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태평양상의 한 점 귀걸이 오끼나와

雲靜, 仰天 2014. 10. 18. 21:45

태평양상의 한 점 귀걸이 오끼나와

 

서태평양상의 아름다운 목걸이! 꿈속을 걷는 듯한 몽롱한 느낌을 주는 환상의 섬, 영롱한 한 점 귀걸이 같기도 한 섬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오래 전 꿈이 이제사 이뤄진 것이다. 20여년 전, 1990년대 초반 대만 체류 시절에 대만 북동쪽의 항구도시인 基隆항에서 배를 타고 오키나와를 가보기로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까진 그런 인연은 없는 모양이다. 대신, 인천에서 비행기로 나하(那覇)까지 바로 날아갔다. 물론 처음 가보는 미답지였고, 이번 여행은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 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호젓해서 좋지만 둘이 가는 여행은 말동무가 있어서 좋다.
 
 

뒤쪽의 큰 배가 기륭항-나하항을 오가는 여객선이다. 대만 체류 중에 기륭은 서너 번 가본 적이 있다. 이 사진은 2019년 체류중에 네 번째로 기륭에 간 김에 그 옛날 이 배를 타고 가보는 오키나와여행을 꿈 꿨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다시 가서 찍은 것이다. 기륭항은 대만 북부의 해상관문이다. 19세기 말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전쟁배상으로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할양 받기로 했을 때 이 기륭 앞바다의 군함 선상에서 청조의 실력자 李鴻章이 청조 대표로 파견한 자신의 아들 李經方과 조인식을 거행했다. 대만 도내의 뭍에서 수많은 대만 민중들이 죽창 등 무기들을 들고 일본군과 이경방의 상륙을 막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이 일본에게 50년 동안 식민지가 되는 역사의 천초전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비행시간은 약 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3박 4일 일정이었다. 항공기 왕복티켓에다 아침식사가 딸린 3박 4일의 호텔숙박비까지 다 합쳐서 30만 원 초반대의 가격이었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지다보면 간혹 이처럼 행운의 티켓을 손에 거머쥘 때도 있다. 
 
우리는 오키나와의 하늘 관문 나하 공항에 내려 입국 수속을 마친 뒤 공항 근처 렌터카 회사를 찾아 가서 우선 승용차부터 렌트했다. 일본의 여느 도시처럼 오끼나와도 전반적으로 시가지가 깨끗했다. 호텔에 들어가 보니 호텔도 굉장히 깨끗하고 전망이 좋은 바닷가 옆에 있었다. 4일 동안 제공된 식사도 나무랄 데 없는 일품이었다. 일기도 간간히 바람이 부는 걸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골랐다. 한국은 1월이라 한겨울이지만 이곳은 상하의 계절이어서 날씨도 포근하고 따뜻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이 아름다운 섬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훑어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4일 간을 돌아다녀보니 오키나와는 3박 4일이면 볼 만한 데는 충분히 다 볼 수 있다. 물론 승용차를 이용한다는 걸 전제한 이야기이고, 여타 관광객들의 관심 분야에 따른 특별한 테마여행지는 별도로 시간이 더 걸린다. 우리는 주요 관광지들을 돌아다닌 뒤에도 시간 여유가 있어 아는 오키나와 현지 지인들을 만나서 하룻밤을 온전히 오끼나와 특산 소주 "아와모리"(泡盛)로 건배와 축배를 들 여유도 있었다. 섬의 크기가 우리의 제주도만하니 그럴만도 하다.
 
이 땅에 사는 인구는 125만 명으로 제주도 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다만, 승용차가 없으면 불가능하니 자동차 렌트는 필수! 승용차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이 알려진 관광코스를 거의 다 가보고도 그 밖에 시장이나 맛집 그리고 헌책방 등도 찾아서 많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헌책방에서는 오키나와 연구에 필요한 오래된 책도 몇 권 구할 수 있어 수확이 작지 않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다! 음식은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으뜸가는 에너지원이다. 우선, 오키나와 음식부터 조금 얘기하면 오키나와는 정말 먹을 만한 게 별로 없다. 음식이 다양하지 않다. 1972년 전 도민이 참여한 투표로 일본에 귀속되기 전 과거 이 척박한 섬에 먹을 것이 부족했던 상황이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이곳의 전통요리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오키나와의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다고 해서 전통 요리를 먹으면서 전통 춤과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장에 가서 먹어보니 정말 볼 품 없었다. 무슨 요리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굽은 생선 몇 마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딱 두 가지 예외가 있기는 하다! 뎃빤야키(철판구이)와 스시집에 가면 철판구이는 그런 대로 먹을 만하고, 스시는 정말로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스시는 한국 보다 값이 훨씬 저렴하다. 두 사람이 실컷 먹어도 우리돈 4만원이 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 짧은 지면에 우리가 다녔던 곳,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다 늘어놓은 순 없다. 대충 아래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하겠다. 오래된 고성터, 일본군 참호, 방어진지 등은 사진에서 빼놓았다. 오키나와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로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쯤에서 삽화 정도로 마친다. 형편이 된다면 직접 오키나와를 한번 다녀 오는 것도 권할 만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 않는가? 

