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민의 자살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
자살률 저하를 위한 몇 가지 제언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중앙대학 강사)
『자살론(Le Suicide)』으로 유명한 20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Émile Durkheim)의 눈으로 보면 매 34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 현대 한국사회는 분명 병들어 있다. 그것도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치유가 쉽지 않은 중증상태다. 뒤르껭은 근대 유럽인의 자살을 ‘이기적(利己的) 자살’, ‘이타적(利他的) 자살’, ‘아노미(Anomie)적 자살’, ‘숙명적(宿命的) 자살’ 네 유형으로 나눠 각 자살의 발생 원인을 밝히고 정의를 내렸다.
첫째 유형인 ‘이기적 자살’은 개인이 사회에 덜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개인이 집단 내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교류가 적거나 소속 집단의 공통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살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독신자의 자살률이 기혼자의 그것보다 높다는 사실을 들었다.
두 번째 유형인 ‘이타적 자살’은 개인이 국가나 공동체에 지나치게 통합된 나머지 일어나는 것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시 ‘천황’을 위해 자살공격을 감행한 이른바 일본군의 가미카제(神風) 특공대가 좋은 예다.
세 번째 유형인 ‘아노미적 자살'은 근대 유럽 산업사회의 특징을 반영하는 자살유형으로서 개인의 사회적 기대와 그 실현 사이의 불균형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는 일상 속 기존 공동체가 무너질 때 일어나는데,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결과 삶을 지탱할 힘을 상실한 나머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것이다.
네 번째 유형인 ‘숙명적 자살’은 과도한 사회적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으로서 자녀가 없는 기혼 여성의 자살이나 고대 사회에서 군왕의 죽음에 즉해 그와 같이 매장됐던 순장이나 주인을 따라 죽는 노예의 죽음이 이에 해당된다.
뒤르껭은 네 가지 자살 가운데 특히 ‘아노미적 자살’에 주목했는데, 오늘날 한국사회의 자살은 대부분 이 경우에 해당된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2009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31.2명으로 세계 100여 개국 중 2위다.(세계보건기구 발표).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들 중에는 단연 1위다. 실제로 우리는 매년 일용직 혹은 임시직 노동자, 사회안전망 바깥의 하층민, 유명 연예인, 기업체 사장, 중고등학생 중에 자살자들이 끊이지 않음을 보고 듣는다. 최근의 조사에선 청소년 5명 중 1명이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할 정도다. 그만큼 개인의 사회적 기대와 실현 간의 불균형이 심하다는 얘기다.
한국인의 자살원인은 성별, 세대별로 다르다. 하지만 각종 원인의 본질을 압축하면 세대별로 원인이 중첩되기도 한다. 예컨대 10대 청소년은 학교폭력과 왕따, 입시경쟁에 따른 학업 과부하와 이에 따른 불안, 20대와 30대는 미취업, 40대와 50대는 실직에다 그에 수반되는 누적된 빚과 가정파탄, 60대 이상은 경제사정에 따른 노후불안정, 질병과 고독이다. 이 현상들의 이면에는 극심하다 못해 비정하리만치 섬뜩한 경쟁이 근본원인으로 도사리고 있다. 중고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는 청년들은 거개가 수험준비 그리고 창의성과 무관한 스펙 쌓기에 “올인”하고 있다. 가히 살인적이랄 정도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사회적, 경제적 성취를 거둔 사람은 중장년은 물론 노년까지 생활이 안정된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노년까지 생활고에 찌들면서 “누리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을 살게 된다. 중년 이후의 질병과 고독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머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 또 친척과 지인과 친구들과 교류할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생겨나는 결과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자살은 삶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자가 택하는 유일한 현실 탈출구다. 바꿔 말하면 자살은 사회적 타살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11년에 발표한 ‘행복지수’(Better life Initiative)에서도 한국은 이 기구에 가입돼 있는 전체 34개국 중 26위로 하위권이었다. 한국은 최상위권의 교육(2위)과 중상위권의 일자리(11위), 안전(11위) 등에 비해 주거(28위), 환경(29위), 노동과 삶의 조화(30위) 공동생활(33위) 항목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특히 맨 아래에 쳐져 있는 노동과 삶, 즉 일과 생활의 부조화 그리고 공동생활의 부적응은 앞에서 뒤르켕이 제시한 아노미적 자살 원인과 일치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예다. 작년 4월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서도 한국은 156개국 중 56위였다.
요컨대 한국인들은 한 마디로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한다고 볼 수 있다. 5,000만 명의 현대 남한 국민들 중 자신이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은 3분의 2에 불과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성인 보다 더 못한 69.3으로 OECD기구 가입 국가들 중 꼴찌를 기록했다. 스페인이 100점 보다 높은 114.9로 1위였고, 한국은 OECD기구 가입 국가들의 평균인 100점 보다 무려 30점이나 낮은 70점에 불과했다.
