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도 농업은 산업의 근본이다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삼라만상 중 물과 땅에서 나오지 않는 건 없다. 물과 땅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흙과 물과 공기와 빛의 조화다. 인간의 먹거리도, 동물의 먹이도, 식물의 영양소도 죄다 예서 만들어진다. 고대로부터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하거나 대지가 어머니의 품이라는 믿음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다.
농업을 천하의 근본이라고 여긴 동양사회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인본주의자 다산 정약용도 농업을 먹거리의 근본(農者, 食之本)이자 백성의 이익(農者, 民之利也)이라고 했다. 서애 유성룡도 백성에게 농사짓기를 권장토록 임금에게 간언했다. 상업과 국제무역의 번성과 산업혁명에 연동돼 동아시아에서도 교역이 중요해지던 시대에 나온 인식이다.
16세기 이후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통한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 20세기엔 금융업, 서비스업, 정보산업이 중요시됐다. 이 틀은 21세기에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고 농업의 가치가 떨어졌는가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현대사회가 무역, 금융업, 정보산업 위주로 정책을 폄에 따라 산업패러다임이 바뀐 듯한 착시효과로 인해 하찮게 여길 뿐이다.
1차산업은 2, 3차산업이 이 바탕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늘 본원적 토대기능이 있다. 1차산업이 없거나 빈약하면 그것들은 사상누각이다. 1차산업을 도외시한 채 금융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시키고자 한 결과 국가도산 위기를 맞은 아이슬란드가 좋은 예다. 농업이 붕괴되면 국가적 위기가 초래된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세계는 농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단위 생산성이 증가했음에도 극심한 기후변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때문에 생산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절대적 식량위기 상황에 빠져들었다. 2010년 주요 국제 곡물가격이 10년 전 보다 2~2.5배로 폭등케 한 요인이다. 한국도 해마다 식량을 수입해오고 있다.
쌀농사마저 버림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산 저가 농산물이 밀려오면 우리 농업이 버텨낼 경쟁력이 있을 지 의문이다. 농민의 생존권이 달린 한미FTA 재협상과 한중FTA 추진을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이유다. 매년 벌어지는 상위 20% 농가와 하위 20% 농가의 소득격차 양극화(지난해 12.3배) 해소도 시급하다.
이처럼 농업관련 공약이 필요 없는 상황이 아니건만 대선이 임박한 지금까지도 농업·농촌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여야 모두 농촌 살리기에 근본적으로 고심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고, 대선후보들도 획기적인 대책이나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선관위에 제출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의 주요 10대 대선 정책공약을 보면 공통적으로 농업, 농촌, 농민문제에 인색하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농정공약을 10대 공약에 넣었지만 박근혜 후보는 농업이 아예 빠져 있다.
농업정책이 그저 소비자 물가정책에 맞춰져 있을 뿐인데도 안정된 식량 확보와 생산비 보장을 위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도는 세 후보 모두 관심 밖이다. 한 마디로 대선‘잔치’에 농민들이 철저하게 소외돼 있는 것이다. 전체 인구 대비 농민의 비중이 낮고 표가 적다는 이유 때문이겠다.
농업의 황폐화는 거대한 해일처럼 인류를 덮칠 부메랑이 될 터다.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농업정책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과연 누가 농업정책 이면에 존재하는 삶과 인간의 근원적 뿌리를 인식하는 인본적 인성의 지도자일까?
위 글은 2012년 11월 9일자『경북일보』아침시론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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