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과보

雲靜, 仰天 2020. 12. 9. 22:07

과보

 

 

자지러지듯 터져나오는 비명들

~악~

아이고~~엄마~

~~

 

소리만 들어도 오금 저리는 내 차례

보기만 해도 수시로운 30센티 긴 장침 

먼저 목 뒷덜미 우에서 좌로 관통한다

이어서 정수리 두피 곳곳이 뚫리고

어깨, 등짝, 양팔, 양 손톱 밑까지 찔리고

복부, 단전, 다리, 발로 전신에 꼽히면

100여 군데서 붉은 피가 줄줄이 흘러내린다.

 

마지막 대미로

양 비익과 인중을 뚫고 쑤욱 들어온다

머릿속 肉塊를 헤집고 쑤욱 쑥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20센티 굵은 대침 세 개가 뇌 속을 저민다.

 

평생을 몸뚱이 아끼지 않고 살았던 과보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어금니를 문다

왜정 때 모진 고문에 횡사한 독립지사 떠올라

내가 세상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다고

간간이 뱉어지는 신음소리조차 부끄러워

흡, 쓰ㅇㅡㅂ

 

누운 채 1분 쯤 흐른 뒤

상반신 일으키면서 대침을 스르렁 빼면

두 콧구멍으로 터져 나오는 선혈 

한 움큼 붉은 화근 덩어리

 

친구들 벌써 적잖게 먼저 가고

나는 지금 복 받은 과보를 받고 있다

고문으로 죽어간 선열들 보기 부끄러워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달게 받는다

흡족하게

아주 달게

 

2020. 12. 8. 18:48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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