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눈에 보인 이또우 히로부미와 안중근 의사
★먼저 원문을 보고나서 필자의 코멘트를 읽어보기 바란다.
[1910년 9월 18일 이후]1
1 [역주] 이또우가 암살당한 날에 따라서 1909년 10월 26일 이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의 신문들은 용감한 일본인 이또우 후작이 어떤 한국인이 쏜 연발 권총의 저격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이웃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인들이 이집트나 인도에서 세력을 장악하여 권리와 특권을 향유하고 있듯이,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에 있는 것은 한국을 돕기 위해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약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한국이 러시아인이나 중국인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면, 이는 일본에 위협이 되므로 일본은 스스로 한국을 손아귀에 넣었다. 한국 민족은 이 일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늘 일본을 증오해왔다. 이또우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두 차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일찍이 러시아의 피를 맛본 일본은 한국에서 그렇게 쉽게 물러날 리 없었다. 세력에 도취하면 늘 그런 것이다. 수영선수가 물에 빠져 죽듯이, 칼을 휘두르는 자는 주로 칼로 망할 것이다. 연발권총으로 이토를 저격했던 자는 그가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이또우를 죽였다는 점을 담대하게 인정했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1만 2천 명 정도의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세력의 더러운 것이고, 일단 남의 나라를 장악하게 되면 편안하게 쉬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인도 청년들 중 몇몇 사람은 (영국인을 몇 사람은) 죽여야 그들을 축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럴 만한 가치는 없다.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은 칭찬할 만하지만, 서양의 방식을 모방하는 것은 존경할 만한 가치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또우를 용감한 자라고 묘사했는가? 이는 다른 문제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애국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1841년에 태어난 그는 그가 세상의 일을 알아가기 시작한 인생의 아주 초기부터 일본의 향상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이런 이상을 추구하느라 많은 난관을 겪었다. 러일전쟁 당시 그는 큰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의 전문가였고, 수학, 교육, 행정, 한마디로 만사의 전문가였다. 따라서 그는 용감한 자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한국을 예속시킨 일은 그가 용기를 나쁜 목적에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서양문명의 마법에 걸린 사람들은 달리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일본이 세력을 통해서 지배하고, 방어하고, 자기 확장을 시도한다면, 이웃의 땅을 정복하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인민의 참된 복지를 심정에서 생각하는 자라면, 오직 사티아그라하(진리파지)의 길을 따라서 인민을 인도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용감한 일본병사』(G.), 『인디언 오피니언』, 1910. 8. 1,『전집』10 : 10 : 77</p>932.

간디가 안중근 의사를 언급한 글이 간디 선집에 실려 있다는 허우성 교수의 소개를 받고, 필자는 1910년『인디언 오피니언(Indian Opinion)』에 실린 간디의 글 「용감한 일본병사」를 직접 읽어 보았다. 그런데 제목을 보는 순간 의아함이 들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다룬 글인데 왜 제목이 '용감한 일본병사'일까?
글을 읽어 보면 의문은 곧 풀린다. 여기서 '용감한 일본병사'는 안중근이 아니라 이또우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가리킨다. 간디는 먼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과정을 설명한다. 영국이 인도와 이집트를 지배하듯 일본도 자국의 안보와 세력 확대를 위해 한국을 지배했으며, 한국인들이 이를 증오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안중근이 이또우를 저격한 이유 역시 “일본의 한국 지배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하면서, 안중근이 자신의 행동을 당당히 인정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간디는 이 사건을 단순히 식민지 민족의 저항이나 의거의 정당성만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 역시 한국인을 탄압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고 비판하면서, 무력과 폭력은 결국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보았다. 일본 제국주의도 비판했고, 정치적 암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간디는 왜 이또우를 '용감한 일본병사'라고 평가했을까. 간디는 이또우가 젊은 시절부터 일본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고, 정치·행정·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즉 그의 용기와 능력 자체는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용기와 재능을 한국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만드는 데 사용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분명히 비판했다. 다시 말해 간디는 인물의 능력과 그 능력을 사용한 목적을 구분하여 평가한 것이다.
이 글의 결론은 안중근이나 이또우 개인에 대한 평가에 있지 않다. 간디가 궁극적으로 강조한 것은 제국주의도, 이에 맞서는 폭력적 저항도 모두 서구식 힘의 논리에 사로잡힌 결과라는 점이었다. 그는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를 모방한 결과 한국을 침략하게 되었고, 식민지 민족 역시 폭력으로 맞서는 한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간디는 마지막에 오직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진리파지·비폭력 저항)만이 민족과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결국 이 글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찬양하거나 비난하는 글도 아니고, 이또우 히로부미를 찬양하는 글도 아니다. 간디는 안중근의 행동 동기는 이해하면서도 폭력 혁명에는 동의하지 않았고, 이또우의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그의 제국주의 정책은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처럼 그는 양측 모두를 자신의 비폭력 철학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6. 6. 23. 06:00.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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