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척결운동 물꼬 튼 임문호, 임종국 부자
우리나라 현대 인물중에서 가장 훌륭한 부자를 꼽는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없이 임종국 선생의 부자를 꼽겠다. 친일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아들에게 일제시다 친일파였던 자신을 단연코 고발하라고 일러주어서 아들이 평생을 죄책감이나 이중적 모순 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부친 고 임문호 선생 그리고 아버지의 선각자적이고 자기희생적인 분부에 따라서 먼저 부친을 고발하면서 평생을 친일파 척결에 앞장섰던 김종국 선생!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참으로 대승적이고 참용기의 수범을 보여준 삶을 산 분들이다. 부친의 친일파 고발 당부와 관련된 당시 부자 간에 주고받은 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를 밟고 가라/이산하
『친일문학론』과 『일제침략과 친일파』 등의 저자인 임종국 선생이 젊었을 때 일제시대의 신문을 뒤지다가 뜻밖에 자기 아버지 이름을 발견하고는 충격에 빠졌다. 혼자 며칠 고심하다가 마침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가 친일파 책을 쓰려고 옛날 부역자 자료를 찾다가 아버지 이름이 나온 신문기사를 봤어요……”
“……”
“아버지 이름을……뺄까요?”
아들 앞에서 고개 숙인 아버지가 오랜 침묵 끝에 대답했다.
“종국아, 나를 밟고 가라.
내 이름이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출처 : 이산하,『악의 평범성』(서울 : 창비, 2021년).
특이한 사실로는 임종국 선생의 아버지 임문호가 바로 친일 부역자였다는 것이다. 임문호는 원래 천도교 지도자였는데, 수차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및 대외 침략 전쟁에 동참할 것을 선동한 행적이 있었다. 이것이 밝혀져 임종국 본인도 친일파에 대한 연구서인『친일문학론』을 집필하던 도중 아버지의 이러한 행적을 알고 상당히 괴로워했다. 하지만 임문호 본인이 "(그 책에)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라고 말하였단다. 그래서 결국『친일문학론』에 아버지 이름이 들어가지만, 당시 시대 상황상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초판 발행했던 1,500부가 다 팔리는데 13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나마 1,000부는 일본에서 연구를 목적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출처 : 나무위키)
나도 그런 상황이었으면 우리 아버지를 고발했을까? 아마도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는 살아 계셨을 때 지탄을 받을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아버지의 잘못을 많이 탓했다. 남들은 그런 나를 불효자라고 욕하거나 애비도 모르는 호로자식이라고 손가락질 할지 몰라도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버지라고 해서, 부모 형제라고 해서 남들에게 끼친 잘못을 묵인한다는 것은 진정한 참지식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지도자라면 자기 부인이 법적으로 잘못한 게 있으면 의법 처리하라고 국민들에게 선언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로서 해야 할 책무다. 물론, 한국인의 정서상 남편이 검찰 조사를 받거나 죄과를 치르도록 하면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받을 것이다. 당사자인 부인도 남편에 대해 남남인 것처럼 크나큰 배신감을 느끼거나 원망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미리 부인에게 부인을 사랑하지 않아서 내치는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없이 치르고 가야 할 업보이자 고통이니 깊이 용서해주기 바란다고 눈물로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죄가를 치르고 난 후에 다시 같이 노후를 보내자고 다독거려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은 부인보다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더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과연 요즘 같은 세상에 임종국 부자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있을까?
2024. 10. 18. 16:1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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