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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뻬이의 대만 토속 음식 거리와 대도정 자성궁(大稻埕 慈聖宮 )

雲靜, 仰天 2024. 8. 12. 09:12

타이뻬이의 대만 토속 음식 거리와 대도정 자성궁(大稻埕 慈聖宮)


지난 4월에 이어 어제 또 다시 대만에 오게 됐다. 내가 묵게 된 호텔 근방에서 대만 친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호텔 부근의 대만 토속 음식거리를 소개하려고 한다.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먹자골목 같은 곳인데, 이 먹자 골목의 위치는 타이뻬이 시내 민취앤시루(民權西路)에서 산총(三重)시로 넘어 가는 딴수이(淡水)강을 넘기 직전에 있는 大稻埕 지역의 慈聖宮 앞 길이다.

이와 동시에 이 거리에 같이 있으면서 이 거리가 생겨나게 된 배경으로서 대만의 3대 도교(道敎, Daoisms) 사원 중의 하나인 따따오청 츠셩꿍(大稻埕 慈聖宮)도 같이 소개하겠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 하니 우선 이곳 음식을 먹어보고 난 후에 궁을 유유자적하게 감상하는 게 좋을 것이다. 구경은 먹고나서 하자는 건 대만인들도 똑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그들도 “츠판황띠따(吃飯皇帝大)”라고 그러는데, 먹는 게 황제보다 낫다는 뜻이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말에 해당된다.

알다시피 이곳 “일하 포르모사”(ilha
Formosa, 16세기 포르투칼 사람들이 대만을 발견하고 아름다운 섬이라고 외친 말, ilha는 섬을 뜻하고 Formosa는 아름답다는 뜻임)는 말 그대로 풍광도 아름답고 먹거리들도 다양한 “미식의 천국”이다. 음식 종류가 많고, 맛도 좋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식도락가들이 선망하는 곳이다.

원래, 대략 16세기 명청 교체기 이전부터 중국에서 타이난(臺南) 등의 대만 남부 지역으로 이주해와서 오늘날 대만의 주류 구성원이 된 대만인(內省人)들이 옛날부터 먹던 토속 음식에다가 1945년 이후 중국 대륙에서 중국 한인(外省人)들이 대규모로 건너오면서 중국 각지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같이 따라 들어와서 정착하게 된 게 대만이 “음식 천국”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배경이다. 신강(新疆) 같은 소수민족 음식을 제외하고는 중국의 주요 요리인 사천요리, 호남요리, 광동요리, 객가요리, 산동 요리, 복건요리, 상해요리 등은 거의 다 맛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중국대륙 요리들 뿐만 아니라 서양 음식, 튀르키예 음식, 일본 음식, 한국 음식, 몽골 음식, 인도 음식 그리고 베트남 등의 동남아 음식들까지 없는 곳이 없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선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가운데 하나다. 완전 채식인 “素食”(파, 마늘, 부추, 달래, 아위 등의 5신채는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식물 식재료만으로 만드는데 한국의 사찰 채식과도 조금 다름)이라 불리는  요리다.

스스로 미식가라고 생각한다면, 식도락가로 자처하는 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한 두 번 쯤은 대만에 와볼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2018년 처음으로 '미쉐린 가이드 타이베이'에 이곳의 풍부한 미식을 소개한 이후로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타이뻬이를 찾고 있다.

지금부터 이 두 곳을 소개할 사진에는 우선 궁을 먼저 보고나서 음식거리 사진을 보기로 하고 그 순서대로 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하촌(寺下村)과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대만에도 옛날부터 사찰이나 도교의 궁 인근에는 오늘날처럼 음식점(술도 판매함)들이 많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음식점 때문에 궁이나 사찰이 들어선 게 아니고 사찰이나 궁이 들어선 후에 그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궁이나 사찰에 오는 신도들의 필요에 따라 음식점이 하나 둘씩 생겨나 점차 하나의 “먹자골목”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역사와 도시 발달사의 관점에서 보아 음식거리가 주가 되는 게 아니고 궁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들 알고 있을 거 같아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려다가 그래도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겠다. 중국에서 宮은 궁궐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도교의 도량을 말하고, 寺는 불교의 절을 가리킨다. 이 둘을 통칭하여 “스먀오(寺廟)”라고 일컬어진다. 원래 묘(廟)란 중국 건축에서 하늘과 땅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을 가리킨다. 이곳 大稻埕 慈聖宮은 타이뻬이시 빠오안(保安)街에 있다. 大稻埕은 이곳의 지명이다. 구체적인 번지는 뒤에 가서 다시 알려 드리겠다.

