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주요 언론 게재 글 내용

북한 김정은 관련 루머에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

雲靜, 仰天 2014. 10. 16. 09:51

북한 김정은 관련 루머에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김정은이 무사하다!’, ‘김정은이 41일 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났다!’ 그저께부터 국내언론을 장식한 달갑지 않은(?) 뉴스입니다. 김정은의 중병설, 뇌사설, 변고설 혹은 북한 내부 쿠데타 등의 온갖 잡설들은 그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난 40일 동안 국내언론과 중국언론에 여러 차례 오르내렸던 것입니다.

 

심지어 북한 권력 서열 2위였던 조명록이 김정은을 체포하고 권력을 장악했다는 소식들도 국내 SNS상에 광범위하게 떠다녔습니다. 아시다시피 조명록은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서 2010년에 사망한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니 달라이 라마처럼 환생했거나 예수처럼 부활했다는 말인가요? 이 모두가 김정은의 등장으로 루머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워장 겸 군총치국장으로 북한 내 제2인자로서 김정일의 오른 쪽에 도열한 조명록. 오른쪽 인민복의 오른팔만 잘려져 찍힌 이가 김정일이다.
2000년 10월 1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백악관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적대 청산"을 요청한 내용이 담긴 김정일의 친서를 전한 바 있는 조명록

 

루머의 진원지는 중국이었습니다. 국내 일부 사람들이 이 루머를 퍼다 날라 이를 증폭시켰습니다. 이번에도 군중의 이성이 실종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북한과 김정은 관련 중국과 한국 국내 보도들은 자신 혹은 일부 세력의 희망 섞인 추측성 기사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후자의 그런 역사는 짧지 않죠. 비근한 예로 조선, 동아, 중앙 등 한국의 메이저 보수신문들이 1994년 8월 김일성 사망 이후부터 북한이 곧 붕괴될 거라는 기사와 칼럼을 줄기차고 “끈질기게” 내보냈지만 북한은 지금도 “끈질기게” 존재합니다. 당시 나는 해외에 살고 있었는데, 북한이 중국을 벤치마킹 해 개혁개방으로 나왔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 별개로 현실에서는 아무리 봐도 북한이 붕괴되지 않을 거라는 실제적 근거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신문들은 계속 동일한 논조를 내보냈습니다. 이는 동일한 논조의 보도와 주장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는 것이니 자기결정적 강요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신문들은 자사와 자사의 경제적, 이념적 이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로 대다수 국민의 통일염원 심리를 이용해 정보수익 장사, 안보장사를 한 셈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의도적이거나 추측성 오보를 내는 게 주특기인 듯한데, 김일성이 총 맞아 죽었다는 이 보도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대표적인 오보다. 1994년 7월 8일, 전국이 엄청난 폭염에 휩싸여 있던 날이었다. 나는 이날 내가 탄 부산발 서울행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해 잠시 정차할 때 이 호외를 봤다.
이 역시 조선일보의 오보다. 조선일보만 그런 게 아니고 중앙, 동아, 여타 국민일보, 한국일보, 세계일보, 심지어 경향신문과 한겨례 등도 심심찮게 오보를 낸다. 특히 북한 관련 기사가 유달리 많다. 한국언론에서 전체 뉴스보도에서 오보의 비율은 조중동이 제일 높을 것이다. 방송은 누가 이사장이나 사상이 되느냐에 따라 오보의 비율이 낮은 특성이 있다.

  

북한이 붕괴되지 않을 거라는 실제적 근거들은 예를 들어 이러했습니다. 북한의 전근대적 세습적 정치권력체제에서 김가네 권력을 유지시키는 건 ‘어버이 수령님’을 주술처럼 입에 달고 사는 북한주민이 아닌, 김가네를 신처럼 떠받드는 200만 명도 채 안 되는 진성 핵심 당원과 그 가족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 투쟁이나 중국내전에 참여한 동료, 부하들이거나 그들의 자식과 혈족들입니다. 김일성이 권력을 잡은 뒤로 그들(특히 혁명2세대)은 김일성의 극진한 대우와 보살핌을 받았었습니다.

 

예컨대 현 노동당 비서로서 김정은의 최측근 중의 한 사람인 최룡해는 빨치산 시절 김일성의 부하였던 전 인민무력부장 최현의 아들이고, 우리에게 낯익은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은 정일룡 전 부수상의 사위이며, 당 민방위부장 오일정은 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포항 장기 출생인데, 과거 장기 자신의 조상 묘소를 극비리에 다녀간 바 있다는 설이 있지만 사실 무근으로 보임)의 아들이 그들이죠.

 

또 인민군 부총참모장 오백룡도 인민혁명군 지휘관 오금철의 아들입니다. 당시 이들은 모두 김일성을 “아버님”이라고 부르고 따랐습니다. 한 마디로 이들은 곤궁하던 시절 입을 거, 먹을 거는 물론, 교육 받고 일자리(권력)까지 제공 받으면서 지내온 터라 절대로 김가네 일족을 배반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던 거죠.

  

이들은 김가네에 은덕을 입은 부채를 지고 있기 때문에 부채에 상응하는 만큼 역할도 서로 질세라 충성경쟁을 하다시피 남달랐습니다. 1974년 2월 노동당 내에서 김정일이 김일성 권력의 승계자로 공식화 했을 때나 2010년 9월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했을 때도 모두 혁명2세대들이 힘이 돼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국가 지도자로서의 연령이라는 측면에서 30세도 안 된 구상유취의 청년에 불과한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데는 김영춘 인민군 차수, 김경희, 장성택 부부, 전병호 비서와 같은 혁명2세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혁명3세대로 권력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전 노동당 검열위원장을 지낸 김국태의 딸 김문경, 그 사위인 리흥식, 최룡해의 아들 최준,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아들 김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손자 김성헌 등이 대표 주자들인데 그들은 50대도 되지 않았지만 당과 정부의 주요 보직을 꿰차기 시작했습니다.)

