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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로 보는 한자의 역사 ① : 한자는 어떻게 형성됐는가?

雲靜, 仰天 2018. 8. 9. 19:57

심심풀이로 보는 한자의 역사 ① : 한자는 어떻게 형성됐는가?

   

앞으로 여러 번의 연재형식이 될 이 ‘잡문’에서 한자 역사의 정리는 언어이론 측면에서는 共時言語學(synchronic linguistics)과 通時言語學(diachronic linguistics)의 종합에 토대를 두고 있다. 共時言語學과 通時言語學은 구조언어학을 세계 최초로 형성시킨 ‘프랑스 스위스 학파’의 비조인 페르디낭드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가 개념화한 이론이다.
 
다시 말해 한자의 의미 변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중국 이외 한국(부분적으로 일본)으로 들어온 이후의 어의(semantics)변천(어의론)까지 살피겠다는 것이다.
 
표현을 달리 하면, 한자는 동아시아 주요 국가 언어들의 어원 가운데 자국의 토속적인 어원과 함께 중요한 한 축이다. 주요 유럽어의 어원으로서 유럽에는 고대 희랍어와 산스크리트가 있다면, 동아시아에는 동일한 기능을 하는 한자가 있는 것이다. 또한 공시언어학과 통시언어학적으로 한자의 변천을 살펴본다는 것은 언어문제, 언어실천, 언어교육에 응용할 데이터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응용언어학(applied linguistics)에도 연계돼 있다.

 

한자는 약 6,500년 전인 중국 고대 전설시대에 倉頡(cāng jié, BC 4666년~BC 4596년)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힐이 살았던 시기에 대해 학자들 가운데는 BC 4666년~BC 4596년이 아니라 이 보다 더 늦은 대략 기원전 26세기 무렵이었고 顓頊(전욱) 부락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한 경우도 있다. 고대사 전공자도 아닌 내가 그의 출생연대에 대한 정확한 연대를 고증하기엔 무리다. 굳이 하겠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지금은 날씨가 너무 무덥다.
 
 

창힐의 석상과 상상도. 눈이 네 개로 그려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아무튼 그의 재세 시기가 물경 1,000년 단위로 차이가 난다는 것은 뭔가 의심쩍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에선 창힐이 전설적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주장이 정설처럼 돼 있다. 현재 중국 河南省 濮陽市 南樂縣 梁村鄕의 吳村 서쪽에 창힐의 무덤과 사당 그리고 그가 문자를 만들었다는 장소 등이 남아 있는데, 학자들은 창힐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죽었다고 보고 있다.
 
 

창힐의 묘. 중국인들의 인식 속에 창힐은 "문자의 시조", 문자를 만든 성인이라는 의미의 "造字聖人"으로 기억되고 있다. 묘비에도 그런 식으로 기록돼 있다.

 

아무튼 창힐은 하늘의 별자리 분포와 산천 대지의 모양은 물론, 새와 짐승의 발자국, 벌레의 흔적과 초목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린 다음 다시 서로 다른 부호로 만들어내 각 부호마다 뜻을 부여했다. 창힐은 이 부호를 ‘자(字)’라 불렀다. 거북등의 문양을 뜻하는 문(文, 또는 紋)과 이 ‘자(字)’가 합쳐져 ‘문자’가 된 것이다. 그가 만든 초기 문자는 상형문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은『呂氏春秋』와『說文解字』에 나와 있다. 후자에는 그가 황제의 사관으로 있으면서 글자를 발명했다고 돼 있다. 중국의 역사학자들도 문자의 출현을 창힐과 연계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고대 사회의 역법 제정 등에는 문자 기록이 필요했고, 신탁 등의 주술이나 제사 따위에도 문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창힐의 한자 발명설과 다른 설을 주장한 사람도 없지 않다.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노신(魯迅)은『門外文談』에서 한자를 만든 사람이 창힐 한 사람만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여러 사람이 만든 것을 사관이 채집하고 덧붙여 사건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즉 한자는 창힐 한 사람이 창조한 게 아니라 창힐과 유사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차츰 풍부해졌다는 소리다.

 

중국에 한자가 출현한 시기는 복희씨가 팔괘를 지었다는 선사시대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 시기에 이미 초보적인 상형 문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의 시작이라는 황제의 즉위 이래 이미 상형문자를 이용해 역사를 기록해 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殷, 商 시대 갑골문에 새겨진 한자 수가 대략 3,000여자에 달했다고 한다. 이 글자들이 현대 중국어 어휘의 기본적인 토대가 됐다. 이 시기의 단어들은 대부분 1음절로 구성돼 있었고, 헛갈려선 혼동이 있을 수 있는 인명, 지명, 국명 등에서만 2음절로 돼 있었다.
 