청대 말기 1864년(同治 3年)에 건립된 大稻埕 慈聖宮은 대만의 3대(大稻埕霞海城隍廟와 大稻埕法主真君廟) 도교 사원의 하나로 꼽히고 있고, 타이뻬이시 지정 고적이라고 한다. 이 3대 도교 사원은 모두 지어진지 100년이 훨씬 넘는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보면 이 궁은 남방(중국에선 통상 南洋이라 칭함) 해양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청대 후반 취앤쪼우(泉州) 퉁안(丹庵)縣 상인들이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푸졘(福建)성에서 바다의 신 마조(媽祖, 중국어로는 “마쭈”이고 속칭 “天上聖母”로도 많이 불리고 있음)의 동상을 청하여 멍쟈오 빠쟈쫭(艋舺八甲庄)이라는 마을에 안치했다고 한다. 멍쟈오는 타이뻬이시의 발상지 중 하나로 여겨지는데, 당시 핑푸족(平埔族)과 타이야족(泰雅族) 등 원주민이 대만 한족과 교역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자성궁은 당시 통안 사람들의 수령 임우조(林佑藻)라는 이가 1855년 마조사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가 11년이 지나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자성궁은 건립된지 얼추 150년이 됐다는 소리다.

자성궁의 도량 배치를 보면 궁 입구로 들어가는 곳에 파이팡(牌坊)이 우뚝 서 있다. 파이팡은 대만이나 중국 어디에 가든 종교 관련 건축물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꼭 종교 관련 건물이 아니더라도 옛날 전통시대엔 그 지역 출신 효자, 열녀(節婦) 등 타의 모범이 될만한 행적이나 공로가 있는 사람을 표창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우기도 했다. 또 미관을 위해 조영하기도 했는데 문짝이 없는 대문이다.

옌핑뻬이루(延平北路)에서 들어가는 慈聖宮의 입구라는 걸 알리는 牌坊. 파이팡의 용마루 위로 장식된 용과 그 아래의 새들 복건과 광동 지역의 해양문화와 습합된 도교 문화의 양식이다. 용머리, 등지느러미, 발톱 등 조각이 대단히 세밀해서 예술적 감각이 돋보인다.
용마루 위 두 마리 용 사이에 도교에서 거론되는 "신"들 셋이 서 있다.
기둥은 대리석으로 돼 있고 각종 장식물의 조각이 조악하지 않다.
자성궁 건물 본전에서 옌핑뻬이루 쪽으로 본 파이팡의 안쪽 모습
파이팡을 지나 안쪽으로 약 80m 정도 걸어 들어오면 궁의 경내로 들어오게 되고 본전 안에 위 사진처럼 넓은 공터가 있다. 아마도 궁의 각종 행사시에 사용되는 공간인 듯하다.

파이팡을 통과해서 궁 내부로 들어가면 제일 앞쪽에 본전인 정전(正殿, 前殿, 拜殿이라고도 함)이 있다. 이 안에는 이 궁의 주신인 마조를 비롯해서 中壇元帥, 千里眼, 順風耳, 七爺와 八爺 등등의 신상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불교사찰이나 도교의 궁이 거의 다 그렇듯이 정전 안에는 정면에 주된 불상이나 신상이 안치돼 있고 좌우 양쪽에 여러 신상들이 대칭적으로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대칭적 배치가 비대칭적 배치 보다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안정감을 준다. 내가 현장에 와서 보니 이 궁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동쪽의 東廂房에는 여러 제신(文昌帝君, 關聖帝君, 月下老人, 福德正神, 虎爺, 太歲星君, 各路神明)이 모셔져 있고, 서쪽의 西廂房에는 주생마마(註生娘娘, 12婆姐 포함), 三寶佛(석가모니불과 그 협시불), 觀音菩薩상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본전 뒤쪽에는 “龍井公”이라는 우물이 있다.

