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일본사

재무장의 길로 치닫는 일본, 대안은 없는가?

雲靜, 仰天 2026. 4. 6. 13:36

재무장의 길로 치닫는 일본, 대안은 없는가?


                   서상문(한국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최근 일본 정부가 장사정 타격 무기체계의 실전 배치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2026년 3월 31일 큐우슈우(九州) 중부 구마모또(熊本)현의 육상자위대 켄군주둔지(健軍駐屯地)에 기존 ‘12식 지대함 유도탄 능력향상형’의 지상발사형을 실전 배치했다. 개발 완료에 따라 이 무기에는 공식적으로 ‘25식 지대함 유도탄’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같은 날, 시즈오까(静岡)현의 후지(富士)주둔지에는 도서 방어를 목적으로 개발한 고속활공탄, 즉 HVGP가 ‘25식 고속활공탄’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배치되었다. 일본이 자국산 스탠드오프 미사일을 실제 부대에 배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말 그대로 사상 처음이다.

25식 지대함 유도탄은 기존 12식 유도탄의 사거리를 약 200㎞에서 약 1,000㎞ 수준으로 연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하므로 평상시 주둔지에 머물다가 유사시 필요한 지역으로 전개할 수 있다. 일본 방위성도 켄군주둔지에 배치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곳에서 발사하는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필요한 장소로 이동해 임무를 수행한다고 설명하였다. 이 미사일은 큐우슈우와 난세이(南西)제도 일대에서 운용할 경우 동중국해와 대만 주변 해역은 물론, 중국 연안의 일부 지역까지 사정권에 넣을 수 있다.

일본, 12식 지대함미사일 개량한 장사정 미사일 개발

이러한 행보의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견제하고, 대만해협과 동중국해 등 일본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사사태에 대비해 억지력을 강화하려는 데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국 해·공군의 원해 활동 확대,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협력, 미국의 상대적 영향력 변화에 대한 불안도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공격을 단념시키기 위한 ‘반격 능력’과 ‘스탠드오프 방위 능력’의 강화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무기의 명칭이나 일본 정부의 공식 설명에 있지 않다. 핵심은 일본이 이제 자국 영토에 접근한 적을 막는 수준을 넘어, 적의 미사일 발사기지와 지휘시설을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실제로 보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과거 일본의 전수방위(專守防衛)는 적의 공격을 받은 뒤 필요한 최소한의 방어력만 행사한다는 원칙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사거리 1,000㎞ 이상의 순항미사일과 고속활공탄이 실전 배치되면 공격과 방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일본이 이를 ‘반격’이라고 부르더라도 상대국은 일본의 선제공격 능력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일본의 군사적 변화는 특정 미사일 한두 종류의 배치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은 장거리 미사일의 지상·해상·공중 발사형을 확대하고,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도입하며, 무인기와 위성·정찰·지휘통제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6회계연도 방위예산’에는 스탠드오프 미사일과 무인체계 구축을 위한 대규모 비용이 반영되었고, 일본은 국내총생산 대비 방위비 2% 수준을 조기에 달성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이 이러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머지않아 일본이 이른바 ‘보통국가’가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더 나아가 지난 세기의 군국주의로 다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한다고 해서 곧 바로 1930년대와 같은 군국주의 국가로 돌아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늘날 일본에는 선거와 의회, 언론, 시민사회, 사법제도, 미일동맹과 국제법이라는 여러 제어 장치가 존재한다. 일본 국내에서도 장거리 미사일 배치가 오히려 지역을 공격 목표로 만들고 군비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반대와 항의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군국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위협을 강조하고, 안보를 이유로 군비를 확대하며, 헌법과 법률의 해석을 조금씩 변경하고, 국민이 그러한 변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서서히 형성된다. 특히 공격과 방어의 경계가 불분명한 장거리 무기체계가 축적되고, 그 운용에 관한 국회의 통제와 국민적 토론이 충분하지 않다면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는 언제든지 군사대국화로 변질될 수 있다.

