싸이트의 운영으로 호화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북한 내 최대 후견인 역할을 한 장성택과 중국지도부의 비호 혹은 묵인 때문이었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단한 것도 김정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친중세력을 발붙이게 하지 않도록 사전 제거하려고 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남이 북한의 권력세습과 폐쇄적인 경제체제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중국식의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언급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김정은의 정책을 비판한 이상, 김정은에게 김정남은 안심할 수 없는 살아 있는 화근이었다. 김정남은 2010년 10윌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중국의 개방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더욱 민감한 것은 김정은 유고시 김정남이 중국이 친중정부 수립시 내세울 대안 인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록 김정남은 평소 정치에, 특히 북한에서의 권력 장악에는 관심 없다는 심경을 털어 놓았지만, 북한내부에서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여론과 체제비판세력이 남아 있는 한 김정은에게는 김일성가의 장자들인 김정남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암덩어리나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김일성가의 제4대 장자인 김한솔도 있지 않는가? 따라서 북한 내부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후견자인 중국과 김정남을 분리시킴으로써 미래 중국의 북한 진입 명분이 차단됨에 따라 뒤통수를 맞을 확률이 저하됐다.
둘째, 중국지도부에게 대담성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어리다고 얕보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져 있다. 각기 중국과 한국을 겨냥한 양날의 창을 김정남에게 던진 셈이다. 그는 북한이 테러국이라는 오명하에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되고, 중국과의 관계도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할 이성적인 “수령”이 아니라는 점은 중국도 익히 알고 있다.
김정일 이래 중국지도부 내에는 어떤 극단적인 일을 벌일지 가늠할 수 없는 정권이라는 우려가 형성돼왔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을 더욱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김정남 암살을 지시했을지도 모른다. 즉 북한지도부의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을 최대로 극대화해 이를 중국의 대북정책 결정시에 고려요인이 되도록 활용하겠다는 전술이다.
셋째는 지엽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만, 장성택과 손잡고 그동안 벌어들인 수익금을 자금세탁이 쉬운 마카오에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의 동남아로 분산시켜 관리해오는 과정에서 북한지도부에 공여하던 비자금을 둘러싸고 김정은과의 대립이 격화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이 이번 사건으로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중국지도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김정은은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하고 자국의 영향력 속에 두고 있는 것 자체를 대단히 못마땅해왔다. 또한 중국이 정치와 경제체제를 변화시키라는 권유를 듣지 않자 북한의 북중수뇌회담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정일 사망 후 중국지도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중북동맹을 근간으로 한 “혈맹관계”에서 보통의 국가관계로 격하시키겠다고 공언한데다 북한핵문제도 유엔의 제재에 동참한 것에도 불만이 많다.
김일성이 생전에 자주 언급해 “중국을 믿지 말라”는 말이 유훈이 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김정은도 북한지도부의 전통적인 불신 심사를 다시 한 번 표출한 셈이다. 물론 중국지도부는 통보와 동시에 김정남에 대한 특수대우도 감경조치하기 시작했다. 김정남은 김정일 재세시 중국 혁명원로들의 자녀들인 ‘홍얼다이(紅二代)’들과 폭 넓게 교류한 인연으로 오랜 기간 자신과 북경의 처자식이 중국당국의 주도면밀한 지원 혹은 보호를 받았다. 한 때 김정냠은 중국고위층의 배려로 그들의 별장에서 지낸 적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 최대의 의문은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해왔는데 어떻게 해서 말레이시아의 수도 국제공항의 로비라는 공공장소에서, 그것도 대낮에 독살사건이 벌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김정은은 권력을 이양 받은 뒤 2009년 김정남 암살을 시도했으나 중국의 보호에 부딪쳐 미수에 그친 일이 있다.
김정남은 2012년 일본기자와 나눈 인터뷰내용이 책으로 나오고 그 이듬해 12월 고모부 장성책이 무력하게 숙청된 뒤로는 자신이 살해될 수 있다는 극도의 두려움 속에 살았다.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홍얼다이(紅二代) 중 김정남을 비호하던 세력이 힘을 잃게 되면서 비호의 강도가 느슨해진 바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과 북한의 복잡한 은원(恩怨)관계가 얽혀 있다.
또한 사건 발생에 즈음해 김정남 보호임무가 부여된 광저우군구 부대들이 훈련으로 부재중이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중국당국의 보호망을 뚫고 김정남을 말레이시아까지 유인할 수 있었던 북한공작팀의 미끼가 어떤 것이었을까? 또 사전에 그의 동선을 알려준 내통자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합리적인 의문이다.
북한당국이 범행 장소를 마카오나 여타 중국 내가 아니라 말레이시아로 택한 것은 중국과의 결정적인 대립은 피하려고 한 의도로 보인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은 동남아에서 싱가폴 다음으로 붐비는 허브공항이지만 공항경비와 보안검사가 상대적으로 빈틈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면 중국지도부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이 사건으로 향후 북중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될까? 김정은이 의도한대로 중국은 북한이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의 긴장해소, 비핵화와 개방을 주문한 중국의 충고를 무시하겠다는 의사로 읽을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대미 협상용에서 체제생존용으로 전환한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인정여부와 결부돼 중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어 왔다.
하지만 겉으로는 중북동맹이라는 혈맹관계가 유지되겠지만, 속으로는 중국지도부 내 존재해온 양해 수준의 인식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금이 가게 될 전망이다. 북한 내 가시적인 친중파가 전멸한데다 중국공산당 지도부 내에도 친북파가 극소수가 된 현재로서는 예전처럼 상호반목과 의심, 부정적 인식의 악화를 개선시켜 줄 인적 요소도 가동되기 어렵다. 중국은 이번 사건을 북한의 내정문제로 보고 일정 수준을 넘는 과도한 개입은 자제하면서 모른 척하고 넘어갈 것이며, 사건 직후 북한산 석탄을 올해 12월 30일까지 수입을 전면 금지한 것처럼 여타 제제를 가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 수위는 군사적 갈등과 대결로 치달을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 북한은 기존 방침대로 중국에다 양국 정상 회담을 수락해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핵 문제에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할 것이다. 북한은 중국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모략을 피우는 식의 행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엇 보다 주목할 만한 추론은 금후 중국이 미국의 김정은 체제를 변화시킬 프로젝트에 좀 더 협력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다.
이러한 맥락들은 한국정부, 일부 언론과 많은 전문가들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신조처럼 믿고 있는 정책, 즉 중국의 압력행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정책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고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이 높아짐―브룩스 한미 연합사령관이 “화살을 막는 것보다 궁수를 제거하는 것이 낫다”고 한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에 따라 동북아 지역에서 전쟁발생의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기존의 대북 고사 내지 압박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2017. 2. 21 오후
雲靜
위 글은 2017년 2월 23일자『오마이뉴스』에「중국, 김정남 사건 모른척...속으론 부글부글」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습니다.『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내용에 조금 수정된 부분이 있습니다.
'앎의 공유 > 아시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징기스칸의 죽음과 몽골민족의 매장 습속 (0) | 2017.09.17 |
---|---|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한 중국지도부의 입장과 속내 (0) | 2017.06.13 |
중국읽기 3 : 비관론과 경계론 그리고 ‘중국문제’의 해소방향 (0) | 2016.04.26 |
중국읽기 2 : 중국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선 (0) | 2016.04.22 |
일왕의 생일 파티는 대한민국 신친일파 생성의 요람인가? (0) | 2015.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