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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허위와 이중성,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雲靜, 仰天 2021. 9. 2. 09:25

탈레반의 허위와 이중성,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탈레반 요원들은 여성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나?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가 없는가?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탈레반은 여성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또 미국과 사이 좋게 지내고 지원을 바란다고 하면서도 서구식 양복을 입었다는 자국 남성을 사정 없이 구타했다. 최근 아프카니스탄이 탈레반의 수중에 장악되면서 무슬림이 알라신을 절대시하면서 믿는 이슬람교가 허위와 가식과 이중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났다.

 

이러한 악행들의 원인이 뭘까? 그 근본의 이면에는 이슬람교와 꾸란이 있다. 기독교 성경이 약 850년이라는 여러 시대의 긴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쓴 내용을 결집한 것임에 반해 꾸란은 한 장소에서, 한 인물에게 23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오직 아랍어 하나의 언어로 계시되어 완성되었다고 한다. 각국의 무슬림들이 예배를 볼 때는 반드시 그 나라 말로 번역된 꾸란이 아닌 아랍어 꾸란을 정통으로 하는 이유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독교의 성경뿐만 아니라 석가모니 사후 2~300년에 걸쳐 그의 많은 제자들과 불교도들의 증언으로 성립된(이를 '結集'이라고 함) 불교의 여러 경전과도 다르다.

 

게다가 꾸란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내려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으로서 계시의 매체는 성령이지만 말씀의 주체는 알라 자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기독교 성경과 달리 신의 말씀이 직접 꾸란이 되어 내려왔다고 믿으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동안 매일 같이 꾸란을 부단히 읽고 암송하면서 신(알라)에 대한 믿음과 복종을 표시한다. 

 

종교들 중에서 비교적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불교도 모순이 없지 않는데 인간의 인식력과 상식으로 보면 교리상 모순이 없는 종교는 없다. 이슬람교도 예외가 아니다.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엔 여성에겐 남성 재산 상속분의 절반만 주어야 한다고 돼 있으며, 남성은 여성을 네 명까지 처로 맞이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러한 불평등 규정은 꾸란이 만들어진 7세기 중반 아라비아 반도와 중동 일대의 상황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인 진전이었다. 꾸란이 만들어지기 전엔 여성에겐 재산상속도 없었고, 일부다처의 정도가 극심했으며, 여성 인권의 말살이 무자비하게 자행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천 수백 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어 21세기에까지 와 있는데도 아직도 무슬림들은 이 교리내용을 그대로 신봉해오고 있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꾸란을 절대시하는 태도나 생각이 더욱 극심하고 그 믿음을 극단적으로 실행으로 옮기면서 살고 있다. 이번에 수도 카불을 점령함으로써 외형상 일단 아프칸 국가통일을 이룬 탈레반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말로는 지금부터 과거 자신들이 보여준 여성에 대한 혐오나 차별행위를 삼가하고 달라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과연 이 말을 믿어도 될까? 나는 이렇게 단언한다. 믿지 말라고, 믿어선 안 된다고, 믿을 수 없다고 말이다. 그들이 목숨처럼 중히 여기는 꾸란의 내용 중 이 같은 시대착오적인 여성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 한 내용을 없애거나 수정해서 설하겠다고 약속함과 동시에 실제로도 자신들의 언약을 실천하지 않는 한 무슬림들이 바뀌기를 바라는 건 한 마디로 緣木求魚이다. 그런데다 현실 권력 측면에서 탈레반은 여러 분파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분파들 사이에 여성 인권 개선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되기도 어렵다.

 

 

(사진 제공 : AFP 연합뉴스, 이하 사진 출처 동일)
부르카 착용이 전근대적이고 여성 압제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악습이란 걸 알고도 스스로 선택해서 착용하는 여성에 대해선 문화의 상대성이라는 측면에서 비난하지 말고 그의 결정을 존중해 줘야 된다.