  

노도처럼 휘몰아치던 공산권 붕괴의 조류가 동구권의 변방 루마니아에까지 밀려온 1989년 말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공산당 서기장의 독재 권력이 반정부 인민봉기로 무너지고 북한노동당 내에도 이와 비슷한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신변의 불안을 느낀 김일성은 이들을 주석궁으로 직접 불러 모아 놓고 “니들도 루마니아 간나 새끼들처럼 나를 몰아 낼거냐?”라고 질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일제히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님 우리는 절대 그럴 수가 없습네다”라고 하면서 김가네에게 대를 이은 충성을 맹서한 바 있습니다.

 

말하자면 김가네가 망하면 자신들의 운명도 끝장난다는 인식을 공유한 생사 운명공동체인 거죠. 그들이 제거되거나, 혹은 그들의 인심이 김가네에게서 이반되지 않는 한, 또 개방이 깊숙이 진행돼 군부 내 어떤 반체제, 반김정일 세력이 북한주민들의 전폭적 지지와 외부의 물리적 지원을 받아 조직적으로 들고 일어나지 않는 한 북한은 쉽게 무너지지 않게 돼 있다는 게 당시 나의 판단이었습니다.

 

반김정일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 그것이 실제로 행동화 된다 하더라도 이른바 날조된 ‘백두 혈통’으로 김가네를 끝까지 옹위하는 하수인들의 정보력과 군사력에 금방 탄로 나거나 단박에 제압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죠. 그들의 이러한 관계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급격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이 판단이 지금도 유효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최고 정론지라고 자부하는 메이저 보수신문들이 왜 이 점을 보지 못했을까요? 지금도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심정인데, 아니면 보고도 못 본체 한, 즉 사실 전달의 사회적 공기로서의 임무를 방기한 걸까요? 나는 지금 뉴스를 읽는 자세에서 희망과 현실직시는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정보소비자로서 독식, 편식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통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특정 매체만 평생 보다가 스스로 ‘애꾸눈’이나 ‘사팔뜨기’가 되지 말고 좌우, 진보와 보수의 양쪽 매체를 동시에 접해 사안의 실체적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소리죠. 그래야 두 눈이 온전한 제 구실을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이 최근 몇 년 사이 인터넷 인구의 확대, 일반인들의 경제적, 사상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북한과 김정은에 관심이 많아져 이들이 중국언론에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기사와 보도들은 거의 대부분 근거가 박약한 ‘소설’입니다. 중국에서 나오는 북한, 김정은 관련 소식들 중에 그래도 ‘약간’은 믿을만한 건 중국공산당 기관지와 그 자매지들, 예컨대, 人民日報, 중앙CCTV, 環球時報, 紅旗, 法制日報, 內部參考의 보도 정도입니다.

 

이 매체들에 나온 기사나 보도들도 행간의 의도를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언론이란 언론은 죄다 중공이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 김정은 관련 기사 또한 티베트, 신장과 함께 중공의 1급 통제대상이기 때문에 합목적적으로 기사를 내보내니까요. 간혹 이 매체들에서 북한 관련 기사가 실리는데 그건 200프로 정치적 목적하에 내보내는 것입니다.

  

1949년 10월, 중국국민당으로부터 국가권력을 탈취하고 새로운 국가를 수립한 중국공산당이 맨 먼저 한 게 언론장악이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매체들 가운데 친공산당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통합하거나 반중공적인 것들은 강제적으로 모두 폐간시켰습니다.

 

지금도 티베트, 내몽골, 신장 지역 분리주의자, 파룬쿵, 반체제민주인사(중국에선 '異義分子'라고 함)들의 반정부 저항들을 잠재우면서 국가를 지탱해오고 있는 힘은 언론장악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군부세력의 장악과 함께 체제지속의 양대 지주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언론을 全一的으로 장악한 중공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실들을 약간씩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암시하기도 하는 등 언론플레이에서 달인 수준의 ‘선수’들입니다.

  

결론은 국내 언론에 대해선 두말 할 나위 없고, 중국판 북한 관련 “카더라” 방송과 “카더라” 기사에도 일희일비해선 안 될 것이며, 그 보도들을 주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과 관련해 북한 내 우리정부의 휴민트human intelligence 조직이 와해돼 가고 있다는 게 퍽 안타깝습니다만!)

 

또한 ‘찌라시’ 수준의 출처불명, 정체불명의 정보들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장사치들의 저급한 작당에 부화뇌동하기 보다는 북한과의 지루하지만 지속적인 대화 그리고 북한의 군사도발에는 단호히 응징을 가하는 투 트랙의 정책 운용과 함께 우리 주도하에 상호 신뢰의 공간을 넓혀가도록 관련 기구나 부처에 힘을 실어주는 게 더 실질적이고 우선적입니다.

 

근 70년간이나 철의 장막 보다 더한 아성을 구축해온, 극단적으로 폐색된 독재체제가 장마철 산사태 나듯이 하루아침에 쉽게 무너지지 않듯이 전쟁이 가져다 준 상호 적대감과 불신이 단기간에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북한의 변화와 남북통일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의 명철한 이성적 힘이 모여 거대한 역사의 해일로 결집될 때에 이뤄질 겁니다.

 

위 글은 2014년 10월 23일자『미디어 포항방송』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