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우리가 자랄 때는요...

雲靜, 仰天 2021. 6. 16. 09:59

우리가 자랄 때는요...


기준이 모호하긴 하지만, 대략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말 사이에 태어난 이들은 얼추 같은 세대로서 자랄 때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엄밀한 잣대는 아니지만 동류의 세대로 묶을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옛적 우리가 경험하고 공유한 추억들을 되살려 줄 사진들을 올린다. 이 사진들 가운데는 지금의 어린이들에겐 상상도 되지 않는 놀이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놀이들은 다 사라지고 없어진지 오래 됐다. 지속이 되고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들은 거의 모두 자연친화적이거나 사람과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놀이들이다. 그 중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남긴 놀이도 많다. 하지만 교육적으로 인성, 덕성의 발육이나 증장에 도움이 되는 순기능들이 있다면 국적을 따질 거까진 없다고 본다. 인터넷, 컴퓨터나 모바일 게임, 오락기에서 손을 놓지 않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자연과 호흡하고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친화적인 인성이 길러지고 사회성도 배양되도록 만드는 놀이들이었다. 복원시킬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하다못해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체육시간에 이런 놀이들을 재현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과거 한 시대를 표상하던 물건들, 놀이들, 거리풍경, 사람들...... 지금은 되돌아갈래야 갈 수 없는 추억들이다!
 
