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로 보는 한자의 역사 ④ : 순수 우리말 같은 한자어
우리말에 한자는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까?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전체 한글단어 중 대략 60%에 해당되는 51만개가 한자어다. 이 가운데 얼핏 보면 순수 우리말이라고 착각이 되는 한자도 더러 있다. 또 한자어이지만 한자를 쓰면 오히려 어색한 한자어도 있다. 예컨대 괘씸(過甚)하다, 귤(橘), 동생(同生)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아래 사진 속 신문 표제어 중의 ‘돌연’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다. 돌연 외에도 도대체, 심지어, 어차피 등등 우리말에는 이런 부사어들이 적지 않다.
지난 5월초 대만행 비행기 안에서 딱히 할 일도 없다 싶어 심심풀이로 적어본 것을 아래에 옮긴다.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이니 이 중엔 단박에 한자어라는 걸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또 한자어가 아닌 것도 있을 수 있다. 아래 열거된 것들 중에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고 빠진 것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빠진 것을 알려주거나 의심쩍은 것이 있으면, 특히 한자어가 아닌 단어가 눈에 띄면 꼭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어원을 분명하게 다시 조사해볼테니 말이다. 그렇게 해주시면 3대가 내리 복 받을 거다.
가급적(可及的)
가련(可憐)하다
가령(假令)
가사(假使)
감자(甘蔗)
괘씸(過甚)하다
귤(橘)
급기야(及其也)
내지(乃至)
능금(檎)
당장(當場)
당(當)치도 않다
대관절(大關節)
도대체(都大體)
도무지(塗貌紙)
도저(到底)히
돌연(突然)
동생(同生)
두문불출(杜門不出)
매실(梅實)
무려(無慮)
무진장(無盡藏)
물론(勿論)
미련(未練)
미안(未安)하다
미음(米飮)
발랄(潑剌)하다
별안간(瞥眼間)
보라(甫羅)빛
보라색(甫羅色)
부득불(不得不)
부득이(不得已)
부지기수(不知其數)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
사과(沙果, 砂果)
사돈(査頓)
사발(沙鉢)
설령(設令)
설사(設使)
생각(生覺)
소박(素朴)하다
소식(消息)
소식통(消息通)
소신(所信)
소싯적(少時)
수건(手巾)
수다스럽다>數多스럽다
수지(收支)맞다
스님(僧님에서 스님으로)
식겁(食怯)했다
심지어(甚至於)
양말(洋襪)
앵두(櫻桃에서 앵도로)
어색(語塞)하다
어언(於焉)=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어언간(於焉間)=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어차피(於此彼)
언감생심(焉敢生心)
언필칭(言必稱)
여하간(如何間)
역시(亦是)
염치(廉恥)없다
옥수수(玉垂穗, 玉蜀黍)
원숭이(猿+숭이)
이판사판(理判事判)
잡동사니(雜同散異)
점점(漸漸)
점차(漸次)
조심(操心)하다
좌우간(左右間)
죽식간(粥食間)에
지경(止境), 그 지경이 되도록...
지독(至毒)하다
철저(徹底)하다
파렴치한(破廉恥漢)
피차간(彼此間)
하여간(何如間)
하여(何如)튼
하필(何必)
한가(閑暇)하다
한심(寒心)하다
항상(恒常)
호랑이=호랑(虎狼)+이(접미사)
혹시(或是)
혹여(或如)
혼겁(魂怯)했다
홀연(忽然)히
중국 한자어는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이 땅에 들어오면서 유무형의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지난 글에서 봤듯이 한자어가 들어오면서 순수 우리말을 잠식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곧 문화와 문명의 전이 형태, 요컨대 문물이 선진지역에서 후진지역으로 물 흐르듯이 전해진 경로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자어에 잠식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순수 우리말도 많다. 이에 해당되는 예를 다 제시할 순 없다. 그래서 대체로 우리고유어가 많은 동식물 명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번 주제는 끝맺겠다.