궁은 왜 존재하고 누가 의식을 집전할까? 또 궁의 정치적, 사회적 기능은 어떠할까? 주지하다시피 도교는 중국에서 발원돼 주변국들에는 물론, 이른바 “Daoism”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사회에까지 퍼져나간 중국의 주요 전통 종교 신앙 중의 하나다. 도교가 종교인 이상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종교'라고 불릴 수 있는 네 가지 조건은 다 갖추고 있다. 다신의 교주들이 있고, 경전에 기반한 교리(의례와 의범 포함), 도사(道士)라는 사제와 그리고 포교 장소로서의 사원이 있다. 교리에는 궁관의범(宮觀儀範), 계율 그리고 의례와 제사방법을 규정해놓은 재초과의(齋醮科儀)가 요체다.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사제들과 성격이 비슷한 도사가 의식을 집전한다.

도교 사원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옥황상제와 용왕처럼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신적 존재 그리고 바다를 주재하는 마조 등 지역의 신들이나 굴원(屈原, 전국시대의 정치가이자 비극적 시인, BC.340~278), 관운장(關羽 후한의 장수, ?~219), 악비(岳飛, 남송 시대 충신, 1103~1142),  진린(陳璘, 임진난 때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장수, 1543~1607) 등등 각 지역별로 태어난 걸출한 역사 인물에 대해 제사 지내는 곳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은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구심체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지역의 유력한 종족들이 이 궁을 매개로 그 지역의 공적 일을 처리하고 해결할 뿐만 아니라 그걸 기반으로 여러 가지 조직들도 만들어지고 행사나 활동 참여는 물론, 교육 및 정보 교환도 가능한 다기능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음력 3월 23일 마조의 생신을 축하하는 제사와 더불어 음력 9월 9일 마조가 도를 이룬 마조성도 홍법일(媽祖成道弘法日)에도 기념행사를 크게 연다고 하는데 이러한 제사와 행사는 지역사회와도 다방면으로 연계돼 움직여지고 있다. 

또 다른 예로서 이 지역의 차 상인들이 오늘날의 깐꾸(甘谷)가의 차 상인 조합(茶商同業公會)에 모셔져 있는 차교마조(茶郊媽祖)를 믿고 이 자성궁에서 중국의 茶聖으로 불리고 있는 당나라 시대 육우(陸羽, 733~804)의 탄신을 기리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곳 자성궁의 건립 연대와 도량의 배치 그리고 안치된 신상들에 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대충 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전각 내에 모셔져 있는 신상들을 하나하나씩 보고 난 후 먹자 골목에 관한 소개로 이어질 것이다.

자성궁 본전 정문. 이 건물 기와등 위에도 용들이 날아 가고 있다. 두 마리의 용들 중간에 세 신상이 서 있다. 대만에서 볼 수 있는 도교사원의 양식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비슷하다.
본전 안에서 바깥을 내다본 광경
익살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해태상이 정문 좌우에 한 개씩 안치돼 있다. 중국어 명칭으로는 石獅子(혹은 石獅)라고 한다. 잡귀를 막는 수호신 기능을 하는 돌사자는 장식물로서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의 궁전, 사원, 불탑, 다리, 저택, 정원, 묘소, 인장 등에서 볼 수 있다. 사자가 굴리고 있는 국화 문양이 새겨진 둥근 것은 여의주일까?
고대에는 관청의 입구와 고위관료, 귀족, 부유한 사업가들의 거주지에도 돌이나 청동 혹은 시멘트로 조상한 사자상이 장식물로 많이 사용된 바 있지만 오늘날에는 백화점과 상가나 상점 입구에도 액을 막고 번성을 의미하는 뜻에서 배치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손톱과 발톱이 황금색으로 도색돼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기단은 3단으로 돼 있다.
拜殿 바로 위에 걸려 있는 편액에 쓰여 있는 恵澤覃敷라는 글귀가 눈에 번쩍 들어오면서 심상치 않게 보인다. 자료를 찾다 보니 이 편액은 일제시대인 1920년(大正 9년)에 도사 러핑(樂平)社 회원들이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恵자는 惠자의 이체자이고, 覃자는 넓게 퍼진다 뜻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마조의 은총이 온 세상에 퍼져 만물을 덮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칭송하는 뜻이다. 보존이 잘 돼서 그런지 편액의 나무상태도 양호해서 편액 수집가들이 제법 평가를 높이 할 것으로 보인다.
본전 안에는 편액과 기둥에 대련의 글귀가 새겨져 있는 楹聯들이 많이 있다. 정면에 보이는 복을 희구하는 의미의 福陰德門 편액이 눈길을 끈다. 福德之門인 것이다.


