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로 읽는 언어 이야기 3 : 한중 양국의 한자어語意 변천 비교
한국어와 일본어는 순수 자국말에 어원을 두고 있는 단어들도 있지만, 한자에 어원을 두고 있는 어휘도 대단히 많다. 마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구미 언어들이 라틴어,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과 같다. 중국은 당연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새로운 어휘는 주로 한자어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옛날부터 중국인들이 한국인과 일본인들을 두고 자신들과 문자와 종족의 뿌리가 같다는 뜻으로 흔히 “同文同種”이라고 불렀던 이유다.

실제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한일 두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고유한 한자를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이 뜻이 같거나 유사하다. 한국과 일본에서 공히 ‘國字’라고 불리는 한국어 한자어는 약 10여 字(乫 땅이름 갈, 垈 터 대, 畓 논 답, 乭 이름 돌, 乶 음역자 볼, 乷 음역자 살, 倻 가야 야, 巪 사람이름 꺽(임꺽정), 串 곶 곶, 娚 오라비 남, 媤 시집 시)와 일본어 국자 약 50여 字(辻 쯔지, 凪 나구, 나기, 峠 토우게, 躾 시쯔께, 働 하다라쿠, 辷 스베루, 裃 카미시모, 畠 하타, 하타께, 栃 토찌, 枠 와꾸, 匁 몬메, 籾 모미, 鰯 이와시, 鯰 나마즈, 鯣 스루메 등등)가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중국의 한자어가 한국이나 일본에 들어오면서 중국어적 특성이 사라지거나 의미가 축소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했다는 점, 그리고 한자어의 문법적 기능이나 성격이 달라지는 것들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쪽수가 상당 부분 할애돼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만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전체 최소 5만여 자―청대 때 만들어진『康熙字典』에는 4만 7,035자가 실려 있고, 지금까지 나온 바 있는 적지 않은 자전들 중에 가장 큰 것이라고 하는『漢語大字典』에는 5만 4,678자가 수록돼 있으며, 또한 역사상 단 한번이라도 등장했던 한자를 모두 포함한 숫자는 약 9만 자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음―가 넘는 중국의 한자에서 사용빈도가 높은 약 7,000자 가운데 전체의 90%가 하나의 음을 가지고 있으며, 字形과 발음이 일대일의 관계를 이루고 있고, 나머지 10%의 한자 약 700여 자만이 2개 이상의 발음과 2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특성을 알고 가자.
어느 나라 언어든 이 같은 예외적 현상이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을 어렵게 만든다. 한국어도 문법이나 어법에 예외가 대단히 많은 언어여서 외국인들이 배우는데 많이 어려워한다. 불어와 독어도 그렇지만 특히 러시아어는 성, 동사, 형용사 등의 어미변화에 예외가 유달리 많다. 나 역시 과거 약 30년 전 러시아어를 공부할 때 어미변화가 복잡한데다 예외가 하도 많아서 머리가 빠개지는 줄 알았다.
중국의 한자어가 한국이나 일본에 들어오면서 중국어적 특성이 사라지거나 의미가 축소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한 것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중국어에 있던 성조가 없어진 것을 꼽을 수 있다. 즉 중국어 한자어에는 성조가 있고 한국과 일본의 한자에는 성조가 없다. 중국어 성조는 6성으로 돼 있는 베트남어와 달리 1성에서 4성까지 네 가지 성조가 있다. 이 성조는 대단히 중요한 언어적 특성이다.
중국어에는 같은 글자의 단어라도 성조가 다르면 뜻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東西는 한국어에선 방위개념인 동쪽과 서쪽을 가리키는 뜻뿐이지만 중국어에선 東西의 각 글자를 몇 성으로 읽는가에 따라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즉 東西를 다 같이 1성으로 읽으면(즉 dōngxī) 동쪽과 서쪽의 의미가 되지만 dōngxi처럼 東을 1성, 西를 경성으로 발음하면 물건을 뜻한다. 更新도 gēngxīn으로 발음하면 ‘옛 것을 고치고 새롭게 하다’라는 뜻이 되지만, 4성과 1성인 gèngxīn으로 읽으면 부사가 돼 ‘더 새롭게’라는 뜻이 된다.
