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거짓말 선수 이재명의 인성부터 제대로 보라!

雲靜, 仰天 2021. 10. 12. 07:57

거짓말 선수 이재명의 인성부터 제대로 보라!

 
가난이 죄가 아니듯이 부자 또한 죄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난과 부자를 마음 먹은 대로 선택할 수가 있나? 부모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은 즉자적으로 얘긴 할 수 있어도 남과 비교가 되는 절대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재명 지사(이하 직함 생략) 캠프의 이경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 사진을 올려놓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게다가 사물을 보는 건 보는 이의 생각의 그릇(즉 크기)에 달려 있다면서 이재명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직함 생략)에 대해서 가난과 부유로 두 사람의 우열로 대비시킨다. 짧은 위 멘트의 의식 밑바닥에는 생각의 그릇이 큰 사람은 가난하게 자란 이재명이 지도자로서 더 훌륭하고, 부유하게 자란 윤석열은 지도자로서 못한 자로 판단할 것이라는 논리비약의 무식함과 비야냥과 비열함이 깔려 있다.
 
이런 저급한 말장난은 한 마디로 이재명을 윤석열 보다 못하게 보는 사람을 전부 생각의 그릇이 작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언어 폭거로서 파쇼적 발상이다.
 
이경 대변인은 이 사진을 통해서 무얼 말하려는 걸까? 가난과 부유를 대비시켜 그 자체가 무슨 지도자의 우열의 결정요인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부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어떻게 버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진다. 그런데 부 자체를 죄악시하는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의 냄새가 여기서도 묻어난다.
 
미리 말해두지만, 근원적으로 말해서 가난은 가난일 뿐이고 부유는 부유일 뿐이다. 가난과 부유가 사람이나 정치인의 생각과 그릇의 크기를 결정짓는 요인도 물론 아니다. 자신이 태어나면서 선택하지 않았는 데도 태생적으로 주어진 가난과 부유는 사람 됨됨이와는 별개의 것이다. 또 그것이 자신의 생각의 폭이나 그릇의 크기와도 결코 비례되지 않는다!

국가 지도자는 빈곤층의 심정과 처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만, 부유층의 심정과 처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당연히 중산층의 심정과 처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어느 한 계층의 이익만 대변하라고 국민이 뽑아주는 게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보듬는 게 일의적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경의 논리대로라면, 이재명은 기업을 운영하거나 부유한 계층의 심정과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지점이 바로 사회 일반의 염려대로 이재명이 대권을 잡으면 바로 부자들을 적대시하고 나라를 사회주의로 몰아 넣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 될 것이라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긴 서두는 이쯤에서 각설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지난 10월 7일, 이재명 캠프의 이경 대변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명의 옷과 윤석열의 옷’이란 제목으로 김주대라는 시인이 올린 사진을 인용하면서 “생각은 각자의 그릇만큼”이라고 적었다. 김주대는 “어린 시절 이재명의 큰 옷에서 가난을 보았고, 윤석열의 딱 맞는 옷과 나비넥타이에서 부유함을 봤다”고 했다고 한다.
 
요컨대 이재명과 윤석열의 어릴 때 각기 '가난했을 것'으로 보이는 모습과 '가난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모습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윤석열의 어린 시절 옷차림이 유복했던 게 아닌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이 부유보다 낫고, 가난과 부유가 지도자(혹은 인간)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며, 가난했던 이재명이 부유했던 윤석열 보다 정치지도자로서 더 낫다는 식으로 결론을 유도한다.

