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음악 가요

실비 바르탕의 가요 "빗소리를 들으며"로 떠난 님을 생각?

雲靜, 仰天 2025. 10. 30. 22:01

실비 바르탕의 가요 "빗소리를 들으며"로 떠난 님을 생각?


많은 사람들에게 옛적에 들은 기억이 남아 있을 가요 “빗소리를 들으며”(En écoutant la pluie)라는 샹송 한 곡을 듣는다. 조금 전에 친구가 보내줘서 들으니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다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나는 한숨 지으며 들어요. 내리는 빗소리를
내 유리창을 부드럽게 두드려요.
하염없는 눈물 같은 비가 나를 돌아보게 하네요.
그 사람 기다리며 나는 혼자라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그 사람은 모를 거예요.
내게는 그 사람만이 소중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창가에서 기다려요.
그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려요.
오, 비야, 그에게 말해 주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라고
그래서 우리 사이에 커다란 사랑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과거는 그저 슬픈 추억이 될 테니
비 온 뒤에 햇빛이 내비치면
그의 마음이 따뜻해져서
마침내 알게 될 거예요.
변함없는 내 마음을
그가 돌아와 내 눈물을 닦아 줄 거예요.”

https://youtu.be/1NufWkgHhMM?si

이 곡을 부른 가수는 프랑스 여가수 실비 바르탕(Sylvie Vartan, 1945~)이다. 그는 이 곡을 1963년에 싱글로 발표했고,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당시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곡은 그해 그녀의 2집 앨범 Twiste et chante에 수록되어 있으며, 당시 yé-yé 시대의 서정적 팝 발라드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 곡을 내게 보내 준 친구는 이 정도의 여인이라면 데이트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 “로맨스 그레이”를 꿈 꾸는 게 정상적인 심리다. 정신건강에 좋다. 지나친 상상은 오버지만!
노래하는 실비 바르탕의 표정

원래는 미국의 남성 4인조 보컬 그룹 The Cascades가 부른 “Rhythm of the Rain”(1962)이었는데 프랑스어로 번안된 것이라고 한다. 영어 노래는 상당히 경쾌한 느낌을 줘서 가사 내용의 아련함이나 비련미 같은 느낌은 살아나지 않음에 비해 샹송은 이와 정반대로 경쾌함보다 애련한 느낌과 감정이 더 우세하게 들린다. 비교가 되는 영어 곡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https://youtu.be/bQstQST1GiM?si=85qfRKE-7tGERhFf

The Cascades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가? 아마도 네 사람의 남성 가수가 노래하는 모습이 흥겨운 얼굴이고 영어라는 음성적 특성이 불어 샹송과 분위기가 달리 느끼게 만들어서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음악 감상에는 시각적 요소도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 영어 앨범엔 비 내리는 장면이 없다.

아뭏든 이 영어 곡을 리차드 앙트완(Richard Anthony)이 프랑스어로 번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변신해 있다. 여인 혼자서 노래하는 모습이 애절한 느낌을 자아내게 만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자료를 찾아 보니 이 곡(원곡 “Rhythm of the Rain”)은 여러 버전이 있는 모양이다. 복수의 아티스트들이 커버한 스탠더드 넘버로 자리잡았다고 하며, 그 중에서도 실비의 이 버전은 프랑스어 번안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케이스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실비의 앨범 'Twiste et chante'에서는 오케스트레이션을 그녀의 오빠인 에디 바르탕(Eddie Vartan)이 지휘하고 편곡해서 실비 특유의 보컬 색채와 팝·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결합시킨 사운드가 특징이다.

주목할 부분은 가사가 한 편의 시와 같다는 점이다. 가사를 음미하면 직접적인 행동 묘사보다 감정의 분위기(비, 창가, 눈물, 기다림)를 통해 서정적으로 사랑의 상실과 간절함을 호소하는 느낌이다. 프랑스어 특유의 비음이 묻어나와서 그런지 음색이나 가사에서 동양권의 가요들과는 노래 전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잔잔하고 쓸쓸한 멜로디 위에 “빗소리”가 반복적 이미지로 등장하면서 떠나갔거나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여인의 외로움과 그리움과 회한이 담겨 있다. 사랑의 아픔은 프랑스인이라고 해서 없는 게 아닐테니까!

특히 유달리 남녀 간의 사랑을 즐기는 프랑스인들에게 잊지 못하는 연인과의 추억, 그리고 기다림의 감정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라는 사실도 확인된다. 원곡의 ‘리듬’(Rhythm of the Rain) 이미지가 프랑스어 버전에서는 영어 가요보다 훨씬 더 서정적이고 “멜랑꼴리”하게 들린다. 즉 원곡의 팝적인 요소가 실비의 보컬과 편곡으로 더 애절하게 들리는데 샹송 특성이 가미돼서 그런 모양이다. “비의 리듬”이라는 물리적 소리에서 “감정의 촉매(눈물, 기다림)”로 의미가 확장된 편곡과 가사 해석이 인상적이다. 애조를 띈 노래지만 결코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고 기다림이라는 희망의 감정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더 들어보라.

https://youtu.be/1NufWkgHhMM?si


멀대가 한 번 더 들어보라라고 하니 바로 들어본 사람들, 줏대 없이 들어본 사람들도 멀대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우린 조금만 뭣해도 곧잘 감성의 늪에 빠지곤 하는 같은 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멀대”라는 거다.

노래를 들으면 그만이지 뭔 분석질이냐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곡을 내 나름대로 음악적으로 해석해보게 된다. 곡의 해석은 아니고 가사에 대한 해석이긴 하지만! 음악이 말하는 시이고, 시가 소리 없는 음악이라 믿는 내겐 곡을 시적으로, 스토리텔링식으로 감상하는 '악습'이 있다.

먼저, 도입부에 창가의 빗소리가 나온다. 한 여인이 홀로 창가에 앉아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수천 개의 눈물처럼 느낀다. 이것이 ‘혼자 그를 기다리는’ 자신의 상태를 상기시킨다.

노래가 중반부로 이어지면서 간절한 바람비에게 떠나간 옛 연인을 돌려보내 달라고 비에 호소하듯이 부탁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곤 애절한 여인의 목소리로 비가 그친 뒤 햇빛이 비치면 상대의 마음이 녹아 다시 사랑이 피어나길 바라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마지막엔 여인의 회상으로 “빗소리를 들으며 혼자 그를 생각한다”는 후렴이 되풀이 되면서 기다림과 상실감이 이 노래를 끝까지 관류하고 있다.

깊어 가는 가을밤, 오늘은 비가 내리지 않아서 분위기가 더 이상은 고조되지 않지만, 비가 내리는 가을 밤에 다시 한번 들어 보면 음색이나 가사내용에 흠뻑 취하게 될 것이다. 혹시 떠나간 연인이나 혹은 인연이 되지 않은 한때의 연인이 있었다면 그를 생각하면서 이 음악을 들으면 더 어울리겠다. 손에 꼬냑 한 잔이 쥐어져 있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비소리가 들리는 창가에 혼자라면 더 좋다. 단, 옛 연인에 대한 추억은 표내지 말고 은밀하게 회상해야 한다는 건 다 알겠지!

2025. 10. 30. 23:16.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