도교사원이라면 흔히 마조의 별칭인 天上聖母, 관성제군, 문창제군, 주생마마, 지신(土地公), 신선 등이 모셔져 있는 것을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자성궁에는 불교의 본존불 및 좌우 협시불과 관음보살상도 모셔져 있다. 아마도 마조가 어렸을 때 불경을 공부하고 깨달음을 얻었던 사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어디까지나 이 궁의 주인공은 천상성모, 즉 “마조 할머니”다. 자성궁의 마조 신상은 한때 大龍峒保安宮의 뒷쪽 전각(殿閣)에 안치되었다가 이 궁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바로 이 마조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성궁을 껍데기만 소개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히 천상성모에 관한 소개가 필요한 이유다.

중국과 대만 일대에선 마조를 역사에서 실재한 인물로 보고 있다. 일단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역사 전적(중국측 마조 관련 단체에서 제시한 자료엔 문헌명이 불분명함)에 근거하면, 그녀는  趙匡胤이 北宋을 건국한 960년(建隆년) 3월 23일 푸톈 메이저우(莆田 湄州)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탄생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에 의하면, 아이를 가지길 기도하던 마조의 부모는 어느 날 꿈속에 자비의 여신인 觀音大士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이 집안은 몇대에 걸쳐 선행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선행의 과보로 아이를 잉태하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마조의 어머니에게 약을 줬는데 모친이 꿈속에서 그 약을 먹고 현몽해서 낳은 아이가 마조였다고 한다.

마조는 갓난아이였을 때 이상하게도 말이 없었고, 태어나서 첫 달 동안 전혀 울지 않았기에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조용한”이라는 뜻의 묵(默)이라는 별명을 짓도록 이끈 결과 그녀의 가족이 그녀에게 “고요한 소녀”라는 뜻의 林默娘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즉 마조의 원래 성명은 임묵(林默)이었고, “모계 조상,” “하늘의 황후”, “어머니”, “할머니”를 포함한 다른 모성 이름들을 의미한다.

태어난 이후 마조는 여덟 살 때부터 글을 읽고 경전들을 깨쳤으며, 16세 때 마을에 창궐한 역병의 원인을 밝혀내 퇴치해서 주민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아버지를 구출하는 등등의 이런저런 믿기 어려운 신통력을 보이다가 결국 28세 때 두 호법 장군과 함께 메이펑(湄峰)의 정상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기막힌 모습으로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 갔다고 한다. 마조가 하늘에 올라간 후 사람들은 여러 번 반복되는 기적을 경험했고, 마조에게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그뒤로부터 신도들은 예배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마조를 포함한 천신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을 바치는 장소로서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민간에서 마조 신앙이 성하기 시작하면서 북송 초기부터 끊임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기적은 마조의 공으로 인식됐고, 이 때문에 송나라 황제(高宗)는 마조를 “靈惠夫人”으로 봉했다. 마조는 공식적으로 천황과 중앙 정부가 인정하는 여신이 되었다. 원대에 와서 마조는 “天妃”라고 불렸다가 청대 1680년(康熙 19년)에 “천상의 여신 공주”(庇民妙靈昭應安仁普濟天妃)로 인정 받았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684년 마조는 다시 '天后'로 승격했다고 한다.

