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상여

雲靜, 仰天 2015. 7. 6. 11:53

상여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상여(喪輿)가 사라졌다.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만장(輓章)과 만가(輓歌)도 함께 사라졌다. 오래된 일이다. 까마득한 내 유년의 기억 속에 선명한 실루엣으로 남아 있을 뿐, 상여와 만장과 만가는 색깔과 소리와 형체가 보이지 않게 된지 줄잡아 한 세대가 지났다. 실체가 없어지니 당연히 그 의미도 증발되고 없다. 그리곤 또 세월이 흐르고 있다. 
   
상여 나가는 광경은 내가 10대 때까지만 해도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자주 볼 수 있어 진귀한 장면이 아니었다. 일찍 돌아가신 나의 작은 할아버지와 큰 할아버지까지만 해도 꽃상여로 장사가 치러졌다. 당시로는 흔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든과 아흔을 훌쩍 넘겨 장수하신 덕택에 당신의 아우와 형님 보다 거의 한 세대나 더 사신 나의 조부모님은 간편한 현대식 병원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이 보다 더 늦게 수년 전, 그리고 2년 전에 각기 타계하신 나의 부모님의 경우 병원 장례식장에서 전별의식이 거행됐다. 전통장례식으로 상을 치르는 데가 없으니 병원에서 떠나 보내드리는 게 당연한 일로 보인다. 허나 마음 한 구석엔 지금도 마뜩치 않은 회한이 남아 있다.  
  
혹시 본 적이 있는가? 형형색색의 만장들이 펄럭거리는 가운데 갖가지 꽃으로 수놓은 상여를 메고 느릿느릿 나아가는 선소리꾼들, 그리고 그 뒤로 마치 죄인처럼 누런 삼베옷을 몸에 두른 데다 머리엔 두건을 얹고 굵은 새끼줄로 동여 맨 상주들이 줄지어 가는 긴 운구행렬을! 나는 지금껏 살면서 이만큼 생명감 넘치는 광경을 본 적이 별반 없다. 당시 그 광경들은 어린 나의 뇌리 속에 선명하게 각인됐다. 손에 잡힐 듯한 선연한 형상과 색채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를 떠올릴 때 마다 중국이 자랑하는 거장 장이모(張藝模) 감독의 명작 ‘쥐떠우’(菊豆)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노랑, 주홍, 빨강, 주황, 초록, 파랑 등 각가지 원색으로 염색된 수많은 천들이 바람에 펄럭이는 장면들이 화면을 압도하는 영화다. 대지와 산하가 흰 눈으로 덮여 있는 설산에 대비되는 강렬한 원색을 선호한 티베트족의 시네마스코프가 다가오는 듯하기도 하다.
 

  
혹시 들리는가? 느릿하고도 구성지게, 처연하고도 애달프게 부르는 선소리꾼의 만가 가락이! 만장들에 쓰여 있는 갖가지 비감어린 자구의 의미는 또 어떤가? 그리스인들에게 엘레지(elegy)가 있다면 우리에겐 한 때 상여소리가 있었다.   
 
어어 허~어어 허~ 어허능차~ 어어 허
 
인제가면 언제 오나, 오는 날짜나 알려주게
 
(중략)
 
먹고진 것 못 다 먹고, 어린 자식 옆에 두고
 
어어 허~어어 허~ 어허능차~ 어어 허
 
이 세상을 하직하고 천 년 집을 찾아 가네
 
어어 허~어어 허~ 어허능차~ 어어 허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어주오
 
어어 허~어어 허~ 어허능차~ 어어 허   
 
상여꾼들이 “먹고진 것 못 다 먹고, 어린 자식 옆에 두고” 황천길로 가다니 서러워 발길이 떨어지겠느냐고 소리치지 않았던가? 천석꾼, 만석군 곳간에 쌓아둔 금은보화, 산해진미 다 못 쓰고, 다 못 먹으니 아까워서 어떻게 이승을 하직하냐고 이승에서 못 다한 한을 노래했었다. 저승사자가 데리러 올 때가 되니 미우나 고우나 내 마누라가 최고라는 걸 알게 되고, 금쪽같은 자식새끼 눈에 밟혀 어떻게 이승을 하직할 수 있겠느냐고 부르짖지 않았던가? 선소리꾼들은 “아이고, 아이고 원통하고 애닯도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오는 날짜나 알려주게” 하고 된소리 높이지 않았던가? 만가는 망자의 영혼을 달래고 유가족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진혼곡이었다.
 

실제 상여 나가는 행렬
위 사진은 상여 행렬을 재현한 모습이다.

  
만장 펄럭이며 느릿한 선소리꾼의 구성지고 처연한 만가와 함께 꽃상여가 마을 어귀를 지나면 김 첨지도, 박 첨지도, 마을 사람 전체가 상여 뒤를 따른다. 그리고 저마다 선소리꾼의 선창을 받아서 후렴하는 가운데 삶과 죽음의 의미가 되새겨지면 죽음은 삶의 실존이 된다. 망자가 잠들어있는 상여가 정든 집을 떠나 그가 살아생전에 낯익은 마을들을 지나칠 때 마다 그곳 동네사람들도 모두 잠시나마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축원한다. 올망졸망 밭길을 돌고, 개울을 건너 망자가 오가던 야트막한 산길을 지나면 밭 갈던 이씨도, 나무 베던 서씨도 모두 잠시 일손을 멈추고 알지 못하는 자의 죽음에 옷깃을 여민다. 그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란 걸 되뇐다.  
  
