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나의 그림

세상과 거리 두기

雲靜, 仰天 2020. 12. 19. 22:30

세상과 거리 두기

 

며칠간 집에 틀어 박혀서 그림만 그렸다. 지금도 다 잊고 작업만 해오고 있다. 세속을 잊거나 세상과 거리를 두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그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인생도 비슷하다. 결과 보다는 살아가는 과정에 의미가 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되겠다는 목적 보다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대략 10여점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 그제는 작품 1점을 완성했다. 동양화 붓으로 화선지에 그리는 그런 느낌으로 유화로 캔바스에 그린 것이다. 아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난주에 심기도 그렇고 해서 일필휘지로 갈겼다가 마지막으로 운무, 사람과 개를 한 마리 그려 넣는 것을 끝으로 붓을 놓았다. 일단 더 이상 손 댈 데가 없다싶어 붓질을 멈춘 것이다. 최후의 싸인만 남겨 놓고 다시 한 번 저만치 떨어져서 보게 된다. 미세한 텃치로 조금만 손을 더 대면 좋겠다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사에서도 그런 게 많다.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인다.
 
아무튼, 상상 속의 내가 오르고 싶은 산이리라. 無人境이니 일단 거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겠는가? 전체적으로 도가적 분위기가 난다. 조금 몽환적이기도 하다. 최근 수년 간 안고 있던 나의 심사가 반영된 탓이렷다. 살면서 남들 모르게 적지 않게 이타행을 하면서 살았건만 위안을 받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인간에 대한 환멸감을 주는 것도 사람이다.
 
순백의 운무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인연이 맺어지면 좋으련만, 그러기 보다는 자기 목적을 위해 이용만 하려 든다. 그 정도는 눈감아 주고 있다. 친구 간에도 사람으로선 해선 안 될 배은망덕과 배신행위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해댄다.
 
태산이 운무에 가려져 있다. 운무에 어디다 대놓고 말하기도 쉽지 않는 분노, 애통함과 비통함들이 모두 봄 눈 녹듯이 다 녹아서 소멸되길 바란다. 숙세의 업장이 두터워 현세의 업보려니 하기엔 너무 분하고, 안타깝고 원통하지만... 사실 엄정하게 따지고 보면 숙세의 업장 문제가 아니라 그때그때 현명하게 대응하거나 결정하지 못했던 게 모든 사태발생의 원인이다.
 
속세를 등지고 때 묻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는 한 사람! 깨끗한 세상이 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더러운 세상을 버리는 것이다.
 
2020. 5. 21. 10:24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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