중국 고대의 갑골.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 갑골은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한국인 지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한국에도 귀중한 갑골이 있다는 뜻이다.

 

한자의 글자가 이뤄지게 되는 구조부터 살펴보자. 한자는 구성되는 이치, 혹은 원리로 象形, 指事, 會意, 形聲, 轉注, 假借 6가지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인데, 이를 造字法(六書)라고 한다. 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象形은 구체적인 물건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를 가리킨다. 예컨대 말, 산, 달, 눈, 나무의 형상과 시내와 물이 흐르는 모양을 본 따서 만든 馬, 山, 月, 目, 木, 川, 水, 등이 이에 해당된다.
 
 

고대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상형문자의 여러 형태들

 

指事는 점과 선으로 어떤 생각이나 의도를 나타내는 글자를 말한다. 예를 들면, 가운데를 나타내는 中, 셋을 나타내는 三, 바탕, 근본을 나타내는 本, 위와 아래를 나타내는 上, 下, 그리고 마지막과 끝을 나타내는 末 등등 많이 존재한다.

 

會意는 두자 이상을 결합하여 어떤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글자를 말한다. 이에 해당되는 글자로는 굉장히 많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먼저 두 자가 결합된 것으로는 仲, 林, 比, 包, 斷, 禁 등등이 있다. 세 자가 결합된 자로는 磊(돌무더기 뢰), 森, 淼(아득할 묘), 鑫(사람 이름 흠), 鱻(고울 선, 신선할 선) 등등이 있다.

 

形聲은 한자 중 한쪽은 음을 나타내고 다른 한쪽은 뜻을 나타내는 글자를 말한다. 예컨대 到에서 至는 뜻을, 刂(=刀)는 음을 나타낸다. 問에서 門은 음을, 口는 뜻을 나타내고, 性에서 心변은 뜻을, 生은 음을 나타낸다. 또 政에서 正은 음을 나타내고 막대기를 손에 잡은 모양을 형상한 歺(=歹)은 막대기로 두들겨서 바로 잡는다는 뜻을 의미한다. 

 

轉注는 본래의 뜻에서 다른 뜻으로 바뀐 자를 말한다. 예를 들면, 樂은 원래 음악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즐거운 낙의 의미로도 쓰는 경우다. 또 好는 원래 여자 아이가 귀엽다는 뜻이었지만, 여자가 귀여움은 좋은 것이거나 혹은 여자가 자식을 안고 있으면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서 ‘좋아하다’라는 뜻으로 바뀐 것이다.

 

假借는 다른 한자의 음과 모양을 빌어 다른 뜻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來는 본래 보리(麥)를 가리켰지만, ‘오다’라는 뜻으로 바뀌고, 萬은 원래 곤충 전갈(蠆 전갈 채)을 뜻했지만 숫자로서 만을 뜻하게 됐으며, 西는 대바구니의 형상을 본 따서 대바구니를 가리킨 글자였지만, 서쪽의 방위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하게 됐다.

 

기원 전 고대의 이 시기에는 山, 川, 江, 野, 道, 路, 街, 兄, 罪, 宇 등등 주로 1음절 한자 어휘로 의사표시가 이뤄졌으며, 외래어가 유입한 뒤로부터 道路, 兄弟, 改造, 開設, 問安, 儉素, 福德, 美德, 所願, 獨立, 正直, 外交, 家口, 藝術, 俸給 등등 2음절 이상의 한자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예를 들면 초기에는 道, 路, 街 등이 각기 한 자로 여러 종류의 길을 나타냈지만 나중에 1자로는 발음과 성조문제가 있어 뜻이 명확해지지 않자 道와 路를 합쳐 道路로 함에 따라 뜻을 더 명확하게 하는 경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요컨대 단어의 의미가 분화되지 않고, 예외로 간혹 日, 月, 年, 歲 등 다의성을 지닌 소수의 글자를 제외하고 하나의 단어는 하나의 의미만 가지고 있었으며,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어휘가 주종을 이뤘으며 추상적인 어휘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한자어 단어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周나라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그 뒤 한자는 글자체가 끊임없이 변화, 개선돼 오면서 大篆, 小篆, 隸書, 楷書, 行書, 草書 등을 거쳐 漢代에 이르러 최고로 성숙하고 완연한 자체를 갖추게 됐다. 한자라고 한 이유가 완전한 문자 체계가 한나라 때에 이뤄졌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즉 漢代에 와서 전체적으로 언어의 체계가 잡혔기 때문에 나라이름을 붙여 漢나라의 글자라는 의미로 ‘漢字’가 된 것이다.