중국·북한과 일본·한국, 그리고 미국까지 가세한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각국은 상대방의 군비 증강을 이유로 자신의 군비를 늘리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포위와 대만 개입에 대비한다고 주장하고, 일본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 때문에 장거리 타격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북한은 한미일 군사협력을 핵·미사일 개발의 명분으로 삼고, 한국 역시 북한의 핵과 중국의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정찰·미사일·미사일방어 능력을 강화한다. 미국은 동맹국의 군사력 강화를 요구하면서 중국을 억제하려 한다.

그 결과 어느 한 국가가 방어를 위해 취한 조치가 다른 국가에는 공격 준비로 보이고, 그 국가는 다시 군비를 확대한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라고 한다. 모든 국가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국가가 이전보다 더 불안해지는 역설이다. 현재 동아시아가 바로 그러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해방 직후 한동안 떠돌던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고, 일본놈 일어선다”라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요즘이다. 이 말은 특정 국민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기 위한 구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없으며, 강대국의 약속만 믿고 자신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냉엄한 역사적 경고로 읽어야 한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변하면 미일동맹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고, 중국의 부상이 계속되면 일본은 더욱 독자적인 군사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재무장을 미국이 언제까지나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역시 위험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있다! 왜 없겠는가? 국가지도자들과 정치가들이 탐욕을 버리지 않고 실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론적 대안 : 세력균형을 넘어선 공동안보

우선, 이론적 대안은 힘에는 힘으로 맞선다는 단순한 세력균형론을 넘어 ‘공동안보’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동안보란 한 국가의 안전이 다른 국가의 불안을 확대하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인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일본이 중국을 겨냥해 미사일을 늘리고, 중국이 일본을 겨냥해 미사일과 함정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어느 쪽도 절대적인 안전을 얻을 수 없다. 군비의 규모와 속도가 커질수록 오판과 우발적 충돌의 위험만 높아진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안보는 어느 한 나라의 압도적 우위가 아니라, 서로가 상대방의 핵심적인 안보 우려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중국은 대만해협과 동중국해에서 무력을 사용하거나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안전의 영구적인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일본도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공격 능력을 무제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미국 역시 동맹을 중국 봉쇄의 도구로만 운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억지’와 ‘안심’을 결합해야 한다. 국제정치에서 억지만 있고 안심이 없으면 군비경쟁이 일어난다. 상대방에게 공격하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공격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함께 보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동아시아에서는 억지의 메시지만 갈수록 강해지고 안심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있다.

셋째,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군사적 정상국가화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가 되는 길은 장거리 미사일을 많이 보유하는 데 있지 않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주변국과의 신뢰를 회복하며, 분쟁을 평화적으로 중재하고, 경제·기술·인도적 지원을 통해 국제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정상국가의 중요한 모습이다. 오히려 이것이 전후 일본이 축적해온 평화국가로서의 자산을 살리는 길이다.

실제적 대안 : 동아시아 군비경쟁을 관리하는 제도

이론만으로는 군비경쟁을 막을 수 없다. 현실에서 작동할 제도와 합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합의를 지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국가간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첫째, 한·중·일과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전략대화를 정례화해야 한다. 처음부터 거창한 집단안보체제를 만들려고 하면 합의하기 어렵다. 우선 각국의 미사일 배치, 군사훈련, 해·공군 활동과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협의체를 상설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대만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군용기와 군함의 근접비행·근접항해를 통제하는 규칙부터 만들어야 한다.

둘째, 장거리 미사일과 극초음속 무기에 관한 지역적 군비통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군비경쟁을 벌이면서도 미사일의 수량과 배치, 시험발사 통보와 검증 방식을 협상했듯이 동아시아 국가들도 최소한의 투명성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미사일 시험발사의 사전 통보, 대규모 군사훈련의 일정 공개, 접경지역과 분쟁도서 인근의 미사일 배치 제한, 핵탄두와 재래식 탄두를 구분하기 위한 정보 교환 등이 논의될 수 있다.