이런 예에 해당되는 어휘들이 적지 않지만, 구분을 하지 못하면 정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단어 중에 大意와 白面이라는 한자어가 있다. 大意는 dàyì로 읽으면 명사로서 ‘큰 뜻’, ‘개괄적인 뜻’이 되지만, dàyi로 발음하면 형용사로서 ‘소홀하다’, ‘실수하다’라는 뜻이 된다. 白面도 báimiàn으로 읽으면 밀가루가 되지만, 북경어의 한 특성 중 한 가지인 兒韻을 붙여 báimiànr로 발음하면 마약인 헤로인이라는 뜻이 된다.
이와 달리 한국과 일본의 한자어로는 東西, 更新, 大意은 한 가지 뜻 밖에 없다. 다만 白面은 한국에선 ‘흰 면’ 이외엔 뜻이 없지만, 참고로 일본어에선 面白은 おもしろい, 즉 ‘재미있다’라는 뜻이다. 유래는 일본의 각지 축제(마츠리)에서 사람들이 얼굴에 흰 색을 칠하고 나오는데, 그것이 재미있게 느껴져서 생겨난 것이다.
또 한자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혹은 오고 난 뒤엔 글자가 도치된 경우도 있다. 즉 界限이 限界로, 達到가 到達로, 搬運이 運搬으로, 設施가 施設로, 計時가 時計로, 減半이 半減으로, 安慰가 慰安으로, 紙片이 片紙로, 介紹가 紹介로, 叫絶이 絶叫로, 作秀가 秀作으로, 身亡이 亡身으로, 脫離가 離脫로, 黑暗이 暗黑으로, 迫切이 切迫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의미가 축소되거나 확대된 한자어로는 부지기수다. 또 뜻이 달라진 한자도 상당히 많다. 한 예로 東洋, 家族, 文章과 版圖, 胴體, 師弟之間이 대표적이다. 앞의 東洋, 家族, 文章은 의미가 축소된 경우이며, 版圖, 胴體, 師弟之間은 의미가 확대된 경우다. 鳥人, 昏迷, 敎書, 小子, 結局 등은 뜻이 달라진 예의 한자어다.
東洋은 한국에선 동양, 서양 중 동양을 가리키지만, 중국에선 범위가 줄어들어 일본만을 가리킨다.
家族도 옛날에는 한중 양국이 다 ‘많은 식솔’을 가리켰는데, 지금 한국에서는 대체로 ‘서너 명의 혈연적 식구’를 가리키게 돼 중국의 家族과는 의미가 달라졌다. 현재 중국에서는 한국의 가족을 지칭할 경우엔 家屬, 家眷이라고 한다. 文章은 원래 한중 양국에서 공히 한 편의 작문(composition), 한 편의 글을 나타냈으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의미가 축소돼 영어의 sentence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版圖는 원래 중국에서는 ‘어느 한 국가의 통치 아래에 있는 영토’라는 의미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의미가 확대돼 어떤 상황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胴體도 원래 한자의 의미대로 ‘사람의 머리, 손, 다리를 제외한 몸통’을 가리키다가 현재는 ‘여성의 몸통’만을 뜻함에 반해 한국에서는 ‘생물체의 몸통’뿐만 아니라 ‘비행기 동체’라는 말처럼 무생물의 몸통으로까지 확장됐다. 師弟之間 역시 과거 ‘한 스승 밑에서 배운 후배 제자’로 쓰이는데, 한국에서는 그 범위가 확대돼 일반적으로 ‘스승과 제자 관계’,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鳥人은 한자의 뜻대로 옮기면 ‘새사람’이다. 그런데 중국어에서 이 단어는 못된 놈, ‘새끼’와 같은 욕설로 쓰인다. 그에 비해 한국어에선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고 소설이나 문학에서 비유로 ‘비행사’를 뜻할 때 쓰인다.