 

반면, 최근 국내 한국인들 중엔 과거 우리민족의 조상으로 알려진 東夷族이 한자를 만들었다고 해서 한자는 한국인이 만든 한글에서 파생된 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언어학 전공자에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펴는 주장의 근거도 다양하다. 그들 중의 한 주장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천황이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을 창제한 이래로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 태호복희씨와 복희국 13세 임금인 주양(朱襄)씨가 중원 땅에서 육서(六書) 원리를 제정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한자(漢字)의 뿌리[上古金文]가 되었다. 배달국에서는 산목(算木)이 숫자로 통용되었고 14세 자오지 환웅천황 때는 화서(花書)가 사용되었다. 자오지천황의 동방 통일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이전부터 개량해 오던 배달국의 신지문자가 중원에도 전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창힐문자이다.”

 

나는 위 주장에 대해 가타부타를 규명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그들이 좀 더 언어학, 음성학, 음운학, 문자학, 역사학, 고고학, 서지학, 지리학, 정치학 등등 다양한 학문들의 융섭적 연구를 거쳐 더 명확한 근거를 밝혀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기 전엔 한자는 중국인이 만든 것이라는 기존 학설을 따르겠다. 명확한 학문적 근거나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접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이들의 주장이 국수주의가 부른, 성급해 보이기도 하고 과도한 추론과 상상에 의지해 단정한 설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동시에 나는 처음 문자가 한 나라의 언어로 발전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창힐이 상형해서 만든 건 맞지만, 노신이 얘기했듯이 그것으로 멈춰선 게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변화에 따라 부단한 어의 변화와 함께 글자 수가 늘어나 오늘날의 한자가 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해석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소리글자인 한글과 달리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한글처럼 표기원리로 이뤄지지도 않고 수많은 의미의 한자들을 한 번에 바로 완성할 순 없어 필요에 따라 기존에 없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계속 글자를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제는 한자의 생성과 한자의 시공간적 변천의 역사이지 그것의 구문이나 언어적 특성 등을 논하는 건 아니다. 따라서 이쯤해서 한자의 생성과 변천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의문을 한 가지 해소해보기로 하자. 과연 한자는 과거 다른 외국 언어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해서 지금까지 한자는 여러 차례 영향을 받았다. 지구상의 그 어떤 언어든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들만의 고유한 언어로만 존재하는 것은 없다. 한자도 마찬가지로 외부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으면서 발전해왔다. 그에 대해 시간적으로 이른 순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가 북방 유목민족의 언어가 중국한자에 들어온 경우다. 즉 황하강 중하류 일대의 한족이 주변 여러 민족들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민족의 언어들을 받아들였던 시기다. 예컨대 가장 이른 시기인 한나라 때 이미 이른바 중원 지역의 ‘漢族’이 오늘날 신강, 오르도스, 몽골 등지 북방의 흉노, 말갈 등 변방의 색외 민족들과 교류가 이뤄짐에 따라 그들의 유목문화와 관련된 어휘들이 한자로 번역됐다.
 
변방민족과의 교섭으로 중국어 한자에 차용돼 들어온 흉노족의 어휘로는 예컨대 駱駝, 琵琶, 胭脂, 師比(유목민족의 의복에 달린 胡服衣冠의 하나로서 帶鉤, 즉 띠고리임), 箜篌(하프와 비슷한 악기), 胡麻, 胡瓜(오이), 胡琴, 胡桃 등이 대표적인 단어들이다. 중국어에서 오랑캐 胡자로 이뤄진 단어는 그 해당 물건이 유목민이나 서역에서 건너온 것임을 뜻한다.
 
둘째는 지금의 중동지역인 서역의 언어들이 한자어에 들어온 경우다. 즉 중국이 지금의 중동지역인 서역과 교역을 하게 되면서 서역의 동식물, 식품, 생활용품, 악기 관련 어휘들이 많이 들어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葡萄, 石榴, 西瓜(수박), 獅子, 酥(치즈), 笳(구멍이 아홉 개가 뚫린 세워서 부는 피리), 玻璃(유리) 등이다.  
 
셋째는 불교용어들이다. A.D.67년 후한 明帝 때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 중국의 통치자들이 불교를 장려하였으므로 불교 신도들이 늘어나 일상생활에 불교용어들이 대량으로 사용된 경우다. 여기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한자의 발전사에서 크게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당시 천축이나 티베트 등지의 불교용어들을 음사하거나 혹은 의역한 한자어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점이다. 불경을 수입하기 시작한 六朝시대(221~589) 이전의 불경 번역은 주로 음역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면 袈裟(kasaya의 음역), 摩尼(산스크리트와 팔리어로 여의주, 寶珠를 뜻하는 maṇi의 음역), 閻邏(yamaraja의 음역), 夜叉(yaksa의 음역), 僧(혹은 僧伽, saṁgha의 음역), 茉莉(mālatī), 佛(산스크리트어 Buddha의 음역), 塔(stupa의 음역), 般若(prajna의 음역), 菩薩(Bodhi sattva의 음역), 羅漢(阿羅漢의 음역인 arhat에서 나한으로 축약) 등등이 있다.