 
 

착륙 직전,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오키나와 나하의 시가지 모습
나하 시내 중심가에 조영돼 있는 중국식 정원 후쿠슈엔(福州園). 복건성 출신 중국 화교들이 출연해서 만든 공원이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귀속 되기 훨씬 전 독립국가인 류큐 왕국으로 있었을 때나, 그 뒤로나 중국과 아주 밀접한 교류가 있었던 사실을 말해준다.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을 조각해놓은 걸 보면 오키나와가 복건성, 광동성 등지의 중국 남방지역의 해양문화, 민속, 신앙 형태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돌기둥의 용 조각은 대만 대북시에 있는 용산사의 石柱 양식과 흡사하다.
휴쿠슈엔 내 누각의 양식도 중국 남방문화의 흔적을 역력하게 느낄 수 있다.
여행에선 뭐니뭐니해도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게 큰 즐거움이다. 일본에 왔으니 일본식으로 외친다. 밥부터 먹고 보자고. "花より団子!"(하나요리 단고,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나하 시내에서 이름난 철판구이집 Han
철판에다 여러 가지 해산물을 구워주는 미녀 요리사의 손놀림이 숙련돼 보인다. 맛도 그런 대로 괜찮았다.
이것저것 먹거리도 대충 맛을 봤으니 이제 길을 떠나야지! 3박 4일 간 오키나와 일주에 우리의 발이 돼 준 렌트카. 렌트카 비용은 한국과 비슷했다. 늘 그렇지만 운전은 내가 할 줄 모르니 집사람이 도맡아 했다.
내가 해외여행을 나가면 반드시 빠지지 않고 가보는 네 곳 가운데 하나인 대학이다. 나머지 셋은 시장, 서점과 박물관이다. 마침 오키나와 최고의 대학인 류큐대학에 가봤다.
슈리성 입구의 성문 슈레이몽(守禮門). 류큐도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예를 숭상한 흔적이 남아있는 성문의 글귀 守禮之邦(예를 지키는 나라)이 인상적이다.
슈레이몽은 슈리성으로 들어가는 여러 곳의 문들 가운데 가장 그럴듯하다. 왕조 시대 왕이 거처하는 궁궐은 그 나라의 경제력 혹은 민본주의의 실천 정도를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같은 최고 지배자가 사는 곳이라도 슈리성 정문은 북경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에는 이도 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물론 문화재의 가치를 크기와 규모를 보고 따질 것은 아니지만. 이에 비해 인도인들이 자랑하는 타지 마할은 대단한 규모지만 그렇다고 고대 인도의 경제력이 굉장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군왕이 오직 자신의 사랑하는 왕비 한 사람을 위해 수많은 민중을 착취한 결과다. 타지 마할은 궁이 아니고 샤자 한 쿠람 황제가 사랑한 몸타즈 마할 황비를 안장한 적사암(red sandstone)의 무덤, 즉 릉이다.
류큐왕의 궁궐인 슈리성 내 本殿. 류큐 왕이 거처한 주된 건축물이다. 슈리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지이다.
역대 류큐 왕들이 앉았던 보좌. 中山은 류큐왕국 왕의 칭호다.
역대 류큐왕들이 썼던 왕관. 금 외에 해양국가 답게 여러 색의 진주들로 장식돼 있다.
슈리성 내 본전에 전시돼 있는 왕이 주재한 문무백관이 참여한 어전 조회 모형
류큐왕국 시절의 류큐 왕궁의 전각. 맨 중간에 앉아 있는 사람이 왕이고, 이 상황은 오키나와를 찾은 중국 사신을 위한 배례식 광경이다.
깎아지른 절벽의 풍광으로 유명한 만자모(萬座毛)! 서태평양의 광활한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뒤편의 암벽이 코끼리의 코를 닮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나하 시내 미하마(美濱)의 아메리칸 빌리지의 밤 풍경. 유흥업소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나와와 여타 도시들을 잇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나오는 휴게소. 맛은 신통찮지만 오뎅, 가마보꼬, 우동 등을 먹을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오키나와식 자루소바
나하시, 기노완(宜野灣)시, 나고(名護)시 등 전국 어느 시내에서든 흔히 접할 수 있는 서양화 된 일본 음식들이다.