오늘날도 마조는 신도들에게 강력하고 자애로운 하늘의 여왕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자들은 가족의 연장자이자 할머니로서 존경과 사랑으로 그녀를 바라본다고 한다. 특히 이곳 대만에서는 많은 신도들이 마조가 할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마조파(媽祖婆)”, 즉 마조 할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마조 신앙은 송나라 때 중국 푸졘성 남쪽 연안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 신앙을 통칭하여 “마쭈이즘(Matsuism)”이라고 한다. 마조신앙은 생겨나면서부터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연해 지역에까지 확장되었다.

이곳 자성궁에 보이는 여러 가지 제 신상들은 千里眼(한국 절에서 볼 수 있는 금강역사상), 順風耳처럼 마조의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많다. 예컨대 순풍이는 원래 천리안과 함께 세상에 해를 끼치는 요괴로 나타났으나 마조에게 神將으로 복속되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능력을 가지게 된 신이다. 천리안과 순풍이는 천상성모의 양쪽에 서서 성모를 수호하는 협시 신상으로 보면 된다. 따라서 마조의 역사 혹은 신화를 알지 못하면 이쪽 중국 동남 해안에 널리 퍼져 있는 도교 및 마조 신앙과 문화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으로 마조 이외의 다른 제신들도 조금 살펴보자. 문창제군은 문운과 시험을 보호하는 신이고 관성제군은 관운장을 말한다.

월하노인(月下老人)은 보통 줄여서 月老, 月老星君, 月老神君으로 존칭하는 도교의 신 중 하나로 남녀의 인연(人緣, 결혼에 관한 인연)을 관장하는 신이다. 말하자면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신인 셈이다. 상의 생긴 모습은 종종 흰 수염을 기르고 얼굴이 붉어지는 자상한 노인으로 만들어지며, 왼손에는 연분장을,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는다.

福德正神은 토지신(지신)이다. 이 명칭 외에도 伯公, 土伯, 社神, 社公, 后土, 福德爺, 福神, 福德老爺, 福德公 등등 수 많은 이름이 있다. 각 지방 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땅의 신은 부를 가져다 주는 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옛말에 “흙은 백옥을 낳고 땅은 금을 낳는다”(能生白玉, 地可出黃金土)고 하여 “흙이 있는 곳에 재물이 있다”(有土就有財)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의 신”(財神爺)이라고도 불린다. 지신 숭배의 기원은 땅에 대한 존경과 감사에서 비롯된다. 福德正神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숭배되고 있는 친숙한 신이다.  

太歲星君은 '歲', '太勢'라고도 한다. 勢는 천황씨 시대에 창제된 기원세성으로 이후 민간 신앙의 신으로 발전했다. 태세는 육십갑자의 간지기년법을 운행주기로 하여 총 60명으로 매년 한 세의 신(神)이 당직을 서는데, 그 해에 당직을 서는 태세를 '당년 태세'라고 하며, 한 해의 지배자로서 그 해의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삼명통회(三命通會)이라는 전적에서 부태세자는 한 해의 지배자이자 신들의 지도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虎爺는 호랑이를 형상화한 신으로 속칭 虎爺公( 범나리공), 虎爺將軍(범나리 장군), 虎將軍(호랑이 장군)으로 불리며, 하단장군(下壇將軍), 금호장군(金虎將軍)이라고 존칭하며, 그 중 범나리도 흑모(黑毛)와 황모(黃毛)의 두 종류로 나뉜다. 호랑이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산신령, 토지공, 성황의 좌기(座騎, 불보살이나 도교의 신을 앉히는 동물)였으나, 후에 왕야, 마조 등의 신들의 좌기로 발전하였고 사찰, 마을, 지역과 마을을 수호한다는 믿음이 있다.

제신들 가운데 대만인들 사이에 가장 많이 사랑을 받고 있는 주생마마는 주성황후의 속칭인데 대만뿐만 아니라 푸졘(福建)성 남부(즉 閩南), 차오산(潮汕) 일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출산과 생육의 여신으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주관한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불임 여성이나 임신한 여성들이 이 신에 대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주생마마의 초상화는 대부분 왼손에는 부본(簿本, 즉 일종의 족보)을, 오른손에는 붓을 들고 있어 집집마다 대를 잇고 있는 상속자들의 기록을 상징한다고 한다.

