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쓰는 중국인들을 제어한 대응 사례
며칠 전, 지인들에게 서해에서 불법으로 어로작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의 퇴치 방안을 소개한 졸문을 보냈더니 몇몇 반응들이 있었다.
이어서 내가 예전에 실제로 중국에서 공개적인 석상에서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중국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던 경험을 소개한 졸문을 보냈더니 더 많은 호응이 있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논리적으로 국가의 품격을 올린 논리의 승리"라는 식의 여러 찬사와 격려들이었다. 또 그 졸문을 주변 지인들에게만 보게 할 게 아니라 널리 읽게 해서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한다거나 청와대 게시판에 올려야 한다는 권유도 있었다.
고마운 격려다. 그래서 이참에 그 글속의 실제 인물들과 소속을 익명 처리해서 블로그에 올린다. 한국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중국인들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힌트가 될 만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번 경우는 내가 지금까지 30여년 간 100여 차례 이상 중국 각지를 다니면서 조폭들에게 신변위협을 당한 상황에서도 싸워 물리친 일이나 생명이 위험했던 상황에서도 맞붙은 물리적 충돌이나 한국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조롱하는 자를 혼낸 이론적, 논리적 충돌 등등 직접 겪어본 갖가지 벼라 별 경험과 “사건”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사례는 약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12월 23일, 중국 동북지역의 규모가 큰 모 대학(실명 거론 시 있을 수 있는 중국 측 학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익명으로 함) 소속 몇 개의 연구원(대학원)과 한국의 모 대학 국제지역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국제 학술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한국의 모 대학 국제지역연구원 객원 연구위원으로 다른 학자들 3명과 함께 길림성으로 건너간 나는 이 세미나에서 이미 논문을 발표한 뒤 다른 발표자와 토론자의 발표를 듣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세미나가 중반을 넘어서자 사드의 한국배치로 불거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해진 “동북아 정세와 한중관계”가 세미나의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좌장 격이었던 그 대학 모 연구원장이 한국 측 발표자의 논문발표를 듣고 난 뒤 토론을 하다가 갑자기 성토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는 토론 주제와 크게 상관이 없는 서해 중국어선들에 대한 한국해경의 강력한 단속 얘길 끄집어내더니 한국정부가 폭력을 쓴다고 비난하면서 심한 언사로 항의했다. 한국이 왜 선원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느냐는 것이었다. 단속한 한국정부(즉 해양경찰)의 폭력사용을 강조함으로써 역공격을 취해 우위의 입지에 서고자 하는 저의가 보였다. 당시 중국이 늘 써먹던 수법인데 중국 외교부가 해오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사실, 그 시점에는 한국 해양경찰이 중국 어선들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중국 어선들이 예인되고 그 선원들도 압송되거나 다친 일이 있어 중국외교부가 연일 무례하게 한국을 무시하는 언사로 비난을 해오던 중이었다.
나는 이 여성 좌장의 공격을 듣는 순간 퍼뜩 직감적으로 “아! 이것은 자기 개인이 하는 말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지령을 받고 하는 공격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 측 학자들은 중국 측의 비난과 공격에 대해서 아무도 반박을 펴지 못하고 난감해 하는 표정으로 눈만 멀뚱거리면서 앉아 있었다.
나는 논문발표가 끝난 상태라 내가 나설 게 아니고 우리 측 논문 발표자가 대응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 측 발표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대략 난감해 하고 있었기에 결국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양해를 구하고 즉각 반박에 나섰다.
나는 우선 저런 식으로 상부의 지령을 받아 작정하고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닭 잡는 칼로 닭을 잡을 게 아니라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신사연하면서 대응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꾸를 못하도록 예리한 장검으로 단칼에 목을 날리듯 한 방에 날려 버려야 한다.
중국 측 원장에게 나는 먼저 이렇게 물었다. “원장님 지금 하시는 말씀 내용이 방금 발표된 이 논문의 주제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먼저 Yes인지 No인지 밝히십시오!”
그 원장은 잠시 머뭇거리면서 답이 없었다. 그 사이 잽싸게 나는 이렇게 논박의 포문을 열었다.
“주제에 부합하는 토론이라고 생각하시면 그건 정말 주제파악을 모르는, 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고, 주제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라면 이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알기로 여러분들이 상부의 지시, 즉 중국공산당의 지시를 받지 않고 이와 같이 민감한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고 용기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말씀이 없으신 거 보니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하는 의도적인 비난인 모양인데 내가 당신의 그 비난이 근거 없는 정치공세란 걸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답변을 해드리죠!”