중국어에서 비속어로 욕설로 쓰이는 것으로는 小子라는 단어도 있다. 원래 小子는 중국이나 한국에서 모두 자기를 낮춰 부르는 겸양어였다. 예를 들어서 부모님에게나 스승님에게 자기를 맞춰서 小子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요즘은 이런 겸양어로 小子라고 쓰는 사람들은 거의 다 없어졌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小子 대신 小生이라는 단어를 간혹 쓰는 이가 있긴 하지만. 그런데 오늘날 중국어에서 小子는 ‘새끼’와 같은 욕설로 사용되고 있다.
昏迷도 마찬가지다 한중 양국에서 원래는 마음이 흐리고 사리에 어두운 것을 뜻했지만 한중 양국에서 원래의 의미가 조금씩 퇴색되어 각기 다르게 사용된다. 한국어에서는 어떤 상황이나 상태가 명확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대통령 선거 투표 결과가 혼미한 상태다”라는 식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중국어에서도 마음이나 판단에 관련되는 상태를 묘사하는 의미는 사라지고 없고 마음보다 몸의 상태의 표현에 치중해서 '혼미하다', '의식 불명이다', '인사불성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敎書도 한중 양국어에서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다. 원래 중국어에서는 이 말은 사람에게 공부를 가르치다란 뜻이다. 이때 敎는 가르치다, 書는 공부라는 뜻인데 두 한자가 결합돼 동사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단지 정치와 외교 분야의 전문용어로서 연두교서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대통령이 의회나 국민에게 제시하는 정치 내용이 담긴 서면을 뜻하거나 혹은 국가 원수가 타국에 전해주는 서면을 가르키는 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結局은 원래 일의 끝장이나 일의 마지막 상황을 의미했다. 그래서 중국어에서는 지금도 명사로 결말, 종국, 결국, 결과의 의미와 동사로 결말짓다, 종결하다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한국어에서는 동사의 기능은 없고 명사로만 쓰이는데 대략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일이 마무리되는 마당이나 일의 결과가 그렇게 돌아감을 이르는 말. 둘째, 어떤 일이 벌어질 형편이나 국면을 완전히 갖춘 상황이고 셋째, 민속 얼굴, 묏자리, 집터 따위가 형국(形局)을 완전히 갖춘 것을 가리킨다.
자, 이제 중국 한자어의 전래 과정에서 생겨난 대략적인 특성을 파악했으니 지금부터는 구체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어떤 한자 어휘들이 의미가 다른지 알아보기로 하자. 한국, 중국, 일본의 세 나라 사람들은 각기 상대국을 여행하거나 그 나라사람을 만나면 말은 못해도 한자로 필담을 나누면 어느 정도는 소통이 된다. 의사가 전달되는 것을 보고선 신통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대가 이해하는 대로 이해될 뿐,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의사는 잘못 전달되기도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함정이 없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한중 한자어의 어의 차이를 보면, 양국 한자어 중엔 변화되거나 소멸돼 없는 한자도 있고, 의미가 변화된 한자도 많다. 그 중에는 중국에서는 소멸되고 없지만 한국에서는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도 있다.
원래 언어학(Linguistics, Philology)에서 모국어는 사회 변천에 따라 뜻도 부단히 변해가지만, 그 언어를 받아들여 외래어로 사용되고 있는 지역이나 나라에서는 원래 어휘의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 한자어도 사회변천에 따라 뜻이 변화해 의미가 사라지고 소멸돼 옛날 의미는 각종 典籍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많다.
