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삶과 예술의 원천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사랑, 인간과 예술의 영원한 테마! 삶의 꺼지지 않는 불꽃! 20대의 청년을 숨 막히게 하기도 하고, 4~50대 중년의 눈빛을 그윽하게 하며, 칠순, 팔순의 노인에게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신묘약! 진시황으로 하여금 불로초를 찾게 만든 것도 사랑의 자기장이었으며, 세기적 광기의 히틀러가 한 때만은 연인 에바 브라운을 순정으로 대했던 것도 사랑이라는 환각제를 먹은 탓이렸다.
19세기 중후반 말라르메, 보들레르와 함께 당대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한 중년의 시인 폴 베를레느가 몸져누워 있는 부인을 위해 약을 사러 나왔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프랑스 문단에 혜성 같이 나타나 악마적 천재시인으로 알려진 아르튀르 랭보를 보자 그길로 두 사람이 밀월여행을 떠난 것도 사랑이라는 강력한 엑스타시 때문이었겠죠? 랭보가 10대의 미소년이었기 때문일까요? 눈이 맞은 두 사람은 동성애를 나누면서 오랫동안 사랑의 유랑 행각을 벌였습니다.
1930년대 말 김영한이 가난한 시인 백석을 운명처럼 만나 평생 잊지 못한 것도 님을 향한 순정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백석은 함흥의 기생집에서 진향이라는 예명을 가진 기생 김영한을 보고 첫눈에 반한 나머지 그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부부라고 선언했죠. 가난뱅이 시인에 불과한 자신이 뜻밖에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을 황홀해 하면서 세속을 비웃는 듯한 백석의 걸작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잉태시킨 것도 평생 헤어지지 말자고 언약했지만 끝내 보지 못한 연인 자야에 대한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요정의 기생이었던 연인 자야에 대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 사랑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되는 걸작 시를 잉태시킨 힘이었습니다.
나와 나타사와 흰 당나귀/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사랑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 시를 남기고 백석은 만주로 떠났고, 김영한은 같이 떠나자는 백석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았습니다. 그것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영한은 백석을 하염없이 그리워하다가 말년에 선승 법정스님을 만나 그로부터 ‘무소유’ 얘기를 듣고 1,000억 원대의 대원각을 보시했습니다. 평생 동안 요정을 운영해서 모은 전재산이었습니다. 그 요정이 바로 법정스님이 살아 있을 때 주석했던 서울 성북동의 吉祥寺로 바뀝니다.
김영한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거액을 희사하면서도 1,000억 원은 백석의 시 한 줄 보다 못한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사랑의 숭고함과 시문(詩文)의 가치를 안 여인이었습니다. 눈을 감을 때까지 못 잊고 그리워 한 님에 대한 정념(情念)이 없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가을날의 청아함과 맑은 기를 느끼게 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나 혹은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처럼 울림이 큰 시들은 연인에 대한 사랑의 달콤함을 먹고 태어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생의 애환, 고뇌, 회한 혹은 사랑의 환희, 애절함, 실연의 아픔과 배신의 비통함과 분노를 통째로 삼켰다가 토해내지 않으면 잉태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물고기를 산 채로 삼켰다가 토해내는 가마우지처럼 말입니다. 베를레느의 시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도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이 시를 비 내리는 옥중에서 깊은 회한을 목구멍 깊숙이 삼켰다가 뱉어내면서 가슴으로 썼었죠. 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쓴다는 말이 그런 의미겠죠.
베를레느는 자신의 곁을 떠나겠다는 결별 선언을 사랑의 배신으로 받아들인 나머지 비오는 날 벨기에 브뤼셀역 앞에서 랭보에게 권총을 쏴 살인 미수죄로 체포됩니다. 그리고 옥중에서 아내 마틸드와 모친의 헌신적인 사랑을 반추하며 죄 많은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많은 서구인들에게 영원히 회자되고 있는 명시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는 그렇게 눈물과 비통함과 회한이 육화 돼 만들어진 것입니다. 시인 고은은 시를 ‘심장의 뉴스’라고 했다지만, 베를레느에겐 회한의 눈물이 시의 거름이었습니다.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폴 베를레느
내 가슴에 조용히 비가 내리네
마을에 비가 내리듯
내 가슴 속에 스며드는
이 우울함은 무엇이런가?
대지와 지붕에 내리는
부드러운 빗소리여
우울한 가슴에 울리는
오! 비의 소리여
슬픔으로 멍든 이 가슴에
공연히 비가 내리네
오! 뭐라고, 배반이 아니라고?
