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없는 특별사면은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다!
서상문(고려대학교 한국전쟁 아카이브 연구교수)
오늘(3월 31일) 새벽 드디어 박근혜가 구속 수감됐다. 대다수 국민이 바라던 염원이 이뤄진 것이다. 가히 역사적인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트레이드마크인 올림머리가 헝클어지고 약간 초췌한 모습을 보고 대다수 국민은 지금까지 한 사람 때문에 받아왔던 극심한 스트레스와 울화통을 날려버릴 수 있겠다. 통쾌함, 고소함, 시원함, 막힌 체증 해소감, 일말의 연민, 안타까움 등등 다양한 감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모습에서 정반대의 감정으로도 느껴질 수 있다. 박사모 회원들과 태극기시위대에게는 무한 동정과 분노, 애통감과 비통감에서, 주인을 끝까지 지켜야만 자신의 존재감을 자각하는 노예적 결의와 충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동일한 코드라도 처지에 따라 그것이 표상하는 바가 잘못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려되는 광경, 예상되는 미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기소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사면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홍준표 지사가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제 국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용서할 때가 됐다”고 했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정치적 외압이 없는 한, 사법부 수장이 스스로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한, 향후 그에 대한 재판은 큰 굴곡 없이 진행될 것이다. 죄목은 나와 있고, 형량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처음엔 납보다 무거운 형량이 구형될 것이다. 그의 구속이 대선의 판세에 미칠 찻잔 속의 태풍은 개의치 않아도 될 듯하다.
단지 대선 후 내년이나 2년 뒤 이맘 때 쯤, 대통령이 국민의사에 반해 박근혜를 특별사면 할까봐 우려 될 뿐이다. 이 우려가 정말 기우이길 바라지만, 한편에선 최고 권력자의 국민화합이니 통합이니, 관용이니 하는 감성이 꿈틀대고, 이로 인한 찬반논란이 점화되지 않을까, 이로 인해 다시금 국민적 에너지가 허비될까봐 염려되는 것이다.
미리 단정해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박근혜는 무덤까지 가더라도 절대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자신이 뭘 잘못 했는지 조차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적확한 표현일 수 있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감방이란 데는 단 하루라도 있을 곳이 못 된다. 일반 서민이라도 1.5평 남짓한 좁디좁은 감방에서의 불편한 생활은 견디기 쉽지 한다.
더군다나 그곳에는 매일 먹던 전복죽이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 또 늘 앉아 볼일 보던 안락한 좌변기도 없다. 감방생활을 견딜 수 없다 싶어서 갑자기 석방되기 위해 또 다시 마음에 없는 거짓말로 반성하는 듯이 눙칠 유일한 변수가 없다면 말이다.
나는 이 가능성마저 배제할 만큼 강심장은 아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그는 정의니, 명예니, 이념이니 하는 정신성을 목숨만큼 중요시 하는 명예지향적, 정신지향적 인간형이 아니라 국민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든 말든 자신만 잘 입고, 잘 먹고, 편안함과 노후의 안락을 생각하는 말초적이고 형이하학적인 인간형이니까. 그는 자신의 신념과 충의에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사육신형이 아니라 부귀영화가 보장되면 뭣이든 할 수 있는 형에 가까운 인물로 보이니까!
그러니 다가올 멀지 않은 미래에 박근혜를 사면해선 안 되고, 사면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원해서 받게 되는 자업자득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입에 발린 사과만 하고, 진정성이 의심 받지 않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반성과 참회가 없는 자를 사면해줘서 실패한 예가 보이지 않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옛 부하들과 골프회동 하거나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고 있는 전두환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론에 떠밀려 형식적인 사과 몇 마디 한 것이 전부였을 뿐인데도 덜컥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사면 해줬더니 능글맞게 지갑에 든 29만 원이 전재산이라고 국민들 염장 지르는 소릴 해대는, 역사발전을 가로 막은 전두환을 사면해서 국민화합과 통합에 무슨 도움이 됐는가? 그 세력들을 단죄하지 않았던 게 바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탄생될 수 있었던 둥지가 됐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가?
반면교사란 여러번 반복돼선 반면교사로서의 효능을 잃게 된다. 전직 대통령 혹은 그에 대등한 정도의 비중 있는 인물에 대한 특별사면은 반드시 특별한 과정과 추상 같은 검증을 거쳐야 된다.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의 찬성이 없이 정치적 고려에서 시행해선 안된다. 법앞에 만인의 평등, 온전한 국가기강, 정의로운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얼마 전 다른 글에서도 주장한 바 있지만, 가해자가 진정성 있는 사과도 하지 않는데 용서해주는 것은 정략적인 면벌부일 뿐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포용이 아니다. 그것은 이를 추진하고자 한 정치지도자의 개인 치적을 드러내려는 욕심일 뿐이다. 진정한 화해와 이를 토대로 한 국민통합은 어떤 경우라도 국정 농단에 대한 진상규명,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 피해자가 용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재발방지가 담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의미 있는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상문, “대만 차이 총통과 박근혜 대통령의 도드라진 차이”,『오마이뉴스』, 3월 2일자 기사).
가능성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로 보이지만, 기적을 말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박근혜가 특별사면 받기를 원한다면, 만에 하나 자신이 지은 죄를 시인하고, 이번 게이트의 진상을 가감 없이 밝힐 뿐만 아니라 과거 자신이 남을 조롱한 비열한 인성을 뉘우치며, 대통령 재임시 자신의 과오 혹은 불찰로 운명이 바뀐 국민들에 대해서도 깊이 참회하고 속죄함은 물론, 과거 자의든 타의든 탈법적, 강압적으로 찰취한 재산이 있다면 자진해서 공익에 쓰도록 환원시키겠다는 마음이 생겨나고, 실제로 그렇게 결행할 경우에 한해 국민적 가부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박근혜는 죽으면 죽었지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을 거라고. 그래, 그러면 그냥 감방에서 그렇게 살아보는 수밖에!
박근혜는 지금 올림머리 풀고 죄수복으로 갈아입는 이 순간에도 노예를 연상시키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대권을 잡아서 자기를 구제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발전은 차치하고 상식 있는 국민들에게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임은 틀림없다. 대권이 누구 손에 떨어지든, 참회와 그에 합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특별사면은 국민적 배신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2017. 3. 30. 07:15
雲靜於故鄕
위 글은 2017년 4월 1일자『오마이뉴스』에「박근혜 특별사면? 참회와 사과 없이는 안될 일이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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