하지만 한국에 전해진 한자어는 전래된 당시의 원뜻이 크게 변하지 않아 중국 고대의 한자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현대 중국어의 한자어와는 의미가 크게 달라진 것이 적지 않다. 그래서 한중 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어 중 의미가 변한 한자를 특별히 공부하지 않으면 필담에서나 일상 회화에서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해가 될 수 있는 한자어를 모두 다 소개하기는 어렵고 해서 대표적인 한자어들을 골라봤다. 아래 내용은 모두 30년 전 필자가 처음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메모해둔 노트에서 옮겨온 것들이다.
覺悟는 한중 간에 의미 차이가 큰 한자다. 한국어에선 ‘각오’와 같이 결심, 마음의 준비 등의 뜻으로 쓰이지만 중국어에선 ‘알아차리다’, ‘깨우치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感激은 한국어에선 중국 고대의 뜻대로 ‘깊이 느껴 마음에서 격하게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대 중국어에선 이 의미가 사라지고 ‘감사하다’라는 뜻으로 변하였다. 현대 중국어에서 감격에 해당되는 한자는 激動, 激憤, 感動 등으로 대체돼 사용되고 있다.
講究는 한국어에서는 ‘강구하다’, ‘대책을 세우거나 마련하다’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중국어에선 ‘중시하다’, ‘특별히 신경을 쓰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講堂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강의나 의식 따위를 행하는 큰 방이나 실내 공간을 가리킨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 의미는 사라지고 없다. 강당에 해당하는 것은 禮堂이 쓰이고 있다.
講義는 원래 중국어에서 학설이나 책 내용의 의미를 풀어서 가르치다는 의미였다. 옛날 중국에서 사용되던 이 뜻은 그대로 오늘날 한국어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오늘 날 중국어에서 강의는 학생에게 ‘학습의 편의를 위해 만든 자료’의 뜻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한국어에서 ‘강의하다’라는 의미로는 중국에선 講課가 쓰이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같이 술을 마실 때 주의할 단어가 있다. 乾杯가 그것이다. 건배라는 한자어는 일본에서도 그대로 쓴다. 단지 발음만 다를 뿐이다. 한국어로는 '건배'라고 읽지만 중국어로는 '깐뻬이', 일본어는 '깐빠이'(かんぱい)라고 발음한다. 일본에서는 乾杯와 함께 乾盃로도 쓴다.
그런데 중국인은 한자의 본래 의미대로 잔을 마르게 하다, 즉 잔을 다 비우다라는 뜻으로 술잔 안의 술을 다 마시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한국인에겐 원래의 한자어는 그다지 인식되지 않고 단지 축하할 일, 좋은 일에 대해 서로 기쁨을 나누는 일, 또는 건강이나 행복을 축원하는 의미로 외치는 구호 성격이 강하다. 여기에는 술잔을 반드시 다 비워야 한다는 의미는 없다. 그러나 중국인과 술을 마실 때 “깐뻬이!”(혹은 줄여서 마르게 한다는 뜻의 “깐!”만 말하기도 함)라고 외치면 반드시 술을 다 마셔야 된다. 술을 다 마시지 않고 주량대로 조금씩 마시겠다고 하면 “수이”(隨意)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지 않고 “깐뻬이!”라고 해놓고 술잔의 술을 다 마시지 않으면 중국인들과 의기투합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완전히 뜻이 다른 한자어로는 敎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중국에서는 ‘사람에게 공부를 가르치다’라는 뜻으로 품사가 동사(敎)+목적어(書) 구문으로 돼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문법적 성격은 사라지고 단지 명사로서 ‘대통령이 국회에서나 국민에게 발하는 정치 문서’로 쓰이거나 외국과 주고받는 외교문서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교역이나 무역, 주고받거나 사고파는 등의 거래를 뜻하는 한자어 去來는 중국에선 ‘가고 오다’는 뜻이다. 한국어의 거래에 해당하는 것은 交易이라고 해야 바르게 전달된다.
