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음악 가요

추억이 된 아시아 가요계 새 기류의 현장 : 조용필, 타니무라 신지, 알란 탐의 협창

雲靜, 仰天 2025. 8. 5. 21:04

추억이 된 아시아 가요계 새 기류의 현장 : 조용필, 타니무라 신지, 알란 탐의 협창

1980년대, 동아시아 가요계가 비상하기 시작했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 가요계가 다같이 약동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향한 의지가 넘쳐났다. 국내를 넘어 바깥으로 무대를 넓힌 국제 교류의 시대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 찾기 내지 그것의 고양 그리고 그에 따른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에서의 국제 교류가 한 단계 발돋음 한, 그 이전엔 흔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동향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으로는 일본, 한국, 대만, 홍콩 등 이른바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상징했듯이 동아시아 경제의 고도성장이 있었다.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일본 이외 국가들이  '왜색'이라는 이름하에 일본문화의 유입 차단에 주력한 보호막을 뚫고 쌍뱡향으로 소통하고자 한 욕구의 분출도 변화의 동력이었다. 폐쇄적인 자국문화계의 빗장을 열어제치고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대외 개방 추세가 시대적 배경이 되었다.

그것은 박정희(1917~1976), 장졔스(蔣介石, 1887~1975), 리콴유(李光耀, 1923~2015) 등 위권(威權)정치를 주도한 장기 집권 지도자들이 경제성장을 이끌었지만 민주주의 발전에는 한계를 드러낸 시대에 국제화의 물꼬를 튼 기폭제였다. 동아시아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가요계의 가수들이 탈정치화를 이끈 여러 동력들 중 한 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동시대 조용필(1950~), 타니무라 신지(谷村新司, 1948~2023), 짱꿔룽(張國榮, 1956~2023), 알란 탐(譚詠麟, Alan Tam Wing Lun, 1950~) 등이 주역이었다. 짱꿔룽과 알란 탐은 홍콩가요계에서 쌍벽을 이루던 가수였다.

이들 중 2025년 8월 4일 현재 둘은 고인이 된 몸이고 둘은 남아 있지만, 네 사람은 모두 아시아 가요계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歌人들이었다. 아시아 가요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창조적 藝者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자국의 협소한 무대를 넘어 아시아인들을 하나의 장으로 끌어모았다.

오늘 오후, 그 역사의 현장을 내 친구 東浪이 나에게 열어줬다. 1984년,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선풍을 일으킨 한국의 가왕 조용필,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 가요계 최고 반열의 가수 타니무라 신지, 홍콩의 톱 레벨 가수 알란탐 셋이서 협창한 조인트 콘서트 동영상을 보내온 것이다. 그들은 조용필의 노래 '친구여'와 타니무라 신지의 '昴(すばる)' 두 곡을 한국어, 일본어, 꽝뚱어(廣東語)로 열창했다.

세 가수가 이 무대에 섰을 때 36세의 타니무라 신지가 연장자로서 협창을 리더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조용필과 알란 탐은 34세로 동갑나기였다. 모두 앳띤 얼굴이 이제 70대 중반이 된 그들과 팬들에게 격세지감의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열창하는 세 가수(왼쪽부터 조용필, 타니무라 신지, 알란 탐)


조용필의 대표곡 중 하나인 '친구여'는 한국인들에겐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는 인기곡이다. 스바루(昴 -すばる)는 1980년 4월 타니무라 신지의 싱글로 발매된 가요다. 타니무라 신지의 대표곡인 스바루(昴)는 플레아데스 성단(プレアデス星団)의 일본식 이름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곧 가사 해석부분에 가서 후술하겠지만 스바루는 가사에서 중요한 뜻이 들어가 있다. 아뭏든 솔로 가수로서는 최고 기록을 세운 노래 스바루는 60만 장의 앨범이 팔린 대히트곡이었고, 선보인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85년부터 일본의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여러 차례 실렸다고 하니 가히 일본 가요계에서 인기가 어떠했는지를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스바루의 가사를 보면 인간의 꿈, 희망, 인생의 덧없음이라는 테마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장대한 세계관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주제 뒤에 숨어 있는 작사 작곡가인 타니무라의 인식에 더 눈길이 가진다. 타니무라는 기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시각 및 인식의 전환을 강조했다. 무슨 말인지는 스바루 가사를 보면 감을 잡을 수 있다.