셋째, 일본의 ‘반격 능력’ 행사에는 엄격한 국내외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의 판단만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도록 국회의 사전 승인 또는 즉각적인 사후 승인을 제도화해야 한다. 무엇을 ‘무력공격의 착수’로 볼 것인지, 선제공격과 반격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미군의 정보에 의존해 일본이 공격에 참여할 경우 책임 소재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무기만 먼저 배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넷째, 한국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무조건 반대하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실재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일본의 장거리 타격 능력이 한반도 유사시 한국의 동의 없이 운용되거나, 독도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한국의 안보를 제약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한미일 안보협력에 참여하더라도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과 작전, 정보 공유, 미사일 운용에 관한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반도 영역에서 일본의 군사행동은 반드시 한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미국과 일본에 명문화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중국 견제에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묵인해서도 안 되며, 과거사 문제 때문에 모든 안보협력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협력하되 통제하고, 견제하되 대화를 단절하지 않는 복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다섯째, 한·일 양국의 역사 문제와 안보 문제를 완전히 분리하려는 접근도 재검토해야 한다. 일본이 아무리 방위 목적이라고 설명해도 주변국이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불안하게 보는 데에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력만 빠르게 커지면 주변국은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일본 지도자들이 야스꾸니(靖国)신사 참배, 교과서 왜곡, 식민지배 책임의 축소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동시에 주변국에 일본의 군사력은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득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일본이 진정으로 주변국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군사력 증강 못지않게 역사적 책임에 대한 일관된 태도와 행동을 보여야 한다.

여섯째, 북한 핵문제에 대한 단계적 해결책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일본의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는 가장 강력한 명분 중 하나다. 북한 비핵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핵과 미사일의 추가 확대를 먼저 동결하고, 시험발사 제한과 핵물질 생산 중단, 국제사찰, 제재 완화를 단계적으로 교환하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 핵문제를 방치한 채 일본의 군사력 증강만 비판해서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일곱째, 대만해협의 평화적 현상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은 무력통일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대만 주변에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은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상태에서는 어느 한쪽의 훈련이나 정치적 발언 하나가 군사적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중국은 무력사용을 자제하고, 미국과 일본은 대만 독립을 일방적으로 조장하지 않으며, 대만도 현상을 급격히 변경하는 행동을 삼가는 상호절제가 필요하다.

일본 국민과 시민사회의 역할

일본의 군사적 진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일본 정부나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 국민과 시민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일본 국민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실재한다는 정부의 설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말고, 장거리 미사일이 실제로 일본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지 질문해야 한다. 미사일 기지가 있는 지역이 유사시 우선적인 공격 목표가 될 가능성, 막대한 방위비 지출이 복지·교육·지역경제에 미칠 영향, 미국의 전쟁에 일본이 자동으로 끌려갈 위험도 따져봐야 한다.

일본 사회 내부의 평화헌법과 반전운동을 시대에 뒤떨어진 이상론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전후 일본이 80여 년 동안 대규모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데에는 헌법 제9조와 전수방위 원칙, 그리고 이를 지키려 한 시민사회의 역할이 있었다. 이를 모두 부정하고 군사적 정상국가화만을 추구한다면 일본은 전후 역사에서 가장 귀중한 자산을 스스로 버리는 셈이 된다.

대안은 군비 포기가 아니라 군비의 통제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막는 대안은 일본에 아무런 방위력도 갖지 말라고 요구하는 데 있지 않다. 중국의 군사력 확대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주장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다. 대안의 핵심은 필요한 방위력과 무제한적인 공격 능력을 구분하고, 무기체계의 배치와 운용을 국내법·국제법·동맹 간 협의와 지역 군비통제의 틀 안에 묶어두는 것이다.