이 사람들 정말 무개념이다! 캠프 대변인이나 시인 쯤 되는 이들이 논리학의 기본도 공부하지 않은 모양이다. 논리학의 삼단논법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대전제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가난한 출신자가 부유한 출신자 보다 정치지도자로는 더 낫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이 무슨 궤변인가? 가난이 부유보다 좋다면 지금이라도 가진 재산 다 내놓고 가난하게 살아라! 가난과 부유가 지도자(혹은 인간)의 생각과 그릇을 가늠할 수 있는 충분조건은 될 수 있어도 필요충분조건의 바로미터가 될 수는 없다. 유복한 게 뭐가 문제라는 것인가? 더군다나 태어나고 보니 부모님 집이 유복한 게 문제가 된다면 가난한 집에 태어난 이재명도 문제가 아닌가? 더군다나 이재명은 지금은 가난하지 않다. 가난하기는커녕 잘 산다. 지난 과거 한 때의 가난과 부유가 그 뒤 인생에서 모든 것, 특히나 정치지도자로서의 우열을 결정짓는 절대적 요소인가? 입만 열면 "평등"을 외치는 자들이 근원적으로 불평등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대선 캠프 대변인 정도가 되면 언어에 대한 기본 소양은 있어야 되는데 내가 봤을 때 영 아니올시다이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 하고 좀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지! 나도 시인이지만 김주대 시인처럼 “어린 시절 이재명의 큰 옷에서 가난을 보았고, 윤석열의 딱 맞는 옷과 나비넥타이에서 부유함을 봤다”며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은근히 비꼬거나 비하하는 식으론 글을 쓰진 않는다.
 
유복은 굳이 부자라야만 유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고 그리 말했다면 정말 개념 없는 사람들이다. 이에 對한 反證의 사례는 지천에 널렸으니 굳이 제시하진 않겠다. 가난하게 살아도 부모의 인성이나 가정의 분위기에 따라 자식들이 복이 있게, 즉 有福하게도, 裕福하게도 잘 자랄 수도 있다. 또 그것은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이재명의 친형이 동생 이재명과 다투는 녹음파일에서 두 사람의 말하는 품새를 들어보니 다 같이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어도 자기 형은 동생 보다는 훨씬 양식 있는 사람으로 대비되는 것을 듣지 못했나? 더 중요한 것은 가난하다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자였다고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난했었다거나 부자였었다거나 하는 이런 지엽말단적인 요소 보다는 국가지도자가 될 사람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인성을 비교해야 한다. 모든 정치과정과 정책과 통치과정은 정치인의 인성이 국민과 사회와 국가와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과정이거나 결과이다. 정직, 양심, 사고의 패턴과 삶의 자세, 행동양식 혹은 행동특성, 공감능력, 균형감각, 결단력 등등 여러 요인들의 종합적 外化로 드러나는 인성은 국가지도자의 리더십 형성과 국가운영능력에 필요한 알파요 오메가다. 역사관 및 역사의식, 지적 능력, 언어구사능력(유모나 위트에다 모국어는 물론, 가능하면 외국어까지 구사하면 더 좋을 것임), 국가 규모의 위기관리능력, 정책의 입안 및 분석능력, 미래비전 등등의 비교 따위는 그 다음 일이다.

국민 위에 군림해서 국민을 부리려 하는 근대형 지도자가 아니라 종복처럼 국민을 섬겨야 하는 21세기 머슴형(서반트형) 국가지도자를 뽑으려면 어릴 때 겪었던 부의 정도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자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 수많은 외부요인들 속에서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성장할 것인가하는 무의식 속의 의지를 중핵으로 해서, 자연, 가정, 교육환경, 사회 나아가 국가와의 교호작용에서 형성되는 인성이다. 

국가최고 지도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직과 의연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다. 그래야 지도자의 언행과 정책이 예측가능해진다. 거짓말을 숨 쉬듯이 해서 국민들에게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는 이미 기본적으로 지도자가 돼선 안 되는 최고의 결격사유를 안고 있다. 최고 지도자란 자가 공은 자기에게 돌리고, 불리하다고 과는 전부 부하들이나 동료들에게 돌린다면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헌신 혹은 충성은 유도되거나 발아되지 않는 법이다.
 