이 크낙한 슬픔은 까닭이 없네
까닭을 모르는 슬픔이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
사랑도 미움도 없지만
내 가슴은 고통으로 미어진다.
비 내리는 풍경과 자신이 나이 어린 랭보와 동행한 방랑에 대한 때늦은 후회, 부인에 대한 미안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이 시에는 시인의 회한과 음울함이 엿보이네요.
그런가 하면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열병으로 만들어지는 시도 있습니다. “시몬, 그대는 들리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50대 이상이라면 젊은 한 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본 기억이 있는 싯구죠.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갈구를 담은 ‘렌의 애가’입니다. 시인 모윤숙이 자신의 얘기를 한 것입니다. 호방한 성격의 여장부였던 그는 자신이 만난 많은 남자들 중에 춘원 이광수만큼 연정을 자극하는 남자는 보지 못했다고 고백한 바 있듯이 춘원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박식 그리고 둥근 안경 테 너머로 광채 나는 형형한 눈빛에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하지만 모윤숙은 춘원의 소개로 독일 유학생 출신의 안호상과 결혼하게 되지만, 연정이었는지는 몰라도 춘원을 향한 사념(思念)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춘원을 두고 아프리카 밀림 숲에서 홀로 운다는 ‘렌’이라는 새에 자신을 비유하면서 아련한 사랑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죠. 일설엔 그가 읊은 ‘렌의 애가’는 김영이라는 유부남 의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만.
백석의 시처럼, 베를레느의 시처럼, 모윤숙의 시처럼, 또 제자이자 연인으로서 아버지뻘이나 되는 로뎅에 대한 순정한 사랑 밖에 몰랐던 끌로델 까미유의 조각품처럼 사랑은 불후의 예술품을 빚어내는 신의 손이 되기도 합니다. 또 사랑은 고종황제와 에밀리의 관계처럼 그윽하게 끝날 때도 없지 않지만, 때로는 베를레느와 같이 질풍노도처럼 인간을 파멸로 이끌기도 합니다.
더욱이 사랑은 조세핀을 열렬히 사랑한 나폴레옹처럼, 애첩 오미인(虞美人)을 애지중지한 초패왕 항우(項羽)처럼, 양귀비의 미색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한 당(唐) 현종처럼, 때로는 국가의 흥망성쇠까지 좌우하기도 합니다. 또 사랑은 사랑하는 정인(情人)을 통해 옳든 그르든 세상을 바꿀 정도로 인간사에 광폭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부친의 친구이면서 여자, 독서, 혁명 중 서슴 없이 여자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좀 허풍이 심한 혁명가 쑨원(孫文)의 끈질긴 구애에 인생을 맡긴 송칭링(宋慶齡)처럼, 불굴의 의지와 패기가 넘쳤던 혁명가 마오쩌둥에게 정략적으로 접근해 중국의 제1호 부인(퍼스트 레이디)의 자리를 차지한 장칭(江靑)처럼 말입니다.
송칭링은 넘보지 못할 권력은 쳐다보지도 아니 한 현명한 처신 덕에 살아생전에 화도 당하지 않았고, 죽어서도 중국인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장칭은 거대한 대륙천지를 문혁의 회오리에 휩싸이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이유로 지금도 뭇 중국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자신 보다 배나 많은 나이의 혁명가 후안 도밍고 페론과 결혼해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삼류 배우 신분에서 갑자기 일약 아르헨티나 정부의 제2인자가 된 에비타 페론(본명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처럼 사랑을 매개로 자신이 직접 권력을 움켜쥐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장칭과 에비타 페론은 둘 다 배우 출신이자 직접 권력을 휘두른 권력자였네요. 그들은 정말 도밍고와 마오쩌둥을 사랑하기나 했을까요?
뭔가를 노리고 연출하는 사랑은 목적한 바를 거머쥘지도 모르지만 그 사랑이 지순하고 온전한 것이 될까요? 분명한 것은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온몸으로 사랑해보지 못한 사람은 시인이 돼도 결코 진정한 사랑을 노래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시의 영역을 넘어 멀쩡한 이를 눈멀게 하고, 생명 없는 화성에도 촉촉한 윤기를 머금게 할 수도 있습니다. 메마른 사막에도 황홀한 꽃을 피우게 할 수 있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죽음까지 망각하게 합니다. 이것저것 재지 맙시다. 무조건 사랑합시다!
2015. 12. 11 초고
雲靜
위 글은 월간『자유』지 2016년 4월호에 본문 중의 시들이 생략되고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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