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먹먹한 오후 : 시인 나태주 부부의 애절한 간구
나는 지금 엉엉 소리 내 울면서 아래의 시를 올립니다. 시를 다 읽고난 뒤가 아니라 남편의 시에 화답한 부인의 시를 보면서부터 바로 봇물이 터지듯이 눈물이 쏟아지네요. 이젠 나이가 조금 드니 주위 눈치도 보질 않습니다. 소리 내어 울어도 마침 혼자 있어 흉볼 이도 없고요...
남편이 의사로부터 시한부 삶을 선고 받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중병을 앓고 있을 때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하는 아내가 안스러워 썼다는 詩로, 제목은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랍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고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느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풀꽃’이란 시를 알잖아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라는 시 말입니다. 위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는 '풀꽃' 시로 꽤 알려진 나태주라는 시인이 쓴 시라고 하는데 그는 시골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답게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시골 할아버지"랍니다.
그런데 위 시를 받은 아내는 병상의 남편에게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고 하네요.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느님!
이제는 저 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느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 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 뿐이에요.
한 여자의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느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의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이 멀대의 귀엔 시라기 보다는 소리 없는 간절한 외침으로 들리네요. 눈물 없이는 잘 들리지도 않는 간구의 소리네요. 부인의 기도가 어찌나 애절한지 남편이 한 기도보다 더 간절한 걸로 느껴집니다. 이쯤 되면 시인의 아내가 아니라 부인도 시인입니다. 내게 이 부부는 두 사람의 詩性과 보석 보다 더 영롱한 영혼의 불꽃을 통해 성자의 아우라를 느끼게 만듭니다.
다 읽고 나서도 닭구똥 보다 더 큰 소똥 만한 눈물이 끊이질 않으니 오늘 오후 일은 글렀습니다. 오후엔 정말이지 의뢰 받은 일을 정리할 것도 많은데 눈물이 앞을 가려서 손이 가질 않네요. 아니 솔직히 얘길 하면 갑자기 술 한 잔이 간절해지는 심정입니다. 애틋한 부부의 사랑에 촉발된 가슴 먹먹한 마음 상태를 지속하고 싶어서요. 집사람이 퇴근해서 오기 직전까지는요.
엉엉엉!
엉엉엉!
어엉~엉!
2021. 4. 2. 14:2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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