難航은 한국에선 배가 어렵게 항해하는 것을 일반 생활상에까지 확대 사용해 “난항을 겪고 있다”라는 식으로 사건이나 상황이 잘 진전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중국어에선 난항은 말 그대로 난항일 뿐이다. 한국어 난항의 확장된 의미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困難, 艱難, 不順理, 擱淺, 難行 등이 쓰인다.
交代는 원래 중국어에서는 ‘새로 바꾸다’라는 뜻이었다. 어떤 일을 여럿이 나누어서 차례로 맡아 보는 것을 나타내거나 또는 그 차례에 따라 일을 맡은 사람을 가리켰다. 현재 한국어와 일본어에선 그 뜻이 남아 그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중국어에선 뜻이 많이 바뀌어 ‘당부하다’, ‘책임을 지다’라는 의미이다. 고대 한자어의 ‘바꾸다’라는 뜻은 오늘날 중국에서는 輸流, 交替 등으로 대체되었다.
老婆는 고대 중국 한자에선 원래 늙은 여자의 뜻인데 오늘날 한국어의 노파와 뜻이 똑같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선 뜻이 변해 노파라고 하면 마누라, 아내를 가리킨다.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사실을 모르고 중국인이나 대만인들과 대화를 하거나 필담을 나눌 경우 오해가 일어나기 십상이다. 예컨대 현실에서 그럴 경우는 드물지만 가령 모친을 모시고 중국을 효도관광에 나선 젊은 한국인이 처음 보는 중국인에게 자신의 모친을 ‘나의 모친’이라고 하지 않고 ‘나의 노파’라고 말하면 그들은 공히 그의 나이든 부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뜻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 것도 있는데, 放心이 그것이다. 한국에서는 ‘방심’ 혹은 ‘방심하다’라고 하면 ‘부주의하다’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안심하다’는 의미다. 중국어에서는 安心도 같은 뜻이다. 만일 중국인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주의를 촉구하는 의도에서 “請不要放心”을 써서 보여주면, 중국 사람들에게는 ‘안심하지 마세요’라는 뜻으로 전달된다.
勉强은 한국어에선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다. 일본어에선 공부를 뜻한다. 중국어에선 ‘억지로, 무리하게 뭘 하게 하다’는 의미다. 한국어에서 공부를 뜻하는 한자로는 工夫라고 쓴다. 工夫는 중국어에선 어떤 것을 위해 그것에 투자한 시간, 틈, 여가나 혹은 그 분야에서의 조예, 재주, 솜씨 등을 가리킨다. 일본어에서 工夫는 ‘궁리하다’, ‘고안하다’는 의미다.
名筆은 어떨까? 한국에서는 ‘썩 잘 쓰는 글씨’를 뜻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 뜻은 소멸되고 없고, 값이 비싼 좋은 만년필 또는 볼펜 등을 가르친다.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썩 잘 쓰는 글씨’라는 뜻을 말하고자 할 때는 중국에선 ‘名筆法’이라고 해야 알아 듣는다.
放心이라는 한자어도 원래는 고대 중국에선 안도감 같은 의미로 쓰이다가 지금은 한국어에선 그 의미가 마음을 놓다, 주의하지 못하다, 방심하다 등으로 쓰이고 있다. 중국어에서도 마음을 놓다, 안심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방심하다는 의미의 마음을 놓다는 긴장하지 못하고 부주의한 뜻을 지닌 것이지만 중국어에선 안심해도 된다는 의미에서의 마음을 놓다라는 뜻이다. 이 말도 한중간의 대화에서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할 말 중의 한 가지일 수가 있다. 예컨대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안심하세요”라는 뜻으로 “請放心”이라고 하면 한국인은 “마음을 놓으세요”라는 식으로 의미가 통할 수도 있지만 “주의하지 마세요”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幇助는 중국어에서는 명사와 동사로는 각기 ‘도움’, ‘돕다’, 타동사로 ‘助長’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한국어에서는 도움, 돕다라는 뜻은 없어지고 ‘방조’, ‘방관’의 의미로만 쓰이고 있다. 한국어의 쓰임새에서 예외가 있다면 북한에서 중국어와 같이 ‘도움’, ‘돕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경우다.
