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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로 보는 한자의 역사 ② : 한자는 언제, 어디서 한국에 전래됐을까?

雲靜, 仰天 2018. 8. 12. 08:21

심심풀이로 보는 한자의 역사 ② : 한자는 언제, 어디서 한국에 전래됐을까?

 

지난 번 졸고에서는 중국의 한자가 외국어의 영향을 받은 사실을 정리해봤다. 그러면 한자는 한국어의 영향은 받았을까?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이다.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고, 영향을 받기는 받았다. 중국 한자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비하면 개미 눈곱 정도다.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한자는 어디서 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 우리가 만든 한자,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 세 종류가 있다.

 
한국어가 중국한자어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게 있다면 그것은 한국인들이 만든 한자어가 중국으로 역수출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자가 이 땅에 들어와서 한참이 지난 먼 훗날의 일이었고, 그것도 몇 자 되지 않는 극소수였다. 이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한국에는 언제 한자가 들어왔는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겠다.

 

한자의 한국 땅 전래에 대해 학술적으로 치밀하게 고증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한자가 적힌 秥蟬縣 神祠碑가 한사군 시대에 세워진 걸 보면 대략 한사군의 설치 이후에 漢나라 문화와 함께 한자와 한문이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漢代라면 기원후인 A.D. 1세기쯤이다. 또 사서에 기록된 바로는 A.D. 4세기 경 소수림왕 2년인 372년 고구려에 太學이 설립된 사실로 보아 한자가 그 전에 이미 고구려에 전래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 때까지 문자가 없었던 고구려인들은 통상 한자어로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조정의 관료, 학자 등의 지식인들은 한자뿐만 아니라 한문까지 비교적 자유롭게 구사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백제에서도 일찍부터 한학이 발달하여 백제 제13대 왕 근초고왕과 제14대왕 근구수왕 때에 阿直岐와 王仁 박사 등이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 등 한학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근초고왕 이전에 이미 한자가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근초고왕이 사망한 해가 375년이었으니 그 이전이었다는 소리다.

 

신라는 불교가 그랬던 것처럼 고구려 백제 보다 한참 늦게 한자가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지증왕 4년 때인 503년 국호와 왕호를 새로 쓰고 중국식 군현제를 채택했으며, 법흥왕 23년 때인 536년엔 한자로 연호(建元)와 시호를 사용했고, 한문으로 율령을 공표한 사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신라에서 한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경덕왕 16년인 759년 전국에 9州를 두고 州郡縣의 명칭을 중국식 한자로 고친 것, 그리고 2년 뒤인 761년에 문무 관직명을 중국식 한자어로 고친 점을 보면 통일신라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고대사회에 한자어 단어들이 조정이나 외교문서 등의 공적 영역이 아니라 민간에까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때부터였다. 신라 원성왕 4년(788년)에 세워진 太學에서 과거제와 유사한 독서삼품과를 두고 인재 등용과 함께 당나라에 유학생을 보냈다. 게다가 독서삼품과의 공동과목으로 論語와 孝經이 나타났고, 이어서 禮記, 左傳, 尙書, 周易, 毛詩, 文選도 채택됐는데, 이 전적들 가운데 나오는 한자어 단어가 일상생활에서 쓰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예컨대 孝經에 나오는 閒居, 侍坐, 先王, 孝子, 春秋 그리고 文選에 나오는 朝夕, 娛樂, 風俗, 結構, 太陽, 또 左傳에 나오는 卽位, 正直, 王室, 文物, 婦人 등은 이미 일반 민간인들도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노래말과 같은 신라 향가에도 君, 臣, 民, 彌勒, 善化公主, 千手觀音 같은 한자어들이 사용된 사실도 이를 뒷받침 하는 또 하나의 유력한 증거다.

 

고려조에 들어와서는 중국문화의 모방과 답습이 유행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건너온 불교가 융성한데다 한문학과 성리학이 발달함에 따라 한자와 한문은 그 이전 시대 보다 더 널리 사용됐다. 고려 귀족들이 한문만으로 문자생활을 해서 신라의 향찰마저 차차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일반 백성들도 귀족들의 한자어 사용을 모방했다. 이런 상황은 15세기 세종대왕 대에 와서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까지 줄곧 계속됐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는 한자만이 유일한 표기 수단이었으므로 고유한 우리말도 한자를 빌리거나(借字) 의역해서 표기했다. 이 뿐만 아니라 추상적 내용을 나타내는 개념은 대부분 한자로 표현하였다. 심지어 한자를 이용하여 순우리말 단어인 사돈, 임금, 각씨, 등을 제각기 査頓(고대엔 査는 지금 중국어에서 ‘차’로 발음되는 것과 달리 음가는 ‘사’로 발음했거나 ‘사’에 가깝게 읽혔을 것임) 人君(人은 오늘날의 중국어 발음인 ‘런’이 아니라 ‘인’이었거나 ‘인’에 가까웠을 것임), 閣氏(閣은 오늘날의 중국어 발음인 ‘꺼’와 달리 ‘각’이었거나 ‘각’에 가까웠을 것임)로 조어한 한자어도 쓰이게 되었다.
 
