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공지 및 정보 마당

한자 공부의 여러 필요성 가운데 한 가지 이유

雲靜, 仰天 2014. 9. 9. 21:40

한자 공부의 여러 필요성 가운데 한 가지 이유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한글 단어들 중 한자어 단어가 60%가 넘습니다. 우리는 대화나 글쓰기에서 두 마디 중 한 마디 이상은 한자어를 얘기하는 셈입니다. 이 한자어는 말 그대로 한자에서 어원을 취한 것입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짐작컨대 특별히 중국어나 한자를 공부한 이를 제외하고 대략 90% 이상이 한자를 모를 것 같습니다. 예컨대 '두문불출'을 두 문에 불이 난 걸로 이해하는 젊은이도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어른이 두 학생을 앞에 두고 각기 "이지적으로 보인다"와 "고지식하게 보인다"고 했더니 이지적으로 보인다는 말을 들은 학생은 영어의 easy(쉽다)라는 "이지"적으로 듣고선 쉽게 보이는 만만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 했다고 하고, 고지식하게 보인다라는 말을 들은 학생은 고지식을 지식이 높다는 걸로 이해해서 자신을 칭찬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기분이 좋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한자어인 "이지적"이 한자어인줄 몰라서, 또 "고지식"은 한글임에도 한자어인 줄로 아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또 한자어이지만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모두 한글로 표기하니 그것이 한자어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실을 몰라도 소통은 됩니다.
 
그러나 한자를 모르니 한글로 표기된 그런 단어들이 왜 그렇게 조어됐으며, 낱말의 語根으로서 의미를 모르니까 언어의 조합능력이 생겨날 리 없습니다. 예컨대 "양심"이라는 낱말을 예로 들어 봅시다. 양심이 한자에 良心과 養心이 있다는 걸 알고 良과 養의 한자를 아는 사람은 동일하게 발음되는 '양'으로 양호(良好), 양호(養護) 또는 양성(養成), 양성(陽性) 등의 단어들이 각기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뜻의 다름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양'자를 활용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낱말도 만들어 쓸 수 있습니다. 양재(良才), 양용(養用)처럼 말입니다. 
 
반면,  良心, 養心 등의 한자를 모르는 이는 양호를 왜 좋다라는 의미로 쓰는지, 또 "양성반응"의 양성이 量도 아니고, 養도 아니고 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이 단어의 뜻도 정확하게 분별해낼 수가 없습니다.
 
비근한 예로 앞뒤 문맥 없이 그냥 "지표를 볼 수 있다"라고 할 경우 이 지표가 무얼 가리키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地表, 指標, 地標, 紙票 중 어느 단어를 말하는 것인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가 났다"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을 뽑는다는 社告가 난 건지, 사람이 다친 事故가 난 건지 앞뒤 내용을 보지 않고선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문장이든지 앞뒤 문맥을 보면 알 수 있으니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고요? 그렇게 따지면 앞뒤 문맥을 보고 모르는 문장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 반문은 반지성적 사고입니다. 이 때 반지성적 '사고'는 事故가 아니라 思考입니다. 우리말 체계에 이런 류의 예들을 들라치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앞뒤 문맥이나 부연 설명 없이 바로 보고 즉각적으로 알 수 있어야 그것이 온전하고 바람직한 것입니다.
 
 

가게 이름이 자연채라고 한글로만 돼 있다. 식당이란 걸 알아서, 즉 앞뒤 맥락을 보고 자연채의 채가 채소를 가리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채소음식을 파는 식당이란 걸 알게 된다. 만약 식당이라는 사전 인지정보를 모르면 자연채의 채가 나물 菜인지, 울타리 砦인지, 아니면 집이나 울타리를 뜻하는 寨인지 알 수 없다. 세 한자 모두 채로 발음되는 한자다. 자연에 이 채를 각기 붙여 자연菜, 자연砦, 자연寨가 되면 차례로 자연의 나물, 자연 울타리, 자연의 집이 된다. 물론 이 집은 채가 菜를 의미하는 것으로 썼기 때문에 나물이나 채소음식을 파는 식당이란 건 알 것이다. 자연에다 한글의 채 대신 한자어 菜를 붙여 썼다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사진 출처 : 경남투데이)
위 사진 속 간판에서 토끼정(停)은 주인이 의도적으로 亭자 대신 停을 사용했을 수 있다. 토끼들이 노는 장소로서 정자의 의미로 쓰고 싶으면 정자 亭을 써야 하고, 토끼들이 멈춰선 곳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싶으면 停을 쓰면 된다. 어쩌면 亭의 오류로 停을 썼을 수도 있다.
한글로만 미곳간이라고 해놓으면 의미가 바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곳간은 알겠는데, 미곳간에서 접두어 미가 味인지 米인지 아니면 美인지 알 수 없다면 미곳간이란 게 쌀을 저장해놓는 곳간이라는 뜻인지 분별할 수 없다. 그러나 맛 味자를 앞에 붙여놓으니 뜻이 바로 전달된다. "맛있는 곳간", 즉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고. 물론 한자를 모르는 이에게는 이것도 소용 없는 일이지만...
고미술 가게에 붙어 있는 간판에 쓰여 있는 "고태미"도 한자 없이 한글만으론 뜻을 바로 알아보기가 어렵다. 주인은 "오래된 옛날 골동품들이품고 있는 자태의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로 쓴 듯하다.
한글로 술 취한 운전자가 모는 차는 정차하지 말라고 할 때는 위 한자처럼 간략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길게 풀어서 "음주 운전자 차 주차금지"라는 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한자로 駐車 대신 酒車를 써서 酒車금지라고 쓰니 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게 된다. 한자만이 나타낼 수 있는 특장이다.

 
따라서 한자를 모르면 사유의 압축, 농축능력을 기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자를 잘 몰라서 생겨나는 사고나 사유의 제한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한 폐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등의 한국은 물론, 중국, 베트남과 대만 및 일본 등 한자문화권이 남긴 문화적, 역사적, 정신적 유산이 모두 한자로 기록돼 있기 때문에 해독에 제한이 있어 사장되고 있는 게 적지 않습니다. 즉 한자를 모르니 한자로 쓰여져 있는 방대한 기록과 典章들을 현대사회에 인류의 집단지혜로서 재해석하고 끌어 올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한글학자들 가운데는 위에서 내가 말한 내용의 고갱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그들은 무조건 한글전용만 주장합니다. 나도 한글의 우수성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한글을 대단히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나는 한자로 표기하진 않더라도 한자를 알면 의사전달이 더욱 분명해진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종로구청의 현판은 굳이 한자로 하지 않아도 된다. 한글로 종로구청이라고 쓰는 게 훨씬 간명하고 보기 좋다. 그래 놓고선 아래 전광판에선 한글날을 맞았다는 문자를 내보내고 있다.

 
결론을 내리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한글 전용정책을 계속 유지해서 글자의 표기는 모두 한글만으로 하더라도 한자를 공부해서 한글의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외에도 한자를 알면 더 좋은 이유가 적지 않지만 여기에선 설명을 생략합니다.
 
2014. 9. 8. 어느 밴드에 올라온 글에 대한 답글 
2021. 5. 15. 08:28 부분 가필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