일본의 재무장을 우려하는 주변국들도 일본만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일본이 군사력을 확대하게 된 안보 환경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 중국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자제하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를 중단해야 하며, 미국은 동맹국에 군사적 부담을 떠넘기는 대신 지역적 군비통제와 위기관리 외교를 주도해야 한다. 한국은 한미동맹에만 의존하거나 중국의 반응만 살피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다자안보질서를 제안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한 국가만의 선의로는 군비경쟁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상대방의 군비 증강만을 탓하면서 자신의 군비를 계속 확대한다면 동아시아는 결국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대결과 전쟁에 가까워질 것이다. 필요한 것은 힘을 완전히 포기하는 이상주의도 아니고, 힘만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군사주의도 아니다. 힘은 갖되 그것을 제도적으로 통제하고, 억지는 유지하되 대화와 신뢰구축을 병행하는 현실적인 평화전략이다.

일본은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하나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장거리 공격 능력과 군비를 계속 확대하여 군사대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필요한 방위력을 유지하되 평화헌법과 전수방위의 정신을 보존하고, 주변국과 군비통제와 공동안보의 질서를 만드는 길이다.

일본이 어느 길을 택하느냐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과 중국, 북한과 대만, 나아가 미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전쟁을 가르는 문제다. 일본이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본이 어떤 모습으로 일어서는가이다. 지난 세기의 군사대국으로 다시 일어설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 책임과 평화국가의 원칙을 지닌 성숙한 국가로 일어설 것인가? 그 선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안은 있다. 다만 그 대안은 일본만의 결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중국과 북한의 절제, 미국의 책임 있는 동맹정책, 한국의 주도적인 외교, 그리고 일본 국민의 민주적 통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실패한다면 동아시아는 다시 힘과 힘이 충돌하는 세기로 되돌아갈 것이다. 성공한다면 일본의 재기는 군국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질서의 재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일본의 재무장을 억제하는 일은 단순히 일본을 압박하거나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일본의 군사력 확대는 일본 국내 정치의 극우화(‘우경화’는 잘못된 용어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의 급속한 군비 증강, 대만해협의 긴장,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미국이 동맹국에 더 큰 안보 부담을 요구하는 국제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일본의 재무장을 우려한다면 그 재무장을 촉진하는 구조적 요인까지 함께 줄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중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비판하면서도 동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해왔다. 센까꾸(尖閣)열도, 중국명 띠아오위따오(釣魚島) 주변에서 해경선과 군용기의 활동을 확대하고, 대만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반복하며, 항공모함과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증강해왔다. 중국은 이를 주권 수호와 미국·일본의 포위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오히려 장거리 타격 능력과 방위비 증액의 명분으로 이용된다. 중국이 힘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막으려 할수록 일본의 재무장은 더욱 정당화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는 일본 정부가 국민에게 군사력 증강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가장 직접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거나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인근에 떨어질 때마다 일본 사회의 위기의식은 높아지고, 평화헌법 개정과 반격 능력 보유를 주장하는 세력은 힘을 얻는다. 북한이 자신의 체제안전을 이유로 핵무력을 강화할수록 일본도 자신의 안전을 이유로 장거리 공격 능력을 확대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미국의 역할도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미국은 전후 일본을 비군사화하고 평화헌법 아래 묶어두었던 국가이지만, 냉전이 시작되자 일본의 재무장을 요구했고, 최근에는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 더 강한 군사적 역할을 맡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장거리 미사일과 방위비 증액은 자국의 부담을 줄이면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의 전략적 필요 때문에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나치게 장려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미국조차 완전히 통제하기 어려운 독자적 군사국가가 등장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역사는 강대국이 약소국이나 동맹국을 필요에 따라 무장시켰다가 훗날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직면한 사례를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일본 역시 영원히 미국의 지시에만 따르는 국가로 남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일본이 장거리 미사일, 첨단 전투기, 항공모함급 함정, 우주·사이버 능력과 독자적인 방위산업 기반을 충분히 갖추게 되면, 어느 시점에는 미국의 전략과 다른 독자적 국가이익을 추구하려 할 수도 있다. 지난 세기 일본의 태평양전쟁 도발의 비극과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현재 한미일 협력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환영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기적인 판단이다.