天上聖母, 中壇元帥, 千里眼, 順風耳, 七爺와 八爺, 관성제군, 문창제군, 주생마마 등이 모셔져 있다. 中壇元帥라는 신은 哪吒라고 불리는 것의 閩南語의 白話字인데 李元帥, 太子爺, 哪吒太子, 三太子, 哪吒公 등으로도 불린다. 최초 불교의 密乘經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고, 산스크리트어(梵語)로는 Nalakuvara 또는 Nalakubala라고 하는데 고대 중국에서는 이를 那拏天, 那羅鳩婆, 那羅俱伐羅 등으로 번역됐다고 한다. 이해하기 쉽게 夜叉神이라고 보면 되고, 그의 아버지는 불교의 多聞天王으로서 불문과 세상을 수호하는 신이다. 배단에 놓여져 있는 신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육안으로는 어떤 것이 어떤 신인지 정확하게 구분이 잘 안 된다.
순풍이(왼쪽)와 천리안(오른쪽)의 한 형태인데 위 배단에선 분간이 쉽지 않았다. 여타 제신들도 동일!
七爺와 八爺는 원래 푸졘성 남부와 南洋지역 일대에서 민간신앙의 대상인 謝范將軍(范謝將軍이라고도 함)을 大二老爺, 大爺二爺, 大二爺伯와 大二阿伯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이 대만에선 일곱째 할아버지(七爺), 여덟째 할아버지(八爺)로 불리고 있는 중국 전통문화의 한 쌍의 신이다. 이 두 신은 흑백무상(黑白無常)에 속하는 일종으로, 손에 족쇄와 수갑을 채우고, 귀신을 체포하고, 권성징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주관하며, 종종 성황제(城隍爺)와 같은 사법신 권능을 가진 장수신이다.
재물 복을 바라는 염원이 반영된 財神이 자 招+財+進+寶 글자(아래 사진의 한자)가 새겨진 금덩어리를 손에 들고 웃는 얼굴 표정이 중국적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원래 招財進寶는 부와 보물이 집으로 들어온다는 뜻의 4자 성어다. 이 네 글자를 한자로 합친 글자를 써서 집앞 문에다 붙이는 게 일종의 중국 민간 문화다. 네 글자를 합친 자는 賺(zhuàn)과 발음이 같다. 글자 모양은 아래 사진과 같다.
정 중간 앞에 놓여 있는 용을 조각한 석조 장식물. 보통 궁에는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을 많이 안치하는데 이곳의 용은 여의주가 없고 입으로 뭔가를 토해내는 조각상이 부조(relief)로 조각돼 있다.
우측의 東廂房에 안치돼 있는 文昌帝君, 關聖帝君, 月下老人, 福德正神, 虎爺, 太歲星君, 各路神明이다.
서쪽의 西廂房에 안치돼 있는 三寶佛, 觀音菩薩상이다.
기둥을 감고 하늘로 올라 가는 용이 석주에 조각돼 있다.
신의 은혜, 은총을 널리 알리자는 의미의 闡攘神恩이 이 궁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본전 정문의 안쪽 양 문짝에 이 궁을 지키는 수호신이 그려져 있다. 관운장 같아 보인다.
이것은 한국의 사찰 입구 문에 있는 사천왕상 중 하나인 지국천왕 같아 보인다.
용이 그려진 옷을 입고 칼을 쥐고 있고 눈썹을 햐얗게 그려 놓아 마조 聖母가 여타 제신들 보다 가장 서열이 높아 보이도록 위상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제 자성궁 앞에 형성된 음식거리를 보는 두번째 순서다. 미식거리라고 하기엔 규모가 조금 작은 편이다. 작은 골목길에 작은 박스형 점포 같은 게 열 세 집 정도 늘어서 있을 뿐이다. 그래도 대만 토속적이자 서민 먹거리가 당기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고 하는데,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소문을 들었던지 국내 음식 먹방 문화를 선도한 백종원도 와서 이 거리를 소개한 모양이다. 그는 대만 매체에서 “street food fighter”라는 의미의 중국어 “街頭美食鬥士”(길거리 미식 투사)로 불리고 있다.