1960~70년대 국민 대부분이 절대적으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재명은 자기집이 가난했다는 걸 두고 유독 자기 혼자만 찢어지게 가난한 것처럼 얘기한다. 그리고 가난을 극복해서 도지사와 대권후보에까지 올라와 소위 "성공"했다는 식으로 유독 가난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걸 무슨 남들에겐 없는 큰 정치적 자산으로 포장하고 선전한다. 나도 어릴 적 자랄 때 이재명 네 보다 더 가난했다. 내가 실던 주변에도 고아원, 거지촌, 서민들이 사는 판자촌 등 거의 대부분 못 사는 이들이 널려 있었지만 나는 유독 우리만 가난했다고 강조하진 않는다.
 
이재명의 자서전 앞부분에 나와 있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가난뿐만 아니라 아동 및 청소년기 전반의 생활에 대한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사실(facts)오류도 없지 않고, 거짓말인 것으로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론되는 부분도 엄청 많아 보인다. 
 
비근한 한 예로, 어릴 적 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할 때 자기 왼손 손목 관절이 유압프레스에 눌려서 관절이 으스러졌다는데 이런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 동정을 얻고자 하는 꼼수를 부린 미화로 보인다. 즉 이재명의 팔은 위에서 아래로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야구 글러브 재료인 가죽을 모양대로 자르는 유압프레스에 짓눌렸어도 그냥 팔굽이 조금 굽어졌을 뿐인 철인의 팔인 모양이다.
 
이재명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레스가 내려와서 손목을 분쇄시키는 걸, 내가 알고 뺀 게 아니라 손이 빠져나오는 중에 짓눌렸다고 봐야 한다." 즉 "프레스가 내 손목 관절을 으깨면서 골절이 일어났다"고 했다.(이재명,『이재명의 굽은 팔 : 굽은 세상을 펴는 이재명의 삶과 공부』, 서울, 김영사, 2017년, 58쪽) 짓눌렸으면 짓눌린 것이지 "짓눌렸다고 봐야 한다"는 말은 또 뭔가? 나도 어릴 때 이와 비슷한 공장 작업일을 많이 봐서 전혀 모르진 않지만, 내가 아는 한 퍼뜩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그는 지금도 왼손으로 넥타이도 매고 두 손을 사용함에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 뒤 약간 굽은 팔굽이 왼팔장애로 판정 받아서 군병역 면제를 받는 등 국가의 혜택을 톡톡이 받았지만......
 
일반적으로, 거짓말로 미화하면 사람들이 나머지 고생한 것까지도 믿지 않으려 하거나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걸 모르나? "有恥且格"이라지 않는가? 즉 인간은 모름지기 부끄러움을 알고 수치심을 느낄 줄 알아야 바르게 된다.『論語』에 나오는 소리다.
 
무엇보다 그의 자서전은 정치적으로 자신을 미화하고 지도자인듯이 포장하고자 한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그리고 자서전을 통해 본 그의 삶은 한 마디로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편향적 사고와 판단, 부자와 사회에 대한 강한 적개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성공해야겠다는 강한 출세욕과 강한 권력지향성이 전부라 해도 대차 없다. 말을 잘 바꾸고 거짓말을 잘하는 임기응변으로 살아온 것 외에 여타 사람이 살아가면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 교양, 조화로운 심성, 상식, 덕목, 인문학적 감성 따위는 형성돼 있지 않아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거짓말은 그의 성격을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2003년 무고 및 공무원 자격 사칭죄로 기소돼 벌금 150만 원을 받았다. 거짓말로 선거법도 위반해서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를 받았다. 그 능수능란한 거짓말 솜씨는 최근 대장동게이트에서 대장동개발 사건 전체를 자신이 "설계"했다면서 무슨 최대의 치적인 것처럼 자랑하다가 그 반대되는 증거와 상황이 나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싹 바꾼데서도 유감 없이 발휘되고 있다. 아마도 이런 걸 보면 이재명에겐 거짓말이 임기응변이라기보다는 성품이나 성격 자체인, 거짓말을 즐기거나 정치의 한 수단쯤으로 보는 타고난 성품인 거 같다. 그래서 혹시 그럴 일은 추호도 없겠지만 만일 이런 자는 대통령직 수행시 자기한테 불리하면 언제든지 거짓말로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갈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다.