放學은 한국어에서는 학기가 끝나고 시작되는 의미로 쓰인다. ‘방학하다’가 그런 것이지만, 중국어에서는 매일 다니는 ‘학교가 파하다’라는 의미다. 물론,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시작됐다는 의미로 쓰일 때는 동사로서 放을 휴가라는 뜻의 단어(暑假) 앞에 붙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放暑假라는 말이 그것이다.
不請客은 중국에서 조심해서 써야 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서는 명사로 ‘주인이 청하지 않는데, 혹은 원하지 않는데 찾아온 손님’을 뜻하지만 중국에서는 동사로 ‘손님을 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마도 한국어 불청객 의 의미는 중국어에서 손님을 청하지 않는다 라는 것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다.
深刻은 중국어를 배우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무심코 한국식으로 이해하거나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다. 한국어에서는 어떤 상태나 경우와 정도가 심각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중국어에선 ‘깊다’, ‘준엄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한국인이 만약 상태가 ‘심각하다’, ‘심각하게 고심하다’라는 의사를 나타낼 경우에 해당되는 의미로는 중국어에선 심하다, ‘정도가 지나치다’라는 뜻의 嚴重을 써야 통한다. 한국어와는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르다. 한국의 어떤 중국어 번역책에는 “깊이 있게 받아들였다”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라고 번역해놓은 경우도 있다.
生鮮은 한국어에선 물고기를 가리키는 명사지만, 중국어에선 ‘싱싱하다’, ‘신선하다’는 형용사로 사용된다. 중국어에서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로는 이름 그대로 魚가 있다. 또 해산물을 가리키는 말로는 海鮮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중국에서 해산물은 海産으로도 불리는 경우가 있다.
先生은 원래 중국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 저명인사의 의미로 쓰였다가 점차 남성을 가리키는 의미가 첨가됐다. 1930~40년대에는 이런 용법이 중국에서 보편화 되었고 대만에서도 1970년대까지도 이런 어법이 사용됐다. 그런데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난 후에는 선생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라지고 없고 동지라는 말이 선생을 지칭하는 것을 대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에다 대만에선 지금은 남편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의미가 확장돼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교사를 뜻하거나 대체로 남성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어의 교사, 스승의 의미로는 중국어에선 老師, 師傅, 師父가 쓰인다. 이것은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다.
選擧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투표로 사람을 뽑는 행위를 말하고 현재 중국과 대만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옛날에는 관리 등용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이었다. 科擧시험에는 여러 과목이 있었으므로 과목에 의한 선거를 약칭하여 과거라고 불렸다. 참고로 科擧라는 말은 과거 제도가 시행된 唐代에 처음 만들어졌다.
成形外科에 해당되는 말은 중국에선 整形外科라고 한다는 것은 팁이다. 어의의 정합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형태를 만든다의 뜻을 나타내는 성형보다는 형태를 가지런히 하거나 조정, 정리함을 뜻하는 정형이 더 본의에 가깝다.
酬酌
한국어엔ㅌ세 가지 뜻이 있다. 술잔을 서로 주고받음. 서로 말을 주고받음. 또는 그 말. 수작을 떨다. 남의 말이나 행동, 계획을 낮잡아 이르는 말. 엉뚱한 수작.
新聞은 한국에선 종이신문을 가리키지만, 중국에선 ‘뉴스’를 말하고, 신문은 報紙라고 한다. 한자의 뜻을 보면 新聞은 새로 듣는다는 뜻이고 報紙는 알리는 종이이기 때문에 한국의 한자어 보다 중국어 한자가 뜻이 더 정확한 것이다.
