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일본 인식력과 대선 후보의 과제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어느 나라든 국가 최고지도자의 대외 인식력은 국정운영과 외교행위에 대단히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국익을 위한 알파요 오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세계 각국을 모두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은 적어도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대해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인식력뿐만 아니라 4강을 종합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4강이 모두 과거 한반도의 분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으며, 향후의 남북통일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일본은 미국과 중국 못지않게 외교적 과제와 현안이 가장 많이 걸려 있는 국가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역대 대통령 중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한국정책의 틀을 짜는 일본정부 지도자들의 정치적 동기나 저의를 제대로 간파하고 대응했던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일제치하를 직접 겪었던 만큼 일본의 속셈을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가 1952년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통칭 이승만의 ‘평화선’)으로 독도와 그 영해가 한국령이라는 사실을 내외에 천명한 것이나, 독도를 침범한 일본인들에게 발포하고 그들을 나포하게 한 것은 당시 맥아더 사령부의 통치하에 있던 일본이 강경하게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는 약점을 간파하고 대응한 결과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일제의 고등교육까지 받았고, 일본군에도 몸담았던 경험이 있어 지일적 지도자로 볼 수 있지만 지나치게 일본의 장점만 보고자 한 한계가 있었다. 이 탓에 그는 1960년대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도 더 이상의 보상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왜곡 등 파장을 겪으면서도 일본과 밀월 관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임기 중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사이좋게 잘 보냈다. 특히 전 대통령은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수상과 ‘형님, 아우’하며 호형호제 하는 사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본을 잘 알지도 못했지만 사이도 좋게 지내지 못했다. 1995년 10월 일본각료 중 한 대신이 일제가 한국에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망언을 하자 그는 이에 대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일본이 이 발언을 이유로 한국정부의 외환 지원요청을 거절하는 정치적 보복을 가함에 따라 우리가 ‘IMF위기’를 겪게 된 한 원인이 됐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당시 오부찌 케이조우(小渕恵三) 일본총리와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다 일왕까지 초청할 의사를 내보이면서 한 동안 우호적으로 지냈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타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의 일본령’ 발언에 뒤통수를 맞고 주일대사 소환이라는 강수를 뒀다. ‘IMF사태’ 발발 전후인 1996~97년쯤부터 일본은 그간 독도영유권 문제를 국내정치, 선거용으로 활용해 온 기존의 방침을 공격적인 전략으로 변경하여 의회나 매스컴에서 빈번히 영유권 주장을 해대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정부가 IMF경제 환란의 어려움에 처하자 일본정부가 이를 우리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한 공세적 태도를 취할 절호의 기회로 활용함에 따라 김대중 정부로선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익년 1999년 1월 22일 ‘신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대권을 거머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일관계에서 집권 초기에는 ‘조용한 외교’로 지냈다. 그러나 2005년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자 그 역시 뒤늦게 일본에 대한 인식과 정책기조를 바꾸는 등 대일 이해의 무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렇듯 대일외교 면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즉 우리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이면 일본도 이에 호응할 것이라는 착각 내지 ‘짝사랑’이다. 그래서 일본정부가 역사왜곡, 독도영유권, 성노예, 강제징용 등의 제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서줄 것이라고 보고 집권 초기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다가 바라는 대로 일본이 응해주지 않으면 강경대응으로 나선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양국관계가 불편해지고 양국민의 감정악화와 비방만 고조돼 차기 정부에 정치적 부담만 가중시켰다.
물론 문제의 근원은 일관되게 과거사문제와 영토문제에 딴 소리를 해온 일본 정치권에 있다. 일본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게 한일관계의 구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라면 일본이 바뀌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게 자신을 선출한 국민들이 기대하는 대통령의 역할이다. 일본이 겉 다르고 속 다르며, 대한국 정책의 기조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고 국내정치용이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방향을 설정하여 이를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결행해나갔어야 했다.
