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나를 감동시킨 순간들

어느 노병들의 60년만의 해후 : 박경석 소령과 김형도 소위

雲靜, 仰天 2021. 6. 3. 23:20

어느 노병들의 60년만의 해후 : 박경석 소령과 김형도 소위

 

말로만 들어도 가슴 뭉클한 순간! 6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 전혀 생각지도 않게 뜻밖에 옛 부하가 상관을 못잊어 찾아왔다면 그 장면은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있음직한 얘기다. 그런데 실제로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소설이나 영화 보다 더 감동적인 실화의 주인공은 박경석 예비역 장군과 김형도 예비역 중령 두 분이다. 두 분은 각기 9순에 가까운 8순 중후반에 재회했다. 서로를 믿는 전우애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두 노병의 감동적인 해후를 소개한다.

 

제3자가 늘어놓는 더 이상의 구구한 설명은 감동을 반감시킬 뿐이다. 다만 꼭 한 가지만 덧붙여야 되겠다.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댁내 가족들께서도 같이 행복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축원드림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을 보고 두 분의 관계와 만남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아래에 올려놓은 글과 사진은 박경석 장군의 서재(포털 다음의 "박경석 서재")에서 가져온 것이다. 평소 박 장군께서 자신의 "서재"에 필요한 자료가 보이면 언제든지 가져다 쓰라고 허락해주신 바 있기에 이번에도 사전에 말씀을 드리지 않고 여기에 소개한다.--2021. 6. 4. 06:4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編註

 

 

1961년, 육군 제1사단 제15연대 2대대장 박경석 소령과 예하 제8중대 기관총 소대장 김형도 소위와 2021년 6월 1일 60년 만의 만남은 감동의 해후였다. 그와 나는 1962년, 1사단의 국가적 행사 步戰砲空시범을 성공리에 주역으로 치렀고 이어서 거국적 시가행진을 성공리에 참여했다. 자랑스러운 빅 이벤트였다.

부인과 사위 딸, 손주까지 거느리고 60년 전의 박경석 소령을 만나기 위해 승용차 편으로 대전 유성자이 아파트를 방문했다. 여러 가지 선물이 얼마나 많았던지 식탁 위에 한우고기 특상품을 비롯해 시바스리갈, 거액의 금일봉까지 그야말로 평생 제일 많은 선물에 눈이 휘둥그래 해질 정도였다. 정말 엄청난 선물이었다.

소령 대대장 시절 별로 잘했다고 생각이 안 되는데 김 소위는 감동의 서한에서까지 박경석 대대장에게 고맙다고 몇번이고 되뇌었다. 순박하고 성실한 김 소위의 옛 모습을 추적하다가 지금의 노안을 보면서 세월 흐름을 비로소 깨닫는다. 아, 뜨거운 전우애. 박 소령이나 김 소위가 바른 군대생활을 했구나... 감동에 눈물이 고이는 감회에 젖는다. 정말 전우애의 보람과 의미를 깨닫는 오늘 오후 한때.

 

박경석

2021. 06. 02

 

나의 군대생활 31년을 회고하면 소령 대대장, 중령 월남전 대대장 시절이 가장 보람이 있었다. 당시는 정치군인들로부터 견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령 대대장, 중령 대대장 근무시의 업적 또한 가장 빛났고, 훈장 또한 많이 수훈했다.


이후, 대령 진급부터 장군 진급까지의 16년간은 눈물 그리고 자살 직전의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 원인의 일단이 나에게도 있었다. 不義와 타협하지 못하는 결벽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영광의 소령, 중령 대대장 시절 부하와의 전우애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육군 제1사단 제15연대 2대대장 시절 김형도 소위와의 60년 만의 해후는 나에게 잊지 못할 감격으로 간직될 것이다.

김형도 소위, 고맙습니다.

옛 1사단 15연대 2대대장 박경석 소령이

 

 

잠시나마 60년 전의 상관과 부하로 돌아가서 옛날을 추억하신 박경석 장군(왼쪽)과 김형도 선생(오른쪽) 두 분
나란히 앉아 포즈를 취하고 계신 두 분의 내외분. 멀리서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박경석 장군과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 김형도 선생 내외분. 두 분의 얼굴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짐작이 되게 하는 젠틀하고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김형도 선생은 박경석 장군과 3세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다 같이 늙어 가고 계시지만 60년이 지나 만나서도 부하로서 상관을 대하는 예를 깎듯이 표하셨다고 한다. 박경석 장군께서 송구스러워 했을 정도로 큰 절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 한 가지만으로 그 분의 인품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충직하게 군 생활을 하신 훌륭한 상관에 요즘 젊은이들이 본 받아야 할 큰 귀감이 되는 훌륭한 부하였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장면이 상상 된다.
김형도 소위가 과거 자신의 상관 박경석 소령에게 자필로 또박또박 정성들여 쓰서 보낸 편지들. 가지런하게 글을 많이 써본 달필의 필체로 빼곡한 사연들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상관인 박경석 장군이 읽어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육군 제1사단 제15연대 제2대대는 보병, 전차, 포병, 공군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작전을 실전처럼 벌이는 훈련의 우수부대로 선정된 바 있다. 사진은 박경석 장군이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에, 그것도 소령 계급으로 대대장에 보임돼 대대를 지휘한 제2대대의 부대표지 입간판이다. 나도 장교는 아니었고 보병도 아니었지만 1980년대 초 같은 제1사단 포병단 작전과에서 3년간 작전병으로 근무한 바 있어 당시 제1사단이 전군에서 가장 우수한 최정예부대란 걸 잘 알고 있다. 전투력이 뛰어난 최정예사단이 아니면 휴전선 바로 아래에서 수도 서울을 지키는 사단이 될 수가 없다. 그 사단의 주역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각기 대대장과 그 예하의 소대장으로 근무한 박경석 소령과 김형도 소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