노예시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노예나 농노, 하인, 하층민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들마저 무시되고 결여된 열악한 생활환경과 조건에서 죽어라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혼자 편안한 삶을 즐기는 왕이나 귀족들이 과연 행복했을까? 작열하는 태양 아래 피라밋 축조공사에 동원된 노예들의 노동을 그늘에서 보고 있는 이집트의 파라오는 정녕 행복했을까? 같은 이유로 오직 소수의 행복을 위해 숱한 노예 혹은 하층노동자들의 강제 혹사로 만들어진 중국의 이화원(頤和園)과 만리장성, 인도의 타지마할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념비적인 거대 축조물들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3분의 2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도 주위에 부모형제, 친지, 친구, 동료들이 경쟁, 생활고와 고독과 질병 등으로 고통 받고 죽어나가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이상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이 생활고에 허덕이며 살아가는데 혼자만 잘 살고, 또 점심을 굶고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는데 내 아이만 잘 입히고, 잘 먹이며 고액과외를 통해 공부를 잘하게 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최소한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만큼은 경쟁을 부추기고 이를 쫓도록 할 게 아니다. 공동체의 개개 구성원들이 의식주와 관련된 최소한의 근심걱정이 없어야 하고, 모든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즐거워해야 진짜 행복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살을 바라보는 우리의 무관심, 사회적 편견과 정부의 근시안적 대책이다. 우리는 자살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자살을 단지 자살자 개인의 심리적 문제 혹은 나약한 의지 문제로 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하지만 자살은 앞서 뒤르켕이 규명한 대로 개인차원을 넘어 사회구조적 문제와 깊이 연결돼 있다. 바꿔 말하면, 자살은 비교를 강요하는 경쟁이라는 사회적 가치와 구조적 문제에 직결돼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사회에서 다른 경쟁자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강화시키지 못하면 더 높은 곳을 오르지 못하는 비정한 시대의 윤리가 횡행한데서 생겨나는 현상인 것이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성공의 기준을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은 결과인 지위와 부에 두고,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과도하게 투자하면서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명문대학 진학, 좋은 직장과 부와 출세를 보장해주기 위해 ‘혹독하게’ 교육을 시킨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숫제 ‘사육’일뿐이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도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들의 고민 1위는 공부(38.6%), 2위는 직업(22.9%)이었다.
또 ‘2012년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자살충동 경험 청소년들이 꼽은 이유 가운데 15~19세는 성적과 진학문제가 53.4%였으며, 20~24세 청년층은 경제적 문제가 28.1%로 가장 컸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은 성인들 보다 충동적인 특징이 있다. 자살예방 상담교육을 하는 ‘밝은미소운동본부’ 관계자는 청소년기 자살충동이 ‘뇌의 장난’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이고 불안정한 사고가 자라다 외부 요인과 결합해 “욱”하고 저질러버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연유에서 비롯됐든 자살 고위험 상황에서 도움을 못 받고 있다가 외부 요인이 결합되면 실행하게 되는 게 자살이다.
그런데 혹독한 경쟁으로 인해 청소년과 성인의 자살이 매 시각 잇따르고 있음에도 가정은 물론 국가는 속수무책이다. 가정은 자살예방의 원초적 집단이지만 가장의 실직으로 인한 악화된 경제사정으로 자식에 대한 교육적 관심을 가지기는커녕 부모들이 자살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가가 더 많은 자살 예방책임을 져야 한다. 원론적으로 볼 때 분명 국가는 자살을 예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의 존립이 그 구성원인 국민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보호 받지 못하면 국가의 존재가치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살을 예방하고, 자살률 저하를 위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근대 국가의 역할은 부국강병 달성과 신민에 대한 원활한 통치였다. 하위 개념의 실현 수단에선 국가방위, 식민지개척과 영토확장에 치중했다. 따라서 왕을 비롯한 귀족의 통치계급은 백성을 위한 민복개념은 뒷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현대 국가의 역할은 경제성장, 자연환경 보호, 자연생태계 유지, 복지사회 구현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본권의 평등, 경제정의의 실현, 최소한도의 삶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의 확충 등이다.
또한 자살은 개인 삶의 종결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적지 않은 사회적 낭비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대로 국가가 자살을 방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나는 여기서 자살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네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단기적으로 2012년 3월 정부가 시행하기 시작한 자살예방법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결실을 맺도록 자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사회의 그늘에 있는 약자, 소외자, 다문화가족 구성원과 청소년들에게 긍정적 마음을 가지도록 정부, 지자체, 가정과 학교가 나서서 지속적으로 교육을 해나가야 한다. 자살을 미화하는 사회 일각의 그릇된 시각을 불식하고, 그것은 자유의 선택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범죄행위라는 점을 널리 주지시켜야 한다.