일본의 지인들과 밤늦게까지 오키나와 술 아와모리로 회포를 풀었다. 가운데는 류큐의 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카와미치라는 친구고, 수염이 덥수룩한 분은 일본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건축가로서 오키나와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독립운동 대장 마끼시 선생이다. 70대 초반 나이의 마끼시 선생의 명함에는 "류큐민주공화국 임시 대통령"으로 되어 있다. 이들로부터 오키나와의 독립운동 상황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고 오키나와의 언어, 역사, 문화 등에 관해서도 폭 넓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오키나와인들은 일본에 대해서는 수 세기 동안 저항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반대로 오키나와 주변의 여러 작은 섬사람들에 대해서는 완전 갑질로 골목대장 역할을 해온 역사가 있다.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오키나와 출신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섬 미야코지마(宮古島) 출신이다. 이 두 섬 사람들은 서로 말도 다르고 오랫동안 싸워온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원수 같은 관계다. 수 없이 갑질을 당해온 미야코지마 사람들은 나하 등의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해서 철천지 원수의식을 갖고 살았다. 지금도 그런 의식이 많이 남아 있다. 카와미치 선생은 처음 20대 젊은 시절 대학을 가기 위해 나하로 유학을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침략의 상징인 슈리성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 미야코지마 사람들을 착취한 침략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그는 아예 슈리성을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그는 오키나와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마끼시 선생을 돕고 있다. 독립을 원하는 세력들은 총 1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들은 한 때 원수지간이었지만 오키나와의 독립을 위해 서로 힘을 뭉쳐서 싸우고 있다고 한다.
오키나와의 특산술로 유명한 아와모리. 맛은 완전 우리의 소주와 같고 도수는 30도! 내가 일본 친구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술술 잘 받아 마셨던 이유는 어릴 때 자주 마셨던 한국 소주들이 30도 정도여서 독해도 큰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중고등학교 시절 포항에는 30도 도수의 신선소주가 있었다.
오키나와 전통 무대 예술을 보면서 맛 본 오키나와 전통의 '향토요리'. 요리라고 해봤자 국과 간단한 나물 무침에다 생선이 한 두 종류 구워 나온 게 요리의 전부였다. 오키나와가 옛날에 아주 가난한 섬이었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오키나와 전통 춤은 일본적 요소와 동남아 해양문화적 요소에다 중국 남방적인 요소가 혼합돼 있는 것이 역력히 보인다.
오키나와 전통 무대예술을 감상하면서 전통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는 음식점 욧쯔타케(四つ竹)
우리가 묵었던 자탄초 소재 호텔에서 바라본 나하 시내의 일부와 해변
오키나와의 밀림을 잠시 볼 수 있었다. 아열대 나무들이 거센 바닷바람을 맞아서 전부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다.
호텔에서 내다본 오키나와의 일출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5년 6월에 있었던 오키나와 전투 현장을 찾아가봤다. 미군이 오키나와를 공략하고자 개시한 이 전투는 대단히 치열했고 쌍방의 사상자도 대단히 많았다. 나중에 짬이 나면 오키나와 전투의 배경, 과정, 결과 및 영향과 의의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일본 해군의 지하호 방카를 공원으로 만들어 놨다.
오키나와 전투시에 희생된 한국인 전사자 위령탑을 찾아가서 수많은 고인들의 넋을 달랬다. 조선인들이 왜 절해의 고도인 이곳까지 징용 당해 왔는지에 대해선 별도의 주제로 삼아 전문적으로 소개할 또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
평화공원 자료관 앞에서. 기대한 것보다 이 자료관에 소장돼 있는 자료는 다양하지 못했다.
평화공원에서 보이는 태평양 바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해양박물관 입구
오키나와 최대의 수족관 아쿠아리움 내에선 거대한 상어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