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과 모차르트:서로 배우는 ‘사제관계’의 모범
사제관계란 무엇인가? 흔히 스승이 가르치고 제자가 배우는 일방적인 관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사제관계는 지식과 경험이 위에서 아래로만 전달되는 관계가 아니다. 스승과 제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탐구하고 서로의 인격과 능력을 자극하면서 성장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창가학회(創価学会) 제3대 회장을 지낸 이께다 다이사꾸(池田大作, 1928~2023)도 사제관계를 인간이 서로 절차탁마하여 더 높은 목표로 나아가게 하는 관계로 설명한 바 있다.
서양 음악사에서 이러한 사제관계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로 요제프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를 들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이 실제 학교나 개인 교습을 통해 맺어진 공식적인 스승과 제자는 아니었다. 하이든이 모차르트에게 정기적으로 작곡을 가르친 기록도 없고, 모차르트가 훗날 하이든의 공식적인 스승이 되었다는 사실도 없다. 두 사람의 관계를 사제관계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연륜과 예술적 영향, 그리고 상호 존경이라는 정신적 의미에서이다.
요제프 하이든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보다 스물네 살이 많았다. 동양문화였다면 친구가 될 수 없는 나이 차였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1780년대 초, 하이든은 이미 유럽 음악계에서 이름을 떨친 대작곡가였다. 그는 오랫동안 에스테르하지 가문(the Esterházy family)에 봉직하면서 수많은 교향곡과 현악4중주곡을 작곡하였고, 고전주의 기악 형식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이든을 흔히 ‘교향곡의 아버지’, ‘현악4중주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그가 교향곡이나 소나타 형식을 혼자서 처음 창조했다기보다는 선배들이 남긴 여러 형식과 관습을 종합하여 훨씬 안정되고 풍부한 음악 언어로 발전시켰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한 것 같다.
젊은 모차르트에게 하이든은 자연히 존경해야 할 선배이자 음악적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특히 하이든이 1781년에 발표한 여섯 곡의 현악4중주 작품 33은 네 악기가 비교적 대등하게 대화하고, 주제를 치밀하게 발전시키며, 유머와 예상을 벗어난 전환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빈에 정착한 모차르트는 이 작품들을 깊이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현악4중주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K.387, K.421, K.428, K.458, K.464, K.465의 여섯 곡, 이른바 ‘하이든 4중주곡’이라고 한다. 이 작품들은 1782년부터 1785년까지 약 3년에 걸쳐 작곡되었다. 천재로 불린 모차르트조차 이 곡들을 손쉽게 쓰지 못했다. 3년이나 걸렸으니까! 그는 1785년 출판하면서 “길고 고된 노력의 결실”이라고 고백하고, 여섯 작품을 자신의 자식에 비유하여 하이든에게 바쳤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면서 저명한 분의 보호와 인도에 맡기듯이, 저도 이 여섯 자식을 위대한 분이자 가장 사랑하는 벗인 당신께 맡깁니다. 이들의 아버지이자 인도자이며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당시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을 귀족이나 후원자가 아니라 다른 작곡가에게 헌정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모차르트는 하이든을 단순히 이름난 선배라고 부르지 않고 ‘가장 사랑하는 벗’이자 자신의 작품을 이끌어줄 ‘아버지, 인도자, 친구’로 표현했다. 여기에는 하이든의 음악에서 배운 것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에는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하이든의 음악을 배우며 출발한 모차르트가 스승과 같은 선배를 감탄하게 할 만큼 독창적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하이든은 1785년 1월과 2월, 모차르트의 집에서 이 여섯 곡을 들었다. 마지막 세 곡의 연주가 끝난 뒤 그는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정직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건대, 당신의 아들은 내가 직접 알거나 이름으로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그는 취미를 갖추었으며, 더구나 작곡에 관한 가장 깊은 지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1785년 2월 16일 딸 마리아 안나(Maria Anna Walburga Ignatia Mozart, 1751~1829)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안나는 모차르트의 누나로, 애칭은 난네를(Nannerl)이었다. 따라서 후대에 꾸며진 미담이 아니라 비교적 출처가 분명한 증언이다. 이미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하이든이 자신보다 스물네 살이나 어린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작곡 능력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 것이다.
모차르트가 하이든으로부터 배운 것은 균형 잡힌 형식, 주제를 전개하는 방법, 네 악기가 대화하는 현악4중주의 원리였다. 모차르트는 여기에 오페라에서 연마한 극적 감각, 인간 심리의 미묘한 변화, 노래하듯 흐르는 선율을 더하고, 바하(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와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의 음악에서 배운 대위법을 자연스럽게 융합했다고 한다. 또한 기본 음계 밖의 변화음과 반음 진행을 활용하는 반음계적 화성을 통해 감정의 긴장과 불안, 밝음과 어두움의 미묘한 교차를 표현했다. 대위법은 여러 개의 독립적인 선율이 서로 모방하고 응답하면서 조화롭게 진행되는 작곡 기법으로, 모차르트는 이를 엄격한 기교로만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음악적 대화로 발전시켰다고 음악사는 전한다.
