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아시아사

역사상의 12월 8일과 일본군의 잔인성

雲靜, 仰天 2019. 12. 8. 15:17

역사상의 12월 8일과 일본군의 잔인성

 

지난 세기 1941년 12월 8일 오늘은 일본 군부(특히 야마모또 이소로쿠 山本五十六을 위주로 한 해군)가 주도한 하와이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일본측에선 소위 "태평양전쟁"이라고 일컫고 있지만 이는 전쟁도발의 범위를 축소시킴으로써 전쟁도발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잘못된 용어임)을 일으킨 날이다. 그날은 일본 시각으로는 월요일 새벽 3시 35분이었지만 하와이 시각으론 미군병사들이 느긋하게 늦잠에 빠져든 일요일 아침인 12월 7일 아침 7시 55분이었다.
 
 

대미 전쟁을 주도한 야마모또 이소로꾸 해군 대장. 미국에 대한 도발 후 결국 그는 잠자던 사자를 건드렸다고 탄식했다.


일본군이 이 시각을 진주만 기습공격 개시로 잡은 것은 기습의 효과를 최대화 하기 위해 고안한 결과였다. 통상 전쟁에서 기습작전의 효율성이 높은 시간대는 새벽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1970년대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그랬던 것처럼 밤시간이나 새벽 시간대 보다는 아침 출근 시간에 기습공격을 하면 상대가 우왕좌왕하고 해서 대응이 늦게 돼 기습의 효과가 높다는 설이 있다.
 
 

일본해군 소속 해군항공대의 기습공격을 받아서 파괴되고 있는 진주만 내 미 해군 함정들


당시 일본군도 그 시각을 이용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일본군은 그때까지 일으킨 대외침략 사건과 전쟁들에서 단 한번도 상대에 대해서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기습 공격만 했다는 점이다. 1874년 대만 침공, 1895년 청일전쟁, 동년 10월의 민비시해사건, 1905년의 러일전쟁, 1916년 중국 산동의 청도 점령, 1917년 시베리아 출병, 1928년 제남사건, 1931년 9.18만주사변, 1932년 상해사변, 1937년 7.7 중일전면 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 사건, 1941년 세계대전 등이 모두 기습공격이었다.
 
 

기습공격에 나서 진주만으로 날아가고 있는 일본군 전투기(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에 관한 것은 별도 소개에서 자세히 논할 것임)


암튼 일본군 병사들은 이처럼 무수히 많은 침략전쟁에 동원된 시골 출신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지금까지 순박한 시골 청년 출신의 병사들이 일본 국내에 있을 때와는 달리 왜 그런 끔직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게 됐는지 배경이나 원인 등에 포커스를 맞춘 연구는 눈에 띄지 않아서 몇년 전 그에 대해서 소개한 졸문을 올린다.

https://suhbeing.tistory.com/m/177
 
2019. 12. 8. 14:40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