跋 : 저자의 변
열 번째 저서를 내놓게 됐다. 이번이 가장 산고가 심했다. 마지막 단계에 가서는 괴롭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시간이 촉급하고 마음은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다 인쇄소 편집측에서 동일한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하게 되자 하루라도 빨리 손을 떼고 싶은데도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산고가 컸던 만큼 우량아가 태어났느냐 하면 그것도 그렇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 지금껏 낸 저서들 중에 가장 완성도가 떨어진 그야말로 졸저다. 부끄럽다는 심정이 들 때 침묵은 유용한 자기보호 수단일 수 있다. 하지만 외마디라도 변명을 해두지 않으면 오래도록 참담한 감정에서 한 치라도 벗어 날 수 없을 듯하다.
과거를 조명하고 평가하는 일을 본령으로 하는 역사연구는 붓이 가는대로 자유롭게 생각을 풀어내는 수필쓰기가 아니다. 독자들의 흥미를 고려하는 소설도 아니다. 시인의 상상이 제비처럼 마음껏 창공을 날 수 있는 시와는 거리가 더 멀다. 역사학의 글쓰기는 수필처럼 일탈의 미도, 흐트러짐의 여유도 인정되지 않는다. 또 소설이나 시처럼 자유로운 상상도 허용되지 않는다. 약간의 상상은 허용되지만 그것은 사료의 합리적인 해석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사가는 오로지 과거 사람들이 남긴 언행과 국가적, 사회적 환경이 남겨놓은 사료들이 말하는 대로 運筆해야 한다. 그 만큼 역사연구는 자유분방함과 변통이 허여되지 않는 정직한 작업이다. 역사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과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물인 사실들과 마주해야 하는 학문이다. 역사서가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6․25전쟁을 막후에서 움직인 사건과 사실을 나열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건과 사람을 움직이는 힘, 즉 역사의 동인과 지도적 인물들 간의 상관성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통찰함으로써 事實의 진실을 밝혀내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 숨을 불어넣어 史實로 태어나게 하는데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이번 졸저의 집필에 참고한 자료들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중국, 홍콩, 대만, 미국, 일본, 러시아 등지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꾸준히 모아왔던 것들이다. 벌이 꿀을 머금고 벌집으로 돌아오듯이 말이다. 그래서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담긴 자료들이 적지 않게 쌓였다.
하지만 자료들을 입수하는 대로 정리를 해오긴 했지만, 워낙 많은 자료들을 접하느라 이번에 주어진 채 2년 반도 되지 않은 시간으로는 옥석을 가리고, 사금을 캐는데 충분하지 못했다. 20여 년 동안 수집해온 자료들을 다 활용하지 못한 게 마냥 아쉽다.
게다가 연구기간 중 핀치 히터로 다른 업무에 두 번이나 투입(한국전쟁사 제7권 중공군 개입 부분 집필, 2014년 불가리아 세계군사사학회에 참석해서 발표한 제1차 세계대전 관련 논문 집필 4개월)돼 해오던 연구의 맥도 자주 끊어진 바 있다. 특히 주변에 사가라면, 아니 한 사람의 인간이라면 응당히 가져야 할 羞惡之心을 모르는 이들의 傍若無人을 접한 뒤로 심신마저 많이 상했다. 결국 마감에 쫓겨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읽고 사실들 간의 불통이나 모호함을 회통시킬 여유가 없었다. 빅토르 위고 같은 대문호도 글을 써놓고 300번씩이나 글을 다듬었다. 유려한 문체의 殊勝한 작품은 그렇게 글을 다듬고 매만지는 수고로움이 배어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퇴고를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이 책을 내게 되니 여러 흠결들을 알고도 그냥 넘어갔다. 좀 더 나은 史實을 취사선택하는 여유는 고사하고, 심지어 사안들을 서술해놓고도 그것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는지 결말과 다음 사안에 미친 영향도 밝혀내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해놓은 것이다. 이 점을 떠올리면 마뜩치가 않아 마음이 편치 않다. 다만, 애써 국내학계 최초로 6․25전쟁의 발발 배경에서부터 휴전에 이르는 약 4년 동안의 북한, 소련, 중국이라는 이른바 공산진영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위안거리로 삼을 게 전무하지는 않다고 스스로 위로할 뿐이다. 또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도 적지 않다. 이 졸저가 누군가에게 본서가 지닌 여러 가지 취약점들을 극복하고 더 나은 연구를 위한 디딤돌이 되거나 불쏘시개로 쓰여 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낙심하게 됐다고 해서 졸고를 읽고 소중한 의견을 주신 분들에게 謝意를 표하는 것까지 잊어버릴 수는 없다. 역사서는 집단적 지혜의 결집체일 수밖에 없다. 사가 본인의 가치관이 개입될 뿐만 아니라 과거 먼저 간 이들의 언행과 지혜 그리고 당대의 역사적 환경과 가치관이 사가의 눈과 마음을 통해 결합된다. 여러 학인들의 조언이 가미될 수밖에 없는 게 역사서다.