失職은 한국에선 말 그대로 ‘직장을 잃다’라는 의미지만, 중국에선 ‘직무상의 과실’이나 ‘일을 잘하지 못하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잘못 쓰면 낭패를 볼 수 있어서 사용에 주의해야 할 한자어다.
顔色은 원래 고대 중국에서 ‘얼굴빛’을 의미했다. 이 한자를 받아들인 한국어의 안색은 이 한자를 쓴다. 그런데 현대 중국어에서는 색깔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고, 자주 쓰는 용법은 아니지만 ‘혼내주다’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현재 중국어에서 안색은 ‘臉色’이 쓰이고 있다.
按酒는 원래 고대 중국에서 ‘술을 마실 때 곁들여 먹는 음식’을 뜻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按酒는 案酒라는 단어와 함께 안주의 의미로 쓰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는 안주의 의미로는 이 한자를 쓰지 않고 있고, ‘下酒菜’, ‘酒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 한국어에서는 고대 중국어와 현대 조기 백화문에서 쓰이던 안주라는 그 뜻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안주’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덧붙여 중국에서 이 ‘下酒菜’는 부속물, 중요하지 않은 일, 잡사, 긴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愛人은 자형만 조금 다를 뿐 한중일 세 나라에서 다 쓰이고 있는 한자다. 한국과 일본에선 愛를 그대로 쓰고 중국만 간자체로 爱를 있고 있다. 다만 뜻은 한국, 일본, 중국이 각기 조금씩 달라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썼다가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거나 자신의 이미지가 악화될 수 있는 한자다. 예컨대 이렇다. 한국에선 바람 피우는 상대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남녀 간에 서로 이성적으로 사귀는 미혼의 연인을 지칭하지만 중국에서는 부부가 서로 배우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일본에선 배우자 이외에 바람을 피우는 상대, 즉 내연관계를 가리킨다. 일본에 한때 유행했던 “愛人バンク”가 이를 상징한다. バンク는 영어 bank의 일본어 발음인데 애인을 빌려주는 업체를 말한다.
그런데 만약 중국인이 일본에 가서 자기 아내를 가리키면서 “나의 愛人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소개를 받는 일본인들은 겉으로는 웃을지 몰라도 속으론 도덕적으로 좋지 않은 사람ㅇ로 오인하고 말 것이다. 소개할 때 정말 주의를 해야 할 단어다.
約束은 한국어나 일본어에선 공히 영어의 promise, 그야말로 약속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어에선 단속, 구속, 제한의 의미를 지닌 명사와 동사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도 중국인에게는 자칫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자어다. 예컨대 어떤 일에 대해 “약속할 수 있나”라고 물으면 중국인은 그 일에 대해 ‘단속하거나 구속할 수 있냐’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熱門은 한국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고 있는 한자어다. 굳이 쓴다면 ‘권세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집’이라는 뜻 한 가지 정도로 단촐하게 쓰는 경우가 있지만 중국어에서는 ‘인기 있는 것’, ‘유행하는 것’, ‘잘 팔리는 것’, ‘유력한 것’, ‘(시험 따위에서) 경쟁률이 높은 것’ 등 뜻이 많이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熱門股’라고 하면 ‘인기 있는 주식’, ‘거래량이 많은 주식’을 말하고, ‘熱門貨’라고 하면 ‘잘 팔리는 물건’, ‘인기 상품’을 가리킨다. 중국어에서 熱門의 반대어는 冷門(儿)인데, 마찬가지로 熱貨에 반대되는 것은 冷貨이다.