가령 현악4중주 제19번 C장조 K.465는 도입부의 불협화음과 불안정한 화성 때문에 후일 ‘불협화음 4중주곡’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당시 청중에게는 잘못 인쇄된 악보가 아닌가 의심하게 할 만큼 대담한 음악이었다. 그러나 불협화음은 무질서하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뒤이어 나타나는 밝고 안정된 음악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드는 치밀한 장치였다.
https://m.youtube.com/watch?v=Q5DUdZYjAfU
모차르트는 하이든에게서 물려받은 형식 안에 이전보다 복합적인 심리와 감정을 담아낸 것이다. 그렇다고 하이든이 모차르트 이후 갑자기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나는 모차르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라는 문장이 하이든의 직접적인 발언으로 자주 소개되지만, 현재 널리 확인되는 제1차 사료만으로는 정확한 출처를 특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를 따옴표 안에 넣어 하이든의 실제 발언처럼 인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음악적 영향이 일방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연구했으며, 모차르트의 화성적 대담성, 풍부한 관현악 색채, 오페라적인 긴장과 감정 표현에서 적지 않은 자극을 받았다. 반대로 모차르트 역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이든의 주제 발전 방식과 기악적 유머, 형식 구성에서 계속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의 음악에는 서로에게서 받은 자극과 각자 고유한 개성이 함께 나타난다. 빈 교향악단도 두 사람 사이의 음악적 영향이 상호적이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하이든이 영국을 방문하여 작곡한 열두 곡의 ‘런던 교향곡’에는 그가 평생 축적한 작곡 기법이 집대성되어 있다. 이 작품들의 확대된 관현악 규모와 극적인 대비, 풍부한 음향을 전적으로 모차르트의 영향으로 돌릴 수는 없다. 런던의 대규모 공개 연주회, 뛰어난 연주자, 새로운 청중, 하이든 자신의 오랜 경험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모차르트가 보여준 화성적 풍요와 극적인 표현이 하이든의 후기 음악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감동적인 이유는 경쟁심이나 시기심보다 존경과 우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이든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천재를 경계하거나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발견하자 오히려 그의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아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고 선언했다. 모차르트 역시 자신이 이미 유명한 작곡가였음에도 하이든을 낡은 시대의 인물로 밀어내지 않았다. 오랜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여섯 곡을 하이든에게 바치며 그를 아버지이자 인도자이며 친구라고 불렀다.
1790년 말 하이든이 첫 번째 런던 여행을 떠나려 할 때, 모차르트는 고령의 하이든을 걱정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모차르트의 염려는 안타깝게도 현실이 되었다. 하이든이 런던에 머물던 1791년 12월 5일, 모차르트는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죽음을 깊이 슬퍼했고, 그 뒤에도 그의 위대함을 여러 차례 높이 평가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의 위치가 어느 날 완전히 뒤바뀐 관계라기보다는, 선배가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고 후배가 그 길을 넓혀 다시 선배에게 자극을 준 관계였다. 처음에는 연륜과 형식, 경험의 측면에서 하이든이 모차르트의 스승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존중하는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고, 예술적 표현의 몇몇 영역에서는 젊은 모차르트가 노년의 하이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평소 내가 이상적으로 희구해온 인간관계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가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뻐한다. ‘청출어람 이청어람’(靑出於藍 而靑於藍, 「勸學篇」『荀子』)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진정한 제자 또한 스승을 넘어섰다는 이유로 그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 스승은 제자의 성취를 인정함으로써 더욱 위대한 스승이 되고, 제자는 스승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한다.이러한 의미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호 연마(互相切磋), 상호학습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에게 음악이 스스로 움직이고 발전하는 견고한 구조를 보여주었다. 모차르트는 그 구조 안에 인간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불안, 웃음과 눈물을 더욱 깊숙이 불어넣었다. 그리고 하이든은 젊은 벗이 보여준 새로운 세계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후기 음악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결론 격으로, 두 위대한 음악가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에게 음악의 집을 짓는 법을 보여주었고, 모차르트는 그 집 안에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숨 쉬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으며, 두 사람은 서로의 음악을 통해 함께 위대해졌다.
우리에게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관계와 같은 모범적 사제는 없는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현대는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상대의 장점이나 뛰어난 점, 성취나 성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신감 있고 넓은 마음의 소유자들이 사회의 다수가 될 때 이런 관계자들도 다수가 될 것이다.
오늘은 내가 음악이론과 실기는 젬병이라도 음악사는 이해할 수 있어 그 가운데 우리가 본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 관계를 예로 들어봤다. 우리나라에선 하이든과 모차르트 같은 인간관계는 언제나 다수가 될까?
2026. 1. 12. 18:43.
일산 향동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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