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울란바타르 시내 관공서가에 위치한 수흐 바토르(몽골 독립영웅) 동상 앞에서

雲靜, 仰天 2014. 5. 13. 10:10

 
1994년 6월, 처음으로 몽골을 찾았다. 갈 때는 북경에서 비행기로 갔고, 올 때는 울라바토르에서 북경으로 들어오는 국제열차를 타고 왔다. 1주일 간 머물면서 몽골 친구들의 안내로 수도 울란바토르의 곳곳은 물론, 그 인근의 몇몇 작은 촌락에도 가서 현지인들의 바베큐 대접도 받았다. 우리의 불고기와 흡사한 모양에 맛도 거의 같았다. 몽골민족의 전통적인 이동식 천막가옥인 기르(중국어로는 빠오 包)와 어울어져 시원스레 펼쳐진 초원과 시골지역은 그야말로 몽골 다운 전형적인 유목문화의 정경이었지만, 당시 인구 50만 명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소련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아서 그런지 소련풍의 건물, 몽골인과 러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국이 영어와 미국문화에 잠식돼 있다면, 몽골은 러시아문화에 종속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영어 알파벳은 보이지도 않았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는 내게 영어통역으로 붙여준 프랑스유학 출신의 젊은 인텔리 여성 외에는 극소수였다. 거리에 나붙은 간판의 문자도 모두 구몽골어가 아니라 러시아의 끼릴 문자 뿐이었다. 중국세력이 물러난 지 오래돼서 그런지 한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국식당이 없어서 물어서 찾아간 중국집 간판에만 한자를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소련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말해주는 것이었지만, 도처에 러시아어를 말할 수 있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러시아어를 읽고 간단한 회화 정도는 말할 수 있는 나로선 덕분에 소통하는데 도움이 돼서 좋았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곳곳에 과거 소련군이 70년간 주둔했던 소련군 기지터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몽골 친구들의 안내로 구 소련군 기지 내에 있는 외국인 전용 바에 가봤더니 우리로 치면 미군이 주둔한 용산 같은 곳이었는데, 완전히 소련식 보드카에다 틀어준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소련 음악 일색이었다. 암튼 몽골이 20세기 20년대 볼셰비키 혁명 후 레닌 정권의 힘을 빌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났고 나중에 1950년대 초에 모택동의 결단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뤘지만, 또 다른 외세인 소련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 역사적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던 여행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동상의 말 탄 이는 담디니 수흐바토르(Damdin"i Suhbator)라는 인물이다. 몽골인민혁명당을 창당하고 몽골이 독립을 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현대 몽골민족의 독립영웅이다. 그는 지금도 몽골인들에게 "몽골혁명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