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구호는 누가 만들었을까?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구호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해병대의 정신, 해병대의 혼, 해병대의 기백, 해병대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구호들 중에 이 만큼 널리 알려진 게 또 있을까? 이 구호는 한국전쟁 발발 첫해인 1950년 8월 중순 뉴욕 헤럴드 트리뷴(New York Herald Tribune)지의 여성 종군기자로서 전장을 누빈 마가렛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한국군 최초의 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해병대를 취재해 송고한 기사에서 유래됐다.
히긴스는 자신의 기사에서 한국해병대 1개 대대가 통영 지역 일대를 점령하고 부산을 포위 공격하던 북한군 제7사단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워 적지를 탈환함으로써 낙동강 방어선의 남동쪽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데 공을 세운 한국해병대의 전투정신을 칭송한 바 있다. 그가 수적 열세에다 탄약과 보급마저 떨어진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백병전까지 치러 처절하게 싸워 이긴 해병대에 대해 “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그들은 귀신이라도 잡을 기세)라고 한 표현이 기원이 된 것이다.
이 구호 외에도 한국해병대를 표상하는 구호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해병대의 미래는 여기서 시작 된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등등이 있다. 이 구호들은 해병대원들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러워하는 슬로건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언제 봐도 늠름한 해병대의 기상과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구호들은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이 오랜 의문이 오늘에서야 풀렸다. 이 구호들은 한국해병대에서 만든 게 아니라 미국해병대의 구호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구호를 따온 장본인은 제22대 해병대 사령관을 지낸 전도봉 예비역 해병대 중장이었다. 이 사실은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전도봉 전 사령관의 증언(2018년 5월 11일「나의 사랑 해병대 밴드」)에서 밝혀졌다. 현대 한국 군사나 해병대역사를 연구함에 중요한 사료 가치가 있다고 판단돼 숨겨진 일화를 소개한다.
전도봉 전 사령관은 1991년 현재의 해병대 교육훈련단 단장으로 보임되고 나서 해병대 사관후보생 제38기 출신인 참모장 최원복 대령과 함께 “우리 해병대를 지원한 젊은이들을 해병대에 적합한 인간으로 개조하고 거듭 태어나게 하는 방편으로 교육훈련단 정문과 훈련장, 천자봉에 이르는 곳곳에 붉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구호를 내걸었다”고 한다. “해병대의 미래는 여기서 시작 된다”, “인간개조의 용광로, 해병대”,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등등의 구호들이 그 때 해병대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 땅에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위 발언 중 “인간 개조”라는 표현이 귀에 거슬릴 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해병대의 군기가 엄정하고 경쟁력이 높은 오늘날과 달리 당시는 해병대 사병들이 각종 사고를 많이 치고 해서 개에 빗대 “개병대”라고 불리던 시절, 이 같은 오명을 씻기 위한 개선의 노력이었던 것으로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또한 당시는 해병대가 완전한 해병대 교육훈련 권한을 가지지 못하고 해군이 가지고 있었는데, 해군이 위임해준 신병과 하사관 후보생만을 해병대가 훈련을 담당하던 시절이었다. 전도봉 전 사령관은 또 사령관 재임시에도 “작지만 강한 해병대”라는 구호를 내걸기도 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구호는 미국 해병대의 슬로건인 “Once a Marines always a Marines”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전도봉 전 사령관은 밝혔다. 원래의 뜻은 해병대의 모든 구성원은 언제 어디서든 해병대의 명예에 걸맞게 본연의 자세를 견지하라는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해병대 구성원이라면 휴가 중이거나, 외출 중에 있거나, 병원에 입원 중이거나, 감옥에 있거나, 열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화장실에 있거나, 순찰중에 있거나, 적과 전투중에 있거나, 군복을 벗고 예비역이 되어 해병대를 떠나 있을 때에도 늘 명예, 용기, 헌신 등 해병대의 핵심가치와 자긍심을 잃지 않고 해병대의 일원임을 항상 기억하라”는 의미라고 했다.
“해병대의 미래는 여기서 시작 된다”는 구호는 전도봉 전 사령관이 1977년 미국 해병대 상륙전학교 유학시 미국해병대 신병훈련소와 미국해병대학교인 MCS(Marine Corps School), 즉 하사관과 장교를 양성하는 학교정문에 붙어있는 슬로건인 “Here Begin The Future of Marine Corps”에서 따왔다고 소개했다.
전도봉 전 사령관은 이러한 구호들이 부분적으로 번역상의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즉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구호에서 “누구나 해병대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로 했어야 정확한 슬로건이 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병과 하사관과 장교 모두를 지칭하는 “해병대의 일원”을 가리키는 “해병대”로 옮기지 못하고 “대원”을 빠트려 “해병”이라고만 쓴 실수가 있었다는 얘기다.
전도봉 전 사령관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해병과 그의 손에 들려진 소총이다”라는 구호는 미국 해병대가 내건 “모든 해병대원은 소총수”라는 의미의 “Every Marines Rifle Man”이라는 구호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해병대원과 그들 손에 들려진 소총이다”라고 해석했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이 구호는 “보병, 포병, 기갑, 공병, 통신, 수송, 병기, 정훈, 헌병, 의무 등 모든 병과를 불문하고 모든 해병대 구성원은 (우선 먼저) 필히 소총수로서 명사수여야 한다는 미국 해병대의 슬로건”이며, 미국해병대는 “병과를 불문하고 전투에서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유도를 잘하거나, 태권도를 잘하거나, 혹은 어떤 근접전투 기술을 잘 하는 것보다 모든 해병대 구성원은 우선 소총을 잘 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서 “미국 서부영화에서 총잡이들의 싸움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전도봉 전 사령관은 이러한 구호들은 비록 남의 것을 따온 구호들이지만, “해병”이란 용어는 우리 말 사전에 해병대 구성원 중 장교와 하사관을 뺀 일반 병사들을 지칭하기 때문에 “한번 해병대원은 영원한 해병대원”이라 해야 함이 타당한 표현임을 강조했다. 그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최소 80만 명 이상의 해병대 예비역들에게 타군과 마찬가지로 한국해병대 역시 미국해병대로부터 많은 것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러한 구호들을 “바르게 그리고 본래의 뜻에 맞게 사용할 줄 아는 예비역 해병대원”이 될 수 있기를 당부했다.
차제에 오랫동안 군과 전쟁사를 연구해온 필자로서는 해병대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가지고 있는 오랜 염원이 하루라도 빨리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해병대가 해군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의 4군체제가 돼야 하고, 현재 “해병대”임에도 “해군”에 소속돼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군”으로 불리는 불합리함이 고쳐져야 한다. 그래서 “해병대”라는 명칭이 법률 차원에서 정착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실현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잘못된 역사와 현실을 바로 잡는 사필귀정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2018. 5. 11
「나의 사랑 해병대 밴드」에서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 증언
2018. 6. 10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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