고위 공직자라는 자가 2004년 범죄 중에 파렴치범으로 분류되는 음주운전까지 했다가 벌금 150만 원을 맞은 적이 있다. 술을 마시고도 운전하고자 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나처럼 아예 운전을 배우지 말든가! 고위공직자라는 자가 여성과의 스캔들은 또 뭔가? 특정 부위에 점이 없으니 자기는 결백하다는, 보기 민망한 발언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정치인 자체를 희화화 하게 만들었다. 이 일이 해외언론에까지 보도가 돼 "국가 인지도"를 높혔다. 이쯤 되면 양심이 있는 경우 사실 유무를 떠나 부끄러워서 더는 낯을 들고 다닐 수 없는 게 보통의 사람이다. 

게다가 이재명은 누구라도 한 번만 들어본 이라면 그 무지막지한 쌍욕에 기겁을 하거나 소름이 끼쳐지는 인간성파탄의 막장드라마 같은 인성까지 보여줬다. 이재명이 아닌 그 누구라도 형과 형수에게 보통사람이라면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독기를 품고 해대는 인성파탄자, 인간말종은 최고 지도자가 돼선 안 된다. 그래서 국민들이 지도자에 대해 존경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혐오감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쌍욕 해댄 지난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서 국가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믿음과 언로가 겉돌지 않는다. 그래야 적어도 대통령 때문엔 바닥을 친 인성고갈이라는 현대사회의 도덕 및 윤리문제의 치유에 수범이 될 수 있다.

국가지도자는 성격이 안정적어야 한다. 안정성은 事象과 자신에 대한 진중한 성찰에서 형성된다. 안정성이 있어야 정책과 국정수행이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야 언행에 품위가 있게 되고, 그로부터 지도자로서의 무게가 실리게 된다. 治事가 자기 의도대로 안 된다거나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자주 불 같이 화를 낸다. 자랄 때 못 산 것이 한이 맺힌 듯 악에 받쳐 욕설하면서 형제들에게까지 막된 언어폭력을 쓸 뿐만 아니라 남들(자기가 공직자로 있는 도민)에게도 미친듯이 거칠게 몸싸움을 해대는 사람이 어떻게 안정적인 국정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국가지도자를 고를 때는 사람됨의 근본을 봐야 된다. 근본이 시원찮으면 아무리 가진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 능력이라는 것의 顯現이 옳을 리가 없다. 말 그대로 표피적인 술수나 농간과 거짓말로만 나타나게 돼 있다. 능력? 사람 됨됨이와 도덕은 밑바닥 말종이라도 일하는 능력 하나는 딱 부러진다고? "대장동 서민부동산 착취사기사건"이 여실히 보여주듯이 개발초과 이익이 얼마가 됐든 일정 이상의 수익금은 해당 지자체 주민들이나 국가에 귀속시켜야 함에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부동산개발 전문꾼들과 자기죄를 무죄로 만들어준 판사들과 일부 보험으로 포섭한 여야 정치인들만 배부르게 만든 게 능력인가? 그 능력의 실체가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서 능력이 있는 것처럼 그렇다는 걸 아직도 모르나?
 
비판이야 계속 하려면 태산 같지만, 오늘은 시간 관계상 여기까지만 하겠다. 아무리 같은 캠프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비교할 걸 비교해야 한다. 우선 모시는 주군이 거짓말을 어떻게 하는지부터 봐라. 그런 능력이나 의지가 안 되면 대변인직을 내려놓고 최소한 침묵하라!

2021. 10. 12. 10:15
지하철 6호선 전철 안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