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도 초등학교 제9회 동기들과 함께한 가을 나들이
정말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기회 친구들과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다. 같이 간 친구는 회장과 총무를 위시해서 열 네 명이었고, 행선지는 포항에서 멀지 않은 울산의 대왕암! 조금만 더 늦게 갔으면 단풍이 많이 떨어졌을 것 같고, 겨울로 가는 길목의 해풍도 더 거칠 것인데 그러기 전에 가서 시기도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가 돌아오고 난 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우리가 간 울산 그 지역이 해안 강풍이 엄청나게 불어닥친다고 한다. 누가 이 날을 택했는지 선견지명이 있어 가히 미아리고개에 대나무 깃대를 꼽아도 되겄다!
나는 처음에 대왕암이라 해서 감포에 있는 문무왕의 수중 왕릉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보니 문무왕의 왕비가 잠든 곳이었다. 같은 해역은 아니지만 부부가 같이 동해바다의 가까운 곳에 수장돼 있는 것이다. 죽기 전에 둘 다 용왕이 되어 왜구의 침략을 막겠다는 큰 원을 세웠다고 하니 어쩌면 왜구의 출몰을 막기 위해선 조금 떨어져서 맡은 해역이 다른 게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수장이라는 걸 보니 불현듯 내 머리속엔 2009년과 2012년 각기 동해에 분골이 뿌려진 나의 부모님은 지금쯤 어느 바다에 잠들어 계실까하고 잠시 얼굴들이 떠올랐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렸다! 점심시각에 맞춰 목적지에 당도한 우리 일행은 먼저 인근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대왕암으로 갔다. 해외는 물론이고 한국의 동해안, 서해안, 제주 등 여러 곳의 바닷가 여행을 많이 다녀봐도 전복과 꼬막으로 비벼 먹게 만든 밥은 처음 먹어보는 별미였다.
점심 후, 간단한 연말 결산 회의에 이어서 바로 대왕암으로 이동해갔다. 식당에서 자동차 거리로 5분 내외 거리였다. 지척에 보였다. 대왕암으로 가는 양쪽 길목에는 아름다리 나무들이 제법 큰 것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곳이 조성된 것이 수십 년은 훨씬 더 되어 보였다. 눈에 들어오는 대왕암을 떠받치는 듯한 바위들이 제법 작지 않고 여간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멀리 남쪽의 울산항 앞바다 쪽으로는 바다 위에 대형 무역선들이 점점이 떠 있었다. 북쪽 울산시 동구의 방어진 쪽으로는 현대 조선소가 말없이 그 위용을 뽑내고 있었다. 하늘은 쪽빛 색깔이었고, 바다 역시 그 빛을 받아서 쪽빛이었고, 그 사이를 "떠도는" 늦가을 샛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바위 틈에서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의연하게 꽃을 피운 바다국화 해국들이 우리를 반겼다. 내가 수년 전 포항시 국화인 장미 대신 해국이 포항시화의 후보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 꽃을 이곳에서도 보게 되니 내심 참 반가웠다.
현장에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대왕암이 포항 이남의 동해안 바닷가 지역 중에서는 최고의 해경이 아닐까 싶다. 해안에서 바로 붙은 바위섬으로 형성되어 있고 멀리 동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조망도 좋았다. 다만 문무왕의 왕비는 죽은 후 왜 남편을 따라가서 감포의 문무왕 수중왕릉에 같이 수장되지 않고 혼자 이곳에 터를 잡았을까 하는 점이 의문이 들었다. 아뭏든 마음속으로 두 孤魂의 넋을 달래면서 발길을 돌렸다.
능 옆의 아래 쪽에 소라, 고둥, 전복, 문어 등등의 해산물을 안주로 술을 파는 간이 좌판에서 함께 한 소주 한 잔도 짧은 일정 중의 旅香을 풍기게 했다. 전국 어느 바닷가를 가도 동일하게 눈에 띄는 현상이지만 오랫동안 금어기는 잘 지키지 않고 사람들이 하도 많이 잡아서 이곳 울산 바다도 해산물이 별로 풍족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잡힌 해산물도 하나 같이 모두 속이 차지 못하고 비쩍 마른 상태인 게 안타까웠다. 그만큼 해양자원 중 먹이 사슬에서 최하위의 기초 생물들인 프랑크톤, 톳, 미역, 해초 등의 해조류 같은 바다의 먹이들이 고갈되어가니 그들도 충분히 먹고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암튼 같이 간 모든 친구들도 짧은 한 나절이었지만 바닷바람도 쐬고 기분 전환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가면서 차안에서나, 식당에서나, 대왕암 현지에서나 이런저런 이 얘기를 나누고 하다 보니 마음은 어느덧 동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포항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울산에서 바로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친구들하고 끝까지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어쩌랴, 사람이 산다는 게 전부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의 반복이니까. 그것이 없을 때는 곧 새로운 세계에 가 있음을 뜻하니까!
나들이를 준비한 회장, 총무 등 친구들 모두 수고 많이 했습니다. 늘 건강하고 자주 보입시데이!
멀대는 또 바람처럼 사라진다. 언제, 어디로 불지 모르는 바람, 또 불어올 테지!
https://suhbeing.tistory.com/m/1570
2023. 11. 12. 12:41
서울 은평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왜 사는가? > 여행기 혹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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