이윽고 상여가 그가 누울 장지에 이르면 이제 망자는 영원히 부활할 채비를 한다. 마지막 제사가 치러지고 부모형제, 일가친족과 지인들이 모두 숙연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큰 절을 올린다. 이승에서의 인연의 끈을 놓고 저승에서의 환생을 기원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고하는 하직 의식이다. 타인의 죽음이 자신에게 실존문제가 되고 먼저 가는 이와 마음으로 화해하고, 망자의 왕생극락을 축원하는 것이다. 이 때 비로소 망자의 죽음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 되고, 타자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지금은 ‘상여’라는 낱말이 한글사전 속의 박제가 된 듯하다. 민속사전에나 올라 있을 뿐, 더는 쓰이지 않고, 들을 수도 없다. 어쩌면 지금 30대 이하의 사람들은 이 낱말을 뜻풀이 해주지 않으면 단박에 광경을 떠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도회지에서든, 농어촌에서든 파토스(pathos)로 승화되는 상여는 더 이상 접할 수 없는 빛바랜 사진 속의 민속과 역사가 돼 버렸다. 상여를 대신해 우리의 眼眶으로 들어선 것은 속전속결의 장례식이요, 운구차의 빠른 질주다. 편리함과 신속함을 최고의 가치로 받들며 사는 현대인의 부박한 자화상이다.  
  
상여는 운상(運喪)의 몸체이지만 곡소리, 만가, 만장과 함께 안개 걷히듯 사라지고 없다. 그것이 사라지니 죽음도 우리 곁을 떠났다. 죽음이 타자화 된지 오래고 남의 일이 된지 오래다. 윤기 없고 초췌한 삶만 덩그러니 회색빛 콘크리트 도회 한 가운데에 나목처럼 내버려져 있다. 내 친구 이문재 시인이 말했듯이 일상에서 숱한 사람들이 세상을 하직하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죽음’은 잃어버렸다. 그것은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 모두 제각기 혼자 숨어서 죽어간다.
 
무릇 사람의 인생에서 죽음이란 모두 세 번 헤어지는 것이다. 먼저 자신이 푸른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이 행성을 떠나면서 세상을 등지고 혈육과 헤어진다. 몸이 몸에서 아주 떠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승에 남겨진 이들의 마음에서 망자를 떠나보내면서 또 한 번 헤어진다. 마지막으로는 망자와 헤어졌다는 의식과도 헤어진다.  
  
상여와 만가는 첫 번째 이별을 알리는 장엄한 의식이다. 동시에 이승에 남겨진 자들에게 망자의 이승 하직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지엄한 축제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것은 타인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이요, 나의 죽음이 곧 타인의 죽음임을 증득케 하는 죽비다. 죽음이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곁에서 삶과 공존하는 것임을 일깨우는 카타르시스요, 연어가 대양을 돌아 마지막으로 제 몸 눕힐 곳을 찾아오듯이 삶의 일상으로 건강하게 되돌아오게 하는 역동적인 에너지다. 그것은 망자를 떠나보내면서 살아 있는 자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게 하고 서로를 서로에게 귀의처가 되게 만든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보내고 남은 자들끼리의 위안이다.
  
상여와 만가가 우리의 일상 속에 되살아나야 한다. 상여와 만가가 사라짐에 따라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춘 진정한 의미의 ‘죽음’을 되살려내야 한다. 나의 죽음만이 아니라 타인의 죽음도 보듬어야 한다. 죽음이 일회용 컵으로 쓰다 버려지는 현대사회에 여느 사람도, 또 단 한 사람의 죽음도 보석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모든 이의 삶에는 동등한 가치의 인생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대량생산’은 죽음도 아닌 듯이 생각하고 취급하는 것은 현대인이 자각 증세 없이 앓는 질병이다. 우리는 병명 없고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이 질병을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죽음만이 죽음이 아니라 타인의 죽음도 나의 죽음임을 깨쳐야 한다. 죽음이 멀고 무서운 게 아니라 가까이 삶 속에 녹아 있는 친밀한 벗이며,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生死一如임을 자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삶이 삶다워야 죽음이 축복이다. 죽음도 죽음다워야 삶이 삶다워 진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사실이 절로 솟아나는 희열감으로 체득될 때야말로 삶이 진정 삶다워진다. ‘生死一如’가 선승이나 고승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체화될 때 비로소 남은 생과 세상을 허허롭게 관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상여문화를 통해 죽음이 체현돼야 한다. 상여와 만장과 만가를 아득한 저승으로 가는 길목의 이정표로서만 아니라 이승을 저승과 하나 되게 하는 깨달음이자 살아 있는 교재이게 해야 한다. 많고 많은 전국의 지자체들 가운데 ‘상여문화’를 되살리자고 하거나 혹은 그것을 문화재로 복원하자는 소리를 내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학계에서도 우리네 서민의 애환이 녹아 있는 구전 민요인 만가를 문화유산의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이 미흡하다. 지금 우리의 삶이 삶답지 않고, 죽음이 죽음답지 않는 이유다.
 
2015. 7. 6
雲靜

위 수필은 2015년 10월 22일에 출간된 『형산수필』제31집에 실린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