한국의 처지는 더욱 복잡하다. 한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과 정보 공유 및 군사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장차 한반도와 독도를 둘러싼 한국의 안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경계해야 한다. 일본이 현재는 중국과 북한을 주요 위협으로 상정하고 있다고 해서 그 군사력이 영원히 그 방향으로만 사용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군사력은 한번 구축되면 정권과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른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은 감정적 반일과 무조건적인 친일 또는 친미 사이에서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일본과 필요한 안보협력은 하되, 그 협력이 일본의 무제한적인 군사대국화를 승인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특히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유사사태에 개입하는 조건과 범위, 한국 영토·영해·영공에 진입하는 절차, 일본의 장거리 미사일이 한반도 주변에서 사용될 경우의 협의 절차를 한미일 사이에서 분명히 문서화해야 한다.

한국의 동의 없는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이나 군사작전은 허용될 수 없다는 원칙을 확고히 해야 한다. 미국이 작전상의 필요를 들어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요구하더라도 한국의 주권과 지휘권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미일 협력은 세 나라가 대등하게 협의하는 구조가 되어야지, 미국의 지휘 아래 한국과 일본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준동맹체제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동시에 독자적인 방위력과 외교력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의 재무장을 걱정하면서도 모든 안보를 미국에 의존한다면 한국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미국을 믿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다. 자주국방은 동맹을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동맹을 보다 대등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다.

일본의 장거리 미사일에 맞서 한국이 더 많은 미사일을 배치하고, 중국이 다시 그에 대응하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증강한다면 동아시아는 끝없는 군비경쟁에 빠진다. 군사적 억지는 필요하지만, 군사력만으로 모든 안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실제적인 대안은 군비경쟁을 일정한 규칙 안에 묶어두는 것이다. 한·중·일 사이에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확대하고, 미사일 시험과 대규모 군사훈련을 사전에 통보하며, 함정과 군용기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연락망을 상설화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국방당국 간 직통전화와 해·공중 연락체계를 형식적인 장치로 두지 말고 실제 위기 때 작동하도록 정례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또한 동북아시아에도 유럽안보협력회의와 유사한 다자안보협의체를 장기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 대만해협, 동중국해, 미사일 배치와 군사훈련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은 합의부터 축적할 수는 있다. 군사훈련의 사전 통보, 분쟁지역 주변의 무장함정 접근거리 제한, 미사일 발사 정보의 교환, 우발적 충돌 발생 시 즉각적인 공동조사 같은 조치부터 시작할 수 있다.

특히 장거리 미사일과 극초음속 무기는 발사 후 판단 시간이 매우 짧아 오판의 위험이 크다. 상대방은 그것이 재래식 탄두인지 핵탄두인지, 훈련인지 실제 공격인지 즉시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사일 발사시험의 사전 통보, 발사지역과 낙하지역 공개, 핵무기 탑재 여부에 관한 최소한의 투명성 확보 등 초보적인 군비통제부터 논의해야 한다.

일본 국내의 민주적 통제도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말하는 ‘반격 능력’은 실제로는 적 기지와 지휘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공격 능력이다. 그런데 무엇을 적의 공격 개시로 볼 것인지, 어느 시점부터 반격이 가능한지, 미국이 제공한 정보만으로 일본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지에 관한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러한 결정이 행정부의 해석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전수방위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된다.

일본 국회는 장거리 미사일 사용에 대한 사전 승인, 긴급한 경우 사후 승인, 작전 종료 뒤의 공개 검증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일본 국민도 안보를 정부와 자위대의 전유물로 맡겨서는 안 된다. 군사력의 확대가 실제로 일본을 안전하게 만드는지, 오히려 일본 각지를 상대국의 공격 목표로 만드는지, 방위비 증가가 복지·교육·의료에 어떤 부담을 주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평화헌법 제9조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헌법 제9조가 존재한다고 해서 일본이 실제로 아무런 군사력도 갖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위대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강력한 군사조직이며, 일본은 첨단 해·공군력과 방위산업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9조는 일본이 무력을 국가정책의 정상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정치적·도덕적 장벽으로 작용해왔다.

