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시비를 잠재울 한일 전문가 공개토론을 제안한다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중앙대학 강사)
일본정부가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의 일본영유를 교육하도록 법령화하고, 독도 관련 영토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한 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수년이 지났다. ‘교과서왜곡’문제에 국가가 관여할 수 없다고 발뺌하면서 우리의 시정요구를 묵살했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후안무치요, ‘口是心非’(입 따로 마음 따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는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5년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타케시마(竹島―일본인이 부르는 독도의 명칭)의 날’을 제정한 이래 가히 점입가경이라고 할만하다.
일본정부는 어차피 부딪치고 넘어야 할 산이라면 내친 김에 안팎으로 자국에 유리하게 전개됐던 2008년 상황을 호기로 삼아 타케시마 교육까지 결행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한국정부의 정치적 입지가 좁고 외교적 대응카드 마저 드러난 데다, 독도는 “한일 양국이 각각 교육하는 것이 좋겠다”는 숀 맥코맥(Sean McCormack) 미 국무부 대변인의 발언에 고무됐었다.
맥코맥의 이 발언에 일본은 독도문제에서 중립을 표방하는 미국이 내심 일본의 입장에 서있다고 판단한 듯 했다. 또한 일본수상의 북경올림픽 참석 대가로 중국으로 하여금 동중국해 가스공동개발 조건을 합의케 함으로써 중국과도 당분간 밀월관계에 있었다. 그러니 한일관계가 악화돼도 일본이 고립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판을 두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독도주권 침해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추구해온 정해진 수순을 밟은 것일 뿐, 거시적으로 보면 일본이 조선해(동해)를 중심으로 한 국가전략을 수립한 20세기 초부터 획책해온 결과다. 1905년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진작부터 독도의 전략적 가치를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독도 인근해역이 무진장으로 매장된 해저광물의 보고라는 점을 알게 된 후손들이다. 그들이 편집증 환자처럼 독도에 집착하고 쉽게 물러서지 않는 배경이다.
1930년대 한 때 일본제국은 조선해를 중심으로 한 환태평양경제권을 건설하겠다는 꿈을 꾼 바 있다. 일찍부터 한반도, 일본열도, 사할린과 연해주에 둘러싸여 있는 조선해가 지니는 군사전략적, 경제적 가치에 눈떴던 대외침략의 선봉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대장이 일본이 만주를 집어삼키려면 조선해의 장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한해협과 치시마(千島)해협을 봉쇄해버리면 일본은 옴짝달싹 못하게 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조선해를 ‘일본해’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조선해를 장악하려면 그 거점인 독도를 손에 넣어야 한다. 독도를 점유하면 조선해가 손에 들어오는 역순도 가능하다.
문제라면 일본의 이중성과 저의를 간파하지 못한 채 양국관계의 回向 없는 ‘미래’만 얘기해온 역대 우리 정부의 무대응과 무신경이 문제였다. 일본 외교의 수사적 이중성을 애초부터 간파하고, 진작에 외교경로를 통해 일본정부의 결정을 번복시키려는 대응방법은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어야 했다. 또한 1998년 일본이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을 때도 그 저의를 알아 차렸어야 했다.
일본내 진보적 양심세력과의 연대도 그다지 믿을 바가 못 된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와 지식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독도를 연구하는 학자라고 해봐야 일본 전체에서 약 10명 정도이고, 이 가운데 일찍부터 객관적이거나 우리의 입장에서 연구한 학자는 겨우 두세 명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적인 독도연구자는 아니고 경제학자였지만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본사료로 입증한 호리 가즈오(堀和生) 전 교토(京都)대학 교수, 객관적이고 친한적인 주장을 폈던 나이토 세이츄(內藤正中) 시마네대학 명예교수(사망), 언론계에선 2005년 “한국의 독도 영유를 인정하되 섬 이름을 ‘우정의 섬’으로 하자”고 제의한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일본 아사히신문 전 주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반정부 주장을 펴는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티베트라는 영토문제에 관한 한 중국정부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듯이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이라고 해도 영토문제만큼은 일본정부의 편에 서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지성은 국익 앞에 실명했고, 보편 가치로서의 정의를 외면한 지 오래다.
일본사회에 보편화 돼 있는 “일미관계는 악화돼도 하루 만에 회복되지만, 일한관계는 양호해도 하루 만에 악화될 수 있다”는 말이 무얼 의미할까? 그들은 자신이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제공자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일본정부의 관료, 정치인, 극우세력 중에는 “독도의 한국령”사실을 알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양호한 한일관계를 하루아침에 악화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악의적으로 과거 일본의 침략역사를 왜곡하고, ‘일본군 위안부’존재의 강제성을 부인함은 물론, 걸핏하면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억지주장을 펴기 때문이 아닌가!
과거 박정희 정부시절 이동원 외무장관이 일본정부에게 “독도문제는 한국에게 국민감정을 폭발시키는 다이너마이트”라고 한 바 있듯이 일본정부, 특히 외무성은 명명백백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익세력의 결집이라든가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해마다 ‘다이너마이트’의 뇌관을 건드려 왔다. 이는 한판승으로 매듭지을 획기적인 처방이 나오기 전에는 일본정부, 학계, 언론계가 3위일체가 돼 선전하는 왜곡된 사실을 비판 없이 그대로 믿고 따르는 부화뇌동은 앞으로 더 심화되고, 그러한 ‘좀비’들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나지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그들은 지난 세기 자신들의 선배들이 저지른 악행에서 비롯된 집단적 르쌍티망(ressentiment)의 해소에 겸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기는커녕 끝까지 ‘타케시마’의 일본영유권을 계속 외쳐댈 것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또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국가전략적 측면에서 정해진 수순대로 독도주권을 훼손할 다음 행보를 준비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악마적 행보를 멈출 방안은 없을까? 있다! 왜 없겠는가? 한일 양국의 독도 관련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학술적, 법리적 공개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독도가 역사적, 지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한국의 고유한 영토”라는 진실을 만천하에 밝히는 방도로서 한일 양국의 대표적 전문가들이 토론회를 열고 이를 양국이 동시에 TV로 생중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편 일본인들에게 독도의 역사적 영유권의 진실을 판별할 눈을 뜨게 할 유용한 해법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노는 일본의 집요하고도 위험한 장난을 근절시킬 수가 없다.
일본이 토론에 응하면 우리는 한판승으로 이긴다. 그들이 응하지 않아도 우리는 손해 볼 게 없다. 독도의 ‘실효적 지배’(effective control)는 변함없겠지만, 일본정부는 우리에게 그들의 토론거부를 비판하고, 이를 기회로 일본국민에게 자국정부를 믿지 않고 돌아서도록 만들 양수겸장의 묘수를 안겨줄 게 아닌가? 오는 광복절에 일본이 또 다시 독도 관련 망언 혹은 경거망동 할 것에 대비해 우리정부는 한일 독도 전문가 끝장 토론을 제안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면 어떨까?
위 글은 2013년 3월 20일자 미디어포항방송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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