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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후보의 인간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로남불, 진중한 사과가 필요하다!

雲靜, 仰天 2021. 10. 14. 09:23

유승민 후보의 인간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로남불, 진중한 사과가 필요하다!

 

윤석열 후보에게 "천공스승"인가 하는 자를 만났느냐며 따지면서, 손바닥에 임금 王자를 새긴 걸 두고 유승민, 홍준표 두 후보가 "껀수"나 잡은 듯 맹비난하던 게 불과 엊그제였다. 그러더니 웬걸, 오늘은 유승민 후보 자신도 무속인을 오래 전부터 만나오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자신의 가식이 백일하에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국힘당'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유승민 후보가 무속인과 교류한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들(사진 츨처 : 온라인 케뮤니티 캡쳐)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교회에 나가든, 절에 나가든, 또 아무 데도 나가지 않든 그걸 문제시 하지 않듯이 엄연한 문화의 한 형태로 국가가 인정(민속, 무형문화재 등)하는 무속집을 찾는다 해서 그렇게까지 공개적인, 그것도 대선후보 토론이라는 공적 자리에서 비난할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유승민 후보 자신도 작두 타는 무속인을 윤 후보 보다 훨씬 더 전인 10여 년 전부터 만났고, 심지어 그 무속인에게 선거시에 자신을 도와 주는 역할을 맡긴 무슨 직책의 임명장까지 수여했으면 상대를 걸고 넘어질 게 아니다. 비겁하고 되먹지 않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바닥을 친 유승민이라는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게 됐다.

한 마디로 좀 솔직해지자. 남을 비난할 자격이 못 되면 적어도 침묵은 하고 있어야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엔 국가 최고 지도자들 중에서도 중대사를 앞두고선 무속인, 역술인을 찾지 않은 이가 예외였을 정도로 점이나 역술은 보편화 돼 있다. 정치인들도 그렇지만 재벌총수들도 마찬가지다.(이에 대해선 누구라고 굳이 거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심지어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마저도 답을 못 얻었다 싶을 때는 점쟁이나 역술인을 찾는다. 일반인들은 닐러 무삼하리오! 사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힘든 일 닥칠 때마다 종교 외에도 믿고 싶거나 뭔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은 그 무엇이 필요한 세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각각의 사정이 다를 뿐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모두가 인간 이성과 인지력의 한계, 인간 의지력의 한계임과 동시에 자신의 미래나 가까운 장래를 속 시원히 내다보고자 하는 갑갑증이 표출된 삶의 한 순간일 뿐이다. 이건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자연스럽고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지속적이 돼서 모든 경우에 점을 치고 주술이나 사주를 믿고 결정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국가의 정치 영역에서 그런 행위나 신념이 습관화, 관행화 된다면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윤석열이든, 홍준표든, 유승민이든, 아니면 여타 당의 다른 후보자들이 모두 다가올 대선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또 자신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너무나 궁금하고 절박해서 각자가 인연 닿는 대로 찾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그것이 나중에 대통령이 된 후에도 찾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약한 인간 심성의 한계가 드러나는, 여타 동물과 다른 種差이자 인간의 보편적 심리상태라는 걸 인식한다면 사주를 보거나 무속집을 찾는 건 딱히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대선 토론장에선 비난 할 게 못 된다. 더군다나 자신은 더 많이, 더 오래 전부터 무속인을 만나온 사람이라면, 비슷한 처지의 남을 탓하거나 공격하는 빌미로 삼아선 안 된다. 오히려 문제가 된다면 자신은 점도 치지 않고 그런 주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이 시침을 뚝 떼고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가식과 허위가 문제다. 이러한 가증스런 내로남불이 밝혀짐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자기 혼자만의 이미지를 손상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속 당 전체를 웃음거리가 되게 만든 해당 행위를 한 셈이다.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 즉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사주나 점은 기본적으로 무지와 관련돼 있다. 동시에 그것은 개인의 기호에만 머물러 있게 해서 공적 영역으론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인류사에서 점과 사주 등의 미신의 생성과 관련된 無明과 무지의 예는 부지기수다. 아래에 몇 가지 예들을 들어놓겠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해마다 봄여름이면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을 보고 그 원인을 몰라 태양신에게 제를 올리고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곤 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엔 인간의 인지능력과 대응능력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재난이나 현상은 모두 신이 주재하는 걸로 인식했다. 그래서 노한 신을 달래거나 신에 대한 복종심으로 간구한 것이다. 나일강의 범람이 해마다 봄여름을 맞아 따뜻해진 기온 때문에 그 상류에 위치해 있는 아비시니아 고원 설산들의 눈이 녹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과학과 탐험이 괄목하게 발전한 근대 이후의 일이었다. 

히말라야산맥과 파미르고원에서 발원되는 갠지스강과 인더스강 그리고 황하강의 범람에 대응한 고대 인도와 중국의 통치자들도 파라오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패턴을 보여줬다. 인도인들은 힌두교의 業說(Kharma, 까르마)에서 현생의 모든 현상과 결과는 전생에서 자기가 지은 업의 결과라고 한 운명론적 인생관과 세계관에 포박돼 살았다. 지금도 일부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불교의 윤회설에 바탕한 업설과 힌두교의 업설은 다른 것이다. 고대 중국은 불교를 格義시켜 받아 들여 인도문화의 연장에 있으면서도 한 술 더 떴다. 심지어 인간의 길흉화복도 타고난 사주와 팔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주술과 미신은 현대사회로 넘어 오기 전, 전 세계적인 공통의 문화 형태로 작동돼 왔으며, 특히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별자리를 보고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지역이나 근대 라스푸틴이라는 요승에 홀린 차르의 러시아뿐만이 아니었다. 

