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판결, 무조건 승복만이 파국을 막는 길이다
서상문(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역사에는 왕왕 국가지도자가 때를 놓쳐 大局을 그르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왕조의 멸망으로까지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로 때를 잘 잡아 위기를 기회로 전화시킨 경우도 있다. 시운이 천운이 되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다가 결국 1917년 케렌스키 정권에게 영어의 몸이 돼 독살된 러시아의 차르 황제와 신해혁명 후 중국 남방의 국민정부와 북방의 청조가 대치된 상황에서 원세개가 국민당과의 빅딜로 유혈사태의 확대를 막고 퇴위 후 안전을 보장받은 청황실이 좋은 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폭풍처럼 전개된 진보-보수, 좌우의 대립은 해방정국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위기에 정치지도자들은 자신과 정당의 이익차원이 아니라 국익차원에서 대국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초기 정치원로들이 제안한 대통령의 4월퇴진, 6월대선 일정으로 한 개헌논의 방안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은 될 수 있었다.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가 읍소하듯이 책임총리 지명권을 야당에 넘길 때가 클라이막스였다. 물론 당시 박 대통령이 퇴진 시한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이 이행될지 의심스런 상황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를 받아 우선 책임총리를 임명하고 원로들이 제시한 방향으로 혼란을 수습해가면서 대통령을 압박했어야 했다. 하지만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를 일축해버렸고, 문재인 후보는 아예 국정인사권과 군통수권까지 요구하면서 ‘촛불혁명’을 외쳤다. 멀리를 내다보고 대국을 읽지 못하는 시야의 협소함과 국가안위 보다 당과 개인의 득만 고려한 과욕이 얽혀 있었다. 대선주자들 가운데 대통령 후보다운 그릇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다.
비교적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던 호기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사태 초기만 해도 대통령은 저항할 낌새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 박사모의 태극기 시위가 빈발하고 지지세력의 수적 증가에 힘을 받아 이제는 자신의 과오를 전혀 인정하려들지 않고, 부인, 변명, 책임전가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이 헌재에 제출한 최후 진술서에는 법리적 예증이나 반증을 통한 반박은 전무했다. 감성에 호소하는 식으로 그냥 믿어 달라는 일방적인 합리화뿐이다. 일국의 국가원수치고는 의연함은커녕 비루하기 짝이 없는 처신이다.
이제 헌재의 최종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판결이 어떻게 나든 보수-진보 진영간에 진 쪽이 승복하기란 쉽지 않은 기세다. 건곤일척 일진광풍이 휘몰아치기 직전이다. 논리, 이성, 합리성이 사태해결의 준거가 되기에는 이미 진영논리와 적대의식이 너무 깊다. 하지만 국가공동체를 생각하는 애국심이 진정한 것이라면, 탄핵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양측은 공히 깨끗하게 승복해야 한다.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진영간의 마찰은 적대의식으로 전화될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의 부패상에 대한 국민의 분노표출은 당연하다. 이를 종북세력으로 물아세우는 것은 정치적으로 악의적이고 비열하다. 그럼에도 갈등을 조정해 위기극복으로 견인하는 일은 정치지도자들의 몫이다. 사태 반전이 없을 경우 실기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추미애 대표는 사퇴를 고려할 필요가 있고, 향후 여야는 국회에서 장외투쟁을 금지하고 그 개념과 범주를 정확히 정의 명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주권문제인 안보정책에 간섭하는 강대국들의 월권과 저의가 보이지 않는가? 일개 당의 이익과 대권후보의 정치적 득실을 따지기엔 국내외정세가 너무 위중하다. 국민적 에너지의 허비를 막아 외우에 대응해야 할 때다. 대권장악 가능성을 높이고자 혼란에 편승해 당과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데 정치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타협과 조정의무를 포기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국민의 분노를 부추겨 사태를 악화시켜선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위 글은 2017년 3월 3일자『경북도민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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