이 미식가의 위치는 타이뻬이시 大同區 延平北路 2段 옆 길인 保安街 49巷이다. 중국이나 대만에서 보통 街와 路가 모두 길을 가리키지만 가는 넓이가 조금 좁은 편이고 로는 가보다는 많이 큰 길이다. 그러니까 보안가를 찾으려면 먼저 연평북로라는 큰 자동차 도로로 와서 옆길의 작은 길로 들어가면 된다는 소리다. 인터넷 구글지도에서 '大稻埕慈聖宮美食街'를 쳐보면 바로 나오니 찾기가 쉽다.

이 거리엔 阿萬海產店, 阿發海產, 許仔豬腳麵線, 吳媽媽古早味豬血湯, 賴記雞捲, 媽祖宮口黃記四神湯, 魷魚標, 葉家肉粥, 江家原汁排骨湯, 阿蘭大鼎吻仔魚炒飯, 阿可鯊魚煙, 阿桂姨原汁排骨湯, 榕樹下阿錦海鮮店 등 총 13개 박스형 가게가 늘어서 있다. 위 가게들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미식가 입구에서 늘어서 있는 순서별로 상호를 적은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대만 전통 음식의 먹자 골목인 셈이다.


이곳은 가게들 마다 열고 닫는 시간이 다르다. 9시 반에 여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6시 반이나 7시면 문을 닫는다. 그리고 일주일 중 쉬는 날도 가게마다 다르다. 일요일 쉬는 가게도 있지만 평일에 쉬는 가게도 있다.

이 거리의 음식 종류를 보면 대체로 면과 밥 고기로 크게 나누어진다. 물론 술도 파는 곳도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곳의 음식은 모두 서민들이 먹던 음식이어서 값이 저렴하다. 만일 고급화되고 세련된 음식을 기대하는 사람은 이쪽에 가면 조금 실망하게 될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값 비싼 중국 요리를 맛보겠다면 이곳이 아니라 이름난 음식점을 찾는 게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請客樓, 山海樓라든가 陽明春天 일급의 고급 중식당이 아니라도 맛있는 요리집은 굉장히 많다.

또 한 가지 중국음식과 한국음식의 특징을 언급해놓고자 한다. 중국요리의 특징은 다양한 재료와 평생 먹어도 다 못 먹을 요리의 종류가 많다는 것이고, 또 대부분 불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효음식은 많지가 않다. 사실 소화라는 측면에서는 발효음식이 좋다. 그래서 중국 음식은 기름을 많이 쓰고 해서 맛은 있지만 소화라는 측면에서는 단점이 있다. 반면, 한국 음식은 발효음식이 많아서 소화에는 좋고 밥을 먹기 위한 반찬은 많이 발달해 있지만 밥 없이 즐길 수 있는 요리의 종류는 중국요리를 따라 갈 수 없다.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폴 등 어디를 가든 중화 문화권에서는 복을 빌고 돈 버는 것을 굉장히 중시한다. 그래서 절, 궁 등의 종교시설, 식당과 대부분의 집집마다 문 앞에 복이 들어오라 라든가 돈 많이 벌기를 바란다든가와 같은 문구를 적은 종이를 붙여놓고 산다. 보안가 먹자골목 집문 앞에는 福運龍來가 눈에 띤다. 복과 행운이 용처럼 크게 들어오라는 소리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음식점과 음식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찾은 것도 있고 내가 직접 현장에서 찍은 것도 있다. 인터넷상에서 찾은 사진은 貓大爺的部落格과 여타 싸이트에서 올려놓은 것들이다.