 

우리말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말이다. 훈민정음의 구성, 창제의도, 해례 등의 사용법 등을 한문으로 설명한 부분이다.

 
또한 ‘짱꼴라’들이 불교 경전에 나오는 용어들을 의역하거나 음역한 한자어들도 상당량 그대로 수입돼 사용됐다. 예를 들면 釋迦, 涅槃, 僧, 和尙, 袈裟, 茉莉, 地獄, 菩薩, 阿彌陀佛, 淨土, 閻魔 등등이다. 이에 관해선 별도의 주제로 소개할 예정이다.

 

유교를 건국 명분 및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조는 주자학을 숭상하면서 고려의 과거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여 실시하였다. 그래서 한문학이 일반 백성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도 양반들은 여전히 한자를 많이 사용했다. 그들은 한글을 언문이라고 무시했고, 한자사용은 그들에게 신분을 드러내는 문자인 이상 한자를 독점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고집해왔던 것이다. 이 현상은 19세기말 서양문물이 들어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뫼, 온, 즈문, 가람, 가온, 갈바람=하늬바람 등과 같은 많은 고유어가 각기 한자어 山, 百, 千, 江, 中心, 西風으로 대체됐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더 많은 예들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주검⇒屍體, 가시버시⇒夫婦, 가싀엄⇒丈母, 곡두⇒蜃氣樓, 幻影, 꼬리별⇒慧星, 꼭지⇒處女, 길섶⇒路邊, 난바다⇒遠洋, 남편⇒新郞, 논다니⇒娼女, 누리⇒世上, 늘픔⇒發展可能性, 다님길⇒人道, 다림방⇒精肉店, 닷곱장님⇒弱視, 달뜨기⇒月出, 덧거리⇒誇張, 도지⇒颱風, 드팀전⇒布木店, 드림셈⇒割賦, 마루⇒天, 머리새⇒頭巾, 모두모임⇒總會, 미르⇒龍, 미리내⇒銀河水, 발룩꾼⇒浮浪者, 발쇠⇒密告, 버텅⇒階段, 별동별⇒流星, 보미⇒米飮, 불거웃⇒陰毛, 비각⇒矛盾, 살매⇒運命, 샛별⇒金星, 샛바람⇒東風, 소금바람⇒海風, 손말명⇒處女鬼神, 아시⇒鳳凰, 아주먹이⇒精米, 얼이다⇒結婚시키다, 옥셈⇒自充手, 자맥질⇒潛水, 저자⇒市場, 젖누님⇒乳母, 졸졸붓⇒萬年筆, 하늬바람⇒西風 등등이다.

 

더군다나 이 시기에는 일상생활에서의 말에서도 중국에 대한 양반들의 사대주의가 작동돼 한자어가 순수 우리말보다 더 격조 있는 높임말로 인식됐다. 예를 들면, 노들<老人, 이<齒牙, 집<宅, 해<태양, 이름<尊銜, 어이딸<母女, 우등불<火爐, 나이<年歲, 春秋처럼 모두 한글 보다 한자가 더 격조 있거나 높임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같은 한자어 중에서도 年歲<春秋, 病<病患, 食口<家族, 生日<生辰, 丈人丈母<聘父聘母, 同生<季氏처럼 尊卑의 등급이 형성됐다. 언어학에서 흔히 언어는 단순히 언어로 끝나는 게 아니라 권력문제라고 하는 주장이 옳음을 입증하는 셈이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는 부사의 일부가 한자어로 표기된 경우도 생겨난 점이다. 예컨대 都大體, 及其也, 於此彼, 於焉間, 瞥眼間, 左右間 등등 적지 않다.

 

19세기 중엽 이후 西勢東漸의 시대에 들어와 서양 문물이 중국을 거치거나 서양인의 손으로 직접 혹은 일본을 거쳐 지속적으로 조선에 들어오자 과학, 화학, 지리, 천문학, 천주교 등에 관한 지식도 따라 들어왔다. 당시 근대 문물을 나타내는 한자어는 이때 중국으로부터 중국인이 번역한 한자어가 먼저 들어온 것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自鳴鐘, 望遠鏡, 視遠鏡, 千里鏡, 幾何, 地理, 天主, 天文, 領洗 등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이 시기 이후부터 조선에서 쓰였던 서양의 국가명은 越南, 印度, 泰國, 比律賓(필리핀), 和蘭(네덜란드), 英國, 歐羅巴, 葡萄牙(포르투갈), 西班牙(스페인), 法國(프랑스), 德國(독일), 意大里亞, 土耳其(터키), 阿拉伯(아랍), 俄羅斯(러시아), 阿美利加(美國) 등 거의 다가 중국인들이 서양문화를 접하면서 만든 조어인데, 중국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세기 말 구한말 시기엔 이번에는 일본으로부터 일본인들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조어한 일본 한자어들이 대량으로 들어왔다. 그 중엔 중국에서 만든 국명 외에 印尼, 濠洲, 南阿共, 阿洲, 獨逸처럼 일본인이 만든 국명도 많이 포함돼 있었다.
 