그 장벽이 완전히 제거된다면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의 평화헌법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와 관련된 문제다. 주변국은 일본 국민에게 헌법을 지키라고 명령할 수 없지만, 일본이 전후 평화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역의 신뢰 형성에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일본은 군사적 신뢰보다 역사적 신뢰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으면서 군사력만 강화한다면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은 일본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장거리 미사일이 방어용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침략의 역사를 축소한다면 그 설명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독일이 전후 유럽에서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면서도 주변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나치의 범죄와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비교적 일관되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일본도 진정한 의미의 보통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군사력의 정상화보다 역사인식의 정상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이 과거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피해국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사과하며, 교과서와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에서 침략을 미화하지 않는다면 주변국도 일본의 방위력 강화에 대해 지금보다 덜 불안해할 수 있다. 반대로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면서 공격 능력만 확대한다면, 주변국의 경계심을 군사적 위협이나 반일감정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결국 일본의 재무장 문제에는 단 하나의 간단한 해답이 없다. 일본의 군사력을 완전히 억누르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고,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무제한적인 군사력 확대를 용인하는 것도 위험하다. 필요한 것은 일본의 정당한 방위권을 인정하되, 그 군사력이 공격적 성격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국내외의 통제 장치를 촘촘히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눈치를 보거나 미국의 결정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말고, 동북아 군비통제와 다자안보협력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반도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와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교차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군비경쟁이 격화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계속하고, 일본과 안보협력을 추진하면서도 역사와 주권 문제에서는 원칙을 지키며, 북한에 대해서는 억지와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 어느 한 강대국의 편에 전적으로 기대는 외교는 당장은 편해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선택권을 좁힌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고, 일본놈 일어난다”는 해방 직후의 구호를 오늘날 그대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 시대도 달라졌고 국가 사이의 관계도 달라졌다. 그러나 이 구호에 담긴 자주와 경계의 정신만큼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미국과 동맹을 맺더라도 미국에 모든 판단을 맡겨서는 안 되고, 중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더라도 중국의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일본과 안보협력을 하더라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국제정치는 선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고, 동맹도 국제환경에 따라 변한다. 따라서 한국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외교적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일본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 경제적으로 장기간 침체를 겪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산업·기술 능력을 갖추고 있고, 군사적으로도 첨단 해·공군력과 미사일 전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의 재기 그 자체가 아니다. 모든 국가는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일본이 어떠한 국가로 다시 일어설 것인가이다.

과거의 침략을 반성하고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토대로 지역의 안정에 기여하는 국가로 일어설 것인가. 아니면 외부의 위협을 명분으로 군사력을 확대하고 역사적 책임을 축소하면서 다시 힘의 정치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일본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도 선택해야 한다. 일본의 재무장을 비난하면서 각자 군비를 늘리는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상호 절제와 군비통제, 역사적 화해와 다자안보협력을 통해 재무장의 필요 자체를 줄여갈 것인가. 전자는 쉽지만 위험하고, 후자는 어렵지만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길이다.

대안은 있다. 일본의 무장 해제도 아니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방임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방위력을 투명한 규칙과 민주적 통제 안에 두고,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동시에 완화하며, 미국의 동맹정책에 대해서도 지역의 장기적인 평화라는 기준에서 견제하는 것이다.

그 대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절제, 일본 국민의 감시,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자제, 미국의 책임 있는 전략, 한국의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외교가 함께 필요하다. 어느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동아시아의 각국은 모두 방어를 말하면서 공격 능력을 쌓고,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 준비에 몰두하는 상태로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소한 오판과 우발적 충돌이 돌이킬 수 없는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지난 세기 일본 군국주의의 비극은 일본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수많은 국민이 희생되었고, 일본 국민 자신도 참혹한 대가를 치렀다. 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은 일본만의 책임이 아니라 동아시아 모든 국가의 공동책임이다.

일본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막을 수는 없고, 막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일본이 칼을 들고 일어서는가, 신뢰와 책임을 안고 일어서는가는 엄중히 지켜보아야 한다. 일본의 재기가 또다시 군국주의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고 동아시아 평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도록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찾아야 할 현실적 대안이다.

2026. 4. 6. 13:36.
일산 향동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