점심으로 뽁음밥 한 접시와 계란탕을 시키니 대만돈 130위앤, 한국돈으로 약 7000원 쯤 됐다. 맛은 그런대로 먹을 만한데 대만 음식이 대부분 다 그렇듯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양이 좀 적은 게 흠이다. 특히 멀대 같이 덩치 큰 사람들에게는 대만 음식 값이 싸게 보여도 양을 좀 많이 먹어야 되니까 배고프지 않게 먹게 되면 한국과 음식값이 결과적으로는 비슷해진다.
“아완 해산물 가게”는 1958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자성궁'음식 거리의 오래된 점포 중 하나다. 초기에는 털게를 파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최근에는 털게가 구하기 어려워지는 바람에 튀김집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나는 의외로 이번에 여기서 대만의 일반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요리가 있는 걸 보았다. 그것은 불도장(佛跳牆)이라는 음식이다. 불도장에 들어가는 재료는 여러 가지다. 주로 아삭아삭한 돼지갈비(排骨酥), 돼지고기 힘줄(蹄筋), 귀비전복(貴妃鮑, 여기선 가공오징어를 사용함), 죽순(筍乾), 토란(芋頭), 메추리 알(鵪鶉蛋), 양배추 등이다.

이런 다양한 재료들을 넣고 몇 시간을 푹 고은 것이어서 요리재료가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도 뛰어나고 국물에서 우러나오는 향도 일품이어서 대단히 고급 요리도 친다. 이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절에서 한 스님이 수행을 하고 있는 중에 이 음식 향이 절로 날아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걸 참지 못해서 이 음식을 먹기 위해 절의 담을 뛰어넘어 갔다는 고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도 과거 이곳 유학 시절 학교 단체 회식 때에 가끔씩 불도장을 먹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보통 항아리에 가득 들어 있는 이 요리는 가격이 비싸서 일반인들도 쉽게 못 먹지만 나 같이 사정이 넉넉치 못한 유학생들은 수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한 것이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이곳 먹자 거리에서 보이는 불도장은 고급이 아닌 서민화된 요리로 보인다.
백종원은 이 점포의 許仔豬腳麵線과 清燉白湯豬腳를 추천한 모양이다.
쉬짜이(許仔)의 족발은 삶은 것인데 색깔이 매우 하얗고 비린내가 나지 않으며 고기의 자연 향을 맡을 수 있고 소스에 찍어먹지 않아도 맛있다고 한다.
프라이드치킨 롤은 겉은 황금빛으로 바삭바삭하며, 두부 껍질은 바삭바삭한 맛이 나고, 안에는 돼지고기와 양파가 가득 들어 있다. 매콤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침샘에서 침이 나오면서 더욱 맛있다.
돼지 내장으로 만든 음식이다. 보기와 달리 내장이 깨끗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큰 뼈 국물은 은은한 술향이 나고 전혀 기름기가 없어 느끼하지 않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도 동물의 내장 요리는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도 손이 가지 않았다.
데친 오징어 반 마리를 접시에 담고 잘게 썬 생강, 마늘, 고수를 곁들어 이 가게에서 만든 와사비 소스, 간장, 식초가 포함된 디핑 소스도 함께 제공된다고 한다.
돼지고기와 찹쌉을 함께 넣어 푹 끊인 음식이다.
내가 먹은 뽁음밥이다. 가격은 대만돈 70위앤(한화 약 3000원) 양이 적다. 이것 한 그릇만으로는 점심이든, 저녁이든 요기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음식을 시키든가 해야 된다.
삶은 상어 고기인데, 상어고기의 대부분은 껍질이 포함되어 있어 젤라틴이 더 많이 함유되어 있고 쫄깃한 식감을 갖고 있다고 소개돼 있다. 맛을 보려다가 이번에는 뜨거운 날씨의 점심 시간에 술도 없이 고기만 먹기가 내키지 않고 특히 금주 기간이어서 시식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돼지 선지국(豬血湯)은 적양파를 넣어 국물맛이 담백하면서 걸쭉하지 않다고 한다.
음식 가게 뒷편 자성궁 정문 양 옆으로 있는 공간을 식객들이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간이 식탁들을 펼칠 수 있게 활용하고 있다. 물론 도교사원은 불교의 사찰과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일종의 신성한 종교 도량인데 그 앞에서 음식을 이렇게 팔고 술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종교 문화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갔을 때는 연일 30 몇도를 오르내리는 데다 습도가 심한 찜통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도 없는 야외에서 이처럼 더운 줄 모르고 앉아서 먹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4. 8. 12. 08:33
대만 久居棧旅店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