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쉐썬(錢學森), 이토카와 히데오(系川英夫), 나로호
한 때 우리에겐 세계적 수준의 로켓기술이 있었다. 화약을 넣은 종이통에 불을 붙이면 하늘로 날아가는 조선시대 다연발 화살 신기전(神機箭)이다. 현대 로켓의 고체연료 엔진과 같은 원리를 응용한 신기전은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무기에 뒤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1992년 8월 남미에서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솟아올랐다. 2009년 4월과 이듬해 6월에 발사된 1, 2호의 실패에 이어 오늘 오후 나로3호가 발사된다. 우주를 향한 첫 걸음인 이번 발사가 성공하면 2021년 발사를 목표로 한 100% 한국기술의 로켓 제작에 청신호가 된다. 자국위성을 자국발사장에서, 자국발사체로 우주에 보낸 국가만 들어갈 수 있는 '우주클럽'에도 세계 10번째로 가입하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 우주과학기술은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선저우(神舟)9호와 톈궁(天宮)1호의 유인도킹에 성공한 중국과 세계최초로 태양열우주선을 만든 일본에 비해 크게 뒤져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쏘아 올린 10여개의 위성이 모두 국외발사장에서 외국로켓을 이용한 것이다. 중일이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면 우린 겨우 지구를 벗어나려는 걸음마 단계다. 후발주자이기에 당연하다.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지만 장래엔 신기전처럼 중국과 일본을 따라 잡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희망만으론 이뤄지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정직하다. 국가적 역량을 쏟아 부어야만 결실을 맺는다. 투자하고 땀 흘린 만큼 거두는 게 과학인지라 충분한 예산이 지원돼야 한다. 이 못지않게 국민적 성원도 뒤따라야 한다. 어떤 의미에선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한 지원과 성원보다 더 중요하다. 국가지도자가 과학자를 숭상하고, 과학을 중시하는 사회풍토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중국과 일본이 이 분야에서 앞선 데는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첸쉐썬(錢學森) 박사와 이토카와 히데오(系川英夫) 박사의 역할이 막중했는데, 정부가 그들을 인정하고 성원한 결과다. 중국은 저우언라이 총리가 나서 첸쉐썬의 귀국을 막는 미국과 10여 차례의 협상 끝에 중국영공을 침범한 미군 11명과 그를 맞바꿨다. 첸의 귀국은 낙후된 중국의 탄도미사일 발사기술을 최소 20년이나 앞당겼다. 마오쩌둥도 그를 극진히 대우했다. 2009년 후진타오 등 최고지도자들이 대거 그의 영전을 찾아 죽음을 애도한데에 이어 작년 탄생 100주년에도 추모가 이어졌다. 일본에서도 올해 타계한 이토카와 탄생100주년을 맞아 추모가 뜨거웠다.
과학기술 교육이 경직돼서도 안 된다. 공부란 국내 모 과학대학의 총장처럼 쥐어짜듯 시키는 게 아니다. 학업과부하로 교수, 학생의 자살이 속출하는 환경에서 연구자가 창의적 발상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인문학, 과학과 예술분야 교육은 제비처럼 자유로운 사고와 발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과 끈기를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교육이 아니면 학제간 융섭(融攝)을 이끌 인문학적 지성과 예술적 감성이 겸비된 개성 있는 과학자가 배출되기 어렵다. 음악에 심취하고 예술과 문학, 이학과 공학을 결합한 독특한 학문세계를 구축한 첸쉐썬, 발레감상을 즐기고, 첼로와 바이올린 연주에다 음악논문까지 발표한 이토카와가 독보적 과학자가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첸쉐썬의 말대로 학문에선 "경계와 멈춤이 없다(knowledge is boundless)!"
위 글은 2012년 10월 26일자『경북일보』아침시론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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