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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동산영문 초청 일요예배 참석

雲靜, 仰天 2021. 5. 10. 05:34

구세군 동산영문 초청 일요예배 참석

 

예수님의 희생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목자와 성도들이 있는 곳, 경주시 천북면 구세군 동산영문! '영문'은 그곳 교회 김영문 담임사관의 이름이 아니라 구세군에서 교회를 뜻하는 명칭이다. 영문은 靈門(the Gate of  soul)이 아닐까 추측했는데, 그게 아니고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구세군에선 죄와 영적 전쟁을 벌이는 부대라는 의미에서 營門(corps, 軍團)으로 지칭한다고 한다.

그곳 영문의 담임사관으로 있는 친구가 초청을 해줘서 참으로 오랜만에 교회에 가서 하느님 말씀을 접했다. 친구의 설교도 들어보고, 성도들과 함께 집에서 어쩌다가 몇 년에 한 번씩 부르던 찬송가도 현장에서 불러봤다. 아~ 참 작년 이 맘 때엔 집에서 혼자서 찬송가를 하루 종일 부른 적도 있네요!
 
마침 5월 9일 내가 가던 날이 어버이날 다음날이라 예배의 주제도 어버이날의 의미를 기독교적으로 새겨보는 것에 맞춘 듯이 보였다. 친구의 설교 내용도 그기에 맞춰졌다. 설교의 핵심만 간추리면 이러했다. 즉 흔히 말하는 네 가지 사랑들 가운데, 부모자식간의 조건 없는 사랑, 친구들 간의 우정, 남녀들 간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 중에 앞의 세 가지는 시간의 제한, 상황의 변화, 인간 자체의 이기성 등으로 인해 변하고 영원하지 않지만 마지막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니 부모에게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해드리는 효도를 하되 하느님을 믿도록 하는 게 가장 큰 효도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위 네 가지 사랑 즉 스토르게,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는 사랑의 원형적인 범주다. 우정도 고대에는 사랑의 범주 안에 들어갔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랑이든 이 범주를 뛰어넘는 것은 없다. 이는 제각기 애정(Affection), 우정(Friendship), 에로스(Eros), 자비(Charity)로 현현되는 것인데 이 가운데 애정도, 우정도, 에로스도 모두 영원하지 않지만 오직 하느님의 자비, 즉 아가페적 사랑만이 영원하다고 보는 게 기독교계의 설명이자 성경의 가르침이다. 마치 서양철학의 교두격인 플라톤이 제시한 이데아(Idea)만이 영원하고 여타 세상사의 모든 형상 및 현상은 그 이데아가 발한 빛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친구가 신학적임과 동시에 인간사의 세속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를 과거 자신이 경험한 것을 곁들어 쉽게 잘 풀어서 설교해줘서 교인들이 모두 잘 이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뭣이든 쉽게 마음에 와닿게 하는 것이 요체다. 게다가 나는 '부모님은혜'를 들려준 색소폰 연주를 듣고선 먼저 가신 부모님 생각도 해볼 수 있어 의미가 남달랐다. 난생 처음으로 그곳에서 달아준 카네이션에 촉발돼 지금은 달아드리고 싶어도 달아드리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그리움도 잠시 품어봤다.
 
또 한 가지 설교를 듣고 있던 중에 문득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즉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든 종교적으로 회개하고, 뉘우치고, 하느님의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고 만족하고 말 게 아니라, 자신이 지은 과거의 죄는 그 죄로 인해 손해, 고통이나 질곡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그 당사자를 반드시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창동 감독, 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에서 논증적으로 갈파한 바 있듯이 말이다.
 
무한정 퍼준다는 느낌이 든 천북면 동산영문이었다. 말씀도 무한정, 정성이 담긴 물질도 무한정 퍼주는 성전이다. 그곳에서 나는 참교회와 참기독교인이 있다는 기쁨과 자랑스러움이 교직되는 한 때를 보냈다. 예배를 마치고 늘 바쁘게 영양가 없이 오가는 내게 오랫만에 친구와 시간적으로 여유 있게 점심도 같이 하고 얘기도 많이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됐으니 그야말로 일거삼득의 호사를 누렸다.  
친구는 30여년의 목회활동을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갈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충분하지 않은 퇴직금에다 살 주택도 제공되지 않는다고 해서 세속적 관점에선 친구로서 노후가 조금 걱정되지만, 그것도 주님의 은혜가 있어 아무런 걱정이 되지 않는다며 담담하게 웃는 김영문 사관!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다.
 