바꿔 말하면, 역사의 가해자로서 문제의 진원지인 일본의 수상이 허심탄회한 마음가짐으로 보편타당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도이겠지만, 한국 대통령이 어떤 대일관과 정책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양국 관계도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여름 이명박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과 다를 바 없이 또 한 번 일본에게 당했다. 집권 후 일왕을 찾아가 머리를 숙여가며, 또 독도에 대한 모호한 발언으로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심지어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수상이 독도를 일본어로 ‘타케시마’로 홍보하겠다고 하자 홍보를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일본의 비위까지 맞추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로부터 돌아온 건 기대했던 과거사처리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와 조치가 아니라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주길 바란다는 적반하장이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기존의 ‘화기 애매한’ 대일기조에서 벗어나 강경 자세로 돌아섰다. 지난 8월 10일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한데 이어 14일에는 일왕에게 과거사에 관해 사과를 요구했으며, 15일 제67회 광복절 경축사에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문제와 관련된 강력한 발언이 이어졌다. 독도방문과 일왕사과 요청 발언은 국내정치용이라는 속내가 드러나긴 했지만 원론적으로는 국가 지도자로서 못할 이유가 없는 언행이다. 또 일본이 과거사 해결문제에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이와 상관없이 국가원수로서 영토수호의지를 천명하는 건 당연한 통치행위였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시기와 수순, 그리고 발언의 의도 및 내용이 적절하지 않아 국내 일각과 일본으로부터 진정성을 의심 받았다는 점이다. 일본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일본우익의 이익을 대변하는 우파 정치인들이 이를 빌미로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을 할 가능성이 높은 시점에서 시기를 잘 선택했었어야 했다.
특히 정치적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러한 언행을 통해 일본에게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했는지 목표가 분명하지 못했던 것은 외교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을 드러낸 가장 뼈아픈 실책이었다. 불필요하게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소극적이라 행동을 보여줄 필요를 느껴서 독도를 방문”했다는 사족까지 달았다. 이 말을 하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지던 국내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깜짝쇼를 벌인 게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게 됐다.
그런데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대통령이 나설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어쨌든 대통령으로선 최초의 독도 방문으로 국내 일반인들이 환호하고 이 행위에 대한 지지율이 치솟았다―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아니라 독도방문 행위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미의 지지율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자 이에 고무된 이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라고 했으며, 방한 계획도 없는 일왕에게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언급함으로써 일본정치권을 넘어 보편 일본인들의 일왕을 향한 외경심까지 건드렸다. 이 발언으로 한일 관계는 급랭했다. 양국민의 감정도 사상 최고로 악화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특히 일왕을 거론한 것은, 비유가 적절하지 않지만 용의 역린을 건드린 거나 다름 없는 역효과가 났다.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일본국 헌법에 명문화 돼 있는 일왕은 일본인에게 특별한 존재다. 그는 살아 있는 신, 즉 ‘아라히토가미 現人神’으로 규정되면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말 항복할 때까지 ‘천황제’이데올로기 주입의 심장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패전과 함께 국가통치 권력을 박탈당하고 보통 사람으로 내려앉게 됨으로써 신성성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본국 헌법에는 현재 국정상의 기능을 갖지 않는 비정치적인 존재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는 우리에게 알려진 바와 다른 게 적지 않다. 일왕은 헌법개정, 법률, 정령 및 조약의 공포권, 국회소집권, 중의원해산권, 국무대신 및 관리의 임면, 전권위원위임장과 대사 및 공사 신임장의 인증, 비준서 및 외교문서의 인증, 외국 대사의 아그레망 접수 등 정치적 차원의 행위가 여전히 존재하고, 일본국민들도 그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즉 정치행위가 아니라고 하지만 국가 수뇌의 자격으로 이뤄지는 국사행위가 보장돼 있어 정파, 종파를 뛰어넘은 패전 전의 신성성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침략과 전쟁, 식민지배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할 히로히토(裕仁) 일왕과 달리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평화주의자로 일본국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 또 일본인 사이엔 일왕의 조상이 한국계라고 밝혔을 정도로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온 일왕인데 왜 그를 문제 삼을까 하는 의구심과 반발이 있다. 그래서 일본 스스로 이른바 ‘천황제’를 없애지 않는 한 외국, 특히 구미국가들과 달리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한국과 중국이 일왕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면 국체가 손상된다고 느끼거나 혹은 주권간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아직까지도 일제침략에서 파생된 각종 과거사문제와 영토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는 이상, 그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져야할 일왕을 우리가 비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당시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정치권이 “예의를 잃었다”고 비난한 점이다. 이 대통령 보다 훨씬 더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은 과거사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성노예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왕과 일본정부 자신들이다. 그들은 그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로 억지를 부린 것이다.
그들은 개인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 의식의 내면에는 아직도 일왕을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로 섬기는 ‘신민의식’이 존재한다. 이는 패전 후 일본을 통치했던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당시 일본사회에서 ‘신민의식’의 정점에 있던 ‘천황제’를 폐지하지 않은 결과다. 맥아더는 일본통합의 구심점인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그대로 존치시키면서 서구민주주의를 도입했다. 이는 일본에 민주주의가 이식돼 제도로서는 작동하고 있지만 사상과 의식면에선 정치를 전근대적인 양태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인이다. 즉 ‘천황제’의 존속은 일본이 제도와 의식의 양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진정한 민주주의로 거듭나고 성장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게 만든 태생적인 한계다.
