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영혼의 안식처

雲靜, 仰天 2015. 5. 19. 10:40

영혼의 안식처
 
 
이러구러 반백년이 흘러 찾은 항․도․국․민․학․교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게 있으랴만
모든 게 변했구나
변명 없이 얼굴이 바뀌었구나
인색한 장사치처럼 에누리 없이 변했구려!
 
춘사월 아지랭이 환영으로 아른거리는 옛 모습
벚꽃처럼 실바람에 흩날리는 風情
아,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몽환 속 노스탤져
 
변하는 게 필요하지요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지요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허름한 목조교실은 번듯한 철골校舍로 우뚝 섰구나
봄날 졸졸졸 환희가 흐르던 도랑도 사라지고
여름날 꿈으로 영글던 복숭아과수원도 자취를 감췄네
 
뭉크의 절규처럼 갈래갈래 풀어지던 철길도 흔적 없고
아프락사스의 야윈 비명처럼 뽀~옥, 뽀~옥
뭉게구름 피우며 달려오던 시커먼 화차
그땐 차암 무서운 존재였었지!
붉은 깃발 격하게 흔들며 저리가라 소리치던
화차 조수도 무섭긴 매한가지였어
지금 살아 계시면 줄잡아 여든은 넘었을테지
얼굴이 붉그스레한 그 조수 아저씨
내 기억 속에서 만큼은 영원한 청년이라네
 
발전의 美名으로
利器의 동력으로
만사가 날로 변해가지 않는 게 없지만
익숙한 게 편한 법이라 옛정만큼 익숙할까?
옛 친구만큼 편한 존재가 있을까?
반백이 지나 만난 소싯적 벗들 동심 그대로구나
건강해보이니 좋구나
변함없는 게 편하구려
세상만사 生者必滅이라지만
훈습된 유년의 기억만큼은 변할래야 변할 수가 없네
 
아! 학의 날개깃 속 안온한 엄마 자궁 같은 곳
어른이 돼 지관의 눈으로 보니 참으로 명당이더라
앎을 쫓아 반평생 바깥세상을 집시마냥 쏘다녔지만
세계는 그기에 있더이다
앎은 그기에 있더이다
바로 그곳에 안식이 있었더라
내 유년의 꿈이 그곳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더라
혼백이 분리되지 않은 채 말없이 누워 있더이다.
 
2015. 5. 17 밤
반세기 만에 다시 찾은 포항 항도초등학교를 떠나는 귀경길 버스 안에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雲靜
 

 

1960년대 말 포항시 학산동, 대신동, 나루끝 일대 전경. 사진 위쪽에 푸른 영일만 바다가 보인다. 왼쪽에 솟아 오른 산이 학산이고, 그 아래 운동장과 교사가 보이는 곳이 나의 모교인 포항중학교다. 항도초등학교는 그 위쪽 학산의 안쪽 골에 있다. 나는 포항중학교의 뒷문(동쪽 작은 철조망 문)에서 항도초등학교로 가는 길목, 항도초등학교 정문 가까이에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포항중학교 앞으로 길게 뻗어 있는 것이 포항역에서 항구동의 부두에까지 연결돼 있던 철로다. 이 일대는 내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숱한 기억들의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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