“원장님! 원장님은 댁에 맛있고 진귀한 과일이 나는 과수나무를 가지고 계세요. 그동안 덕을 많이 쌓은 조상님의 덕분인지는 몰라도요. 그런데 주변에 그 과일이 자기집 것 보다 훨씬 맛이 있어서 값이 나간다는 걸 알고 탐이 나서 많은 도둑놈들이 원장님의 대문 안을 기웃거리거나 혹은 실제로 담을 넘어 들어와서 훔치려고 시도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원장님은 지금 생긴 모습 그대로 너무 마음씨가 좋아서 처음엔 여러 차례 그 도둑놈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좋게 타일러서 보냈죠. 그래도 그 도둑놈들은 듣지 않고 계속 담을 넘어오고 있습니다. 다음에 한 번 더 담을 넘어 오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지점에서는 그 과일을 훔치려는 사람이나 그걸 지키려는 원장님이나 모두 이것은 불법이고 과일의 소유자는 분명히 원장님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그 도둑들은 여러 차례 계속적으로 도둑질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동일한 한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맛있다는 과일 소문을 듣고 도둑질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 경우, 우리 원장님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그냥 가만 앉아서 댁내 정원의 과일을 쓸어 담아 가는 것을 눈뜨고 보고 앉아만 있겠습니까? 아니면 그것을 지키려고 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겠습니까? 원장님은 타고난 덕성으로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월담이 있을 때마다 도둑들에게 좋은 말로 알아듣도록 수 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하다 보니 그 도둑놈들은 말을 말 같지 않게 여기는 모양입니다. 이제는 칼과 죽창 같은 무기를 손에 들고 주인인 원장님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일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 위협 받는 안전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도둑들은 도무지 말과 경고를 전혀 듣지 않습니다. 맛과 돈에 눈독이 들면 다들 이렇게 되는 모양이죠? 그래도 끝까지 원장님은 무력을 쓰지 않고 말로만 하겠습니까?”
나는 그 원장에게 답을 하라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런데 원장은 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벌겋게 상기된 채 답변을 생각하는 듯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세미나 장내의 다른 중국인 학자들도 답을 하려는 이가 없었다. 장내는 조용해졌고 일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다시 이렇게 쐐기를 박았다. 이번엔 웃음 띤 얼굴로 얘기했다. 원장과 장내의 좌중을 좌우로 한 번씩 번갈아 돌아보면서 여유를 보이면서도 그러나 강력한 어조로 이야기를 했다.
“중국공산당의 역사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지난 세기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어떻게 해서 공산혁명에 성공했고, 어떻게 해서 반제반민족세력을 물리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는지 그 혁명정신과 역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높이 평가하고, 여러분이 존숭해마지 않는 모택동과 주은래와 유소기 같은 혁명영도자들은 불의와 강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강권으로 중국에 불의를 강요한 소련 "사회주의 제국주의자"들에게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국익을 해치려고 한 소련 수정주의자들의 집요한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이겨내 오늘날 이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재하게 됐습니다.
오늘 만약 모택동 동지께서 귀국 어선들의 무단 국경침입 및 불법어로와 중국외교부 당국의 적반하장식의 딴청 피우는 것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요? 돈이 생기는 일이니 계속 하라고 부추길까요? 아니면 정의를 추구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졸부 짓이니까 당장에 그만두라고 지시를 내릴까요? 내가 아는 중국공산당 영도자들은 소인배들처럼 이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이 한 마디로 승부는 끝났다! 좌중에는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아무도 토를 달려는 이가 없었다. 내가 다시 매듭을 짓겠다는 의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중 두 나라는 싫다고 이사를 갈 수 있는 사이가 아닙니다. 이 관계는 지구가 사라질 때까지,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지속될 겁니다. 그래서 이처럼 갈등도, 마찰도 생길 수 있고, 또 오해도 생길 수 있지만 결국은 정의와 公道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해결이 돼야 됩니다.
오늘 우리도 이처럼 잠시 갑론을박을 하고,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었지만 결국 정의와 공도로 해결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정의와 공도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비 온 뒤에 더 땅이 굳어진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중국도 비슷한 속담이 있죠. 오늘 세미나 끝나고 뒷풀이에서 화끈하게 한 잔 합시다!”
세미나가 파하고 장소가 바뀌었다. 한중 양측 학자들과 행사보조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뒤풀이 회식이 시작됐다. 같이 간 한국학자들은 이미 세미나 직후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면서 뭔가 승리라도 한 듯이 연신 신이 난 분위기였다.
그런데 중국 측은 나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할 것이다! 중국인 참석자들은 나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읍하면서 술을 올리고 싶다(進酒)면서 술을 권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원장도 일부러 내 자리에까지 와서 술을 올리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지 여러 가지로 난처하게 됐습니다”는 등등 어떻게 해야 할지 곤혹스럽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얘기를 했다.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줬다. “있었던 대로 사실을 솔직히 보고하세요! 모택동시대에 상부에 올리는 허위 보고들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웠으며, 나라가 거덜 날 뻔 한 거 아시죠?”
2021. 4. 27. 15:51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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