따라서 아베 신조 류의 일본 정치가들의 그 같은 반응은 일본 국내의 어떤 정당이 국가권력을 잡더라도 마찬가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공산당 정도가 그렇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볼 뿐, 일본 정치권에 진실을 직시해주길 바라기엔 그들이 이성을 외면한 지 오래고, 진실에 눈을 감고자 한 지 오래다.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과거사를 악용하려는 목적만 횡행한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일본정부가 즉각 반격을 취하기 시작하리란 것쯤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2009년 일본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정부 각료인 마쓰바라 진(松原仁) 국가공안위원장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면서 참배 서명란에 “천황의 신하”라는 의미인 ‘신(臣) 마쓰바라 진’이라고 썼다. 즉 일왕의 신하인 대신(大臣)의 신분으로 참배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8월 15일 통화스와프 규모를 지난해 30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늘려 통화위기 때 양국이 상대국 돈을 긴급히 받아쓸 위기극복 장치인 한·일 통화스와프 재검토를 시사하기도 했다. 일본이 우리에게 외환위기 안전망을 쳐주는 의미가 있는 이를 한국 압박용으로 꺼내든 것이다. 이처럼 실질적 협력의 위축은 한일 두 나라 모두에게 큰 부담이다.
그동안 한일 양국이 추진해온 자유무역협정(FTA)과 LNG 공동조달 등은 모두 우리의 국익에 직결된 사안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모두 외교마찰 속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 일본정부는 뻔뻔스럽게도 독도에 대해 공동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 귀속권 판결을 의뢰하자고 제의했고, 한국정부가 응하지 않자 얼마 전 단독으로 제소하겠다고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후 이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더 이상 공세를 이어가지 않고 중도에 꼬리를 내림으로써 그러한 통치행위가 아무런 실익을 거두지 못한 채 결국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못한 한일관계가 돼버린 점이다. 예컨대 외교통상부는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2명의 각료는 이전에도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던 인물”이라며 “이번에도 개인 자격으로 한 것으로 안다”면서 “공식적인 논평이나 대변인 성명을 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 정권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만큼 정권이 바뀌지 않는 이상 현재 시점에서 총리 참배는 예상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일본에 더 이상 마찰을 확대하지 않을테니 총리의 신사참배를 자제해주기를 바란다는 타협책이나 다름없었다. 이 대통령도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도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일본을 우리의 “우방이자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동반자”라는 상투적 관계를 재확인함에 따라 더 이상 파장을 확대하지 않고, 수습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결국 대통령의 일왕 관련 강경 발언으로 촉발된 한일간의 외교경색은 한 바탕 회오리만 불러일으킨 채 차기 정부에게 작지 않은 외교적 부담만 안겨줬다. 즉 얄팍하게 치고 빠지기만 했을 뿐 무계획적, 즉흥적 통치행위가 초래한 양국관계의 악화는 고스란히 다음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은 것이다. 일본의 차기 수상과 우리의 차기 대통령에게 공이 넘어간 셈이다.
그렇다면 먼저 일본의 정치지도자와 시민들은 다 같이 과거사의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이성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그렇지 못하면 일본국민이라도 다수가 정치권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일 문제란 게 대부분 일제의 침략전쟁과 패전에서 연유한 것으로서, 일본인들이 스스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군국주의나 초국가주의의 도래를 막지 못한 과오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침략전쟁은 결국 보편 일본인들이 인간성과 인격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면이 있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 역시 군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정부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노예, 과거사 왜곡, 독도영유권 시비 등 한일 간의 제문제는 일본정부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인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물론 세계를 향해서도 그들은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의 피해자인 우리 또한 가해자인 일본이 진상을 제대로 알고, 진정성 있는 반성과 함께 적절한 보상을 하도록 늘 관심을 가지고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이 즉흥적이고 임기응변 차원이 아니라 심원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이를 차근차근 집행해나가도록 감시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대선주자들도 한일간의 현안과 해묵은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정견을 밝혀야 한다.
그럼에도 적절한 구상이나 적실성 있는 해법을 내놓은 후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다음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과거사문제와 영토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 한일관계에 대해 아무 것도 풀지 못해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미국과 중국에 대한 깊은 이해도 중요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이해력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위 글은 2012년 11월 2일자『오마이뉴스』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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