 

자비후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고 “이슬람 율법이 보장하는 선에서 여성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카불 점령과 함께 국가권력을 접수하자마자 “방송을 할 수는 있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거나 여성의 음악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조건을 달았다. 아프간의 여성TV는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입성한 날부터 모든 방송 활동이 중단됐을 뿐만 아니라 일하는 여성 기자 7명 중 6명이 사라졌으며,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일을 관두라"는 종용도 받고 있다. 심지어 미군이 떠난 첫날 아프간 여성들은 청바지를 불태우지 않을 수 없었고 위 사진에서 본 것처럼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로 전신을 가린 채 외출을 해야만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아리파 아마디(가명)라는 여성은 이날 아침 자신의 청바지 등을 모두 태우며 “오빠가 나가서 부르카를 사다 줬다”면서 “난 울면서 청바지를 태웠고 동시에 희망도 같이 불태웠다”고 말했다. 아마디는 지난 20년 동안 서방의 지원을 받는 정부 아래서 교육과 고용 등 일상에 자유를 누렸던 세대다. 더군다나 폭스뉴스는 지난달 17일 “아프가니스탄 타하르 지역의 한 여성이 몸을 다 가리는 의복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했다가 무장 세력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탈레반의 이중성은 여성 혐오와 불평등 행위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국가정책과 대외관계에서도 여과 없이 나타나고 있다. 탈레반은 20년간의 내전 등의 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국제 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은 탈레반의 승리 이후 주요 목표 중 하나가 "국가 재건이며, 탈레반 정권 하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원은 적절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국제사회가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서방세계의 투자와 정상적인 교류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수도 카불에서 아프칸 전통복장이 아닌 양복을 입고 거리를 다니는 남성을 양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이처럼 극단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여성혐오의 인식과 언행이 바뀌지 않고, 특히 그 율법적 근거가 되는 꾸란의 반인륜, 반인권적인 규정을 버리거나 수정하지 않는 한 그들의 변화의지와 그 발언은 믿을 수 없다. 또한 탈레반은 미국과 서방을 그렇게 혐오하고 원수처럼 대하면서도 경제재건에 필요한 달러는 기대하고 있다. 천연덕스럽게 자본 원조요청을 하면서도 서방세계를 적대시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존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간악한 이중성의 극치다. 그들은 이러한 모순, 이중성과 허구성에 대해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문제다. 탈레반이 국가라는 형식을 빌어서 서방세계에 이런저런 손짓을 할 것이다. 하는 짓이 인간 말자들인 무도한 이들이 국가라는 이름하에 외교행위를 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서방세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및 인도와 아랍국가들과도 교류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탈레반 내 각 분파들 사이에 정책들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달라서 여러가지 분열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과연 앞으로 탈레반에 대해 서방세계는 어떻게 대응할까? 미국 외에 관건이 되는 중국과 러시아는 또 어떻게 대응할까? 그들의 말은 또 어느 정도 믿을까? 각국은 각기 자국의 국내 상황과 국제관계 및 국가 대외 전략에 따라서 교류의 정도와 수단이 각각 달라질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아프칸인들이 400여명 들어왔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무슬림일 것이다. 이슬람교의 폐쇄성, 비민주성, 비평등성, 민족적, 종교적 선민의식 등등의 부정적 요소들이 타민족의, 다른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안정성을 해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중동 문제와 국내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 해야 될지 말해주는 방향타로서의 가늠자가 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 한국의 국내정치와 향후 상황변화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미국과 중국이 탈레반과 어떤 관계를 맺고, 또 반대로 탈레반이 터키와 독일 뮌헨에 배후 기반을 두고 있는 신강 등 중국 분리주의자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 갈지 면밀히 주시하고 있어야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급한 일을 마무리한 뒤 별도 심층적으로 논하는 글을 올릴 생각이다.

 

2021. 9. 3. 16:26

서울 2호선 전철 안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