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디언 리듬’에 순응하는 생활이 건강을 지키는 기본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며칠 전에 보내드린 잡문 중에 ‘서커디언 리듬’을 초든 일이 있습니다. 서커디언 리듬이란 영어로는 ‘circadian rhythm’으로 쓰고, 일본어로는 ‘槪日 리듬’이라고 하는데 아직 한국사회에는 널리 인식되지 않고 있는 용어입니다. 개념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는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생리적 리듬을 가리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토요일 오전인데, 조금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지난 번 졸문에 이어 좀 더 진도를 나가보고 바쁘거나 관심이 없는 분들은 더 읽지 마시고 덮는 게 좋을 겁니다.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수 억 년에 걸쳐 하루를 약 24시간을 주기로 순환시키는 리듬을 몸에 익혀왔습니다. 간단한 예를 한 가지 들면 갓 태어난 아기에겐 서커디언 리듬이 갖춰져 있지 않지만 자라면서 그 리듬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아기는 24시간 중 어느 때든 잠자고, 우는 것도 밤중이든 새벽이든 무시로 웁니다.
그 이유는 아기의 몸에는 아직 24시간을 주기로 움직이는 서커디언 리듬이 작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마 뱃속은 24시간 내내 온통 어두컴컴한 상태, 즉 밤만 있는 상태입니다. 그 속에서 9개월을 지내다가 밖으로 나오게 되면 햇볕이 있고, 밤낮이 바뀌는 환경에 접하게 되니 바로 卽應할 수가 없는 것이죠. 주기적으로 순환되는 환경에 適應돼 있는 부모의 시간 사이클과 충돌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러나 아기는 점차 성장하면서 외부환경과 조건을 흡수해 이른바 ‘체내시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인이 되면 외부환경과 각각의 개성에 맞는 리듬으로 째깍째깍 움직여 가는 것이죠.
이러한 24시간 생활리듬은 어느 한 시대 짧은 기간에 이뤄진 게 아니고 거의 겁(겁과 찰나에 관한 개념은 나중에 불교를 얘기할 때 ‘썰’을 풀 기회가 있을 겁니다)에 해당되는 장구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수십 억 년에 걸쳐 형성된 이 서커디언 리듬에 맞춰 살아가도록 돼 있습니다.
근대 이전의 전통사회에선 인간들이 이 리듬이 깨지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원시시대, 채집 수렵시대를 거쳐 농경사회가 있었기 때문인데, 모두 자연의 변화에 맞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죠.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본격적인 산업화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였는데, 곧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하면서 ‘시간이 돈’이라는 발상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아예 계절간의 間期와 낮과 밤의 경계가 허물어진 형태로 살고 있습니다. 여름철 과일이 겨울에도 생산되고, 낮에 해야 건강에 좋은 스포츠도 이제 돈과 연결돼 있어 건강 보다는 흥행에 포커스를 맞춘 야간 경기가 일반화 돼 있는 게 많은 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옛날엔 밤에 일하는 직업이라고 해봐야 겨우 순라꾼, 순검이나 등대지기, ‘양상군자’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야간에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체온, 혈압, 심장 맥박 수, 산소소비량, 호르몬 분비, 근력, 물질의 신진대사 등의 생체활동은 모두 이 서커디언 리듬에 따라 작동되는 규칙성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체온, 혈압, 심장 맥박 수, 산소소비량, 호르몬 분비, 근력 등은 대부분 아침과 저녁엔 떨어지고 낮 시간엔 올라가는데 이러한 현상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공통됩니다. 예외가 있다면 그는 환자입니다. 근력도 체온과 비슷해 조석으로는 약하지만 낮에는 강해집니다. 따라서 운동도 가급적 낮에 하는 게 자연의 섭리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현대는 서커디언 리듬을 교란하는 시스템이 일상화 돼 있습니다. 24시간 방영하는 TV방송, 심야영화와 심야 공연 등도 그렇거니와 흥행목적을 지닌 야구, 축구, 농구 등의 프로 경기가 야간에 벌어지는 게 당연한 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사회에는 일상화 돼 있어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지는 음주문화, 즉 밤늦도록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서커디언 리듬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고 생체리듬을 무시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예전부터 자는 건 모범적으로 가급적 일찍 자는 편이었지만 술은 밤늦도록, 심지어는 밤새도록 마시는 일이 잦았습니다. 내가 10대의 젊었을 때부터 밤늦게까지 술 마시는 것을 피하고 살았더라면 ‘끔찍하지만’ 아마도 100세까지는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8척 장신에 기골이 장대하셨던 나의 조부께서 평생을 위장이 터지도록 술을 드셨지만 94세까지 건강하게 사셨고, 돌아가실 때도 한 달 정도 병원에 계시다가 좌탈입망(坐脫立亡)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의자에 앉아 거의 반쯤 기대어 꼿꼿하게 돌아가셨으니 피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서커디언 리듬 개념을 알게 된 것은 이에 관한 전문서적을 번역 출판한 31세 때였는데(이시카와 미츠오 著, 서상문 譯,『동양적 사고로 돌아오는 현대과학』, 인간사, 1990년), 그 뒤로도 술은 줄기차게 마셔댔으니 ‘머리 따로 몸 따로’, 즉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셈입니다. 후회해봐야 다 지난 일이고 해서 후회는 하지 않지만 조금 아쉬운 면은 없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는 각종 사고가 낮 보다는 저녁에 많이 일어나는 것도 생체리듬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중병에 걸린 환자 중 새벽 3시~6시 사이의 시간대에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서커디언 리듬과 관계가 깊습니다. 몸이 스스로 다음날의 활동에 대비해 10시~새벽 3시 사이 세포교체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난 뒤의 약 3시간, 즉 새벽 6시까지는 하루 중 가장 위험한 시간대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노인들의 사망률이 많은 것도 바로 이 시간대입니다. 따라서 밤 시간, 특히 세포갈이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子時~丑時에는 반드시 휴식, 즉 수면을 충분히 취해야 합니다. 낮 시간에 방전된 에너지를 취침 사이에 일어나는 신진대사를 통해 충전되니 숙면이 건강 유지에 결정적인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야말로 “잠이 보약”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즉 이 서커디언 리듬과 체내시계는 누가 움직일까 하는 점입니다. 아직 현대 과학에선 이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지만 학자들 가운데는 腦幹 안의 골윗샘이 그 조종탑 기능을 할 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뇌의 한 가운데에 있다고 해서 ‘뇌간’이라고 하는데 뇌간은 소화액을 분비하고, 심장을 움직이게 하거나 혹은 체온을 조절하기도 하는, 우리 몸의 중추기관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손상되거나 이상이 발생하면 생명 유지가 곤란하다고 합니다. ‘체내시계’의 중추는 이 뇌간 안에 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결론은 서커디언 리듬에서 형성된 생체리듬에 순응하는 생활방식이 중요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기본이라는 점입니다. 나도 머리와 몸이 일치되는 삶, 즉 知行合一을 실천하기 위해 다소 늦었지만 얼마 전부터 밤늦게까지 술을 퍼마시는 걸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서커디언 리듬의 존재를 알고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앎을 실천하게 된 셈입니다. 이걸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이 있고, 그래서 옳은 것인 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옳지 못한 것은 그 습관을 끊어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게 만드는 것, 즉 “業(Karma)이 이런 거구나”하고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위 글은 2014년 12월 18일자『미디어포항방송』에 소개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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