1950년 제14대 티베트 법왕 달라이 라마는 중국이 티베트를 먹기 위해 4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보내자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지 수시로 점을 치곤 했다. 심지어 전투에 나갈지 말지에 대해서도 점을 쳐서 길일엔 출정하게 하고 흉일엔 나가지 않도록 했다. 티베트불교의 자장 속에 있던 몽골도 국가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점을 치곤 했다. 여타 동남아 국가들도 대동소이했다. 메이지유신 전, 전통시대의 일본에서도 권력자들이 점을 쳤다. 하긴, "천황" 자체가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무속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승려가 일부 무당의 기능을 한 고려(신돈을 보라)를 거쳐 조선시대엔 무당집이 즐비했고 사찰에서도 재를 올리는 형태로 굿을 보는 게 다반사였다. 왕실이라고 특별히 개명된 것도 아니었다. 민비, 즉 명성황후가 일본이나 청나라가 압박 내지 군대를 보내오는 등 국가의 중대사가 닥칠 때마다 무당을 궁궐에다 불러 점을 치고 점친 결과를 보고 결정한 게 이를 말해준다. 당시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선 주재 외국 외교관들과 선교사들은 아연실색했다. 

그런데 점이나 사주와 굿 따위는 해방 후 1940년대 50년대 60년대, 근대화의 세례 중에 있던 7~80년대에도, 또 현대화가 진행되던 90년대에 이어 현재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정치인들과 경제분야 대기업의 그룹 총수들은 거의 모두 사주를 보거나 점을 치고 그 결과에 따라서 결정하고 움직이고 있다. 결코 권장할만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無明에 대한 탐지욕구를 법으로 막기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상치된다. 

여담이지만, 나의 모친도 살아 계셨을 때 집안에 뭔가 우환이 깃들거나 자식들이 바라는 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가끔씩 점을 치러 가실 때가 있었다. 가끔씩 나더러 같이 가자고 해서 나도 부모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따라가 드렸다. 물론 나는 점 자체를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이 보는 걸 비난하거나 믿지 말라고 말리지도 않는다. 그건 개인 자유의 영역이니까.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고향집에서 아들이 잘 되고 집안이 잘 되라고 어떤 스님을 불러 놓고 굿을 하고 있었는데(참고로 제대로 된 스님들은 이런 걸 하지 않음!) 때 마침 내가 고향에 내려 갈 일이 있어 그걸 보게 됐는데 들어가자마자 호통을 쳐서 몇 백만 원짜리 점을 중도에 못하게 해 산통 내 버렸다. 그 스님은 복채가 든 봉투를 들고 줄행랑을 쳤고······.

만약 점괘와 사주대로라면 나는 일국의 왕이 되는 팔자다. 그런 비과학적인 걸 믿고 의지하기엔 나는 너무 이지적이다. 그래서 우연히 본 좋은 吉卦지만 그걸 예시로라도 마음에 두지 않고 살고 있다. 친구들과 후배들이 가자고 해서 재미삼아 따라 가서 사주를 본 것일 뿐이다. 내 주변에도 점 때문에 웃고 울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여담이 길었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서, 유승민 후보는 좀 솔직했으면 좋겠다. 무엇이 근대와 다른 현대사회인지를 규정짓는 요체 중의 하나인 문화의 다양성을, 인식의 개별성을, 행위의 자유로움을, 자기결정의 독자성 등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자신이 전공한 경제학 이외에 문화인류학, 종교학,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등을 통해서 현대사회와 현대인이 처해 있는 사회적 처지와 특징에 대해 공부라도 제대로 더 하든가 할 일이다. 그런데 짧은 식견과 오만과 내로남불 덕택에 이미 국힘당 전체 대선주자들이 한 바탕 크게 웃음거리가 돼 버렸다.

 

모두를 낯부끄럽게 만든 이번 소동(사실은 사건이다)에 대해선 유승민 후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우선, 진중하게 사과를 하는 게 맞다. 늦었더라도 사과는 하는 게 하지 않는 것 보다 낫다. 다음 번 대선토론 때는 자신의 부족함을, 자신의 경솔함을, 자신의 내로남불을 진정성 있게 사과하면, 자신과 윤석열 후보에게도 좋고 상처 받은 지지자들에게도 좋을 것이다. 무책임하게 내로남불 발언을 내질러서 상대 후보의 이미지와 자기를 포함한 전체 후보들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켜 놓고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토론이 계속 된다면 그건 정말 반창회 회장 선거보다 못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정치의 희화화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재발방지 대책도 강구돼야 한다.

 

유승민 후보가 그런 정도의 사과도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 일국의 경영은커녕 자기 자신에게도 정직하지 않고, 자신마저도 직시할 줄 모르는 소인배는 한시라도 빨리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는 게 옳다. 그게 대선 경쟁력 제고는 물론, 정치발전과 국가발전에도 이로울 것이다.

2021. 10. 14. 08:44
북한산 淸勝齋에서
밤마다 작두 타는 허재비 거사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