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국인들의 처세술 : 말

雲靜, 仰天 2023. 6. 13. 13:23

중국인들의 처세술 : 말


중국인들에게는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누가 됐든 평생 동안 조심하는 게 있다. 慎言, 즉 말조심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人生喪家亡身言語占了八分"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산다. 사람이 패가망신하는 원인의 80%가 신중하지 못한 말 때문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말을 하지 않고선 살아 갈 수 없다. 벙어리도 자기들끼리는 말을 한다. 말은 자신의 생각, 느낀 바나 심중을 표현하는 유용한 도구다.

그런데 이 언어가 없으면 사유도 없다. 인간을 언어적 동물(Homo Loquence)이라 칭하는 이유다. 여타 동물들과 달리 영적인 존재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어에 인간의 의식이 들어 있고 말로 의사와 마음까지도 전달된다. 독일의 걸출한 언어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처럼 현대 언어철학자들도 이 말로 인간의 심리와 생각을 연구해오고 있다.

그러나 말은 인간관계를 발전시키는 유익한 도구이지만, 신중하지 못하면 오히려 인간관계를 망치고 화를 부르는 양날의 검이 된다. 보편 중국인들의 생각이자 처세술의 하나가 바로 이 입을 신중히 하는 것에 있다. 또 그들은 口是禍之門, 즉 신중하지 못한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舌是斬身刀, 즉 함부로 놀리는 혀는 자신을 해치는 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말을 신중히 하라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받는다. 그것은 유교, 불교에서 널리 전래돼온 오랜 가르침에서 비롯된 실행 지침의 한 가지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과 교류 및 접촉하면서 경험하고 관찰해본 바로는 한중일 3국 중에 말에 관한 한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모두 한국인 보다 훨씬 입이 무겁고 신중한 편이다. 한국에서도 고래로 말을 신중히 하고 몸가짐을 허투루 하지 말라는 유교의 가르침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한국인들은 독불장군형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의사표시나 전달에서 직접적인 표현 보다 비유, 은유나 암시로 에둘러 표현하는 중국인들은 일본인들 이상으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대단히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그것은 역사에서 배운 집체적 교훈에서 형성된 것이다. 과거 전통시대 중국사회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신이 억압돼 고통을 받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목숨까지 잃는 경우가 많았다. 또 입을 잘못 놀려서 신의를 잃게 되거나 멸문지화를 당한 일도 부지기수였다.

오늘날 중국 본토의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중국 이외 해외의 중국인 후예들인 華人(국적을 중국이나 중화민국에 둔 사람들을 지칭하는 "화교" 보다 더 넓은 범주로서 중국인의 핏줄을 타고 나도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화교학'의 전문 용어임)들이 대부분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고 신중하게 처신하는 문화적 배경이다. 그들의 말조심에는 네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 處世戒多言, 言多必失이다. 처세는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스스로 다짐하는 것인데, 말을 많이 하면 재물이든, 명예나 신체든 반드시 잃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毋道人之短이다. 즉 남의 단점을 지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孟子는 남의 단점이나 과실을 지적하면 후일 반드시 번거로움이나 분쟁을 일으킨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나는 맹자의 이 말이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공적 영역의 공적 일에서는 과실을 비판할 수 있는 건 해야 된다.  같은 종화민족이라도 대만과 달리 공산 중국에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다.

셋째, 忌交淺言深이다. 사귐이나 우정이 일천한 친구와는 마음을 털어놓거나 깊은 대화를 나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30% 정도만 말하는 게 좋다고 보고 속마음을 다 털어 놓았다간 어떤 위험에 부딪칠지 모른다(說三分話)고 생각한다.

넷째, 不言不開口, 神仙難下手다.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는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는 것이다. 누가 물어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고만 답할 뿐,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귀신이라도 나를 해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파고 들어올 틈새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나 화인들과 교류하거나 대화를 나눌 때 알고 대하면 득이 되는 지식이자 지혜다. 身言은 중국인들이 자기 몸을 어떻게 간수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섭생과 함께 어릴 때부터 받는 중요한 교육이다. 우리도 과거 중국에서 건너온 身言書判을 중시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요즘 중국 외교부대변인, 외교부장 혹은 시진핑 같은 중국 지도자들이 어떤 특정 국가나 특정 사안에 대해서 막말을 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는 걸 보는데 그것은 즉흥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깊이 재삼, 재사 생각한 후에 하는 계산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위에서 소개한 중국인들의 말에 관한 지혜는 꼭 중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나이와 성별은 물론, 국적을 초월해서 모든 현대인들에게도 충분히 교훈이 될 수 있는 가르침이다. 평소 살면서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그를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남의 말 잘못해서 화를 부른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상기시켜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고 단지 남 말만 듣고 상대를 평가하거나 혹은 비판이나 비방했다간 곤경에 처하거나 큰 화를 입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중요하다 싶은 건에 대해선 필히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言前三思)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권장할만하다. 그것은 평소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살면 대부분 지켜진다. 겸손한 성격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은 수양 삼아 의식적으로 말을 줄이려고 노력하거나 하루에 얼마 동안은 묵언하는 수행을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말조심은 자신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람됨됨이와 깊이를 숙성시킨다. 인간들 간의 신뢰도를 높이고 사회의 안정화에도 기여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에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고, 한국에 대해서도 상국의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호감도가 급전직하하는 중국인들이라고 해서 우리가 배울 게 없는 건 아니다. 욕하고 질타하더라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집체적으로 먼저 배워야 한다. 자신들이 소싯적부터 배워왔고 또한 전 인민들을 대상으로 가르쳐온 말의 품격과 신중함을 진지하게 복습해야 할 것이다.

2018. 10. 19. 20:23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