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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의 對酒

雲靜, 仰天 2024. 7. 17. 05:13

백거이의 對酒

對酒

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痴人

위 한시는 중국의 中唐 시대 저명한 문인이었던 白居易(772~846)의 작품이다. 시험 운이 좋지 않았지만 그는 과거급제 후 진사가 된 이래 8~9명의 황제에게 출사하다 보니 唐을 관통한 시대를 살았다.

아래에 소개해놓은 한글 뜻풀이를 보면 알겠지만 위 시는 인생의 짧고 덧없음 그리고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고뇌하지 말고 인생을 헌걸차고 즐겁게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백거이는 실제 관직은 3급 이상의 당상관인 刑部尚書(현 법무부장관에 상당)를 지냈고 황제가 그에게 하사한 작위가 卿 다음의 지위에 해당하는 大夫(左贊善大夫)에 지나지 않았지만(그도 이백이나 두보처럼 관운은 좋지 않았다), 역사의 평가나 명예로는 가히 재상급으로 쳐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조선시대 학문의 최고봉인 학자에게 주어지던 대재학이라는 벼슬을 재상급으로 쳐주듯이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후 그에 대한 황제의 찬탄(자신이 출사한 8명의 황제에 이어 등극한 아홉번째 황제인 宣宗이 친히 애도시를 썼음)이 그것을 말해주고, 실제로 그의 묘도 재상급의 크기로 조성되도록 허락된 사실에서 입증된다. 약 30년 전 쯤에 멀대가 중국의 고도 서안을 답사하던 여행 중에 직접 백거이의 묘를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었는데, 왕의 무덤 보다는 작지만 재상의 묘와 비슷한 크기였다. 재상급의 묘는 동시기 통일신라시대 왕들의 묘보다 최소 6~7배나 크고 왕의 무덤은 이 보다 서너 배는 된다. 측천무후와 당 고조의 묘는 내고향 포항의 학산 보다 훨씬 더 컸다.

암튼 백거이가 남긴 족적은 두보, 이백과 함께 唐代 3대 시인의 반열에 든 것을 넘어서 당대가 아닌 중국 전체 문학사에서 깊고도 길게 큰 획을 그은 최고 수준이다. 아래에 백거이의 對酒를 한글로 옮겨놓았다.

對作酒

달팽이 뿔 위에서 뭘 다투나?
부싯돌불 번쩍하는 찰나에 사는 인생이거늘
한때의 빈부에 일희일비 말고 즐겁게 살게나
크게 웃으며 살 줄 모르면 어리석은 바보지

제목 對酒는 단순히 두 사람이 술을 대작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술을 대작하면서 시흥이 올라 시를 짓는 걸 말한다. 그래서 내가 한글 제목을 對酒나 對酌이라고 하지 않고 對作酒라고 번역한 이유다. 옛날 문인들은 주로 그런 걸 하면서 놀았다. 술을 마시면서 시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 “대주”는 백거이가 시작한 것이었지만 나중엔 점차 역대 문인묵객들 사이에 유행이 됐다.

위 시의 달팽이 뿔은 달팽이 윗부분에 솟아 있는 두 촉수기능의 부위인 더듬이를 말한다.

위에서 번역해놓았듯이 시의 전체적인 함의는 굳이 설명을 가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당시로는 엄청난 장수라고 할 수 있는 일흔 여섯 살까지 살다 간 인물이다. 긴 인생 역정 중에 그는 당대의 내로다 하는 시인, 문인들과 교류했다. 아마도 위 시도 여타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폭넓은 교제에서 인생의 짧음과 부질없음을 직접 경험하고 깨닫고 느낀 감회를 읊은 시일 것이다.

낙엽이 지고 추색이 짙어가는 이 가을날, 그의 시를 감상해보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뭔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아무 것도 안 떠오른다고? 그러면 엎어져 잠이나 자라! 天高馬肥의 계절이라잖아! 암담한 요즘 같은 세상에 말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이니!

2022. 11. 5. 11:09
포항발 서울행 KTX열차 안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