2021. 6. 16. 09:56
북한산 淸勝齋에서
7. 10. 13:34 사진 보충
雲靜
 

마떼(자치기), 마리야, 오자마, 니게야, 네꼬짱 하이(“꼬네가 준비됐나! 됐다”라는 의미의 일본어), 돼지뭉창, 소붕알, 못뼈간치, 술래잡기, 골랑(납짝하게 만든 병뚜껑)따먹기, 껌종이 따먹기, 병정놀이, 각종 과일서리, 망까이(구슬치기), 종이딱지치기, 빠찌(뱃지)따먹기, 장개이치기, 팽이찍어먹기, 묵찌빠 꿀밤때리기 혹은 빰때리기, 기마전, 홍말싸움, 칡이나 도라지, 더덕 캐기, 솔잎이나 참꽃(진달래) 따먹기, 함정놀이, 보물찾기, 소꼽장난, 수건돌리기 등등 놀이가 무궁무진했던 시대에 산 것을 나는 정말 작지 않은 복으로 여긴다.
동네공말, 속칭으로는 일명 "✕박기"로 불렸다.
망까이 놀이
잃으면 돈으로도 구슬을 바꿔줬다. 빠찌(딱지)도 마찬가지였다. 1원에 구슬은 몇 개, 빠찌는 몇 장으로 거래(?)됐다. 내가 자란 동네에선 나중에 큰 돈이 걸린 노름으로 이어지는 발단이 되기도 했다.
멀대가 미술에 재주가 있는 줄 알게 해준 일명 “크레용”이었지만 초등학생 땐 형편이 어려워 30색 짜리는 사보지 못하고 12색, 20색 짜리만 사썼다.
거리 풍경으로 보니 안국동 풍문여고 들어가는 입구 같아 보인다. 서울에서 나무상자에 넣어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남아 있는 것이나 하드통에 적혀 있는 서울의 전화번호가 국번이 한 자릿수 인걸 보니 대략 1950년대 후반?
노랑, 파랑, 빨강색 단물을 뿌리고 그 위에다 삶은 팥과 인절미를 올려준 것이 보통!
항구동 어판장 옆에 제빙공장에서 얼음을 훔쳐 먹기도 하고 냉동실에 들어가서 몸도 식혀서 나오는 등등 여러가지 추억이 많은 얼음덩어리다
옛날엔 겨울이 되면 몹시도 추웠다. 지구온난화가 상당히 많이 진행된 요즘 하고 달리 과거에는 입을 것 마저도 변변치 않아서 더욱 춥게 느껴진 시절이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제법 한기가 돌던 무렵의 학교에서 그나마 떨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해준 갈탄! 이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덮혀 먹은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쓰레기 수거용 일명 "3발이 차"(삼륜차) 기아마스타 T-2000. 동이 틀 무렵의 아침이면 쓰레기를 수거하러 다니던 이 차에서 새마을노래 등등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금성사에서 생산한 공중전화. 1960년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마을에 전화가 있는 집은 이장집이나 선주집 혹은 방앗간 정미소, 술도가 주인집 정도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옆집 가게의 잘 사는 집의 형이 먹는 걸 한 입 얻어 먹어본 라면. 당시 한 봉지에 20원 하던 삼양라면은 그 때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한 간식이었는데, 삶아 먹으면 닭뼈가 씹히고 기름이 좔좔 흘렀다. 봉지 맨 위 오른쪽에 라면의 일본식 발음인 "RAMEN"이 라면의 기술이 일본에서 들어왔음을 말해준다.
불주사를 맞아서 어깨엔 콩알 보다 더 큰 흠테가 올라붙곤 했다.
여름날, 동네마다 골목을 누비던 소독약 뿌리는 방독차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몸에 해로운 것인 줄도 모르고 방독차를 따라 무작정 뛰어 다니곤 했었다.
바다에서도 헤엄을 치기도 했지만 냇가나 도랑을 막아서 물이 조금 고여 있는 곳에서도 친구들과 수영을 많이 했다. 나는 아버지 고향인 안강과 어머니 고향인 외가가 있던 청하에서 저수지나 냇가에서 매년 여름 방학이면 엄청나게 물놀이를 많이 한 추억이 있다. 멀대가 포항중학교 수영선수를 한 것도 이 덕분일 수 있다.
어릴 적엔 몰랐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 생명에 대한 외경의식이 되살아 나게 해준 붕어, 미꾸라지, 실뱀장어, 개구리, 나비, 잠자리, 매미, 풍뎅이, 장수벌레 등등 수많은 물고기 잡기와 곤충 채집
조금 자라서 중학교에 들어가선 "벤또" 까먹는 재미로 학교에 다녔지. 그것도 소풍가서 먹는 벤또는 정말 기가 막힌 맛이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중고등학교에 입학한다고 부모님께서 아들딸에게 가방이니 뭐니 학용품들을 새 것으로 쫙 사주시고 했다.
그러다가 고딩 들어가선 부모님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맨날 친구들과 어울려서 고고춤이나 추러 다니고...
그 당시에는 키타를 엄청 배우고 싶어한 친구들이 가끔씩 있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키타 한 대에 만원 정도 한 고가품을 그렇게 가지고 싶어한 나머지 부모님을 수없이 졸라서 결국 손에 넣고선 밤낮으로 키타에 미쳐 살다시피 한 친구가 있었다.
위 상표 보다 좀더 이른 때엔 풍년초, 화랑, 승리, 공작, 건설, 모란, 재건, 백양 등등의 담배들이 나왔었다. 그런데 중학교, 시골에선 초딩 다닐 때부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댐배"도 입에 대고스리... 멀대는 중학교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도 담배는 한두 번 피워보고선 재미가 없다 싶어서 더 이상 손 대지 않았다.
이성에 눈 뜨기 시작하면서 온갖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포항중학교 구내식당에서 팔던 삶은 라면 한 그릇에 30원하였고, 중학교 참고서 '완전학습' 상하 두 권 값이 680원 하던 1972년엔 세종대왕 할배는 최고의 위대한 영웅!
짜장면 한 그릇에 80원, 시공관 영화 한 프로에 20원, 통닭 한 마리에 350원, 고2 때 4박 5일 수학여행비가 7350원이었던 1970년대 중후반,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넣으면 손에 아령이라도 든 것처럼 묵직한 느낌!
나는 어릴 적 서너 살 때 가출을 세 번해서 포항 라디오 방송에 미아를 찾는다는 방송까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내가 가 있던 부조의 나를 데려 보호해준 어떤 할머니 댁에서 결국은 위 일원짜리 한 장에 넘어가서 결국 가고 싶지 않았던 학산동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일화가 있다. 이 가출 이야기는 모두 수필로 남겨 놨다.
초등 4학년 때 이 멀대는 포항 오거리 죽도시장(현 외환은행 자리)에 있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선데이서울을 1권에 40원에 떼서 45원을 받고 팔러 다닌 적이 있다.
국내 최초 어린이 가수 앨범. 1962년 하춘화가 데뷔하면서 발매된 앨범. 중딩 때 아카데미, 포항극장 등에 가끔씩 남진, 나훈아, 하춘화 김상진 등등의 가수들이 쇼를 하러 왔는데 그걸 보기 위해서 동네 형들을 따라 숨어서 몰래 뒷구멍으로 들어가서 보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부동의 한국 최고의 가수 이미자가 1962년에 부른 '동백아가씨' 음반. 당시 한국 가요사상 최초의 밀리언 셀러였다.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바람둥이 신성일과 엉뚱하거나 무식한 발언으로 주목 받은 엄앵란 부부가 1965년에 연출한 맥주 광고 달력 사진(사진 김한용 제공)
1965년 OB맥주 광고 사진. 모델로 당시 최고의 은막 스타 김지미와 최무룡. 엎드려서 뭘 보고 있는 소년은 아역 배우로 데뷔한 안성기. 20대 초반 한 때 최무룡의 딸과 사귀던 내 친구 덕분에 멀대도 그 두 자매들과 같이 어울리곤 했다. 너무 예쁘서 나중에 커서 여배우가 된 최무룡의 두 딸 중 중3 여동생을 앉혀놓고 그림도 그리곤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