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광복 70년

雲靜, 仰天 2015. 8. 15. 13:25

 

광복 70년

                              

                                        

광복 70년 

일제가 패망하던 그 날

빛을 다시 봐서 좋긴 좋았다만

히로히토가 사과는커녕 패전을 애석해하고

그놈의 ‘玉音’방송도 ‘무조건항복’이 아니었건만

외세가 선사한 환희와 감격의 눈물로  

희망과 태극기가 출렁인 삼천리강토에

한 순간 빛에 취해 이성이 잠든 사이

악마가 길게 천년의 똬리를 틀었다

 

광복 70년

강산이 일곱 번씩이나 바뀌는 동안

빛이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정의가 불의의 농간에 당하자

독립유공자들이 이름뿐인 광영과 자존에

주린 배 움켜쥐고 병든 채 골방에서 죽어갈 때

친일파들 뱃떼지에 기름치가 올라붙고

그 후손들이 물고기 물 만난 듯

희희낙락 나라를 난도질 한 거 밖에 더 있소?

 

광복 70년이라지만

일제강점시대 마냥

다시 찾아든 한숨과 절망과 분노 속에

앙상한 빛 밖에 더 남았느뇨?

안에선 악마의 화신들이 절세의 애국자인양 판치고

밖에선 아베 놈이 저토록 미쳐 날뛰는 마당에

廣島 長崎 시민들에겐 참 죄송스런 말이지만 

원자폭탄 투하시점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가서, 역사의 판을 다시 짜고 싶다

 

2015. 8. 15 오전

광복 70돌을 맞아

雲靜

 

 

1945년 8월 15일 쇼와 '천황'이 방송으로 밝힌 내용은 전쟁을 그만한다는 "종전조서"였지 "무조건 항복한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일제 패망 후 일제의 한국통치 상징 조선총독부(훗날 중앙청)의 국기게양대에서 일장기가 내려왔지만 그 대신 태극기가 올라 간게 아니고 성조기가 게양됐다. 친일파 청산에 적신호이자, 한국현대사의 불행이 시작을됨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8.15 당일, 서울 형무소 감옥에서 출옥한 정치범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일설에는 8.15광복절 당일과 그 뒤 며칠 사이에는 한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으로 들어온 미군이 치안유지를 위해 일제의 경찰, 헌병 등의 권한을 그대로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가사끼에 투하된 원폭에서 피어오른 버섯 모양의 연기
원폭에 피폭된 히로시마의 관공서 건물. 일제는 원폭을 두드려 맞기 전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원자폭탄을 연구, 실험, 개발해왔는데 패전 직전에는 거의 완성 단계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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