 

넷째, 이민족이 최초로 중국인을 지배한 남북조시대(304~439)의 5胡(匈奴, 羯, , , 鮮) 16國시대에도 이민족, 즉 중국인들이 말하는 오랑캐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는 比丘尼(bhiksuni), 煩惱(klesa), 究竟(uttora), 地獄(niraya)과 같은 불교용어들이 계속 들어오는 한편으로 水稻, 大麥, 春耕, 犁(쟁기), 水車, 指南車 등등 주로 농업, 수공업, 과학기술 관련 용어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농업, 수공업, 과학기술, 예술 관련 한자어는 唐宋시대에도 계속 만들어졌지만, 이 시대의 특성은 새로 만들어진 어휘들이 거의 모두 2음절이었다는 점이다.

   , , 청대에 이르러서는 몽골어와 만주어의 영향까지 받았다. 당시 중국인들이 받아들인 몽골어와 만주어(여진어)의 어휘로는 , 胡同(gudum, 골목), 喇叭(나팔), 吉祥 등이 있다. 은 몽골어로 서다’, ‘정지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jam의 음역인데 중국인들이 이 어휘를 차용해 火車站, 公車站 등과 같이 역을 가리키는 으로 쓰고 있다. 길상은 사실 불교용어인데, 티베트어에서 몽골족과 만주족으로 들어간 용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어휘는 그 수가 많지 않았고, 원나라와 청나라가 모두 멸망하거나 중국에 동화돼 원래 차용했던 어휘는 거의 다 없어져서 중국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만주어에서 번역된 한자어로 현재까지도 남아 중국어의 실생활에서 쓰이고 있는 것으로는 把式(무술), 薩其瑪(과자의 일종), 媽虎子(도깨비), 喇忽(정신이 몽롱하다) 등 몇 개 뿐이다.

 

다섯째는 서양언어가 한자어에 들어온 경우다. 명대 말기인 약 16세기 말~17세기 초 명말에 천주교와 자연과학을 주종으로 한 서양문명이 중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서양문화의 천주교와 과학 관련 어휘들이 많이 한자로 번역됐다.
   예를 들어 중국인 보다 더 중국고문에 밝았던 천재 신부 마테오 릿치(Matteo Ricci, 1552~1610)가 自鳴鐘, 望遠鏡, 時計 등을 가져와 중국에 자연과학을 소개하거나 徐光啟(1562~1633)가 다양한 서양과학 서적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단어들이 대거 나타났다. 幾何, 赤道, 地球, 寒帶, 溫帶, 性能, 比例, 螺絲(나사), 耶蘇(예수), 重心, 測量, 水庫 등등 여럿 있다.
   그 뒤 19세기 중반 양차에 걸친 아편전쟁의 발발이 계기가 돼 또 한 번 중국에 서양문물과 제도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서양 문물을 번역한 한자 어휘수가 대폭 늘어났다. 가령 鴉片, 淡巴姑(tobaco), 火輪車, 火輪船 등이 있다.

 

여섯째는 일본인들이 만든 일본 한자들이 대거 들어온 경우다. 20세기 초 청나라가 일본에 유학생을 대량으로 보내면서 그들을 통해 일본인들이 서양의 문물, 제도와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조어한 한자를 다시 수입했다. 즉 중국인이 전해준 한자가 일본인들에게 새로이 조어돼 한자어 어휘가 된 뒤 다시 중국에 역수입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 한자어의 중국 혹은 한국의 역수입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소개할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을 종합하면, 한자는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개인이 고안한 게 아니고 장구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이 민족들간의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접촉과 교섭을 해오면서 점진적으로 형성된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고대로부터 수천년 간 형성돼온 중국어 한자어에도 외래어가 상당히 많다는 소리다. 
 
알다시피 외래어란 영어로 loan word, borrowed word, exotic를 말하는데, 원어나 어원이 반드시 외국어여야 하며, 그것이 전래해 들어와서 음운, 형태, 어법 등에서 자국언어화의 과정을 밟은 말을 가리킨다. 중국인들이 지금까지 받아들인 외래어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불교에서 번역된 한자어, 서양문화에서 번역된 한자어, 일본인이 새로 조어한 한자어다. 불교 한자어와 일본 한자어 관련 소개는 다음에 접하게 될 것이다.

 

2018. 8. 9. 19:50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