나중에 1910년대 일제 식민지 시대로 들어오면 電車, 電氣, 街路燈, 鐵道, 新作路, 銀行 등등과 같이 주로 서양에서 들어온 기기나 구상적인 물건을 가리키던 한자어들이 주를 이뤘던 그 이전 시대와 달리 政府, 形而上學, 形而下學, 常識, 方針, 政策, 科學, 生物, 化學, 哲學, 技術, 月給, 會社, 出勤, 取締, 人氣, 放送, 納稅, 經濟처럼 제도와 가치, 무형의 추상적 의미를 나타내는 한자어들이 많이 수입됐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일본 한자어를 널리 사용하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개념화했다.

 

이러한 현상은 1945년 일제 패망 후 한국이 광복을 얻은 뒤에도 지속됐다. 한국사회에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쓰던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했으며, 새로운 한자어들이 우리 사회에 계속 유입해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자가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약 2,0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유입돼 옴에 따라 한국인은 자신도 모르게 한자어로 사물을 인식하거나 개념을 사유해왔다. 따라서 한자는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인식 및 개념체계를 지배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어를 성격으로 분류하면 인문학적 계통의 한자, 白話體 계통의 한자, 일본식 한자어 세 가지가 된다. 인문학적 계통의 한자는 주로 고대 시기 詩經, 史記, 論語, 孟子, 大學, 中庸, 周易, 周禮, 儀禮, 左傳, 孝經, 公羊 등 중국의 고전이나 경전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한자 전래 초기에는 대부분 山, 川, 江, 野, 道, 路, 街, 兄, 罪, 宇 등등 주로 1음절 한자가 많이 들어왔고 뒤이어 2음절 및 2음절 이상의 한자어가 들어왔다. 중국 고전에서 나온 2음절 한자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和睦, 上下, 身體, 父母, 百姓, 富貴, 妻子, 非法, 和平, 災害, 中心, 鬼神, 慈愛, 風俗, 學校, 時節, 植物, 動物, 經營, 生命, 瀑布, 衣裳, 曖昧, 世俗, 平生, 變化, 方今, 猛獸, 悲哀, 變遷, 構造, 文物, 國家, 衣服, 歌舞, 敎訓, 負擔, 聰明 등등이다.
 
白話體 계통의 한자는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를 말한다. 그것은 당나라 시기 종래의 중국 고전문학의 문체를 변형시킨 데서 시작돼 宋, 元, 明, 淸代에 계승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계통의 한자어는 중세 국어와 개화기를 전후해서 한국어에 유입됐다. 예컨대 合當, 多少, 點檢, 報道, 從前, 打破, 容易, 許多, 自在, 自由, 渾身 등등이고, 조금 뒤에 나온 것들로는 聯合國, 金剛石, 理想國, 結局, 締結, 對照, 名單, 候補, 法規, 美國, 施工, 價格, 各國, 減免, 空日 등등이 있다.
 
일본식 한자어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양 문물과 제도와 사상 관련 단어를 한자로 음역하거나 의역한 어휘들이 개화기를 거쳐 들어온 것들이다. 일본인이 만든 한자어에 관해서는 별도의 주제로 다시 소상하게 소개할 생각이다. 여기선 간단히 몇몇 예만 들면 新敎, 新曆, 時計, 通辯, 通譯, 鐵丸(彈丸), 留聲器(電蓄器), 畜音機, 遠語機(電話), 遠照鏡(望遠鏡) 같은 한자들이 모두 일본인들이 근대에 서양문물을 수입하면서 번역한 한자어 단어들이다.

 

이쯤에서 이 주제를 매듭짓자. 한자어가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으로부터 최초로 한국 땅에 들어온 이래 한자는 거의 2,000년 가까이 중국이 유일한 수입 창구였다. 그러나 근대의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부터는 일본어 한자가 대량으로 들어와 중국 한자어를 대체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다음 글에서 소개할 것이지만, 일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도 사회 변천에 따른 필요에 따라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한자의 변을 가지고 중국 한자어에 없는 새로운 한자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수는 미미했다. 가령 畓, 乫, 乭 등 약 10여 자가 전부였고, 한자어로 만든 단어도 弄談, 田畓, 布木, 邊利, 乫草, 帖紙, 來日, 四柱, 八字, 進士, 生員, 兩班, 書房, 道令, 男便, 內外, 妻男, 男妹, 感氣, 團束, 未練, 三寸, 四寸, 相從, 膳物, 辱說, 換腸, 苦生, 腫氣, 滿發, 兵丁, 印朱, 食前, 日氣, 所聞, 片紙, 脫盡, 外上, 沙汰, 查頓, 還甲(花甲), 形便, 休紙 등등 약 300개 내외의 소수였다. 이 가운데는 거꾸로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으로 들어간 한자도 있다.  

2018. 8. 10. 12: 53
구파발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