이와 관련해서 ‘인기’라는 말에 관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중국어에선 人氣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사람의 기를 뜻하고 일본어나 한글의 '인기'라는 뜻은 없다. 人氣는 원래 일본인들이 만든 조어인데, 대략 1990년대 말부터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대만에서는 이 인기라는 한자를 받아들여서 일본어의 원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중국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料理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조리를 거쳐 만든 음식을 1차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고, 어떤 것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을 속되게 표현하는 뜻을 2차적인 의미체로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어에는 ‘처리하다’, ‘정리하다’, ‘돌보다’ 등의 의미가 일차적인 의미이고, 요리하다나 요리 등 음식의 의미는 2차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要料理孩子们的生活’는 ‘아이들의 생활을 요리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직역하면 생활을 요리한다가 된다. 생활을 요리한다고? 아니다. 이 경우 바른 뜻은 “아이들의 생활을 돌보다”라는 의미다.
運轉은 한국어와 일본어가 동일하게 기계나 자동차를 ‘움직여 부리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주로 자동차를 부리는 운전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어에선 기계가 ‘돌아가다’, ‘회전하다’, ‘운행하다’, ‘운용하다’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運轉中이라고 하면 사람이 기계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중이 아니라 기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의 운행중, 가동중이라는 뜻이다.
怨望도 한중 양국어에서 의미 차이가 나는 한자어다. 한국어에서는 ‘못마땅하게 여겨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하다’는 뜻이지만 중국어에서는 그런 의미는 사라지고 없다. 오늘날 중국어에서 한국의 원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埋怨, 抱怨다.
作者는 현재 한중 양국에서 공히 저작자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의미가 조금 변해서 저작자 외에도 남을 업신여겨 지칭하는 말로서 “이 작자가...”라는 식으로 좋지 않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點心은 원래 불교의 선에서 나온 말이다. 나중에 한국어에선 문자 그대로 점심식사를 뜻하게 됐지만, 중국어에선 점심 후 저녁 사이에 먹는 참, 즉 간식을 가리킨다.
止境은 중국어에선 명사로서 ‘그치는 곳’, ‘한도’, ‘끝’을 의미함에 반해 한국어에선 “그 지경이 되도록”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부정적인 상태나 상황을 가리킨다. 우리말 한자어 지경에 해당되는 말로는 중국어에선 地步가 사용되고 있다.
質問도 조심에서 사용해야 하는 단어다. 우리는 몰라서 묻는 것을 말하지만 중국에선 문책의 의미가 있다. 원래 과거에는 중국에서도 질의하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의미가 축소돼 결국 없어지고 만 셈이다.
한국어에서 친구는 한자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한자로는 親舊로 쓰지만 중국에선 이 한자는 뜻이 소멸되고 없어져서 지금은 쓰이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친구에 해당되는 말은 親友, 朋友, 老友가 쓰이고 있다. 일본어에선 친구를 友達, 友人이라고 부른다.
便宜는 한국어에서 대체로 ‘편리하고 마땅함’이나 ‘편의’를 제공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중국어에서는 그런 뜻은 사라지고 없고, ‘값이 싸다’, ‘이익을 득하다’는 뜻으로 변해 있다. 중국어에서 한국어의 편리에 해당되는 말로는 方便, 便利가 쓰이고 있다. 그리고 중국어에서 便宜는 싸다는 뜻 외에도 ‘달콤하다’, ‘공짜’, ‘좋게 해 주다’라는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예컨대 ‘便宜話’는 ‘달콤한 말’이라는 뜻이고, ‘공짜’나 ‘이익’이라는 뜻으로 사용할 때 ‘好占便宜’라고 하면 ‘공짜를 좋아하다’라는 뜻이다.
마지막 예는 行實이라는 한자어이다. 옛날 중국어에서는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 행위”라는 뜻이었고 한국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서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어에선 그 의미가 사라지고 없고 그대신 行狀, 品性이 그 말을 대체하고 있다. 한국어에선 지금도 행실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본 졸고를 접해서 내용을 숙지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중국인과 필담을 나누든, 대화를 나누든 오해의 폭이 줄어들고 유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내가 봐주는 이도 별로 없고 재미도 없는 이런 글을 쓰는 보람이라도 약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2018. 7. 3. 05:25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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