目を閉じて何も見えず哀しくて目を開ければ
(눈을 감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슬퍼서 눈을 뜨면)
荒野に向かう道より他に見えるものはなし
(황야로 향하는 길보다 달리 보이는 것은 없다)
ああ砕け散る宿命の星たちよ
(아아, 부서지는 숙명의 별들이여)
せめて密やかにこの身を照らせよ
(하다못해 남모르게 가만히 이 몸을 비춰라)
我は行く 蒼白き頬のままで
(나는 간다 창백한 뺨인 채로)
我は行く さらば昴よ
(나는 간다 안녕 스바루여)
呼吸をすれば胸の中凩は吠き続ける
(호흡을 하면 가슴속 초겨울 찬 바람은 계속 짖는다)
されどわが胸は熱く夢を追い続けるなり
(그래도 우리의 가슴은 뜨겁게 꿈을 계속 쫓게 되고)
ああさんざめく名も無き星たちよ
(아아, 이름도 없는 요란스런 별들이여)
せめて鮮やかにその身を終われよ
(하다못해 선명하게 그 몸을 끝내라)
我も行く 心の命ずるままに
(나도 간다 마음이 명하는 대로)
我も行く さらば昴よ
(나도 간다 안녕 스바루여)
ああ いつの日か誰かがこの道を
(아아 어느 날엔가는 누군가가 이 길을)
ああ いつの日か誰かがこの道を
(아아 어느 날엔가는 누군가가 이 길을)
我は行く 蒼白き頬のままで
(나는 간다 창백한 뺨인 채로)
我は行く さらば昴よ
(나는 간다 안녕 스바루여)
我は行く さらば昴よ
(나는 간다 안녕 스바루여)

여기서 가요 스바루의 이해를 위한 열쇳말은 당연히 昴(스바루)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면 이 가사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된다. 昴(스바루)란 고대 중국인들의 우주관에서 별자리 28수(宿)를 말하고 수확의 타이밍을 도모하는 것과 항해의 표시이기도 한데, 재산을 가져다주는 '재의 별'(財星)이기도 했다. 만약 昴가 '재의 별'이라면,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물질문명의 상징이다. 타니무라는 기존 가요에 식상한 나머지 새로운 음악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중국의 고도 시안(西安)과 인도를 여행하던 중에  '스바루'를 착상하게 되고선 '안녕 스바루여'의 의미를 깨쳤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 타니무라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앞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건을 보고, 돈이나 물건이라고 하는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정신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자!” 가사 전반부는 의미를 쉽게 알 수 없는 표현들이 나오지만 한 마디로 물질문명의 상징인 '스바루'에게 “잘 가라”라고 이별을 고하는 것은 물질 문명에 작별을 고하자는 의미였다.

자, 이제 동영상이긴 하지만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의 현장을 감상해보라.
https://youtube.com/watch?v=SxsgWjnXSeA&si=hfyXI3z0jrLYZdyJ

순서가 조금 바뀐 듯 하지만 노래를 감상했으니 이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조용필에 대해선 소개하는 것 자체가 군더더기 같아서 생략하고, 요즘 신세대 국내 가요 팬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타니무라와 알란 탐에 대해서만 팁으로 약간 언급하는 게 좋겠다.

일본 오오사까(大阪)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자란 타니무라는 활동영역이 대단히 넓었던 멀티플 플레이어였다. 2년 전인 2023년 10월 75세의 일기로 고인이 된 그는 싱어송 라이터로서 작사가, 작곡가이기도 했고 앨리스의 리더이기도 했지만 탤런트와 대학 교수로도 활동했다. 그의 딸(谷村詩織)도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알란 탐 역시 활동 반경이 좁지 않았다. 1974년 'Listen to the Wynners'로 데뷔한 가수이면서 작사가, 작곡가였을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연기 재능을 발휘해 금마장(金馬獎)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지금도 '온나 밴드'의 이중 보컬(溫拿樂隊雙主唱)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역 가수다. SNS상의 자료엔 그는 중국어(뻬이징 표준어, 꽝뚱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소개돼 있다.

가요 스바루에 대해서 사족 한 마디! 이 노래는 일본 이외의 아시아권에서 '북국의 봄'(北国の春)과 함께 가장 많이 알려지고 불리고 있는 일본가요라고 한다. '북국의 봄'은 내가 한국에서나 일본에 가면 가끔씩 부르는 나의 애창곡이다.

그런데 스바루는 한때 표절시비가 있었다는 사실을 참고로 소개하고 이 잡고를 끝내려고 한다. 예컨대 이 노래의 가사는 메이지 시대의 유명한 단가 시인이었던 이시까와 타꾸보꾸(石川啄木, 1886~1912)의 노래집 '슬픈 완구'(悲しき玩具)의 첫머리 2수와 많이 닮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타니무라는 이렇게 해명했다고 한다.

“대학시절 이시까와 타꾸보꾸를 읽었습니다. 읽었다기보다는 먹었어요. 그리고 그때 먹었던 양식이 곡이나 시가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마음속의 타꾸보꾸입니다”라고.

타니무라 신지는 자신이 이시까와 타꾸보꾸를 “읽었다기보다는 먹었다''고 고백했듯이 평소 타꾸보꾸 시인의 작품을 좋아했고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의 말에는 먹고 잘근잘근 씹어서 온전히 자기 것으로 뱉어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한편으론 스바루의 곡은 '카또우 하야오 전투대 군가'(加藤隼 戦闘隊 軍歌)와 흡사해서 표절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내일부터는 또 다시 장마가 올 듯해 보인다. '친구여'와 '스바루'를 들으면서 가왕들의 音響 속에 장마전선의 북상을 담담히 맞이하려고 한다.

2025. 8. 5. 21:54.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2025. 8. 6. 11:25.
성남시 단대오거리역 화장실에서 가필