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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공사 증언 : 중국이 북한 핵을 저지하지 못하는 이유

雲靜, 仰天 2018. 7. 7. 13:13

태영호 전 공사 증언 : 중국이 북한 핵을 저지하지 못하는 이유

 

1990년대 중반 김일성이 사망하고 난 뒤부터 한국사회에는 북한을 바라보는 이상하리만치 비현실적인 시각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기대심리이거나 ‘염원’이었다. 특히 보수언론과 보수진영에서 극심했다. 그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한이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클 것이라고 보고 중국이 북한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북한을 대화나 개방노선으로 나오게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이 두 가지가 다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내 눈에는 북한 정권이 그렇게 쉽사리 무너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중국도 북한에 대해서 그다지 큰 영향력이 없던 것으로 보였다. 이 주장을 언론에다 근거를 제시하면서 칼럼으로 기고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과거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중국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북한은 중국에 대해서 굉장히 불신하면서 불만을 많이 갖고 있었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이 남긴 유훈이었다. 그것은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의 비핵화까지 포함하는 내용이었다. 북한은 남한에 들어와 있을 것이라고 보는 미군 핵이 철거되지 않는 한 핵을 동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었다. 즉 김일성의 유훈인 한반도 비핵화는 조건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북한은 미국의 체제 보장 없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면 리비아와 이라크 꼴이 될 것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니 북한이 핵을 포기하라고 하는 중국의 요구를 들을 리가 만무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중국은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라고 여러 차례 종용했다. 그때마다 북한은 이론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중국의 요구를 무력화시켰다. 중국이 북한에 요구한 이론적 근거와 그에 대해서 북한이 내세운 구체적인 반박논리들은 오랫동안 알려진 바 없었는데, 이번에 자세하게 확인됐다.

 

최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공사로 있다가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가 증언(태영호 저,『태영호 증언 : 3층 서기실의 암호』, 기파랑, 2018년, 312~314쪽.)을 남겼기 때문이다. 태영호 전 공사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과 북한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공방을 주고받았다.

 

 

태영호 전 공사와 그가 쓴 회고록

 

2013년 상반기부터 김정은은 ‘핵 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이를 통해 북한의 핵 보유를 헌법과 당 정책에 명문화 해 국내법으로 제도화 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때부터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핵보유를 둘러싼 논쟁의 양상이 과거와 달라지기 시작했다. 북중 간에 고위급 대화나 교류가 진행 될 때마다 북핵문제가 심각한 논쟁의 의제로 부각되곤 했었다. 북한에게 압박한 중국의 논리와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핵무기를 당장 철폐하라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기간 핵을 가지고 있어도 좋다. 하지만 조선의 장기적 목표가 비핵화에 있다는 것을 정책적으로 선언하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마당으로 돌아와야 한다.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복귀하기만 해도 조선에 대한 원조를 늘릴 수 있다. 일정한 기간 동안 핵을 보유하면서 미국 등 주변 국가들과 신뢰가 구축되면 점차 핵폐기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북한은 당과 정부 차원에서 두 트랙으로 대응했다. 북중 교류는 중국공산당(대외연락부)과 조선노동당(국제부) 간 당 대 당의 교류와 양국 정부 간의 정부(중국외교부와 북한외무성)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대표단 사이의 회담에선 북한은 아래와 같이 반격했다.

 

“제국주의와 싸우는 것은 공산주의자의 신성한 의무다. 미제와 싸우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중국공산당도 핵무기를 개발할 때 미국과는 핵으로 밖에 맞설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핵무기로 사회주의를 지켰다. 전세계 공산당이 중국의 핵무기 개발에 반대할 때 조선노동당만이 유일하게 중국공산당을 지지했다. 큰 당과 작은 당, 역사가 오래된 당과 짧은 당은 있을 수 있지만 높은 당과 낮은 당, 지시를 하는 당과 지시를 받는 당은 있을 수 없다. 모든 당은 평등하다. 미국의 핵무기에 핵무기로 대응하려는 것은 조선노동당의 정책이다. 이 정책에 시비를 거는 것은 내정간섭이며 국제공산주의 원칙에도 위반된다.”

 

중국과 북한의 정부 간 교류의 대화에선 북한의 공박은 내용이 조금 달랐다. 아래와 같은 논리였다.

 

“조선은 핵보유를 헌법에 명시했다. 우리에게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것은 헌법을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행위다. 세계의 큰 나라와 작은 나라는 있을 수 있어도 다른 나라의 헌법까지 뜯어 고치려고 내정간섭 하는 나라는 중국 밖에 없다. 지금은 청나라 때가 아니다.”

 

중국은 북한의 이 논리를 논박할 재간이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북중회담이 번번이 중국 측의 판정패로 끝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상 북한과 중국은 이론과 논리를 중시하는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논리 싸움으로 회담의 승부가 갈릴 때가 많다.

 

마르크스-레닌주의-毛澤東사상을 당의 지도사상으로 삼고 있는 중국공산당도 기존 이념과 이론으로는 북한 노동당의 핵개발정책을 반대하거나 저지할 수 없어 난처해하고 쩔쩔매왔다. 이것이 현재에도 중국이 북한에게 비핵화를 받아들이도록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이유라고 한다.

 

태영호 전 공사의 이러한 평가는 상당 부분 실제 상황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과거 20세기 세계공산주의운동사에서 중국공산당은 중국공산당을 후진적인 국가의 공산주의 조직으로 낮춰 보고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태도로 대한 소련공산당에게 대등원칙을 견지하면서 저항한 역사가 있다. 조선노동당이 이 역사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북한은 이런 역사를 적절하게 활용해오고 있는 것이다.

 

태영호 전 공사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위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서 전통적으로 견지되어 왔던 당과 당의 평등, 대등 원칙을 적절히 활용한 것이다. 한국정부의 외교가 중국을 대할 때 배워야 할 힌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지도자들이 행한 기존 발언 및 주장과 적지 않은 모순을 잘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은 북한의 논리를 허물 수 없는 한 북한에게 더 이상 핵에 대해서 폐기를 강권하거나 강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2018. 7. 6. 11:30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