앞으로도 친구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하느님을 섬기고, 낮은 자세로, 힘들고 지치고 힘 없는 약자들을 보듬으면서 계속 퍼주는 삶을 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그가 거하는 곳은 어디든지 모두 하느님의 진정한 아가페적인 사랑(Love as Agape)을 실천하는 성스런 곳(sacred place), 성전이 될 것이다. 내가 간혹 존경하는 신부나 목사(고 김수환 추기경, 김재철 목사)들도 없지 않지만 나는 내 친구가 훗날 한국교회사에서 정말 사심 없고 겉과 속이 일치된 참 기독교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본다. 내 친구 중에 진정한 기독교인이 있어 나는 정말 대단히 자랑스럽고 내일처럼 기쁘다.
 
이 참에 기독교도가 아닌 일반인이 보는 관점에서 한국기독교에 대해 쓴 소리를 한 마디 하고 싶다. 다 알고 있는 문제지만, 내 친구도 흔쾌히 용인해주고 귀 기울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허장성세가 무너져서 초대교회 시대나 16~7세기 개신교 초기의 시대와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느님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느님인 것처럼 오만하고 권력화 돼 있을 뿐만 아니라 제정일치 시대도 아닌, 다양한 가치와 생각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속의 정치권력에까지 깊이 개입돼 있으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부를 누리면서도 음지의 병들고 사회적 약자들과 같이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랑곳 없이 권세 있고 돈 많은 부자들만 찾아다니는 등등의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교회는 대오각성해서 거듭나야 한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섣부르게 한 소리했지만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약이요,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독이 되는 것을 넘어서 악(evil)이 될 것이다. 끝으로 한국교회가 외양적 발전이 아니라, 현시적 과시가 아니라 하느님과 즉자적 대화를 간구하는 의미에서 그에 부합하는 성경의 한 소절을 인용하면서 펜을 놓는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5~6)
 
2021. 5. 11. 09:09
북한산 淸勝齋에서
仰天 雲靜
 
 

예배 시작 전 안내 말씀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 쓰는 마음..." 부모님 은혜 노래를 연주하는 모습이 더욱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일순 눈물이 찔끔 했지만... 교인들을 위해 연주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색소폰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자연스레 물 흐르듯이 유려하게 설교하는 김영문 담임사관
교만을 버리고 하느님의 참 가르침을 따르라는 교훈을 소개하는 동영상, 목회 일을 많이 했다는 교만에 젖어 있다가 죽어서 천국 문턱에 가서 그것은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님이 일갈하신 말씀을 듣고 크게 뉘우쳤다는 현신애 권사의 체험이 주를 이룬 내용이다. 김창인 목사, 한경직 목사, 조용기 목사도 현신애 권사의 얘길 듣고 회개하고 반성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이 동영상에는 없는 얘기지만 친구 김영문 사관도 과거 젊은 시절 나주에서 개척교회의 목회를 할 때 조용기 목사에게 편지를 보내 겸손하게 낮은 곳에 임해서 어려운 이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시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랬더니 얼마 후 조용기 목사가 답장을 보내왔고, 복지관 건립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준 바 있다고 한다.
멀대는 세속에서 찌들어 영낙 없는 초로의 잉여인간으로 보이지만 친구 김영문 사관은 늘 성스러운(holy) 분위기에서 경건하게 보내서 그런지 50대 초반으로 젊게 보인다. 안 그래도 미남인 얼굴이 더 젊고 선하게 빛나 보인다.
교회에서 나눠준 은혜가 이방인인 나의 손에까지 전해졌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종이 쇼핑백 안에는 정성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했다. 너무 맛있게 보이는 떡은 배가 고파서 먹다가 조금 남은 것이다. 아래 사진 처럼 구세군 공보물도 들어 있었다.
목회 시작 전에 영문에서 모든 부모세대 교인들의 가슴에 달아준 카네이션. 부모 자격이 없는 멀대의 가슴에도 달아줬다. 잠시나마 어른은 됐지만 보류해뒀던 부모도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