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공지 및 정보 마당

5성장군 김홍일 개정판 출간, 발행 그 뒷이야기

雲靜, 仰天 2020. 12. 9. 07:04

며칠 전, 이메일함을 열어 보니 박경석 장군으로부터 긴 메모글과 사진이 와 있었다. 내용은 박 장군께서 쓰신 김홍일 장군 실화소설의 개정판 간행에 얽힌 뒷얘기다. 이 얘기는 단순히 김홍일 장군 소설 관련 얘기만이 아니라 글의 맥락이 백선엽 장군의 역사왜곡에 관련된 것에 깔려 있어서 나 혼자만 보고 말 것이 아니다 싶어 여기에 공개한다.

 

박경석 장군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모두 참전한 백전노장의 군인 출신으로 1980년대 초 신군부 시절 자신에게 역사왜곡을 종용하던 전두환 정권의 불의에 맞서 싸우시다가 압력을 받고 자진해서 전역한 후 시인, 소설가로 데뷔하셔서 지금까지 80여권의 작품집을 남긴 문단의 원로 작가다. 

 

그는 고 강재구 대위(당시)가 부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을 때 그 부대의 대대장으로 계셨는데 사후 강재구 소령의 살신성인 정신과 군인정신을 영원히 귀감으로 남기고자 고 강재구 소령의 이름을 따서 "재구대대"로 만든 장본인으로서 재구대대 부대원들을 인솔해서 직접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신 군의 원로이기도 하다. 박 장군은 8순이 넘으신 지금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으로 창작과 강연 등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계신다.

 

박 장군께서 내게 이 글과 사진을 보내주신 것은 당신께서 밝히고자 하신 백선엽 장군의 역사왜곡에 관한 진실의 일부를 전하고자 함이다. 한국전쟁 전문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역사왜곡은 있을 수 없다는 뜻에서 박 장군의 말씀과 취지에 200% 동의한다. 나는 김홍일 장군에 대해서도 중요한 행적은 숨겨진 얘기까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중 김홍일 장군의 공적에 대해선 나의 저서에 기록돼 있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그가 몰래 뒤에서 임시정부와 김구(이봉창과 윤봉길 두 의사의 의거 시 폭탄을 제조해서 제공)를 도운 얘기에 대해서도 이미 수년 전 국제학술세미나에서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아래에 박경석 장군께서 보내오신 글과 사진을 원문 그대로 옮겨 놨다. 진실은 시간이 더딜지언정 늘 이기게 돼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破邪顯正이요, 事必歸正이다. 악은 악끼리 통하지만 진실은 진실끼리 통한다. 나는 얼마 전 백선엽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박경석 장군과는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이였다.

 

2020. 12. 7.

雲靜

 

 

5성장군 김홍일 개정판 출간, 발행 그 뒷이야기

 

1983년 정부는 한국전쟁 4대영웅을 선정, 그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군측 영웅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장군의 전기소설을 출간하고 KBS 1TV 3부작으로 국군의 날을 기해 3일간 방영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김홍일 장군 전기소설은 본인 박경석으로 지정됐고, 김종오 장군 전기소설은 유현종 작가가 지정되었다.

 

아래 사진의 5성장군 김홍일은 당시 검토과정에서 너무 민감한 내용이 포함됐다 하여 개작을 요청해와 전웅실록소설 五星將軍으로 개작하여 1984년 서문당에서 출간해 그 작품을 1984101~ 3, KBS 1TV에서 방영하였다. 그러다가 37년이 지난 뒤 최초 작품이 김홍일 장군의 진수를 알릴 수 있는 내용임을 확인한 나는 서문당 최석로 회장과 상의 합의하여 개작본을 내기로 했다. 그 원본작에 더하여 김홍일 장군이 서거하기 몇달 전 본인 박경석에게 건낸 김홍일 장군의 친필 기록을 인용한 더 민감한 부분을 추가하였다.

 

 

최근 얼마 전에 나온 박경석 장군의 김홍일 장군 실화 소설 개정판

 

바로 위 사진의 작품집은 김홍일 장군에 대한 최종 작품임을 밝혀 둔다. 본인의 작품이 1984년 국군의 날에 방영된 다음 해에 유현종 작가의 김종오 장군 전기인 白馬高地KBS 1TV 3부작이 방영되었다. 한국전쟁 4대영웅 가운데 미군측 전쟁영웅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과 낙동강 방어작전의 워커 장군은 전기소설을 출간하지 않고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영하였다.

 

아래 사진은 1984년에 출간한 작품집이다.

 

 

박경석 장군이 쓴 김홍일 장군의 실화 소설 초판의 표지

 

2013년 무렵부터 한국전쟁 4대영웅에 혼선이 생겼다. 김홍일 김종오 대신 엉뚱하게 백선엽과 김동석이 등장한 것이다. 내막을 확인한 결과 전쟁기념관 4층의 백선엽 사무실의 책사들의 건의에 의해 미군당국에 로비해 일어난 해프닝이었음이 밝혀졌다.

 

백선엽은 약 30여 년 전부터 국방장관에게 자청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직을 맡아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한국전쟁사를 개작해 6.25전쟁사 11권을 출간, 軍史 개조 작업에 집중하였다. 스스로 영웅이 되기 위한 불법행위였으나 당시의 국방장관들은 백선엽의 위세에 눌려 그 개작 작업을 지원 방관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으로 1.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2. 백선엽상 제정. 3. 백선엽 장군 공간사 출간을 결정하였으나 나를 위시한 채명신, 박정인, 이대용 등 6.25참전 예비역 장성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쳐 그 계획을 이명박 스스로 철회하였다.

 

자칫 세계 군사학계 희대의 조롱거리가 될 뻔했다. 백선엽은 만주군 장교시절 독립군 소탕작전을 지휘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전공이 자신에 의해 과장되었기 때문이었다.

 

북한 당국은 6.25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일본군 장교가 주력인 한국군으로부터 해방시켜야 된다는 논리였다. 만일 일본국 괴뢰국인 만주군 출신 장교 백선엽을 원수로 추대한다면 그 논리에 함몰되고 만다. 백선엽이 민족의 독립을 방해한 주체세력이기 때문이다. 내 투쟁에 호응한 정의감에 불탄 예비역 장군들의 호응은 이명박에게 뜻밖의 결정적인 한 방이 되었던 것이다. 백선엽이 30여 년 동안 공들인 전쟁 공적 날조 세탁물이 단 한 방에 무너졌다.

 

특히 202087일자 한겨레신문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공개되었다. 백선엽 셀프 영웅화연구자들이 비판 없이 받아 적었다고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서상문 전 책임연구원 고백 기사가 게재되었다. 서상문 박사는 무려 13년 동안 백선엽의 개작 현장에서 책임 연구원으로 근무한 확실한 증인이었다. 이 증언으로 내가 홀로 주장했던 고독한 투쟁의 원군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이어서 그 내막을 더 구체적으로 밝히기로 하였다. (고딕체 원필자)

 

대전에서

박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