동물의 경우는 개, 소, 쥐, 고양이, 돼지, 범, 닭, 병아리, 말, 사슴, 곰, 잔나비(원숭이와 혼용), 노루, 코끼리, 살쾡이, 멧돼지, 얼룩말, 늑대, 여우, 고래, 뱀, 도마뱀, 고슴도치, 다람쥐 등등이 모두 우리말이다. 물론 犬, 狗, 牛, 鼠, 猫, 猪, 豚, 虎, 鷄, 雛, 馬, 鹿, 熊, 猿 등등 그에 상응하는 한자어가 들어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동물들은 한자어 보다 한글이 더 상용되는 현상을 보여 왔다.
반면에 한자어로 된 동물도 적지 않지만 한자어로 된 동물은 또 한글로 부르는 명칭이 없다. 즉 기린은 기린이고, 악어는 악어일 뿐 다른 순수 우리말 명칭이 없다. 한자어로 된 동물은 기린(麒麟), 악어(鰐魚), 하마(河馬), 사자(獅子), 상어(鯗魚), 양(羊), 염소(髥昭), 용(龍), 토끼(兔+귀), 호랑(虎狼)+이(접미사), 봉황(鳳凰), 수달(水獺) 등이 있고, 고릴라(gorilla), 침팬지(chimpanzee), 오랑우탕(orangutan)은 서양어에서 온 외래어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식물에서도 엇비슷하다. 식물과 과일 명칭 중엔 대나무, 소나무, 잣나무, 배, 감, 밤, 대추, 곶감, 자두, 복숭아, 잣, 딸기, 마늘, 고구마 등은 순수 우리말이다. 이 식물들도 竹, 松, 柏, 梨, 柿, 栗, 棗, 乾柿, 李, 挑, 莓(혹은 茥), 柏, 蒜(혹은 葫), 薯처럼 제각기 한자어 명칭이 들어와 있지만 이처럼 우리말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소나무는 松나무에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측백(側柏)나무, 향(香)나무, 박달(朴達)나무, 매화(梅花), 국화(菊花), 난초(蘭草), 차(茶) 등등 무수히 많은 식물 명칭은 대부분 일찍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특히 무화과(無花果), 포도(葡萄), 건포도(乾葡萄), 석류(石榴), 수박(水瓠), 수박(西瓜), 탱자(㯑子), 호도(胡桃), 보리수(菩提樹), 후추(胡椒) 등은 모두 중국이 서역, 중동, 인도 등지에서 이것들을 받아들여 각기 한자어로 이름 지은 명칭을 우리가 그대로 쓰는 것이고, 수박, 탱자 등은 우리 선조들이 한자음을 차자해서 조어한 것이다. 박달나무의 朴達 역시 우리가 만든 한자어로 보이고, 중국어로 박달나무를 나타내는 檀香木 보다 朴達木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또한 아열대 혹은 열대과일인 바나나, 파인애플, 파파야, 망고, 두리안, 리치(litchi) 등은 늦게 이 땅에 들어와서 그런지 중국어에는 이 과일을 지칭하는 한자어가 있음에도 서구어를 쓰고 있다. 香蕉, 鳳梨, 木瓜, 芒果, 榴蓮果, 荔枝(子)가 각기 바나바, 파인애플, 파파야, 두리안, 리치를 나타내는 중국 한자어다.
사실 荔枝(중국어 발음으로는 ‘리즈’)는 옛날 당나라 시대 양귀비가 즐겨 먹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아열대 과일인데, 한자어 명칭이 생소한 것을 보면 중국 남방의 광동성이 원산지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우리나라에 들어 왔음직 한데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키위(猴桃,奇異果,毛桃,陽桃,藤梨,獼猴梨)도 마찬가지다. 키위도 원래는 광동성이 원산지였는데, 서양인들이 광동에서 뉴질랜드로 들고 가 그곳에서 재배해 세계 각지로 보급했기 때문에 뉴질랜드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위의 한자어 명칭도 생소해 키위도 뒤늦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이 외국에서 받아들여 만든 한자어를 다시 우리가 받아들인 것은 ‘二重 외래어’라고 한다. 獅子, 葡萄, 石榴 등등의 한자어들이 이중외래어다.
2018. 7. 3. 07:23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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