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443

사람됨의 유형과 사람됨의 격이 보일 때

사람됨의 유형과 사람됨의 격이 보일 때 사람은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 두 면에서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두 가지가 다 바람직한 사람, 한 가지만 바람직한 사람, 한 가지만 못한 사람, 두 가지 다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 등 네 부류가 있다. 두 가지가 다 좋으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두 가지가 충족이 되지 않을 경우 개인의 인품이라도 바람직해야 한다. 그 인품이 어떤지는 개인적, 사회적 이익이 부딪쳐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날 때 알 수 있다. 인품이 좋은 사람은 대체로 사회적 측면에서도 좋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 개인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다르긴 하지만, 좋은 인품은 그 處함이 어디서든 일관됨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회적 측면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개인적으로도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

광복 70년

광복 70년 광복 70년 일제가 패망하던 그 날 빛을 다시 봐서 좋긴 좋았다만 히로히토가 사과는커녕 패전을 애석해하고 그놈의 ‘玉音’방송도 ‘무조건항복’이 아니었건만 외세가 선사한 환희와 감격의 눈물로 희망과 태극기가 출렁인 삼천리강토에 한 순간 빛에 취해 이성이 잠든 사이 악마가 길게 천년의 똬리를 틀었다 광복 70년 강산이 일곱 번씩이나 바뀌는 동안 빛이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정의가 불의의 농간에 당하자 독립유공자들이 이름뿐인 광영과 자존에 주린 배 움켜쥐고 병든 채 골방에서 죽어갈 때 친일파들 뱃떼지에 기름치가 올라붙고 그 후손들이 물고기 물 만난 듯 희희낙락 나라를 난도질 한 거 밖에 더 있소? 광복 70년이라지만 일제강점시대 마냥 다시 찾아든 한숨과 절망과 분노 속에 앙상한 빛 밖에 더 남았느..

야속한 春情

야속한 春情 서상문 한 번은 가야 할 저승길 무엇이 바빠 그리도 걸음을 재촉했더냐 극락천당 저승이 좋다한들 一場春夢 현생 보다 달겠는가 그토록 휑하니 서둘러 갈 거라면 後嗣나 남기지 말지 어엿한 동자가 된 아들이 그대마냥 웃을 때 내 가슴은 아려오지만 그대는 핏줄을 보듬는 손길 한 번 내밀지 않는구나 그렇게 도도하게 청산에 누워 말없이 있으려거들랑 내 마음에 도려 낼 수 없는 기억까지 거둬가시게 끊기 어려운 곰삭은 정 마저 모두 가져가시게 그대와 맺은 도타운 이승 인연이 엊그제 같거늘 어느덧 속절없이 강산이 한 번 바뀌었구려 生者必滅이 자연사 이치라지만 강산이 돌고 돌아도 꿈결엔들 잊겠는가 春四月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는 그대 幻影 붙들래야 붙들 수 없고 불러도 回響이 없는데 또 다시 꽃 피고 새 우는 春情..

진정한 겸손이란 참용기에서 오는 것이다

진정한 겸손은 참용기에서 오는 것이다 진정한 겸손은 누가 보건 말건 스스로의 허물과 부족함을 깨닫고 고치거나 채우려는 데서 갖춰집니다. 그런데 그런 류의 사람들은 많지 않고 입따로 몸따로인 사람들이 거개입니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렇더군요. 허물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참용기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참용기도 필요합니다. 그걸 다 갖춘 이는 10%정도 될까말까 하다는 게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점입니다. 공자가 살았던 축의 시대라고 달랐겠습니까? 그 시대도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공자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에는 이런 맥락이 존재했겠죠? 큰 용기는 큰 곧음이라는 천성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죠! (大勇亦來自於大直之天性!) 2015. 8. 12 “허물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허물인 것..

정을 베풀고 정의를 실천하는 게 사람의 도리다

정을 베풀고 정의를 실천하는 게 사람의 도리다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지만 자기 혼자만 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소극적 선이다. 사람은 이 단계를 넘어 적극적 선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란 다른 동물과 달리 세상 자체나 세상 일이 곧 나와 직결돼 있음을 알 수 있는 지혜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는 게 사람의 도리이자 인정이다. 그들을 도와주거나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사회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나의 일이자 우리 모두가 함께 보듬어야 할 최소한의 과제다. 나아가 그들의 처지나 처우가 나아지게끔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개선되도록 하는데 힘을 보태는 게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정의의 실천이다. 이 모든 걸 동시에 행하는 게 부처님의 希願이자..

