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서양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은 어디서 왔을까?

雲靜, 仰天 2019. 5. 2. 09:28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은 어디서 왔을까?

 

지금까지 그림 이야기, 화가 이야기, 예술 이야기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젊은 시절 미술학도였음에도 말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화가 이야기는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30여년이 흘렀지만 처음이다. 그 화가는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아래와 같이 극찬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이탈리어로는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이다. 다빈치는 평생 기술, 과학, 예술을 하나로 융섭시키려는 창의적인 노력을 끓임 없이 시도한 삶을 산,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천재로 평가될 만큼 재능이 출중한 인물이었다.

 

“우리는 이따금씩 자연이 하늘의 기운을 퍼붓듯, 한 사람에게 엄청난 재능이 내리는 것을 본다. 이처럼 감당 못할 초자연적인 은총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예술적 재능을 고루 갖게 되는 일이 없지 않다. 그런 사람은 하는 일조차 신성해서 뭇 사람들이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으니 오직 홀로 밝게 드러난다. 또 그가 내는 것들은 신이 손을 내밀어 지은 것과 같아서 도저히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화가로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부적 재능에 대해선 언급 자체가 사족이다. 그는 정말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라는 스승이 청소년에 불과한 레오나르도의 그림 재능에 놀라 붓을 꺾고 조각에만 전념했을 정도로 출중한 재능을 보였다. 훗날 레오나르도도 “스승을 능가하지 못하는 제자는 무능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이 그린 자화상

 

화가로서의 그의 재능뿐만 아니라 조르조 바사리가 평한 대로 레오나르도는 초자연적인 은총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인물이었다. 그는 뛰어난 사실 묘사력과 상상력을 지닌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도 능통한, 인류역사상 정말 천년에 한 사람 날까말까 한 르네쌍스형 인간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람의 인체와 동물의 해부학에도 대단히 밝았다. 이는 그가 남긴 놀랄 만큼 세세한 인체해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인물화를 그리려면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해부학에 국한되지 않고 그는 수학, 물리학, 지리, 천문, 의학, 건축학, 철학, 역사, , 악기 등 모든 분야에 정통했다. 심지어는 그는 멀리뛰기와 높이뛰기 등의 육상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스포츠맨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 시대에 벌써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낙하산과 전차, 잠수함, 증기기관, 습도계에 해당하는 것들도 상상적 설계로 선을 보인 과학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오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은 화가로서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니고, 또 그의 위대한 작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 현재와 미래를 포함한 천재들 중에 그를 능가할 천재는 나타나기 힘든 그의 자연과학, 인문학, 예술적 영감이 융섭된 천재성 그리고 그가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업적들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말들 중 정말 공감이 가는 어록을 통해 그의 천재성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의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다.

 

충실하게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이루게 하듯이 충실하게 보낸 일생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As a well-spent day brings happy sleep, so life well used brings happy death.)”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다양한 면모들 가운데 특별히 내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그의 천부적 재능은 하늘이 내린 30% 정도의 재능이 바탕이 됐겠지만 천재성의 나머지 70%는 어쩌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낸 데서 다듬어진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은 그가 남긴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 인류사 최대의 걸작품이 탄생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기간 동안 그의 작업을 구경한 마테오 반델로는 이렇게 회상한 바 있다.

 

그는 거기에 새벽부터 왔다가 해가 질 때까지 머물렀다. 잠시도 붓을 놓지 않고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잊은 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팔짱을 끼고 서서 그림을 스스로 검토하고 비판하면서 매일 몇 시간씩 작품을 주시하는데도 불구하고, 때때로 붓질 한 번 하지 않고 이틀이나 사나흘을 보내기도 했다.”

 

최후의 만찬은 한 귀족의 부탁을 받고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성당의 식당 벽에다 몇 년에 걸쳐 그린 대작이다. 주문받은 일감을 끝까지 완성시키지 않는 일이 잦았던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릴 때도 서둘러 완성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유는 만찬장에 나오는 예수의 제자들 중 가롯 유다의 얼굴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야 할지 몰라서 그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심을 넘어 고민이 됐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한 일이 유다를 완성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벽화를 완성하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화를 내는 수도원장의 얼굴을 보고 바로 저거다 싶어 그의 얼굴을 토대로 유다의 모습을 완성했다. 유다의 얼굴이 자기와 닮은 것을 안 그 수도원장은 다시는 그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웃는 듯, 우는 듯, 남자인 듯, 여자인 듯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소의 신비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작품 모나리자를 그렸을 때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1500년 프랑스에 점령된 밀라노를 떠나 피렌체로 간 레오나르도는 그곳에서 또 다른 걸작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 작품도 결국 완성은 하지 못했다. 그 이유도 자신이 납득하고, 만족할 때까지 함부로 손을 떼지 않고,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한 그의 충실성이라는 평소의 습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0년에 유엔은 다빈치가 자신의 위대한 걸작인 ‘모나리자’를 완성하고 숨을 거둔 프랑스 끌로 뤼쎄 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레오나르도의 그러한 자세는 여타 학문에 대한 지적 욕구와 노력에서도 나타난다. 서른 살이 돼 예술과 과학과 학문이 발달한 밀라노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레오나르도는 그곳에서 스포르차 공작의 전속 화가임과 동시에 군사 기술자이자 건축가로 일한 17년 동안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했다. 식물학, 광학, 수력학, 천문학, 해부학 등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웬만한 전문 학자들보다 더 많이 독서를 했기 때문에 그가 소장한 책도 다른 분야의 학자들 보다 더 많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걸작과 함께 르네쌍스적 인간형을 살면서 광범위한 분야에서 놀랄 만큼 많은 메모를 남기면서 예술과 학문에 몰두했으면서도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고 한탄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었으며, 매순간 얼마나 충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지 짐작이 간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낸다는 것은 하루 24시간의 매분, 매시간을 방일하게 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하루들이 모여서 1년이 되고, 그런 1년들이 모여 일생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 받을 경이로운 일이다. 충실, 충일 같은 것은 무엇 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거짓이 없어야 가능해진다. 퇴계 이황이 말한 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해진다. 퇴계가 말한 이란 여럿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있을 때도 스스로 진실한 마음 자세다. 가히 愼獨의 경계라고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만큼 평생을 하루 같이 충실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시행착오가 빈번했던 젊은 날은 그렇다 치더라도 철이 들기 시작한 인생의 중반부부터는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 후반부의 삶이 그렇게 돼야만 오류가 많은 전반부의 삶이 상쇄된다. 그것이 이루어져야만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서 스스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꽤 이름 난 공증인 세르 피에르라는 부친의 사생아로 태어나 151952일 오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날, 문득 그의 천재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가늠이 되는 인생관이 엿보이는 글귀가 떠올라서 필을 들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중의 천재로 평가되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이지만 그의 천재성은 30%의 재능과 매순간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며 삶을 산 70%의 충실성이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 비율은 내가 자의적으로 추측한 수치임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나쳐선 안 될 문제가 있다. 즉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이란 그림뿐만 아니라 그림 이외 수많은 분야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 수준을 능가하는 지식과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가 남기고 간 각 분야의 수많은 결과물들이 이 점을 입증해준다.

 

하지만 그림 한 분야만 평가하면 다빈치의 화가로서의 천재성은 당시의 미술개념과 사조에 국한해서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20세기 초반 이래 기존의 전통적인 미술개념의 틀을 깨고 캔버스를 뛰어 넘어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는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단지 묘사력이 뛰어난 화가일 뿐, 화가로서의 그의 천재성은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2019. 5. 2. 08:25

臺北 寓居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