또한 자살 고위험군이 타인의 자살을 보고 모방하지 않도록 사전 교육도 필요하다. 자살의 외부 요인 중엔 타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의외로 많다. 자살을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라고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08년 유명 탤런트 최진실씨가 자살한 직후인 10월 한 달 사이에 자살자 수가 평소 다른 달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그의 자살을 모방한 자살이지 않았던가?
둘째, 장기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전환시켜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성장과 경쟁, 부와 권력 만능주의에서 분배 정의, 협동과 조화 상생, 그리고 남을 위한 봉사 및 명예와 같은 정신성을 가치롭게 받아들이고 우선시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에 부탄 모델을 검토할 것을 권하고 싶다.
히말라야산맥 동쪽 티베트와 인도에 접해 있는 부탄은 한반도 5분의 1의 면적에 지나지 않고, 인구도 서울 송파구 보다 조금 많은 67만 명에 불과하며, 1인당 국민소득도 1,200달러에 지나지 않는 약소 왕국이다. 그런데 1972년 17세의 홍안의 나이에 등극한 지그메 싱계 왕추크 부탄 국왕은 왕위 대관식에서 “국민총생산(GNP)이 아닌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기준으로 놓고 통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부탄정부는 국민의 행복증진을 위해 경제성장에 매진하기보다는 국민의 건강, 공동체, 심리적 행복, 문화, 올바른 정치 등 9개 분야에 이르는 지표를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행복지수를 산출해 정책에 우선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부탄은 진정한 행복을 실현하고자 국민총생산에 반대하고,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이라는 신개념을 만들어 경제성장 못지않게 생태계 보존, 영적인 진보와 성장을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2008년 입헌군주제로 바뀐 뒤 취임한 젊은 새 국왕도 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행복지수라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성장을 대신하는 새로운 후생지표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탄이 완벽한 낙원은 아니다. 네팔계 부탄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도시로 들이닥치는 농촌 청년들의 취업문제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부탄에는 근대화와 발전이라는 신기루를 쫓아 성장만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사회로 내몰린 우리들이 놓친 가치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2006년 세계인의 행복도 조사에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한국은 조사에 응한 178개국 중 103위에 머물렀을 때 이 나라는 8위를 차지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유럽신경제재단(NEF)이 실시한 2010년 국가별 행복지수조사에서도 부탄은 1위를 차지했다. 응답한 국민 가운데 97%가 행복하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GDP는 낮아도 의식주에 별 걱정이 없고, 빈부차가 없으며, 가족·친지들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 그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였다. 부탄에 비해 1인당 국민총생산이 10배 이상 높은 한국은 조사대상 143개국 가운데 중위권인 68위에 그쳤던 사실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최근 유럽공동체(EU)에서도 국민총행복개념을 도입하자는 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는가?
셋째는 배타적 경쟁관계에서 협력, 조력, 상생관계로 바뀌도록 사회 경제적 제도면의 각종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제도를 학습의 자율 성취제로 바꿀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경쟁을 완화하고 사회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면 자살률을 상당 부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경쟁완화와 사회공동체적 가치의 회복은 동시에 왕따 등의 학교폭력문제까지도 부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마지막 넷째로 각 지방자치 단체장 직할로 자살예방기구를 설립해 운영하도록 정부 수준에서 법제화 할 것을 제안한다. 즉 자살예방을 위해 지역사회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제도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한국자살예방협회’와 같은 기구를 각 시도에 설치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이를 통해 각 지역별 자살 가능자의 숫자, 또 그들이 처해 있는 경제, 생활환경 및 조건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문제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 자살원인으로 밝혀지는 사안에 대해선 조건을 완화, 개선, 근절해나갈 필요가 있다. 자살문제는 어느 한 주체의 노력만으론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인식전환은 물론, 정부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현실적이고 중·장기적인 해법을 찾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소요되는 재정증가는 당연히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
단체 회식시 가끔 소개되는 건배사가 있다. “세상에 필요한 세 가지 금, 즉 황금, 소금, 지금이 있는데, 황금과 소금 보다 지금을 위해 건배합시다”라는 말이다. 이 건배사처럼 가장 가치로운 것은 황금을 쫒는 미래에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달아 불확실한 미래보다 ‘지금’에 더 많은 것을 투자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소금이 되는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자살공화국”과 “입시지옥”이라는 오명처럼 아귀 같은 세상을 후대에 물려주지 않기 위해 시민사회가 국가에게 자살방지 종합대책을 세워 이를 시행하도록 요구하고 개선시키는데 더 많은 관심과 압박을 가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사회의 한 구석에선 자살을 생각하거나 자살을 결행하는 부모형제, 이웃, 친구, 동료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한 자살예방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얘기, 남의 일이 아니다. 그건 우리 모두의 실존적 문제이자 나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위 글은 2013년 3월 5일자 포항미디어방송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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