攝理 : 마음 비워 추운 날

攝理 : 마음 비워 추운 날 버릴 거 다 버리고 남은 건 버릴 게 없는 나이만 남았다 기약 없는 유배지에서 뼈만 남은 그리움마저 쏟아 버리면 이제 더 버릴 게 무엇 있으랴 덧니 난 고드름 무던히도 추웠다 오랜 세월 추워서 울었다 혼자서 구슬피 울었다. 술 취해 허물거리는 넥타이처럼 나를 온통 내던져 버리고 싶었다 뭐가 뭔지 알 턱없는 강아지 마냥 세상에 그냥 안기고 싶었다. 聽其自然이라지 않는가? 순리대로 살라 하네, 순리대로! 죽을 줄 알고도 거스르는 한 마리 연어 본능을 뒤집지 못하는 운명일 터 聽其自然만 생각하면 싸아한 가슴 저켠에 피멍든 달이 지고 슬며시 解冬의 여울이 일렁인다. 서걱대는 햇살에 노을은 녹아내리고 철 지난 가을은 아무래도 내게는 알 수 없는 구원 버릴 거 다 버리고 앙상히 뼈만 남..

새누리당 비박계가 일제히 꼬리를 내린 이유

새누리당 비박계가 일제히 꼬리를 내린 이유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매도히고 '심판'이라는 독기 어린 사적인 명분으로 솎아내려고 하자 김무성 대표는 그렇다 치더라도 비박계 의원들이 처음엔 강력하게 반발하더니 며칠 뒤 용두사미 꼴로 일제히 꼬리를 내린 이유가 뭘까?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누구든 단박에 알 수 있는 상식적 판단이라면, 선거자금에 약점이 잡혀 있기 때문일 거라는 것도 조금만 생각을 하면 바로 손 안에 잡히는 통찰이다. 결론은 '국회의원질'을 국민의 대표답게 소신껏 제명대로 하려면,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고 돈으로 시민의 환심을 살 순 없어도 깨끗하게 당선돼 깔끔하게 의정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르게 살기 위..

비 내리는 낙화암(雨中的落花巖)

雨中的落花巖 雨淅瀝下着在白馬江 江水涴涎流着似蛇般 夕沒而燈光於泗沘城 聽至霧中黃山野喊聲 離江登到扶蘇山而看 七百年百濟榮華不見 此地僅余落花巖聳立 像蘇定方釣龍的傳說 三千宮女故事亦爲捏 義慈王啊! 勿說己爲仁義慈愛王 隨羅唐軍之馬蹄剛勁 但臣叛國亡責歸否王? 經常不揚威不弄權勢 而包容老百姓不了嗎? 新羅拉外力統一半島 滿意於此地便是汝業 朝鮮打消進大陸念頭 自居小中華也是汝業? 是汝的寃孼呼? 是否知過客之胸中心 而蒙雨松無聲地下着 離哀怨的落花巖下去 人迹斷絶的皐蘭寺內 只有一燭火忽閃擺動 一只大蟾投身於懸崖 2015. 7. 11 傍晩 雲靜於與內子尋訪的扶餘落花巖 비 내리는 낙화암 부슬부슬 비 내리는 백마강 강물이 스르륵 스르륵 뱀 가듯이 흐르네 해거름이 자태를 감추고 사비성에 하나 둘 불이 밝혀지니 강 건너 은은한 안개 속으로 황산벌 함성이 들려..

정의와 인의 그리고 志士

정의와 인의 그리고 志士 正義는 仁義로운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옳다고 긍정하는 상태다. 仁義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람다움의 상태다. 정의는 단박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인의도 단박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한두 번에 이뤄지면 그건 정의가 아니다. 인의도 마찬가지다. 존경 받는 기득권자도 없지 않지만, 사악하고 탐욕스런 기득권자는 부정과 부패와 패악에 젖줄을 대고 산다. 그들이 쳐놓은 그물망이 너무나 넓고, 깊고, 질기기 때문이다. 정의와 인의가 땅에 내동댕이쳐지고 불의와 패악이 최고조에 달할 때 정의와 인의의 절실함이 샛별처럼 떠오른다. 한 사람과 소수만 자유롭고 다수가 고통 받는 가운데 불의와 패악을 일삼는 이가 그들이고, 정의와 인의를 희구하는 이들이 다수로 늘어 날 때, 그 때가 역사의 비등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