본 졸저 역시 마찬가지다. 본서가 상재되기까지 몇몇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다. 주어진 연구기간이 지나도 몸이 좋지 않아 2개월 간 휴직까지 하게 된 필자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채근 한 번 없이 묵묵히 기다려 주신 본 연구소 김철수 소장님께 죄송스러움과 고마움이 交織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졸저의 상재에 형형한 눈과 그윽한 관심으로 원고를 읽고 소중한 여러 의견을 주신 김현영 전 국방사 부장님, 이재훈 박사님, 임방순 박사님 그리고 본 연구소의 조성훈 부장님, 손규석 박사님, 박종상 박사님 제위에게 심심한 고마움을 전해드린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도준우 군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을 생각이다. 또 집필 기간 동안 틈틈이 타자를 쳐주기도 하고 원고를 대조해준 아내 박은영에게도 충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집필 기간 동안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한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내해준데 대한 미안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졸저에 내재된 여러 가지 미흡함, 흠결과 오류는 이 분들과 전혀 관련이 없다. 전적으로 淺學菲才의 저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본 연구를 진행하는 기간 동안 주변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史家란 무엇 보다 정직하고 겸손해야 함을 또 한 번 확인했다. 역사연구자로서 直筆자세와 역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그리고 끝없이 참과 의를 추구하는 불굴의 정신은 그 다음 단계라는 점도 절감했다. 사가는 평소 언행이 일치돼야 한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 학문은 연구 당사자의 가치관과 인품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역사를 논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참이요, 진리인 듯 되뇌지만 생각과 언어는 浮薄하다. 더욱이 마음 쓰기는 협량함의 극치를 보인다. 알량한 지식을 팔면서 일반인들이 구분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함부로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얘기하는 자들이 넘쳐난다. 무엇 보다 왜 학문을 하는지 의심스러운 모순을 보이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의 분별없고 일관성 없는 언행으로부터 촉발된 분노는 여기서 내려놓지만, 이번 기회로 나는 새삼스레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司馬遷을 귀감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는 사마천의 史筆昭世 정신으로 매사를 허투루 보지 않고 살아왔건만, 이번만큼은 不敏했다. 사마천은 “述往史, 思來者”(지난 일을 기술해 다가올 미래를 생각한다)라거나 “前事之不忘, 後事之師也”(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은 뒷일의 스승이 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세상의 인간사와 交互하려는 맑은 영혼을 지닌 사가라면 늘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비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警句를 되새겨보면서 사학도로서의 비장감과 결연함을 끝까지 지속하지 못해 사뭇 아쉽다.
지속적인 사색과 窮究의 의미를 지닌 工夫를 필요로 하는 학문 자체가 수도나 구도, 깨달음의 과정 같은 것임을 또 한 번 체득했다. 현대의 학인들은 단지 지식만 추구하지 공부를 통해 의로움, 정신의 고양, 인격의 도야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曲學阿世는 다름 아닌 바로 영혼 없는 이런 자들이 한다. 나라와 사회가 이렇게 혼탁한 배경이다. 이런 저런 상념에 문득 떠오르는 한시 한 수를 운과 측을 무시하고 퇴고 없이 적어본다.
學習卅仍無工夫
追知却不求眞義
何異互市之賈行
知涌動而義落地
人爲何獲知心得
鳳凰在籠久忘飛
碧空碧而紅花紅
何時能大聲放題
배우고 익힌 지 30년, 아직도 工夫가 없구나
지식만 쫓고 참과 의로 나아가지 않으면
한갓 물건 파는 상행위와 다를 게 뭣이겠는가?
지식은 넘쳐나지만 도의는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뭘 위해 지식을 얻고 마음을 깨치려 할까?
봉황이 새장에 갇힌 지 오래 되면 나는 걸 잊어버린다네
碧空은 푸르고, 紅花는 붉은데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건 언제나 가능할까?
2016년 8월 3일
구파발 寓居에서
雲靜
2024. 1. 17.
★위 발문 중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와 같이 두 부분을 첨언하거나 수정했다.
편집에서▶인쇄소 편집측에서
두 번이나 투입돼▶두 번이나 투입(한국전쟁사 제7권 중공군 개입 부분 집필, 2014년 불가리아 세계군사사학회에 참석해서 발표한 제1차 세계대전 관련 논문 집필 4개월)돼
'더불어 사는 삶 > 삶의 순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형제도 이렇지는 않을 걸요!” : 46년 간 교류 지속해오는 한국과 대만의 태권도인들 (0) | 2024.08.21 |
---|---|
어떤 젊은 중국인 여자의 능청스러움 (0) | 2024.07.19 |
달성 서씨 시조 서진 : 목민관의 귀감 (1) | 2023.12.23 |
고향 대신동, 동빈로 부둣가 추억 (0) | 2023.07.14 |
나의 군대생활 (0) | 2023.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