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경자년을 보내면서 다시 끄집어내는 인도이야기

雲靜, 仰天 2021. 1. 1. 07:06

경자년을 보내면서 다시 끄집어내는 인도이야기

 

이 해의 마지막 날, 덕담 보다 현실의 아픔, 그중에서도 빈곤과 빈부격차 그리고 인간들의 위선을 얘기하는 게 영 세모 분위기에 맞지 않아서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내 이웃의 가난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그것은 곧 세계 인류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와 인류는 인드라의 그물망처럼 서로 연기적으로 얽혀있고, 유한한 자원과 생산 환경에서 란 제로섬이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이 한 겨울에 노숙자들이 눈앞에 있는데, 자신이 누리는 안온함이, 부족함 없음이, 그것이 행복이라면 과연 진정한 행복일까?

 

이런 저런 생각의 일부가 들어있는 졸고를 올리는 걸로 홀로 위안을 삼는다. 작년 20198월, 두 번째로 간 인도에서 대롱으로 본 그곳 인도 이야기다.

 

나는 학술조사와 여행으로 인도를 두 번밖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첫 여행부터 인도의 실체를 보고 너무 화가 났다. 業說(Karma)을 근간으로 한 힌두교 교리로 불가촉천민들과 절대 빈곤자들을 속이고 사기 치는 인도정부의 엘리트들과 부호들을 보고 분개했다. 글을 쓰면서 저절로 욕이 튀어 나왔고 글에도 그대로 욕을 썼다. 글을 쓰면서 욕이 나온 건 평생 처음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를 갔다 오면 인간미가 살아 있는 곳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 같다”, “6~70년대 우리를 보는 것 같다는 등등의 여행담을 쏟아낸다. 죽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연명하는 절대 빈곤자들이 살아가는 목불인견의 광경을 보고서도 그런 소리들을 많이 하고 있다. 여행이란 여행자의 관점에서 보고 자신의 처지에서 생각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고 해서 그걸 탓할 순 없다. 보는 것과 관찰은 다르다. 또 관찰과 사유도 다르다. 사유와 일체화도 일체만은 아니다. 여행은 이것들의 물레질이다.

 

 

이 가족은 사두도 아니다.
인도엔 미신과 주술이 넘쳐난다. 부적, 문신과 치장도 그것의 일부다. 중국에 처음 가보면 한국문화가 중국에 연원을 두고 있는 게 더러 눈에 띄지만, 인도에선 중국적 문화의 단면들이 인도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게 많이 눈에 들어온다. 
인도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라다. 가히 천의 얼굴이랄 수 있다. 그런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점은 개인의 성향이자 자유다. 나는 과거 중국과 인도, 인도와 티베트 관계에 관해 전문적인 학술연구서도 펴낸 바 있는 연구자로서, 사회경제사적 성격논의는 인도사회의 이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아는 이상 나는 자연스레 인도인들이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고 있는가,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있는라는 관점에 치중해서 본다.

 

다만, 내 관점에서는 그런 류의 여행담은 모두 헛소리로 들리거나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눈 뜨고 못 볼 인도사회의 저층 사람들을 보고도 이런 말이 나오다니 철없는 낭만주의자들의 객담으로 보인다. 아니면 인도사회의 이면과 본질을 꿰뚫지 못해서 나오는 소리, 즉 무지해서 그렇다.

 

우리는 꼭 자신이 휴매니스트나 인도주의자가 아니라도 인도사회의 본질과 실체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인도사회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임과 동시에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도사회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몇몇 정보들을 담았다.

 

코로나19가 발생해서 각국에서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어 세계역사에 기록될 경자년이 마지막 하루를 남겨놓고 있다. 누군들 마찬가지겠지만 내게도 올핸 기억되는 것이 유달리 많은 해였다. 이 해는 근심과 우려 속에 저물지만 깔끔한 끝마무리로 가볍게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 소의 해인 내년에도 모든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빈다. 내가 본 처참한 광경의 인도인들도 새해엔 사는 게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원한다.

 

http://m.blog.daum.net/suhbeing/831

 

2020. 12. 31. 10:3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어떤 단톡방에서 올라온 신자유주의,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지적한 글을 보고 참고삼아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